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공(共)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1. 오전에 썼던 글이 다시 무위로 돌아갔지만 - '폴트 라인'을 건드린 안철수- 저의 마음은 편안합니다. 미아리 점쟁이 처럼 예측에 실패했다고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애당초 저는 그가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출마와 관련한 글을 썼던 건 안 원장에 대한 대중들의 성원 밑바닥을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였습니다. 왜 대중들은 안철수를 좋아하는가. 이에 대해 안철수 원장은 국민들이 제게 보여주신 기대는 온전히 저를 향한 게 아니라 변화의 열망이 저를 통해 투영된 것이라 생각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변화의 열망. 그 근원이 공동체에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공동체의 붕괴가 이뤄지고 있는 한국의 현실. 안 원장을 이를 치유할 인물로 부각받았고. 그래서 대중은 그에게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내주었다고 판단합니다.
2. 안 원장은 이번 단일화 과정에서도 예의 그 공동체를 중시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박원순 이사의 설명을 단 20분만 듣고 바로 포기를 결정하는 행보, 그리고 그 이유를 "자신보다 박원순 이사가 더 잘할 것 같다" 라고 말하는 명쾌함. 이 모두는 그가 사사롭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맞은편에 있는 박원순 이사의 존재감도 그의 이런 태도에 한몫했을 것입니다. 박 이사가 사사로웠다면 안 원장의 결심이 빠르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우리가 그를 본 눈이, 그리고 그에게 보내준 지지가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순간입니다.
3. 여기서 등장하는 것은 공(共)의 귀환입니다. 공(公)이 아닙니다. 우리가 흔히 공사(公私)구분을 하라고 말할 때의 그 공이 아닙니다. 지금껏 사사로움의 대척점에 있었던 것은 공정함이었습니다. 그 공정이라는 단어에서는 법률과 공권의 냄새가 납니다. 실제로 한자사전에서 공(公)은 공평하다. 치우치지 않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이에게 공정하긴 하지만 함께한다라는 개념은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반면 공(共)은 함께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정식명칭이 공화국(共和國)인 것도 함께한다는 개념을 정립하면서 생긴 단어입니다.
4. 안 원장이 시장에 나오려고 했던 것. 그리고 박 이사로의 단일화 모두. 공평하거나 치우지지 않음에 따른 결과가 아닙니다. 함께 한다라는 개념에서 출발합니다. 함께 한다는 의식이 있었기에 지지율 50%의 후보임에도 서슴없이 지지율 5%의 후보에게 양보할 수 있게 됩니다. 이건 공평함이나 치우치지 않는다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두 사람간의 단일화 과정을 보며 박경철 원장은 '아름답다'는 인식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울었죠. 그 아름다움은 공평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공존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체에 대한 사회의 열망에 두 사람은 완전히 충족됐습니다.
5. 더 중요한 것은 안 원장의 이러한 행보로 공동체에 대한 열망이 더욱더 확산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에 있습니다. 당장 안 원장은 이 결정으로 자신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유력한 대권후보가 되었습니다. 단언컨데, 이번 주 있을 모든 여론 조사에서 대권후보의 이름으로 그가 들어갈 것이며 문재인 이사장의 경쟁률은 많이 잠식될 것입니다. 그의 등장 자체가 앞으로 모든 정치적 의제는 공(共)과 연관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이건 단순히 안철수 개개인의 역량에 따르는 변화가 아닙니다. 안 원장의 말 처럼 변화의 열망이 사의 추구에서 공의 기대로 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6. 앞으로 사사로움에 대비되는 공의로움의 가치는 공평하다가 아니라 함께하다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래간만에 어설픈 정치적 미아리 점쟁이로서의 역할을 해본다면 이제 다시 공(共)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를 넓힐 것인가 좁힐 것인가. 시대의 대세가 될 것인가 아니면 한때의 흐름으로 그치게 말 것인가는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