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기반대자의 심적배경 두 가지'를 제시하신 글에 대한 답변입니다.
이제 그만 써야지 생각했기 때문에, 말씀하신 내용에 대한 제 생각을 쓸까 말까 하다 결국 몇 줄 남깁니다.
댓글로 쓰는 것이 맞겠으나 이미 페이지가 넘어갔고, 쓰다보니 글이 길어져 새로 씁니다.
(개고기 논쟁이 불편하신 분들은 지나가셔도 좋습니다만, 그럴 분들은 이미 이 글을 지나치셨으리라 생각도 드네요.)
1. 본문과 덧글에서 '우월감', '내가 주류'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전혀 그렇지 않죠.
오히려 이 문제에서 가장 우월(?)한 쪽은 '나는 안 먹지만 남에게 먹지 말라고 하지도 않는다'는 입장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를 키우면서, 그리고 이런 문제들에 입장을 밝히면서 선진문화를 향유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기는 사회적 분위기상 정말 어렵습니다.
먼저 소위 '애견가'의 경우, 사람들은 개 키우는 사람을 보고 '어머, 개 키운다, 부럽네.'란 반응을 보이지 않아요.
''개 키우는군.'하는 무반응이 있는가 하면 '아 왜 개를 키우고 난리야'하고 백안시하는 사람들도 많죠.
그래서 항상 눈치를 보고 주의하는 입장이라면 모를까, '선진문화(?)를 먼저(?) 향유하는 자로서의 자부심'은 절대 아니죠.
그럼 애견가 이야기는 뒤로 하고, 이런 논쟁에 참여하고 이슈를 만드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것이 제게는 일관성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적극적인 활동가는 아니지만 정기적으로 동물단체를 후원하고 이런저런 활동에도 직접 참여하는 사람으로서,
제 관심을 끌고, 저를 움직이게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5살 아기 코끼리들이 서울에 도착한 날 부터 하루종일 휴식도 없이 공연에 들어가고 그러다 못이겨 소위 '모의탈출'을 감행한 다음
잡히고(코끼리의 이런 집단행동이 자기들끼리 계획한 것일 수 있다는 동물행동학자의 의견이 있었죠), 다시 '속죄 공연'이라며
무료공연을 펼칠 때는 진정 속죄할 것은 누구인가하는 글을 어딘가에 써 봅니다.
호랑이 기상을 보여준다며 호랑이해에 구청 로비 아크릴 상자에 아기 호랑이를 수 일이나 전시했을 땐 동물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구청 게시판에 항의합니다. '쥐의 해와 용의 해에는 어쩔테냐'며 빈정거리기도 하고요. 동물원이나 거기나 뭐가 다르냐고 하는 경우도 봤지만,
에버랜드 사파리와 시멘트 바닥 철감옥 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죠.
살아있는 전갈을 인형뽑기같은 장치에 넘어 오락도구로 쓰는 곳을 보고, 신고도 하고 구청에 항의글도 올립니다.
고등학교 축제 기간에 맥락없이 개구리 해부, 고양이 해부를 하는 행사가 있다는 제보가 단체에 들어왔을 때는
학교 게시판에 찾아가 당신들이 기대하는 교육적 효과보다, 생명경시로 인한 부작용이 더 크지 않겠느냐는 글을 씁니다.
SBS어느 프로그램에서 눈 가리고 상자 안에 떨어지는 물건을 맞추라며 척추동물들을 높은 곳에서 떨어뜨릴 땐 SBS 게시판에 가서 항의합니다.
'동물에게도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 스트레스 만으로 신체에 손상이 올 수 있는지 없는가'를 알아본다며 토끼를 두 그룹으로 나누고
한 쪽은 청결히 사육하면서 쓰다듬어 주고, 사랑을 주고 한 쪽은 늑대소리를 들려주고 몸을 찔러대고 괴롭히며 스트레스를 가한 다음,
"스트레스 받은 토끼들이 눈이 튀어나오고 혼탁해지며 안압이 증가했다! 국 스트레스만으로 몸이 상한다! "
방송을 위한 이런 실험을 하고 결과를 발표한 KSB 다큐를 보고는 또 방송국 게시판에 달려가 항의합니다.
화장품은 동물실험 안 하는 회사의 것을 쓰려고 하고, 유럽 화장품 회사들이 자기들 나라의 까다로운 규제 때문에 우리나라 회사들에
실험을 위탁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관련회사들의 제품을 쓰지 않고 그 사실을 가능한 널리 알리려고 노력합니다.
겨울이 되면 야상 내피, 후드의 트리밍에 쓰이는 라쿤(이라고 하는) 털이 어떻게 생산된 것인지 슬쩍슬쩍 주변 사람들에게 알립니다.
모피에는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개고기와 마찬가지로 모피 반대하면 그럼 구두는? 가죽가방은? 이란 반응이 나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크록스나 탐스, 면이나 합성피혁 가방을 쓰려고 합니다.
마치 스웨이드 같으면서 보들보들한 '송치'가 실은 난지 얼마 안되는 소의 새끼나 암소의 뱃속에 있는 새끼(unborn calf skin) 가죽이라는
사실을 얘기해주고 싶지만(내가 우월해서가 아니라, 알면 절대 안 쓸 사람들인데 모르고 쓰고 있는 경우 그렇습니다)...
