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하우스 구버전] 여하튼 저는 마침내 미망인 후버트 부인의 손을― 사랑스러운 낸시의 손을 잡게 되었습니다. 그 후 어느 날 저녁, 저는 그녀와 함께 해안절벽을 따라 걷다가 그녀를 보며 이렇게 말했지요. “저길 봐요, 낸시. 온화한 하늘이 바다를 덮고 있으니― 위대한 절대자가 잠이 깨는 소리를 들어보라.(워즈워스의 시 중 한 구절)” 그러자 낸시는 나의 키스를 허락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지금 저의 아내입니다. [이덴슬리벨 신버전] 그건 그렇고 여하튼 저는 휴버트 부인, 사랑스러운 낸시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그녀를 데리고 절벽을 산책하다가 이렇게 말했어요. "저길 봐요, 낸시. 평온한 하늘이 바다를 포근히 뒤덮었네. 들으라, 전능하신 그분이 깨어나고 있나니(윌리엄 워즈워스의 소네트 중 한 구절)." 그녀는 제 키스를 받아들였지요. 낸시는 이제 제 아내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제 자신이 이미 전쟁 후의 세대라는 것이었죠. 북한과 휴전이 없다면 피부로 체감하기 힘든 이미 끝나버린 전쟁의 다음 세대(킷의 아들 딸 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서로가 주고 받던 흔적인 편지에 대해서도 생각했어요. 지금이야 전화로 대부분을 해결하니 장문의 대화가 남거나 하지 않죠.
잔인한오후/ 대신 블로그의 글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의 멘션과 댓글들은 남겠죠. 편지글이 더 운치있는지도 이제는 잘 모르겠어요. 얼마전 은희경 산문집이라 해서 여기저기 기고한 것들 모아냈나 하고 들춰봤더니, 트위터와 이메일 등의 짧은 글들이었어요. 전쟁과 관련해서는, 이 작가가 끝까지 밝은 톤을 유지하면서 할 얘기 다 한 것이 좋았어요. 18-19쪽 보면 찰스 램 얘기하면서 그런 스타일에 대한 지지를 표현하는 것 같아요. "그의 유쾌하고 기지넘치는 글을 읽다보니 찰스 램이 인생에서 엄청난 슬픔을 겪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일군 점령 하에서도 저는 찰스 램 덕분에 웃을 수 있었습니다."
brunette님_ 네, 이미 줄리엣의 전 기고문이 바로 그런 역할을 했을꺼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매우 큰 슬픔은 침묵으로 나타난다고도 했구요. 많이 이야기하지 않음으로 더 많은 것을 전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현재의 즉시성에 대해서 약간 아쉬워하는 편이에요. 서로에게 전해지는 시간 격차 사이에 생각을 더 해서 꼼꼼하게 글을 쓰는 것이 출판된 글과 블로그 글만큼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찰스 램 남매 자꾸 생각나요. 찰스 램이 감옥에 갇힌 친구를 찾아가 감방 벽에 장미덩굴도 그려주고 천장에 푸른 하늘과 흰 구름도 그려주었다는 둥 하는 얘기는 믿기 어려웠지만, 그 친구의 막내딸에게 주기도문 거꾸로 읊는 법을 가르쳐줬다는 대목에서는 정이 확 갔어요. 매리 램은.. 그 누구보다 좋은 친구였지만 발작을 일으키면 자기 엄마를 포크로(이 책에선 칼이라 했는데 어디선 또 포크라고 해요. 칼이건 포크건)찔러 죽일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니 짠해요. 수필집과 서간집, 이야기책 등을 냈으나 기본적으로 회사원이었던 찰스 램이 누이를 평생 돌보며 느꼈을 고단함과 연민이 상상됐어요.
brunette님_ 세상에.... 제가 얼마나 허투루 책을 읽은지 알겠군요. 전 그 부분이 건지 섬의 한 인물에 관한 설명인지 알았어요. 마지막 공저자가 칼로 찔렀다는 것을 다시 말하는 것을 보고 왜 그런가 했죠. 위키피디아에서도 누이의 보호자로서 일생을 독신자로 보냈다고 나오는 군요.. 논픽션이었다니...
