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병

 

지금 임신 9주쯤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나라는 의료보험 받는것도 너무나 복잡해서

남편이 매일같이 알아보고 서류를 넣고 해도 또 필요한 서류가 있다며 만들어 오라고 한다네요.

그래서 아직 병원도 못 갔습니다. 아이가 뱃속에 자리를 잘 잡았는지 모르겠어요.

입덧은 그나마 조금 나아졌지만 아직도 못먹는 음식이 뚜렷하고, 비위가 약해져 있습니다.

점점 현실적인 문제들(가장 큰 건 역시 돈, 뭘 할래도 돈!)이 닥쳐오면서

여전히 주기적으로 임신을 원망하기는 하지만

몸이 나아져서 그런지 예전처럼 아기를 미워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이 없어요. 넌 내 뱃속에서 잘있나보구나...정도로 생각하고, 저는 하루하루를 별일없이 보내는 데 골몰하고 있지요.

 

그런데 향수병이 점점 심해집니다.

여기 음식을 못 먹겠어요. 심지어 여기 한국식당의 음식들도, 어쨌든 재료가 이곳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입맛이 돌지 않아요.

한국가서 한국음식 먹고 싶어요.

신선설농탕 가서(비록 신선설농탕의 고기가 수입산이라 할지라도!-그런데 정말 수입산 맞나요?)설렁탕 국물에 큼직한 깍두기에 하얀 쌀밥 말아먹고 싶어요

서래마을 근처 서래본가 가서 양념갈비에 달큼맛깔진 밑반찬을 잔뜩 섭취하고 싶구요

여기서는 빵 종류를 하나도 못먹고 있는데 서울가서 던킨도넛이랑 크리스피 크림이랑 도쿄팡야도 먹고싶어요

어제는 꿈까지 꾸었지 뭡니까, 친한 친구와 강남 임패리얼팰리스 호텔 건너편 주택가의 도쿄팡야에 가는 꿈을...

친구도 보고싶고, 동네도 보고싶고, 음식도 먹고싶어요.

그러다가 잠이 깨면 현실은 눅눅한 이국이에요.

햇살이 눈부시긴 한데 남의 것 같아요.

외식하기에 편리한 주말을 빼고 평일에는 집에서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제가 요리를 못하니(밥밖에 못 지어요) 반찬이 형편없어요. 남편도 맛없겠지만, 저도 너무 맛이 없네요. 영양가도 없고....

 

한국가서 엄마가 만들어주신 만두 먹고 싶어요.

매일매일 밤마다 한국 꿈을 꾸어요. 제가 하이디가 된 기분이에요.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짐승은 죽을 때면 자기 태어난 곳을 찾아간다던데,

죽는 일은 아니더라도 자기 삶의 중요한 마디마디- 동물성과 본능이 강조되는 시기에는

고향에 가고 싶어하는 것이 포유류의 본능인가?하는 터무니없는;; 생각도 해 봅니다.

 

 

남편은 여러가지 사정상 저를 한국에 보내고 싶어하는 것 같지 않아요.

저도 사정상 지금 가면 5개월은 남편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영 맘이 안 놓여서(...) 못 가겠어요.

마음으로는 너무나 가고싶은데...정말 훨훨 날아가고 싶다는 표현을 실감하겠어요.

 

 

 

 

 

    • 어디신지 궁금해요,맘 고생이 참 심하시겠어요 경험이 없어서 뭐 제대로 된 위안의 말은 못할지언정 맘 편히 가지시고 부디 건강한 자녀 출산하시길 바랄께요
    • 이궁 저도 임신 때는 정말 엄마가 해줬던 음식이 먹고싶더라구요 엄마가 해줬던 두부부침을 먹고 싶어서 인터넷 레시피를 보고 해봤다가 맛이 달라서 막 짜증냈었는데 타국에서 미선나무님은 얼마나 힘드셔요 그래도 4,5개월 정도되서 입덧 끝나면 몸도 가벼워지고 애 태동도 느껴지고 하면 좀 많이 괜찮아지실 거에요 토닥토닥 힘내셔요
    • 익명중/ 흑흑 감사합니다...워낙 말 터놓고 대할 수 있는 상대가 극히 없어서, 이렇게 모르는 분의 위안이라도 제게는 온기가 돼요. 감사해요.]
      제비란님/ 저도저도!임신전에는 엄마가 해준음식 그다지 그리운줄 몰랐는데 임신하니까 엄마음식과 그 맛이 너무 그리워요 ㅠㅠ 감사해용!!
    • 아아 고국의 음식은 참 그립지요. 그곳의 음식으로는 아무리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게 있는듯 해요.전 한국땅 밟은 그날 바로 비빔냉면을 먹었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몸도 마음도 힘드실텐데 기운내시고 맛없으시겠지만 그래도 음식 잘 챙겨드세요~
    • 저도 향수병을 앓으며 외국 생활을 하고 있는지라 미선나무님 글만 봐도 눈물이 왈칵하려고 하네요... 임신까지 하셨으니 얼마나 힘드실까요... 저도 요리라면 잘 하지도 못하고 하는 것도 싫어했는데 그래도 자꾸 하다 보니까 조금이나마 늘더라구요... 거기 있는 재료로 어떻게 지지고 볶고 하시다 보면 좀 솜씨가 늘지 않으실런지요... 잘 먹는 게 가장 중요하잖아요! 그리고 임신까지 하셨으니까 배송이 가능한 건 한국에서 좀 보내달라고 가족들, 친구들에게 부탁도 하고 그러셔서 맛있는 거 많이많이 드세요 아기와 미선나무님을 위해서... 건강하고 예쁜 아기를 낳는 그날까지 힘내세요!!!
    • 초코/맞아요맞아요.이곳의 음식은 그저 필수영양소를 겨우겨우 충족시키는 것 뿐...(ㅋㅋ)
      저는 한국땅 밟을날 설렁탕을 먹을지 엄마표 만두를 먹을지 벌써부터 고민중이에요.(귀국날짜도 못 잡은 주제에 ㅠㅠ)

      라시도/왈칵하신다는 말씀에 저도 마주 왈칵하려고 해요! 아...정말 애틋하죠.
      저도 임신전엔 요것조것 나름 잘 만들어 먹었는데...요즘은 고기반찬을 만들고 싶어도 수퍼의 육류코너에 갈 수가 없어요 ㅠㅠ
      남이 해주는 고기반찬은 다 맛있고...이런이런....히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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