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초기영화 같은 면이 있어요. '경마장에 가는' 무의미한(상징적인) 행동이 계속 반복되고, 남성의 짝짓기 욕망이 이야기를 이끄는 주요 힘이고... 그러면서도 끝까지 건조한 편이에요. 소설의 여러 요소만 떼어놓고 보면 괜찮을 것도 같지만, 그 요소가 버무려진 솜씨가 서툴고, 또 주제도 진부할뿐더러 그 주제의 형상화도 미숙한 편이어서 읽는 내내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사실 포스트모더니즘과는 상관없고 그냥 프랑스 누보로망을 한국적으로 바꾼 겁니다. 하일지가 누보로망 전공이고요. 전통 소설과는 많이 다르지만 이런 쪽에 맞는 사람은 낄낄대면서 순식간에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웃긴 부분도 많고요. 사람마다 호오가 많이 갈리긴 해도 90년대초의 굉장히 중요한 작품인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통상적인 의미의 소설은 상당히 사실적인 혹은 사실주의적인 작품이라고 해도 어떤 소설 관습에 얽매인 부분이 있습니다. 누보로망은 그런 부분을 부수려 하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낯선 느낌이 강합니다. 그 낯선 부분을 체질적으로 즐길 수 있으면 낄낄거리게 되는 거죠. 그나저나 이 소설이 나왔을때 주인공이 똥싸러 자주 가는 걸 보고 화내던 평론가가 있었다죠.^^
똥 얘기까지 들으니 어떤 소설인지 팍팍 완전 파악됐어요. 저에겐 외계어 문학용어인 누브로망도 한방에 이해됬구요. 설명 쉽게 쉽게 참 잘하시네요. 재능 있으신듯. 이 댓글까지 읽으니 아까보다 더 구미가 당기네요. 과제가 아니더라도, 찾아서라도 읽고 싶을 정도입니다. 당장 읽어봐야 겠어요. 정말 정말 아주 아주 감사드립니다. 책 읽을 생각에 두근두근 설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