요새 문학 관련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에, 비문학이 아닌 문학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때가 많아요. 과연 삶을 사는데 아무런 실제적인 정보가 들어가 있지 않은 책을 읽는다는 것이 정말 쓸모가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할 때, 문학보다는 비문학 관련 서적을 훨씬 많이 읽게 되고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 회의가 들기도 하죠) 이 책이 그 질문에 대한 확실한 반증을 해주고 있더군요. 우연에 의해 모였지만 책을 비평(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 대신 솔직담박하게 말하는게 정말 좋았어요. 예이츠가 말한 수동적인 감정인 시를 목록에 올리지 않았다는 부분에 대해서 분노하는 부분도 좋고..)하고 매우 어려운 시기를 그런 것들을 통해서 넘어서는 광경 말이에요.. 정말 심정적으로, 사회적으로 힘들 때 비문학 책이 무슨 소용이겠어요. (아주 맛있는 돼지구이 요리책을 들고 왔다가 쫓겨난 모 부인처럼 말이에요)
zaru님_ 그런 종류의 캐릭터로 극성기독교신자 외에는 적절한 설정이 없다는 현실이 약간 슬프네요. 그리고 절반만 읽었다면 이 댓글의 후반부는 읽지 마세요..
엘리자베스가 첫 등장하는 그 장면에서부터, 저는 그녀의 운명을 예감했습니다. 제 감이 맞지 않기를 바랐지만 이런 종류의 글을 쓰는 사람들은 다들 단호하더군요. 소설을 읽을 때 작고 귀여우며 당차고 모임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여자아이가 나올 경우 매우 조심히 정을 줍니다..
예를들어 북클럽 회원중 한명인 클로비스 포시가 줄리엣에게 보낸 편지에서 "실제 존재하지도 않은 사람들과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글을 읽는데 시간을 허비하기도 싫었습니다." 라던가 줄리엣이 독서에 관한 글을 타임스에 실기로 했는데 독서의 철학적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낸 거라고는 "독서는 망령이 나는 걸 막아준다" 라는 부분들이요. 뭐 결국에는 잔인한 오후 님께서 말씀하신것 처럼 독서의 궁극적인 장점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 나온 구절들일 수 있겠지만 이런 삐딱한 말들도 왠지 이해나 공감이 가더라구요.. 그럼에도 이야기를 좋아하다보니 이런 저런 책들을 읽지만 말이죠.
이 책에서도 그렇지만 인문학이 가난한 사람들이나 낮은 계층의 사람들에게 많은걸 깨우치게 해준다는 레토릭이랄까 주장이랄까.. 요즘 그런것들도 약간 유행인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거부감도 들어요. 뭐랄까 교조적인 느낌? 무지렁이들을 깨우치겠다 하는 뭐 그런 시혜적인 느낌도 조금 들거든요. 뭐 그래서 하지 말아야한다거나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거만하다는건 아니고.. 좀 그런 거부감도 들더라 하는 이야기입니다.
레옴님_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인, 책을 혼자 읽음으로 끝나지 않고 서로 여러 방법를 통해서 나눈다는 것이 서로에게 힘이 되었다는 것이 신경써야 할 부분인 것 같아요. 이미 저부터도, 오늘따라 긴 아르바이트를 버티면서 이 느슨한 독서모임을 생각하니 기운이 나더군요. 책을 읽는 경우는 많지만, 같은 책을 읽으며 그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는 일은 별로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니까요. (다른 사람에게 책을 권해보세요! 그럼 그 사람은 백날천날 그 책을 읽을 생각을 안해요. 그러다가 완전히 잊어먹고 있을 때 살며시 와서, '와! 이 책 정말 재미있다!'하면서 예전에 권했었던 책을 들고 온다니까요!) 위에서 잠깐 이야기했지만, 책에 대해 느낀 것을 말하고, 맘에 안 드는 것에 대해 투덜거리며, 연극(!)도 하고, 낭독도 하고.. 부러워 죽겠습니다..
