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 엄마가 되어버린 사나이의 사연들 - 비/한강/빙수

1.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지독하게 비가 내렸지만 사실 전 세찬 비 소리가 그렇게 싫지 만은 않았습니다. 타랑타랑 창을 때리던 빗소리는 사람의 소리를 지워내어 단조로운 내 마음의 단면을 상기하는 것 같았거든요. 집안의 모든 등을 끈 후 어둠 속의 빗소리는 마치 내 마음의 라디오를 맞추는 소리처럼 우련하게 추억과 외로움의 멜로디를 떠울리게 했지만 어느새 보드라워진 마음으로 인해 좋은 음악이 좋은 영화가 보고 싶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날에 저에게 좋은 친구로 떠오른 영화는 두 개였습니다. 하나는 쿵짝거리는 리듬이 언제나 뽀송뽀송하게 느껴지는 댓싱유두와 물과 바람이 안개와 같은 음악의 여정이 되는 시규어로스의 헤이마 였죠. 참 보고 싶었기에 아껴두었건만 비 대신 폭염이 저를 힘들게 하는 하루가 시작되었네요. 하지만 여름은 길고 마치 소나기처럼 잠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앞으로도 있겠지요. 그런 날 이 영화를 꺼내보기 위해서 전 DVD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에 두 개의 DVD를 같이 꼽아 두었습니다.

 

 

2. 올해는 봄부터 꽤 자주 한강에 방문했던 것 같아요. 하늘을 투영할 정도로 맑은 물이었던 적은 없었지만 일렁이는 물결 사이로 물감이 풀어지듯 흘러내리는 야경의 불빛들이 아름다워서 캔버스에 갇히지 않은 고흐의 밤을 보고자 한강에 방문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3주 전 쯤에 기묘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검은 물체가 한강에 떠내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었지만 전 그것의 정체가 궁금해서 한 동안 그것을 계속 따라다니며 주시하고 있었지요. 끝내 그것의 정체는 알지 못했지만 마음 속에서는 두터운 시상이 떠올라서 글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의 빈약한 어휘력을 한탄할 수 밖에 없는 채 검은 것에 대한 글을 남기지 못했는데 대신 그것을 쓰기 위해 상반된 감성으로 쓰여진 글자락들을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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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성흥성 퍼쿠션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듯 물결이 더욱 일렁거린다

 

송골송골 수면 위에 맺힌 불빛들은
땀을 닦듯 바람이 담뿍 훔쳐낸다.

 

어둠이 하늘을 드리울수록
강의 춤사위는 더욱 격렬해진다

 

내 콧끝을 시큰거리게 했던 그건
흥겨움에 부끄러움을 잊은 너의
땀내음 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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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어귀에 앉아
외로움을 흘러 보내고자 합니다

 

필요한 건
우크렐레의 찰랑거리는 멜로디
탁! 거품이 일어나는 맥주 한 캔

 

그리고
검푸른 밤 사이에 숨어 둔
너의 발개진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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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결에 물의 길을 동반자 삼아 내려오다
너무 작아 위태롭던 하이얀 종이배를 보았지요

 

넘쳐흐르던 아이의 웃음과
바보같았던 연인의 장난질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유히
자신의 뱃길을 가던 배는

 

시나브로 조금씩 젖어 들더니
이내 하나의 종이뭉치가 되어
누워버리고 말았지요

 

하지만 다리 하나는 훌쩍 넘었기에
돌아가는 길의 저의 땀방울로 옷자락도
흠뻑 젖을 수 밖에 없었지요

 

하찮은 종이 한 장 조차도
이 정도의 사연은 담아 낼 수 있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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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6월의 듀솔클 정모는 장마와 태풍의 격렬한 협연처럼 비와 바람으로 그득했던 하루였지만 그 만큼이나 즐거웠던 하루였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저의 인연을 찾았냐고 물으신다면 찾긴 찾은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것이 연인의 인연이 아니라 모자의 인연을 찾았다고 말해야 할까요. 한 분 두 분 저를 두고 엄마라고 부르고 싶다 길래 정모가 끝난 뒤에 공식적으로 “엄마라고 부르는 것을 허하노라” 라는 호모를 허락했는데 이젠 제가 자칭하는 것을 보면 내심 마음에 드는 별명인가 봅니다. 하지만 빨간 망토를 입은 소녀에게는 “내가 아직도 엄마로 보이니?”라며 돌변하는 늑대처럼 제 자신의 늑대의 피는 여전히 뜨겁게 흐르고 있지요.

 

 

4. 하지만 몸 속에 뜨거운 피가 흐르기에 한 여름의 더위는 너무 견디기 힘듭니다. 밥 한 그릇 보다 얼음 한 사발을 앞에 두고 우적우적 씹고 싶은 요즘인데 때문에 시간이 날 때마다 빙수집을 찾아서 탈탈탈 얼음을 털어놓고 있지요. 보통은 달지 않은 수제 팥과 우유얼음, 인절미로 이루어진 단순한 빙수를 좋아하지만 간혹 과일 토핑으로 가득한 빙수가 먹고 싶기도 합니다. 뷔페 형식으로 자신이 토핑을 선택할 수 있는 빙수집은 없는 걸까요? 있다면 가득 가득 기묘한 토핑을 가득 얹어서 먹을 텐데 말이죠. 그러고 보니 작은 조카는 녹차빙수를 내오자 마자 엉망으로 망가뜨린 후 걸죽 해진 일명 슈렉 빙수를 참 좋아합니다. 이렇게 파란 하늘에 어울리는 빙수가 있을 까요? 오늘도 집에 가는 길에 하나 사냥해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


    • 대만이나 홍콩에는 토핑을 따로 주문할 수 있나 보더군요.

      그리고, 가족끼리 그러면 안됩니다.
    • 저희 엄마가 확실합니다!
    • 어머니 제게 호모를 허해 주세요!
      허하노라...
      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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