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재일은 한국, 북한, 일본 어디 응원하냐구요?
재일은 한국, 북한, 일본 어디 응원하냐구요?
글: 이신혜 (재일동포 프리라이터)
(전략) 월드컵, 올림픽 등 세계대회에서 한국과 북한, 그리고 일본이 경기할 때면 사람들은 언제나 나에게 어디를 응원하냐고 물어온다. "어떤 팀이 이겼으면 좋겠어?"라고. 그러나 나에게는 어떤 팀이 이겨도 기쁘고, 져도 슬픈 기분이 든다. 그러나 3개 나라를 응원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너무나 사치스런 행복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한편, 나에게 이 붉은 색은 어웨이(원정)일까 홈일까 알 수 없는 상태 그대로다.
시합 중간과 돌아가는 길, 후쿠시마에서 알게된 사람들과 몇 명 재회했다. 그들이 내 이름 "신혜"를 불러주자 뭔가 쑥스러우면서도 기뻤다.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 내 친구가 있고, 가족이 있고, 무엇보다도 내가 좋아하는 장소가 어쩌면 나의 홈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홈이라고 생각하는 장소가 여러개 일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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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된 기사이긴 하지만 인상적이라서 일부를 퍼 왔습니다.
축구에만 한정짓더라도, 재일 한국인 또는 한국계 일본인 또는 조선인.. (아.. 일단 층위가 너무 많아서 부르기도 복잡하네요) 하나로 묶을 수 없는 정체의 문제가 존재합니다. 2010년 월드컵 예선을 기점으로 최근에 다시 북한 축구가 아시아 무대에 재등장하고, 아시아 프로축구 교류가 더 활발해지면서 이 정체감의 문제는 더욱더 재밌는 방법으로 표면화됐지요.
예를 들어 안영학은 '조선' 국적을 가지고 일본에서 조선학교를 다니다 J리그에 진출했고, K리그로 이적한 후 부산아이파크와 수원삼성에서 뛰던 기간에 북한을 대표하여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까지 진출했습니다.
정대세는 부모가 남한 국적이었음에도 본인이 원하여 북한 대표팀을 뛰었으며, 현재는 독일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선수가 북한을 선택하는 것은 아닙니다. 2000년대 초반에 J리그 빗셀 고베에서 성남일화로 이적한 박강조는 남한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2011 아시안컵 연장 결승골의 주인공 이충성 혹은 리 다다나리는 남한 청소년대표팀에 소집된 적이 있습니다. 남한 국적이었다가 일본 국적을 취득한 케이스.
국가대표와는 관계가 없는 경우도 있지요. J리그에서 특이한 행동으로 인기를 끌었던 오카야마 가즈나리는 원래 재일 3세로 강일성康一成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나 일본 국적을 취득하며 오카야마 가즈나리岡山 一成(강산일성)으로 개명합니다. 이 선수는 사실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했고 J리그 2부에서 은퇴를 할 뻔 했으나, 재미있게도 커리어의 마지막에 포항에서 테스트를 받아서 은퇴를 K리그에서 하게 되며, J리그 시절에는 상상도 못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하게 되죠 (결승도 하필 일본에서 함)
선수들도 각각 이럴진대, 조선학교를 나온 총련계 재일이건, 일본학교를 다닌 그냥 재일이건, 정체감의 문제는 복잡해 질 수밖에 없겠죠. 나라가 2개여도 헷갈리는데 여긴 남북일 3개인데다가 서로 미묘한, 복잡한 역사/정치적 감정을 가진 사이이니까요. 어찌 보면 응원할 곳이 많기도 하지만 어딜 가도 중간자라는 거. 그 중간자적인 존재를 상징하는 것은 '조선'이라는 어디에도 없는 국적.
그 미묘한 상황이 낳은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는 있을 것 같은 나의 집'이라는 감정이 홈&어웨이 경기를 하는 스포츠 경기에서 투영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나중에 이 주제에 관련하여 좀 더 깊은 글을 써 보고 싶습니다.
ps. 이에 대한 좋은 참고 자료는 재일동포 축구기자 신무광씨가 쓴
[우리가 보지못했던 우리선수 : 뿌리를 잊지 않는 재일 축구선수들의 역경과 희망의 역사]를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