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하얀 나비'가 그냥 나비가 아니었나봐요...(좀 기네요...)

 

 

얼마 전에 제가 하얀 나비를 참 많이 봤다는 글을 올렸었어요.

그리고 지나가듯이 누군가의 영혼이 아닐까라는 글을 썼었는데,

그런 지나치듯 한 말이 정말 누군가에게 진실.. 혹은 그에 가까운 고통이 될 줄은 몰랐네요...

 

 

 

어제 같이 공무원 스터디 하는 오빠를 만났어요. 스터디 하는 날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봐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구요.

만나서 어제 본 시험 푸념이나 해야겠다 라는 생각에 불렀고, 저희는 근처 팥빙수 집에 갔어요. 그리고 팥빙수와 토스트를 시켜놓고 이야기를 하는데,

대뜸 집안에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둥둥 돌려서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원래 집안 얘기를 자주 하긴 했지만 밑도 끝도 없이 지리하게 늘어놓진 않았거든요.

평소라면 쿠사리 줬을텐데 왠지 얼굴의 느낌이 좋지 않아서 묵묵히 듣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때부터.. 얼굴이 잔뜩.. 흐려지더라구요.

집에 가니깐 시험 얘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더라고, 오히려 방 안에서 제를 지내고... 아끼는 불화도 태우더라고..

그래서 아 난 완전 포기당했구만, 하는 자괴감에 방에 틀어박혀 있었는데

 

자정잉 다 되어서 형이 자? 라고 묻더니 아니면 잠깐 얘기 좀 하고 오자면서 밖으로 불러냈대요.

그리고는 벤치에 앉아서...무슨 일이냐고 하니깐...

형이 벌컥 울면서 어머니가 몸이 좋지 않으시다고.. 폐암이라고... 했다네요.... 

우는 건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는 오빠는.. 물론 놀랐지만, 당황했지만,

항암치료 받으면 완치되는 경우도 많다더라는 말을 하려고 하면서 애써 담담해하려는데

 

 

형이 자긴 엄만 포기 안 할거라고...엄마도 포기 안 했으니깐..아무도 포기 안 했으니깐 너도 포기하지 마...라고 했다면서..

그때 오빠가 덜컥... 눈물을 흘렸어요. 자긴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고.. 아니 어쩌면 이해하기 싫은 걸지도 모르겠다면서..

중기가 지났다면 후기가 아닌거냐고.. 형이 잘하면 5년도 살 수 있다면서 위로했다는데 그게 무슨 얼어죽을 소리냐면서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우는 거에요.

 

 

그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게 너무 없었어요... 다만 손을 잡아주고.. 같이 울어주는 것 외에는..

벅쩍한 팥빙수집 분위기 속에서 울다가 정신이 들어 허둥지둥 나와서 사람이 없는 곳에 데려가 우는 거 보아주는 것 외에는....

너무 안되어서 길을 가다가 어깨를 안아주었지만 오빠는 저를 마주안는것도 힘에 부쳤는지 고개를 묻기만 하더라구요.

 

 

그 오빠랑 같이 한두달 전에 인사동에 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엄마 선물 사 드리자면서, 쌈짓길에서 각자 자개로 된 나비 핸드폰줄을 샀었어요.

저는 엄마에게 바로 선물했지만 제법 약한 재질이었는지 곧 망가져버렸고, 오빠에게 오빠 그거 약하더라구요, 라는 말을 미처 하지 못한 때였는데

오빠가 울면서 그러더라구요. 그거 아직 드리지도 못했는데...

저는 그냥 입을 꼭 다물었어요...

 

 

오빠는 공무원 공부를 포기하진 않으실거래요. 하지만 엄마 옆에 있고 싶다면서.. 노량진에 더 이상 오지 못하고 스터디도 하지 못할 것 같다고..

그런 오빠가 너무 안돼 보여서 제가 그럼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그 쪽으로 가겠다고.. 하니 너 참 착하다...착하네.. 하면서 힘없이 웃더라구요.

오진일거에요.. 그리고 완치되는 경우도 많다잖아요. 더 오래 사시는 경우도 있구요. 제 남자친구 할아버지도 암 진단 받으셨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오래오래 사셨다고...

티비에서 본 말들, 어디선가 어렴풋이 들어본 말들, 모두 갖다붙여 봤는데 어느 것도 제대로 위로가 되지 않는 듯했어요.

차라리 그 오빠가 울 때 손을 잡아주는 게 더 위로가 되는 것 같달까요.  가족 중 누군가가 아파서 우는 사람을 한 번도 위로해 본적이 없어서 지독하게 서투른 제 모습이 어느 순간은 미워지기까지 햇어요.

 

 

그리고 오빠가 그러는 거에요. 헤어지기 전에..

