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금] 연희동 그 골목

1.

어제 사상 초유의 정전사태에 아는 선배님한테 전화가 왔었습니다. 글 쓰다 다 날렸다고 하도만요;;;

 

정전자가 생각나는 이 밤, 정전 속에 날아간 시나리오들과 폐사된 수족관 물고기들에게 묵념을 (__);;;;;;;;;;;;;;

 

 

2.

(흥얼흥얼 노래나 한곡)

 

푸른 하늘 옅은 구름이 되어…….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네가 알고 있나

무엇이 이들에게 다가와서 으음 이들을 데려갈까

 

그 옅으디 옅은 구름이 되어..

으음 이들을 데려갈까

 

 

3.

백만 년도 더 된 것 같은 선캄브리아대적 이야기..

 

멀고 먼 옛날

 

수학의 정석 싸인 코사인 곡선에도 꼴릿하던 시절;;;

 

탈무드를 보면서도 월월(月月)이를 칠 정도로 혈기왕성했던 시절;;;

 

대학 근처라고는 낙성대 밖에 가보지 못했던 그 시절..

 

담배연기에 눈물을 흘리는 건지 메케한 최루가스에 눈물을 흘리는 건지

 

아리송하던 그 당시

 

그 당시 저는 서울대였었나(?) 아니, 무슨 국(國)자가 들어가는 학교에서 였었나(?) 암튼

 

전대협인지 한총련인지 암튼 8.15 집회를 하는 현장에서

 

싼값에 무대장치를 하는 업체에 소속되어

 

땡볕에 아시바 쌓고 조명기를 설치하며 무대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학교 안에서 무대가 여러 개 설치되는 것을 당최 이해할 수 없어

 

"아니 이것들은 지들끼리도 통일을 못하면서 무슨 통일을 외치는 거여?"라고 시니컬하게 쏘아주면스롱

 

하루치 일당벌이를 빨리 끝낸 후 1.5돈 도라꾸에 몸을 실었을 때였습니다.

 

그때 하늘에서는 '부다다다다'하는 소리와 함께

 

헬기가 떴었고, 씨뽈건 고춧가루 같은 최루가스를 뿜어대기 시작했었습니다.

 

아수라장이 된 집회현장에선

 

보도블록을 깨며 쇠파이프를 든 학생들과 대치하던 전경들이

 

학 한마리가 우아하게 날개를 펴고 나는 듯한;;; 학익진 전법으로 토끼몰이를 시작할 때

 

저의 1.5돈 도라꾸는 그들 사이로 꼼짝 없이 갇히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이 던진 깨진 보도블록과 전경들이 쏘아댄 최루탄이 동시에 날아오는 시위 현장을 뚫고 도망치다가

 

학생들과 전경들 사이에 꼼짝없이 갇혔을때;;;

 

학생 한 명이 전경의 헬멧을 벗기는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을 구경(?)하면스롱

 

'쯔쯔쯔'혀를 차며 '쟤는 인제 X됐다...전경들이 젤 뚜껑 열리는게 헬멧을 벗기는 건데;;;우짜쓰까~"

 

축구 중계를 하듯 해설을 하고 있는 조수석의 선배얘기를 들으며 관람을 하고 있을때였슴다..

 

진짜로 뚜껑이 열린 그 전경은 땅에 떨어진 헬멧을 집어 들고 학생들을 미친 듯이 구타하기 시작했고;;;

 

도망치던 어느 여학생 한명을 붙잡으려고 할 때였습니다.

 

긴 머릿결을 휘날리며 고개들 돌리던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어디선가..갑자기 한국인의 올드 팝 Neil Sedaka의 You Mean Everything To Me가 흐르며,;;;

 

그녀가 느린 화면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이 온통 흑백인데 그녀만 칼라로 보였슴다;;;

 

도라꾸를 운전하던 저와 그 선배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도망치던 그녀 앞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춰 선 후

 

그녀를 태우고 그곳을 서둘러 빠져나왔습니다.

 

그렇게 저와 그녀의 만남이 시작됐었슴다.

 

 

 

그녀는 자막 없이 보는 한국영화를 싫어했슴다.

 

그녀는 노래방도 싫어했슴다.

 

그리고 그녀는 구석진 어두운 자리를 싫어했슴다.

 

 

저는 그녀를 위해서 수화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수화로 대화하는 것을 싫어했슴다.

 

두꺼운 메모장에 필담을 나누는 것을 더 좋아했던 그녀..

 

 

그 당시 대학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중고 빨갱이서점(?)에서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마치 어린 시절 새소년이나 어깨동무를 보듯이

 

침을 발라가며 어려운 이념서적 같은 것을 보던 그녀..

 

 

그 당시 저는

 

파지(폐품수거)나 온돌마루 시공, 무대장치 일 등을 하면서

 

단순노동의 피로가 몰려오는 저녁때만 되면

 

그녀를 만나러 갔었슴다.

 

(이곳 듀게에서도 좋아하는 회원님들이 많은)

 

지금은 유명한 다마급(?) 감독이 되신 그 분께서

 

14타가 틈틈이 파지를 하면서 긁어댔었던 습작 시나리오를 자신의 영화에 써먹어도(?) 되냐고

 

연락이 왔을 때

 

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슴다.

