임권택 감독의 노는계집 창

썸머타임과 함께 케이블 심야시간대 단골 한국영화인 노는 계집 창을 오랜만에 봤습니다. 새벽에 케이블 틀었더니 초반 장면이 나오길래

몇 장면 보다가 결국 끝까지 다 봤어요. 예전에 볼 땐 와닿는 부분이 별로 없어서 그저 거장 감독이 관객 좀 모으려고

말초적 재미를 주기 위한 술수로 창녀의 세계를 다뤘다는 식으로나 이해하고 말았는데 그렇게까지 내리깍아서 볼 영화는 아니더군요.

다시 보니 좋은 영화까진 아니더라도 괜찮은 영화였네어요.

영화는 편집도 툭툭 끊어지고 한 창녀의 20여년의 삶을 너무 급하게 몰아부쳐서 들쑥날쑥한데다 중간중간 정권 바뀌는 시기를 자료화면으로

집어넣은것이 어줍잖아 보이긴 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아요. 예전에 볼 때도 오랫동안 잔영을 남긴 장면들 때문에

금방 잊혀지지가 않았는데 다시 봐도 정말 그래요.

배우들의 연기가 무척 좋은 영화죠. 개봉 당시엔 몇 장면 안 나오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퇴물창녀 역의 정경순이 많이 부각됐었죠.

당시 임권택 감독 영화에 연달아 출연하면서 주가도 높았고 주연 배우인 신은경과 절친하다고 해서 방송에도 많이 나왔습니다.

정경순의 연기도 좋았지만 오지혜의 연기도 무척 좋았어요. 오지혜는 순박한 창녀 역을 맡았는데 나중에 에이즈 걸린 게 들통 나 끌려갑니다.

남자주인공이 양반집 규수랑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신은경 앞에서 담담하게 "여기 양반집 규수 한명 또 있다."하면서 남녀구분이 엄격했던

집안에서 태어난 자기 얘기를 하는 장면이나 에이즈 걸린 게 들통나서 창녀촌에서 끌려나오는 장면에서 신은경과 아무 말 없이 쓸쓸하게 인사를

나누는 장면 등.

 

신은경도 잘 했네요. 그 당시엔 노출 때문에 오히려 연기가 가려진 감도 있고 어설픈 것도 보였는데 당시 나이가 20대 중반이었는데

나이를 생각하면 성숙한 연기였어요. 뺑소니 사건 이후 복귀작이라 사력을 다했다는게 보이는데 이후 신은경은 이 작품에서의 연기를

넘어서는 연기를 보여준적이 없다가 비로소 하얀거짓말과 욕망의 불꽃으로 출중한 연기력을 선보였죠.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 주인공과의 오랜 해후, 이제는 아무 말 안 하고 외출해도 찾지 않는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친

퇴물창녀가 된 신은경이 남자주인공과 아무 말 없이 포옹하는 장면이 있는데 쓸쓸하더군요. 임권택 감독 영화는 이런 식의 절제된 장면이 많아요.

아제아제 바라아제때도 고등학교 교사였던 유인촌의 시집을 읽고 뭔가 알 수 없는 마음에 답답해진 강수연이 쓸쓸하게 오토바이를 몰고 가는 장면도 있고

길소뜸에서의 해후 장면이나 씨받이에서 다시 마을로 돌아온 강수연이 계속 뒤를 돌아보는 장면 같은 것 등.

 

노는계집 창은 아마도 국내 영화사에서 여배우가 벗으면 뜬다 라는 속설을 거의 처음으로 증명한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전에 박영선만 해도 리허설 찍고 충무로에서 활동을 못했고 그 전의 정선경도 정말 위태위태했어요. 티비드라마 장희빈만 아니었으면

그녀가 과연 영화계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군요. 노는계집 창 때까지만 해도 여배우의 노출, 잘 나가는 여배우의 노출은

여배우 생명 끝장이나 다름없었는데 신은경이 뺑소니 사건으로 걸리고 몇 달 후 이 영화를 들고 나와 재기에 한번에 성공했죠.

이때문에 비아냥도 많이 샀는데 지금 봐도 노출 빈도가 높긴 높네요. 취재를 많이 하고 시나리오를 썼다는게 보였어요.

사실적인 묘사가 많더군요. 아주 담담하게 보여주는데 이런식의 전개과정이 이 영화가 3류 영화가 아니란걸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97년 추석 때 개봉해서 접속에 이어 2등을 했죠. 당시 마리아와 여인숙,접속,현상수배,블랙잭,창 이렇게 다섯편이나 되는 한국영화가 개봉했는데

당초 경쟁작으로 떠올랐던 마리아와 여인숙은 망했고 창은 노출의 힘으로 성공했어요. 이때부터 평론가들이 임권택 감독 영화를 어떻게 평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했던 것 같습니다.   

    • 고등학교 때 친구들하고 빌려보다가 부모님오셔서 황급히 숨기고 뭐 그랬던 기억이 ㅡㅡ ㅋ
      제 기억이 불완전한지는 모르겠는데 비디오판에서는 기둥서방(!)하고의 베드신이 두번 연달아 나왔던 것 같아요. 거의 같은 장면인데. 지금생각해보니 비디오업자가 흥행을 위해 같은 베드신을 두번 연달아 붙이는 이상한 짓을 했던걸까요? 아님 제가 친구들이랑 리와인드해서 봐놓고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걸까요?ㅡㅡ;;
      내용은 나쁘지 않았는데 남자배우 연기가 참으로 아마추어스러웠고 그 이후 어떤 영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던 기억이..
      어린 나이에도 제 친구가 "쟤는 임권택 조카아니야? 연기가 뭐 저래"이랬다는 ㅋ
    • 얼마전에 케이블에서 해주는 하녀를 보고 여배우로서의 삶이 참 만만치 않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전도연도 이례적으로 노출을 시도한 배우였죠. 해피엔드는 그당시 순진했던 저에게(뭐래) 이만저만 파격이 아니었어요.
    • 기둥서방하고 두번 관계하는게 아니고 한번 관계한느걸 두번에 나눠서 연달아 보여주더라고요.
      남자배우 연기가 엄청 구렸는데 그렇다고 멋있는것도 아니라서 어떻게 캐스팅됐는지 의아했어요. 남자주인공이 신은경 보는 앞에서 오줌을 누는 장면이 상당히 쇼킹했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길가에서 노상방뇨하는것도 모자라 여자 보는 바로 앞에서 그러다니...
    • 그렇잖아도 오늘 아침 그 영화 속 신은경의 모습이 떠올라 괜히 우울했습니다. 친구와 극장에서 봤는데 좀 민망했어요. 그 기둥서방과의 섹스씬이요. 감독이 관객에게 드리는 서비스라는 말을 해서, 으응?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즐기지도 못하는 서비스를 받아서;;
    • 기둥서방이라...요즘 광개토태왕에 국무총이로 나오시는 그분인가..
    • 여담으로..위에 언급된 영화중 "블랙잭"은 카피가 "킹을 든 남자 에이스를 든 여자"인가 그랬는데 의외로 완성도가 괜찮아서 재밌게 봤었어요.
      정지영감독이 이 영화로 대종상인가 감독상을 받았었죠 아마? 그 때도 신문에 "영화자체는 완성도가 있는데 최민수와 강수연이 소구력이 지난 스타라서 흥행을 못했다"라는 기사가 실렸던 기억이 납니다.
      "마리아와 여인숙"은 영화도 별로였는데 그 해 대종상에서 자막에 "미아리와 여인숙"이라고 나와서 더 웃음거리가 되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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