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도 명절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임산부에게 명절은 극기훈련 자체네요. 7개월.. 어중간한 때라서 그런지 일은 일대로 했어요. 하지말라 하시지만 안할수 없는 시댁일.. 젤 힘들었던건 장시간의 송편빚기랑 전굽기.. 거실바닥에 앉아서 할려니 허리와 꼬리뼈가 뒤틀리더군요. 물론 저 혼자는 아니예요. 다같이 했음에도 몸이 불편하니 그냥 그 자리에 있는 자체가 고역이였어요. 더더군다나 가관은 이튿날 성묘.. 공원묘지라 많이 걷진 않았지만 경사를 기어올라가야 하는데 숨이 찼고, 구부러지지도 않는 허리로 절까지.. 대체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얼굴도 보지못한 남편 조상님이 다 밉더라구요. 게다가 평상시엔 배려 많으신 부모님들도 명절만 되면 어쩜 그리 당신들의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는지 황당할 때가 많아요. 며느리인 저는 시키는대로 하고도 왜 눈치를 보며 앉아있어야 하는 건지.. 쩝.
어제는 각종 빨래며 집안 청소를 하는데 불현듯 눈물이 주르르ㅠ 현대직업군 중 감정노동이 가장 심한 사람들은 며느리들이 아닐까 싶어요. 아기를 가져서 제가 심약해진건지, 아니면 모든 며느리들이 겪는 고초를 이제서야 실감하게 된건지.. 결론은, 우울하네요.
이런 게 사람노릇(흔히들 며느리 도리라고 하죠)하면서 사는 걸까요??전 단지 남편님을 사모해서 이 결혼을 선택했을 뿐인데.. 그 대가가 너무 크네요.
저도 작년 설 무렵 임신 중이었는데 연휴 끝나고 배가 뭉쳐서 좀 고생했어요. 집에서 30분 거리 시댁에 가서 어른들 만류로 과일 하나도 안 깎았는데에도 그랬네요. 어른들 모여있는 자리에서 누울수가 없어 오래 앉아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몸이 힘들더라구요. 명절에 굳이 모인다면 임산부는 그냥 어디 짱박혀 누워있게 해야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허걱. 전 임신초기에 입덧이 심해서 아예 똑바로 서 있는거 자체를 못하고 주룩주룩 쏟아냈기 때문에 그냥 침대에서 환자 신세였는데.. 그렇지 않은 임산부더라도 장시간 앉아서 일하고 경사길까지 올라가시다니요. 정말 힘들고 자궁 뭉치고 그러던데..고생하셨네요. 그냥 며느리들도 "전 이러저러해서 이거 못하겠어요. 대신 제가 할 수 있는 다른 거 하면 안될까요" 하면 좋으련만. 물론 어르신들하고 수많은 대립을 견뎌내느니 그냥 내가 참고 마는 심정이야 오죽하겠지만요. 제가 시어머니 되는 시대 되면 바뀔까요. 전 명절 전에 같이 모여 밥 사먹고 명절 땐 니들끼리 여행가라로 방침을 벌써 정했어요. ㅋㅋ
명절 없애기, 아니 정확하게 '제사 없애기' 운동본부라도 만들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번 추석 때 지인들에게 얘기했더니 다들 동의하던데.. 근데 왜 명절풍경은 이토록 안 바뀌는지. 다들 '우리 아버지 죽고 나면'이라는 단서를 달기 때문일까요? 정말... 죽기를 바랄 수도 없고.
매년 명절을 지내고나서 게시판이나 주변 반응을 보면서 사실 좀 혼란을 느낍니다. 어릴 때 "길이길이 지켜나가야 할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문화"라고 배웠던 것들이 온통 "당장 개혁해 없애버려야 할 쓰레기 악습"이었던 건가 싶어서 말이죠. 당장 남녀평등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가치관 하나만 들이대도 살아남을 수 있는게 거의 없는 것 같고...
하긴 어르신들 중에도 명절 이거 없애야 한다는 분들도 있더군요. 이게 다 옛날 못살던 시절에 이때라도 조상 핑계삼아 잘 차리고 먹고 놀아보자고 만든 건데 요즘같은 시대에 명절은 무슨 명절이냐며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