 

그런 건 저한테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슴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자주 가는 단골 중국집 진짜루~ 영화 같은 건 다 포기할 수도 있을 것 같았슴다.

 

 

그녀는 항상 푸른 하늘같은 표정을 지어보였고

 

저는 있는둥 마는둥한 옅은 구름에 지나지 않다고 느꼈었슴다.

 

그녀는 제 몫의 말까지 모두 했었고(아니 필담을 적었었고)

 

저는 듣기만 ...아니, 보기만 했었슴다..

 

 

그러던 그녀와 헤어지던 마지막 날

 

그녀가 보였던 눈물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이제서야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전혀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헤어지던 그 때 당시 상황을 설명해 주던 저 조차도 잘 이해가

 

안 가던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이젠 알 것도 같습니다.

 

도대체 그녀와 무슨 일이 있었냐고요?

 

왜 그녀와 헤어졌냐고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카페 안에서 필담을 나누고 있을 때

 

갑자기 카페 안이 정전이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이 한 동안 지속되었고,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몇 분 후 불이 들어왔을 때

 

그녀는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까닭을 알 수 없고 영문을 알 수 없는 그녀의 눈물이 궁금했었슴다.

 

정전이 되어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그 잠깐 동안의 시간이

 

그녀한테는 무서웠었나?...아니, 그 잠시 동안 소통을 할 수 없었던,

 

단절의 시간이 그녀한테는 메울 수 없는 커다란 간극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며...그냥 그렇게 추측만 했었슴다..

 

컵을 받아들고 과장되게 물을 들이키며

 

그녀의 눈물을 궁금해 하고 있을 때

 

 

그녀는 마치 장애인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포기할 때와 같은 느낌으로 음료잔을 들이키기만 했었슴다.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었슴다.

 

그 후 그녀는 삐삐로도 연락이 안 되었고

 

아무 말 없이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이

 

이사를 갔슴다요 ㅠㅠ 크흐흑;;;

 

 

어느덧 세월이 흐르고 흘러

 

영화판에서 그녀의 도플갱어 같은

 

전혀 나이가 먹지 않고 시간이 그대로 멈춰 버린 듯한

 

그녀랑 놀랍도록 흡사한 외모의 여신을 만났었슴다.

 

의상체크를 하고 있던 그녀의 옆모습에

 

그 옛날의 그녀를 떠올리고 있을때였슴다.

 

해질녘 짙은 어둠과

 

핏자국과 함께 바닥에 그려져 있던 하얀 선;;;

 

두 가구 밖에 살지 않는 흉가 같은 달동네 아파트와

 

무허가 판자촌 위로 거대한 젬볼(조명기)를 설치하고 있을 때였슴다.

 

달동네 할머니 한분이

 

텃밭에 밝게 설치된 조명기를 보며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하셨슴다.

 

그리곤 계속해서 어둑어둑한 달동네를 밝혀줄 순 없냐고 물으셨슴다.

 

"촬영 끝나면 철수해야 돼요."

 

조명팀의 답변에 할머니께서 "밤길이 어두웅께 숭악한 사고도 나고 사는데 불편한 것 아니냐"고 말씀하셨슴다.

 

그때 저는 후두엽과 뇌간을 강타하는 생각이 떠올랐슴다.

 

산동네 이웃들을 위해서 계단과 골목에 벽화를 그렸던 철산동 프로젝트처럼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서 조명 퍼포먼스 쇼를 여는 것은 어떨까?라는.

 

매년 책정되는 지자체의 문화사업부문의 경비를 타내서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조명기를 설치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뭐, 그런 생각을 하면스롱

 

놀고 있는 조명팀을 총 동원해서 고용유발 효과도 얻고

 

설치 미술가 및 공연 예술가 그리고 영화인 등 문화계 인맥들이 동원되는 문화사업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지혼자 흡족해 하고 있을 때

 

술 먹고 오바이트를 해도 하트모양으로 할 것 같고, 똥을 싸도 하트 모양으로 쌀 것 같은 그녀의 모습에서

 

그 옛날 그녀가 떠올랐슴다.

 

그녀의 고향이 해운대라고 했던가..

 

그래, 매년 부산국제영화제때 해운대 앞바다에서 조명 퍼포먼스 쑈를 하는 거다!

 

한밤중의 해운대 백사장 위로 수십 수백 대의 둥그런 젬볼 조명기가 열기구처럼 떠 있다면 얼마나 장관일까?

 

하트 모양의 조명기로 설치 미술을 하고 열기구처럼 허공에 떠 있는 젬볼 조명기로 화려한 조명 쑈를 한다며 얼마나 멋질까?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 저한테 묻습니다.

 

"형은 저 친구가 왜 좋아요?"

 

그 순간 저는 누구나 그렇듯 '저 여자는 이런 곳에 있을 여자가 아닌데.."같은

 

순진하고 바보 같은 자기최면에 빠지고 있었슴다.

