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이 안은 비좁고 나는 당신을 모른다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유희경-


1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이 안은 비좁고 나는 당신을 모른다
식탁 위에 고지서가 몇 장 놓여 있다
어머니는 자신의 뒷모습을 설거지하고
벽 한쪽에는 내가 장식되어 있다
플라터너스 잎맥이 쪼그라드는 아침
나는 나로부터 날카롭다 서너 토막 나는
이런 것을 너덜거린다고 말할 수 있을까


2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면도를 하다가 그제 벤 자리를 또 베였고
아무리 닦아도 몸에선 털이 자란다
타일은 오래되면 사람의 색을 닮는구나
베란다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삼촌은
두꺼운 국어사전을 닮았다
얇은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간다
뒷문이 지워졌다 당신, 찾아올 곳이 없다


3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간밤 당신 꿈을 꾼 덕분에
가슴 바깥으로 비죽이 간판이 하나 걸린다
때 절은 마룻바닥에선 못이 녹슨 머리를 박는 소리
당신을 한 벌의 수저와 묻는다
내가 토닥토닥 두들기는, 춥지 않은 무덤
먼지의 뒤꿈치들, 사각거린다

 

올해의 발견, 유희경 시인입니다. 참 좋아요. 저는 티셔츠를 자주 입기 때문에 아침마다 이 시를 읊조리게 됩니다. 그러면 왠지 쓸쓸하고 아늑한 기분.

+아들을 낳으면 (유씨와 결혼한다는 전제 하에?) 가운데에 '희'자를 넣겠습니다. 시를 써서 멜로디를 붙이는 남자가 될지도 ?

    • 이름이 여자 같은데...
      면도 이야기가 의아했는데 남자였군요.

      전 이 부분 좋네요.
      [식탁 위에 고지서가 몇 장 놓여 있다
      어머니는 자신의 뒷모습을 설거지하고
      벽 한쪽에는 내가 장식되어 있다]
    • 완소 시인이죠. 6월에 시집 <오늘 아침 단어>가 나왔는데 버릴 시가 하나도 없다는... 문지 시선 중 80년대생은 처음이라죠. 앞으로가 더더욱 기대되는 시인입니다.
    • 음... 고르기 어렵지만 저는 '내일 내일'이라는 시가 제일 좋아요. "우리는 빗방울만큼 떨어져 있다"라는 구절 때문에요.
    • 너무 좋아서 읽으면서 두근두근했네요. 시집 사야겠습니다.
    • 전 딴나라 말로 문학을 전공하는데... 이 시를 읽으면서 내 말을 읽는 기쁨이 어떤 것인지 느껴졌어요. 해석하지 않아도 아름다움이 바로 느껴진다는 건 참 벅차네요. 감사해요.
    • 시를 읽은지가 까마득한 옛날인데 너무 좋네요.

      내가 토닥토닥 두들기는 , 춥지않은 무덤

      ...어쩜 이런 표현을 하죠? 유희경 시인 바로 조사 들어갑니다.
      유니스님 좋은 시 소개해줘서 고마워요
    • 느낌은 좋은데 잘 모르겠네요.
    • 저도 이 시 참 좋아해요. <오늘 아침 단어> 여름 내내 읽었던 :)
    • 좋네요. 오랜만에 시집 주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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