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추수
동네에 다람쥐니 토끼가 흔해요. 가끔 사슴도 나오고. 그중 다람쥐는 청솔모스러운 애들도 있고 귀여운 줄무늬에 빈약한 꼬리를 가진 애들도 있는데, 여튼 굉장히 많습니다. 하루라도 한마리도 안보고 지나가는 일이 잘 없어요.
동네에 도토리나무도 엄청 많아요. 이렇게 까지 많은 줄 잊고 살다가 이 계절이면 발에 도토리가 종종 채이고, 공원에 가면 도토리로 발지압을 당할 정도로 좍, 깔려 있습니다. 할 줄 알았다면 묵을 만들고 싶어요. 본의 아니게 호사를 하는 기분입니다. 다람쥐들이 비만이어야 할 것 같은데 얘네들은 어쩌면 필요한 만큼만 먹는지 신기합니다. 가만 보면 도토리를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건 아닐지도 몰라요. 얘네가 노골적으로 사람 먹은 걸 먹는 경우는 잘 못보지만, 가끔 남기고 간 음식쓰레기 같은 것은 좋아하더라구요.
그런데 도토리가 어떻게 떨어지는 지 생각해보셨어요? 전..별 생각 안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계절에 걷다 보면 낮에도 한밤중에도 발 앞에 도토리가 하나씩 톡 떼구르 톡 하면서 떨어지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아, 다람쥐들은 팔자도 좋다, 밥이 그냥 알아서 툭툭 떨어지는구나 했어요.
아니 근데 오늘 아침에 보니까 추수를 하고 있더라구요. 공원에서 걷는데 작게 바스락, 가지가 살짝 부러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나더니 톡, 떼구르가 아니라, 후두두둑 같은 여러개짜리 소리가 납니다. 가만 보니 다람쥐 여러마리가 나무아래서 혹은 저 꼭대기 위에서 분주하게 오가요. 자세히 안보이지만, 분명히 도토리를 따고 있는거에요.
지극히 멀쩡한, 긁힌 흔적도 없는, 진한 갈색으로 다 익은 도토리들이 풀포기 사이마다 촘촘히 널려있어요.
그래도 이 친구들은 꼭 새 도토리를 따는군요. 영향성분이라도 변하는 걸까요.
아무튼, 다람쥐들은 추수를 합니다. 전혀 할 필요가 없어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