네가 한 달동안 봤다던 그 흰 나비.. 우리 엄마 위험하다고.. 얘기해주는 거였나봐..

그러고보니 나도 몇번은 같이 봤는데... 나는 왜 몰랐을까.... 다 알려주는 거였는데 난 왜 눈치도 못 챘지..

그 힘없이 눈물을 떨구는 모습에 적당한 대꾸도 하지 못하고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데..

정말 너무 우울하더라구요. 오빠, 저 나비... 누군가의 영혼이 아닐까요? 그래서 나 아프다고, 위험하다고 말해주는거 아닐까요? 그딴 말을 왜 해댔을까...

 

 

어젯 밤은 묘하게... 많이 울면서 잤어요. 이상하게 눈물이 계속 주룩주룩 나오는거에요. 어라, 내가 그 오빠를 그렇게 애틋하게 여겼나, 싶을 정도로. 

그 오빠가 평소에 가족에게 얼마나 애틋함을 느끼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순식간에 무너진 오빠의 모습이 그렇게 마음이 아팠겠지요.

아니, 어쩌면.. 좀 더 솔직해 보면,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이제는 하루에 한 시간조차도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구나, 하는 그 서운함과 외로움에 더 괴로웠는지도요.

생각해보면 1월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혼자서 공부한 적이 없었어요. 고작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늘 누군가를 만났는데.

이제는 정말 혼자구나. 싶더라구요. 물론 누군가를 구하면 구할 수야 있겠지만...

 

그냥 너무 서러웠어요. 가슴이 텅 빈 것처럼. 어떤 순간은 소리내서 어헝 하고 울기까지. 제가 집에서 어떤 이야기들을 듣고 왔는지 아는 남자친구는

 너한테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벌어졌다면서 토닥토닥 위로...를 해주다가 그놈이 뭐라고-_-하면서 짜증도 내다가 또 다시 위로해 주고...

 

 

그래도 잠을 자고 나니 기분이 좀 풀렸는데, 남자친구가 다시 직장에 가야 하니깐 마음이 또 서글퍼지는 거에요. 난 이제.. 혼자인데.. 어쩌냐고..

제가 데이트 하면서도 말미에 가서 눈물 지으니깐, 남자친구가 안 되겟다...오늘은 부모님 집에 가서 자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구요.

저도 고민하다가 그게 좋을 것 같아서 오빠를 보내고 집으로 왔구요. 집에는 뭐라고 설명하지? 왜 갑자기 왔다고 하지? 도착해서 약간 머리가 복잡해져 있는데

 

 

벌컥 엄마가 들어오시는 거에요. 원래 퇴근시간이 아닌데.. 약간 반가운 마음에 엄마- 하는데 엄마가 울고 계신 거에요.

무슨 일이냐고 놀라서 물으니깐... 외삼촌이 갑자기 돌아가셨다면서... 어떡하니 네 흰나비기.. 하고 엉엉 우시는 거에요. (제가 어제 흰 나비 얘기를 했거든요..)

엄마도 오늘은 길 가다가 문득 흰 나비를 봤다면서... 어떡하니.. 어떡하니.. 하고 안 믿겨진다.. 하고 우시는데... 참 이게 도대체 뭔지...

그 순간 제 마음속에 쌓여있었던 것들이 마치 한꺼번에 폭발한 듯 엄마랑 같이 엉엉 울어버렸네요...

엄마가 아마 나중에는 의아해하셨을거에요. 쟤가 외삼촌을 그렇게 생각했나? 싶을 만큼....

 

 

우연일지도 몰라요. 아마도 우연이겠지요. 그냥 어쩌다보니 앞뒤가 잘 맞아들어 간...

하지만 이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누군가의 영혼인가? 스치듯 이야기하지도 않으려구요...

오늘도 지나오는 길에 두 마리에 나비를 봤는데.. 흰 나비는 아니고 검정 나비였지만..  이젠 예쁘다면서 쫓아가지도 못 하겠네요...

네가 신경을 쓰면서 걸으니깐 보이는 거라던 엄마의 말처럼.. 내가 그냥 예민하거였다면.. 아니, 그냥 그런거겠죠.. 이건 다 우연이니깐..

 

 

 

 

    • 에이그 가족이 뭔지,그럼 그런거죠 나비가
    • 맨 마지막 말이 맞아요.
      다 우연이에요.
      꼼데가르송님이 하얀나비 봤다고 벌어진 일이 아니에요.
    • 가영님/ 왜 하필 가족이어야 했는지 그것도 이 시기에.. ㅠ

      자본주의의돼지/ 이런 우연은 더 없었으면 좋겠어요....힘드네요너무너무..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13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49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55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9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4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6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36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53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9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33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7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41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72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8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90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