계몽주의라면, 언제나 저도 반대입니다. 문학은 무엇보다 재미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며, 남이 뭐라 떠들건 말건 받아들이는 자기 자신이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어떤 책을 독자가 입수하는 방법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그 책을 읽으며 독자가 어떻게 생각했는지가 가장 중요한거겠죠. 자기 자신이 뭔가 배웠다고 말한다면 그런 것이겠고, 정말 쓰레기같은 책이라고 말한다면 그에게는 그러겠죠. 시혜적인 태도는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서간문으로 된 글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고.. 특히 저도 나름대로 조금은 책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또 브론테 자매의 글은 전혀 제 취향이 아니기 때문에... (전 안타깝게도 이런쪽의 문학 소녀 감성은 아닌것 같아요. ㅜ_ㅜ 책을 좋아하는 사랑스러운 사람들과 공유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게 정말 아쉽지만 취향은 바뀌지 않네요) 약간의 로맨스도 있는 소설이라고 해서.. 제가 재미있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을지 걱정도 했어요. 하지만 재미있더군요.
아.. 이야기 나눈다! 그건 저도 정말 좋은것 같아요.. 전 어렸을때부터 꽤 오래 제 동생이랑 책을 많이 나누어 읽었는데 그 경험이 참 좋았어요. 같이 읽은 책에대해서 진지하게 토론 같은 걸 하는건 전혀 아니었고.. 그냥 같은 집에서 같은 책장을 공유하다보니 자의든 타의든 같은 책을 많이 읽게되고 그 책에대해서 지나가듯 한두마디씩 툭툭 던지는 것 뿐이었는데도 그 과정이 서로 많은것을 보충해주는 그런 부분이 있더라구요. 사실 느슨한 독서모임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했답니다. >_< 그래서 별로 진지한 이야기랄까 발제랄까 사전준비 같은건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뻔뻔하게 진행하고있지요 쿨럭;
레옴님_ 저도 집에 제 책장이 따로 있는데, 만화책 절반과 라이트로벨류 절반, 그리고 소수의 하드커버 소설로 가득차 있습니다. (돈이 별로 없어서, 왠만한 책들은 빌려다 읽었어서 남는 책들은 싸게 살 수 있는 종류밖에 없더군요) 동생들도 그 책들을 거의 다 같이 읽어서, 이야기 할 때 특정 만화의 부분을 가져다 쓴다거나 특정 책의 인간관계를 비유한다거나, 또는 특이한 묘사를 갑자기 꺼내 쓴다던가.. 그렇게 말하고보니, 문학이라는 것이 한 공동체의 '언어'를 통해 전할 수 있는 것들을 좀 더 세밀하게 전할 수 있게 풍족하게 만드는 군요. 서로 알고 있는 것을 통해 내포적인 의미가 더 많이 간단한 대화를 통해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클로비스 포시 아저씨의 단호함("실제 존재하지도 않은 사람들과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글을 읽는데 시간을 허비하기도 싫었습니다."111쪽)과 클라라 소시 부인의 선언("내 요리책이 바로 문학이죠!"161쪽) 모두 좋았어요. 노자의 '도가도 비가도'서부터해서 글공부나 독서의 공허함을 지적하는 얘기들은 꽤 많죠. 보통 그런 얘기들은 공부 많이 한 사람들 입에서 나오더라구요. 만 권의 책을 읽었더니 다 소용없더라, 하는 식으로요. 그 경우 포인트는 소용없다,가 아니고 만 권의 책이겠죠. 그 정도 결론에 도달하려면 만 권 정도는 읽어야 되나보다 생각해요. 그런데 건지 섬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니까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지네요.