진짜 송치는 너무 비싸서, 주변에 사는 사람도 없네요.
"모피나 가죽은 괜찮다고 생각하고 육식에도 찬성하지만 지금의 공장식 축산에 문제가 있다" 생각하는 사람은 그 쪽에 관심을 갖고,
좀 값을 더 치르더라도, 혹은 세 번 먹을 것 한 번으로 줄이더라도 제대로 기른 동물의 고기를 구입하여,
큰 초기비용을 치르고 시설 투자를 감행한 생산자를 격려하면 됩니다.
개를 마당에서 키우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하지만, 개들이 기둥에 묶여 행동반경이 채 1미터도 안되는 채로 사는 것이 마음아픈 사람은
개줄 묶는 대안으로, 기둥 두 개를 높게 세우고 그 사이에 빨랫줄을 묶고 개줄을 길게 연결해,
개가 집은 나가지 않되 앞뒤, 좌우로 넓게 뛰어 다닐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리는 일을 시작하면 됩니다.
'마음은 아프지만 소, 돼지, 마당 개의 운명이 원래 그렇지'라고 생각하면 달라지는 게 아무 것도 없지만,
열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도 마음이 움직이고, 뭔가 행동을 할 수 있다면 1g이라도 달라지는 게 있는거죠.
길게 썼지만, '저 사람 있어보인다'란 반응을 기대한다면 다른 방법을 찾지, 반발도 크고 때로는 비웃음도 사는 이런 이야기 꺼내지 않습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개를 때려잡고, 10대 청소년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남의 집 개들 아홉 마리를 훔쳐 죽이고,
남의 집에 들어갔다가 훔칠 것이 없어, 그 집에서 자기들을 따라다니던 강아지를 세탁기에 넣어 온수를 틀어 죽인 10대 얘기를 대하면,
그것이 자신보다 약한 생명체에 대한 폭력인 것이 분명하기에 분노를 느낍니다.
도사견같은 무서운 개가 침을 질질 흘리면서 덤벼들었다면 도망가기 바빴을 인간들이 꼬리 살랑거리는 작은 동물은 무참히 죽일 수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지만, 내가 우월해서 열등한 이들을 비웃는 자기애적 감정으로 분노하는 게 아닙니다.
분명 고통을 느끼는 생명인데 단지 사람의 말을 못하니 마치 고통 자체가 없는 사물처럼 취급되니
내가 대신해서라도 말해주고 싶은 절박함인 겁니다.
사람이 뭔가 주장할 때는 그 심적 배경에 우월감이 있어 그러는 걸까요?
슬픔, 절박함, 안타까움, 때로는 분노와 절실함이 있지 않을까요? 개 먹는 나라에서 개고기 문제는, 말 꺼내봤자 내가 우스워지고 피곤해지니
그냥 지나가자 하는 것은 제게 있어 오히려 일관성 없는 행동이고, 그래서 자꾸 논쟁에 참여하고
삼복더위에 개 말고, 삼계탕 말고 들깨죽 먹자, 수박 먹자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다시 예 하나만 들게요.
지난 겨울 르*이라는 브랜드에서 인터넷 백화점쇼핑몰에 '고양이 털 베스트'를 올려 놓았을 때는 헉 소리 났지만 가만히 있었습니다.
이미 중국산 라쿤털이라고 알고 있는 것중의 대다수가 개와 고양이 털인 줄 알고 있었고, 당시 기사화될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항의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해당 브랜드에서는 그 상품을 목록에서 내렸고요.
항의하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당신들 뭐냐, 위선이다. 고양이가 칭구칭구라 이렇게 항의하냐, 그 전에 그 많은 밍크와 여우털, 라쿤털에는
왜 가만히 있었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전부'가 아니라도 되니까요. 각자 자기가 가장 아픈 그 지점에서 하나씩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꼭 동물 문제가 아니더라도, 어떤 사람은 환경, 어떤 사람은 전쟁, 어떤 사람은 인문학, 어떤 사람은
매 맞는 아내, 어린이, 이런 문제가 특히 아프게 다가오지 않겠습니까? 이런 문제에 주장을 펼 때 그것이 실제로는 우월감에 근거한 것이리라
생각한다면 어느 주장엔들 마음을 열 수 있을까요? 그리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 우월감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길래
굳이 다른 방법도 아닌 이런 '피곤한' 방법으로 그걸 과시할까요?
2. 서양사람이 우아한가요? 잘 보이면 뭐 상 주나요? 상 주면 그것 받아 어디다 쓰나요? (신해철 노래에서 차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같은 아시아 국가인 대만은 2005년에 '고기나 가죽을 얻을 목적의 개, 고양이 등 애완동물 도살 금지'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예전 가난한 시절에는 개고기가 영양공급원으로 쓰였으나 대만 경제도 발전했고 시대가 변했다는 주장이 통했던 거죠.
여기서 대만의 예를 들면 저는 대만 사람에게 "쪽팔려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요?
그렇게 당당하게 외치는 사람을 별로 못 보셨다는 것은, 반대로 그렇게 느껴서 이 주장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뜻이지 않을까요?
이것을 누구나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이유로 삼으셨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