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길종 감독과 스타워즈
국내최고의 감독으로 칭하고 싶은 감독입니다.
그러나 극장에서 이분의 영화를 본적이없고 어릴적 큰집의 큰형들이 이감독의 영화를 보고 와서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그때의 분위기는 충분히 알고있습니다.
흑백TV시절 방영족족 봤지만 모두 잘린 영화들... 그리고 잊혀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부고를 받게 됩니다.
너무 일찍 가셨습니다.
너무 소중했지만 잘알지도 못했는데 그냥 가신겁니다.
지금 한국영화의 뿌리가 되었으면, 좀더 젊은 감독들의 이상과 꿈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너무 일찍 가신겁니다. 38세라니요.
만들고 싶은 영화 생각한 영화 얼마나 많았습니까?
왜 그리 빨리 가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이면 아니 한달뒤면 당신의 학교 친구였던 죠지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가 블루레이로 나옵니다.
당신이 계실때는 이런 세상이 올지는 몰랐겠지요. 그러나 당신의 시대가 그립습니다.
화면 깨끗한 너무 정밀한 그림보다 당신의 생각과 꿈이 뭉개진 화면이라도 당신의 그런 영화를 보고 싶습니다.ㅠ
78년 중딩때 당신의 책을 샀습니다.
왜냐구요? 루카스감독의 스타워즈를 TV에서 정보를 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문에서 이영화는 저에게 꿈을 줬습니다.
정보가 전무한 상태에서 어린 무비스타는 정보를 찾아 돌아다녔답니다.
그러던중 서점에서 당신의 모습사진을 본것입니다. 스타워즈 번역 하길종. 저는 너무 기뻣습니다.
루카스 감독의 이영화를 책으로 먼저 접한다는게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하길종 번역이라니요? 눈물이 났습니다.
당신의 사진만 보고서도... 그러나 책페이지를 넘기면서 서문에 나오는 당신의 번역의 감회를 적은 내용은 저를 한층더 감동으로 내몰았습니다.
지금생각해보니 그렇게 당신은 시대를 앞질러 가는 천재였습니다.
지금의 거장들을 미리 알아봤기에 그렇습니다. 코폴라, 스필버그, 루카스...... 박통이 죽기 1년전 벌써 3~40년이후를 내다보고 있었던 겁니다..jpg)
저에게는 이책이 보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없습니다. 세월이 너무 흘렀기 때문입니다.
이책을 보관하지 못한게 후회됩니다. 당신은 이책에서 번역을 마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영화도 영화지만 소설자체로도 흥미진진한 스타워즈를 번역하게 된 것은 역자와 저자의 남다른 인연 때문이다.
역자는 10여년 전 미국에서 영화수업을 하던 당시 루카스와는 술잔을 나누며 영화에 대한 집념을 함께 불태웠던 사이이다.
옛 동료의 작품을 번역하는 것도 우리의 우정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일 수 있으리라.... "
지금 살아게신다면 한국영화가 어떻게 이름을 떨쳤을지, 당신이 지금의 FSX 기술을 당신의 영화에서 어떻게 표현을 했을지... 아마 아카데미 외국영화상은 벌써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너무 일찍 가셨습니다.
너무 일찍..........
스타워즈 블루레이가 곧나옵니다. 그러나 부가영상, 코멘터리에 한글자막이 없을거라는
소문이 많습니다. 당신이라면 아마 열혈 영화팬들의메일을 받았으면 당신은 당장 친구 루카스에게 편지를 했을지 모릅니다.
아마 한국 방문도 벌써 이루어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당신은 다혈질 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모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79년대말 암흑의 우리한국영화속에 빛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 이글은 한달뒤로 다가온 스타워즈 블루레이 서플 무자막 소문에 대한 생각을 옛 죠지 루카스 감독의 친구였던 영상시대의 주역 고 하길종 감독을 생각하면서 글로 옮겨봤습니다.
실제로 술을 좋아했고(폭주스타일) 다혈질 성격이였다고 합니다.
마지막 말도 동생 하명중(얄개시리즈에 자주나왔던 선생님역 항상 정윤희의 남편역이엇죠. 이후 감독을 하게되고 영화사를 하게됩니다.)에게 너는 영화 잘해라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아래는 스포츠 동아 2011년 2월 23일자 기사
뛰어난 감각과 감성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작품을 연출하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감독들. ‘젊은 나이’의 기준은 무엇일까. 지금은 고인인 영화감독 하길종(사진) 역시 ‘젊은이’였다.
서른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등진 그는 물리적 나이 말고도 영화를 통해 젊음과 함께 호흡하고 젊음의 시선으로 새로운 한국영화를 고민했다.
1979년 오늘, 하길종 감독이 고혈압때문에 뇌출혈로 쓰러진 뒤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잡지 인터뷰를 마치고 귀가하던 길에 쓰러진 그는 닷새 동안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사경 헤매다 28일 결국 사망했다. 그가 숨져가던 때, 서울 충무로 스카라 극장에서는 유작이 되고만 ‘병태와 영자’가 성황리에 상영되고 있었다. 하 감독이 쓰러진 다음 날 ‘병태와 영자’의 주인공이었던 연세대생이자 배우 손정환도 입대했지만 영화는 주역들의 이런 사정과는 상관없이 관객을 맞았다.
서울대 문리대 불문학과를 나온 하길종 감독은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영화미학과 연출을 공부했다. 당시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 등과 교유하며 새로운 영화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그는 귀국해 1970년대 초 실험정신과 현실에 대한 은유적 비판을 담은 ‘화분’으로 데뷔했다.
이후 ‘바보들의 행진’, ‘한네의 승천’ 등을 연출한 하길종 감독은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버리지 않았다. 특히 ‘바보들의 행진’은 세 명의 대학생을 주인공으로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당대 청년들의 고뇌를 낭만적인 이야기로 그렸다. 영화는 코믹했지만 속에 품고 있는 의미는 대단히 날카로운 것이었다. 송창식의 ‘고래사냥’과 ‘왜 불러’ 등 삽입곡은 금지곡이 되었고 하길종 감독은 당대 젊은 감독의 선두에 있었다.
당시 형의 죽음을 지켜본 동생인 연기자 하명중은 “너는 영화를 잘해라, 네가 잘못하면 영화계는 그만이야”라는 고인의 유언을 전했다.(1972년 3월2일 자 동아일보) 그 자신도 “영화를 잘해”야 했던 하길종은 이제 세상에 없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이 무비스타는 위 기사에서 언급한 한네의 승천이라는 영화를 지금 생각하면 아직 그영화를 잊지못하고 있습니다.
당시 획기적인 한국영화의 틀을 깼던 영화였기에 그렇습니다. 지금은 다시 보지도 못하지만
이 영화를 예전 80년대 중반 TV에서 보고 극장의 스크린에서 본듯이 각인이 되어있습니다.
언제 시간이 되면 꼭 다시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죠지루카스의 아메리카 그라피티와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 이 두영화가 어떻게 절묘하게 70년대중반, 영화적 감성들이 통했는지 놀랠 노 자(字)입니다.
루카스는 스타워즈를 위해 아메리카 그라피티를 만들고,(스타워즈 자금원 영화)
하길종은 독재정권의 자유억압에 저항하기 위해 바보들의 행진을 만들고...
그렇게 자신들의 에너지 분출 방법을 각각 찾고 있었던 겁니다. 저도 이렇게 글을 쓰지만 이걸 이제서야 알게되는군요. 그래서 천재들 머리속을 우리는 모르는것 같습니다.
당신도 이들 사이에 같이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