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나는 살아있는 전설이다"? / 무한도전 가요제 음원 히트 현상을 보며...

1.

 

설마 제가 잘못봤겠지 싶어서 검색을 좀 해봤는데 사실 확신을 잘 못하겠네요. 제 기억이 맞을거라 생각하며....

 

평창 동계올림픽이 유치되었습니다. 투표 몇 시간 전에 이루어지는 프리젠테이션이 과연 의사결정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좀 의문스럽긴 한데, 여튼 정말 할만큼은 다 하더군요. 그 중에서 가장 주목받은 연사는 물론 김연아였죠. 전체 대본을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주요 언론이 인용한 대사로는 “나는 정부가 한국의 겨울 스포츠 수준을 높이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며 살아 있는 유산(I’m an example of living legacy of Korean government)” 이라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유치가 확정된 후 SBS에서 방송한 특집 다큐 예고편을 보니 김연아가 해당 대사를 하는 장면 밑에 자막을 달아놨더군요. "나는 살아있는 전설이다".

 

응? legacy = legend 로 쓰이기도 하나요? 제가 영어를 못해서 그런거겠지 싶어서 나름 검색을 계속 했는데 흔히 우리가 "이건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라고 하는 식으로 "레거시"라는 단어를 쓰는 용례는 못봤는데 말이죠. "살아있는 전설"은 매우 흔하게 쓰이는 표현이긴 하지만 본인이 본인을 지칭하기에는 좀... ㅡㅡ

 

2.

 

무한도전 가요제가 끝난 후, 음원 차트는 쉽게 정리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20위 안에 무한도전 가요제 곡 7곡, 그 주의 나는 가수다 곡 7곡. 기타 등등 6곡.

 

예전에 박경림이 한 방송에서 "고속도로 테이프 만들기 프로젝트"인가 해서 가수에 도전한 적이 있죠. 그 결과물인 "착각의 늪"은 실제로 방송에서도 1위를 했던가... 아니어도 상당한 순위까지 올라갔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야말로 고속도로 테이프에 들어가기 알맞은 수준의 곡과, 박경림인거 아니까 재미로 들어주는 거지 그냥은 못들어줄 목소리였음에도 공중파에서 인기를 끈 프로젝트의 힘이 크긴 하더라구요. 그때 한 칼럼에서 "박경림에게 사감은 없지만, 이게 1등까지 한다는 건 정말 우리 가요계가 맛이 갔다는 증거"라고 한탄하는 글도 봤어요.

 

이번 무한도전 가요제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참여한 뮤지션들은 나름 최선을 다해서 곡을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무래도 가수들이 본인의 정규 앨범에 실리는 곡을 작업할 때보다는 아무래도 무게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엔 그런 장면은 못봤지만 2년 전 가요제에서 정형돈과 작업한 타블로는 "에픽하이 음반에 담으려다 도저히 못쓰겠어서 버리는 곳을 주겠다"는 농담(?)도 했죠. 가사를 봐도 장난끼가 많이 섞여있고요. 하지만 그렇게 발표된 곡은 여지없이 음원 순위 상위권을 싹쓸이. 그에 비해 정말 피똥싸게 노력했어도 결국 음악을 그만둘 때까지 그 순위에 못가보는 뮤지션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보면 뮤지션들이 보면 허무하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 2. 어쩌겠습니까. 노출이 많이 되었는걸. 그리고 사고 싶은 상품으로 잘 포장되었는걸요.
    • 요즘의 음원순위 자체가 음악적 완성도 순위가 아니라 인기순위인 것을요 뭐.
    • 1. 자막 번역하신 분의 혼이 잠시 다른 곳으로 이탈한 경우...
    • of가 연속해서 들어간 문장을 원어민들은 어색해하지 않나요? 접속사를 넣거나 문장을 끊는 게 더 자연스러운 게 아닌가?
      우리 말에도 '의'가 연속해서 들어가면 무지 어색해지잖아요. '윤도현의 두시의 데이트'는 아무래도 어색하거든요.(본문과 전혀 관계 없는 얘기네요)
    • 1. 자막 왜곡했다고 아사히TV만 뭐라 할 게 아니군요. 살아있는 유산이 맞겠죠. 급하게 번역했나봐요.
    • Giggler / 영화 "라디오스타" 생각나네요. ㅎㅎ

      메니저 : 정오의 인기가요 앞에 "최곤의" 넣어야지?
      피디 : "의"가 두 번 들어가서 이상하잖아요.
      메니저 : ..... "민주주의의 의의". 4번!
      피디 : 아 그거랑 이거랑 같아요?!
    • 레거시를 전설로 쓰는건 저도 못본거 같습니다. 번역자가 잘못 이해한거 같네요
      레거시는 법률용어에서 유래되었는데 일반적인 용례는 또 조금 다릅니다. 컴터를 예를들면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같은걸 레거시라 하죠. 영화 [트론 레거시]도 그런 의미고요. 한글로는 딱히 이에 대응하는게 없긴 해요. 연아의 업적은 현대적인 결과물이지만 과거로부터 교육받은 토대를 긍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리빙 레거시라고 부른거 같습니다. 직접적인 '유산'이라고 해석한다면 헤리티지가 더 맞겠지만 이건 너무 자화자찬이라 어색하고..연아가 연설한 내용이 적당한거 같습니다.
    • 2. 재작년 가요제랑 올해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랑 단선적 비교는 좀 그렇죠.
      그때보다 퀄리티가 훨씬 좋아서 오히려 팬들은 그런 작은 가요제 느낌이 안나 아쉽다는 사람도 있었고.
      그리고 가요제 보셨으면 아실텐데 가수들 자기 앨범에 작업할 곡 가지고 왔어요.
      두달동안만 작업했다고 해서 그 작업기간이 다라고 생각하시면...(타이틀곡 가져온 사람도 대다수.)

      비단 무도 가요제 음원 뿐 아니라 다 그렇지 않나요. 티비에 노출되는 빈도수가 많을수록
      어느 홍대 인디씬의 좋은 음악보다 사랑받는걸요. 그리고 무도 앨범이 그렇게 후지진 않아요.
      무도 버프를 탄데다 노래도 좋으니 히트했죠. 지적하신 재작년 가요제보다 이번이 훨씬 앨범 판매량이나
      음원순위도 롱런했습니다.

      순정마초 같은 경우는 가사 좀 손보고 진지하게 다른 가수가 불러도 참 멋진 노래죠.
      그리고 전 무도 노래들이 가사가 코믹하다는 생각은 하는데 그게 별로라는 생각은 안해요.
      가사가 반드시 무겁고 차분해야 할 필욘 없죠. 노래 들었을때 재밌고 기분좋은것도 꽤 음악의 순기능이라고
      생각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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