 

"장이 튼튼해 보여서;;;내가 장이 안 좋거든"

 

이게 뭔 비아그라 먹고 오바이트 하는 소리냐는 듯이 외계인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스텝을 뒤로 하고 다시 한 번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았슴다.

 

그 옛날 그녀의 얼굴이 오바랩이 되면스롱 겹쳐 떠올랐슴다.

 

어둠 속에서 울던 그녀는

 

어두운 내 마음속을 밝혀주던 한줄기 젬볼 조명기였슴다~;;;

 

어두운 촬영장 골목길을 밝혀주는 그곳엔 그녀가 있슴다.

 

제 안에도 그녀가 있슴다.

 

 

 

 

4.

밤샘 촬영이 끝난 후

 

발차(발전차)를 반납하고,

 

지급된 귀가비를 아끼기 위하여;;;

 

집까지 걷다가

 

그녀가 살던 연희동 그 골목길을 지나치면스롱 기분이 마구마구 10센치해졌슴다;;;

 

귀가비 몇 푼 아끼려고 그 골목길을 걷다가

 

피씨방에 들어와 이런 뻘글이나 올리고 있슴다.

 

 

5.

[19금]은 조회수 좀 올려보려는 훼잌으임다;;;

 

저는 조회수 올라가는 거랑 덧글 달리는 거에 오르가즘을 느껴요~

 

악플이나 뻘플도 우걱우걱 잘 씹어먹습니다.

 

댓글 달리는 거 보고 희열을 느끼는 허름한 영화인이

 

기운내서 현장일 잘 할 수 있게 댓글 좀;;;(굽신굽신 ●█▀█▄ ●█▀█▄~~;;;)

 

이 새벽녘에 누가 댓글을 달아줄까 싶지만서도 댓글 좀;;;(굽신굽신 ●█▀█▄ ●█▀█▄~~;;;)

 

 

 

    • 팬입니다. 자주 들러주세요.
    • '아, 내가 14타님 글 재밌어 했었지.'
      여태 어딨다 인제 나타나시나요. 완전 까먹고 있었음.
      그 여인은 심지어 사방이 한참 깜깜해도 아무 짓도 안하는 14타님을 보고 혹시 '으이고, 인간 속터져" 하며 울화통이 터져서 울었던 게 아닐까요. 안 그러면 왜 연락이 끊어지나. :)
    • 언제나처럼 쫄깃쫄깃한 얘기, 팬이어요.
    • 진짜 오랬만에 글을 보는것 같아요! 팬입니다. 그녀는 왜 운것입니꽈~ 모르겠다능!!
    • 팬입니다. 글 좀 자주 올려주세요..(굽신굽신~~ ^^;)
    • 글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 글이 정말 쫄깃쫄깃하네요
      그 여자분의 마음이 어땠을까
      하며 왠지 저도 같이 10센치해지네요
    • 글잼있어요 ㅎ 그런데 정말 이해가 안가요 그녀는 왜 떠난거십니까
    • 반갑습니다 오랜만인듯.안그래도 어젠가 1시14분님의 닉을보고 14타님이 생각났는데. 오늘은 좀 쓸쓸한 이야기군요.
    • 와. 재밌습니다. 중간의 달동네 할머니 얘기는 뭉클합니다. ㅠ.ㅠ
      저는 그 여자분이 왜 떠난 건지 알 것도 같아요. 과거 어느 시점에서 절대 어둠 속에서 험한 일을 당하셨던 게 아닐까요? 그리고 정전된 몇 분 속에서 그 트라우마가 되살아난 거구요. 누구든 사람 만나는 게 버거워졌을 테구요... 그냥 상상이지만요.
    • 올드한 90년대의 문체가 느껴져서 좋아요. 잘 읽었습니다.
    • poem 님 댓글에 동감입니다 ^^:
    • 아침부터 행복해졌어요. 감사합니다. 잘봤어요!
    • 헐... 19금은 어디서 나오나 끝까지 정독하고 난 후 몰려오는 일말의 허탈감은 어찌 보상을 해주실 건가요??
      담번에는 제목에 맞는 내용으로다가..ㅋㅋ
    • 몰입되서 읽었습니다... 정말 좋네요.
    • 훌륭한 단편소설 같은글 입니다. 19금에 낚여 들어왔다가 횡재하고 가네요..ㅎ

      앞으로도 꾸준한 연재 부탁드립니다.
    • 14타님 글은 항상 몰입됩니다. 제가 아는 분이었으면 납치, 감금하여 창작만 하도록..(응?) 할텐데요.
    • 정전됐을 때부터 19금일 줄 알았는데..
    • 어쩐지 19금과 연희동 골목은 잘 어울리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왜 울었는지 알 것처럼 느껴져서 애잔하기도 하고..
      그런 건 아니겠지만, 사소한 계기에 끼어든 절망이 유독 강하게 느껴질 때가 있죠..필담이 소용없어진 그 몇 분간이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생각해보게 했어요. 그런 게 아니었을 것 같지만..
    • 뒤늦게 다는 댓글에도 기운이 나실까요~
      어둠 속에서 손이라도 꼭 잡고 있었으면 좀 나았을 것 같은데, 그 분이 느끼셨을 (거라 상상해보는) 허무감, 무력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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