이시대의 영국 헌책방/독서인구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야! 라는 생각도 들어요. 예전에 읽은 책중에 「채링크로스 84번지」라는 책이 있는데 책을 구하려고 미국인과 영국 헌책방 서점 직원들이 편지를 주고받은 글이었거든요. (내용 자체는 재미는 그리 없더군요;;) 그외에 저희 모임에서 읽은 열세번째 이야기에서도 헌책방집 딸이 주인공이잖아요? 이들 책 애호가들이 공유하는 감성 같은게 있고 그게 멋지고 낭만적이라고 느껴지는데 (저도 편지라서 더 운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트위터나 게시판의 글들도 좋지만.. 편지는 또 그 나름대로 다른 개성이..) 그중에 어떤 것들은 공유하지 못한다는게 아쉬워요. 예를들면 브론테 자매 ㅠ_ㅠ
비평/서평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과연 이 대서사시대(아아주 많은 사람들이 각각의 책을 읽고 서평을 써서 자신의 서평을 하나 그 사이에 끼어 넣는다고 해서 쓸모가 있을것인가에 대해 자문하는 시대)에 서로 다른 부분을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소규모의 비평나눔 시간이라뇨. (데이트 하면 영화보는 이유가 그거 아닌가요? 보고나서 어떤 떤부분에 대해 어떻게 봤는지 알 수 있다던가) Mirror에서 이 느슨한 독서모임이 부러워서 비슷한 모임을 하나 만들기도 했어요. (저는 거기서도 눈팅만 하고 있지만) 그리고 총 28페이지의 만화책 한 권을 보고서라도, 사람이 다르면 보이는게 다를 것이라 생각해요. 그에 대해 듣고 말하는건 정말 재미있는 일이죠.
데이트하면서 영화보는 이유! 제가 표현하지 못했지만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중에 하나에요. 어떤 사람들은 왜 서로 말도 안하고 스크린만 멍하니 바라보면서,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는 시간도 갖지 않고, 데이트 내지는 소개팅을 하면서 영화를 보냐고 하잖아요. 전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같은 문학적 텍스트를 읽고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것 만큼 서로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겠어요. 영화에서 벌어지는 것만큼 다양한 일들을 현실에서 겪어볼 수 도 없는거고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저희는 지금 데이트 중? >_<
brunette님_ 독서의 공허함이라.. 책을 읽는 것에서 끝난다면 허무하기 쉽다고 생각해요. 책 뿐만 아니라 모든 의미가 담긴 예술 계열은 특히 그럴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창피해하는 예전에 떠들고 다니는 문장이 하나 있는데, 사람은 살아있는 책이라는 말이었어요. 책은 출판되는 순간부터 이미 고정되버리는데 사람은 언제나 변할 준비가 되어 있죠. (글이나 영화도.. 완성되는 순간 죽는달까. 누구말대로 끝이 있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라고 해야할까) 이야기할 상대가 있는 좋은 삶을 살고 있다면, 책이 전혀 필요 없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런 대화를 통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부분을 아는 지평이 넓어지는 것이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어요.
"인습은 도덕이 아니다. 독선은 종교가 아니다. 인습과 독선을 공격하는 일은 도덕과 종교를 굥격하는 일이 아니다. 바리새인들의 얼굴에서 가면을 벗겨 내는 일은 가시면류관에 불경스러운 손을 대는 일이 아니다. 이 두 가지 사항과 행위들은 정반대가 되는 것들이다. 양자는 마치 선과 악처럼 뚜렷이 구분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너무 자주 양자를 혼동한다. 이들은 절대로 혼동돼서는 안 된다. 거짓된 외양이 진리를 대체해서는 안 된다. 그저 소수의 사람들만을 우쭐하게 만들고 찬미할 뿐인, 인간이 만든 편협한 교리가 세상을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신조를 대체해서는 안 된다. 세상 사람들은 이 두 가지 개념이 분리되는 걸 보고 싶어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양자를 뒤섞는 일에 익숙해져 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외양상의 허식을 훌륭한 가치로 여기는 일이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고, 나아가 그저 회칠한 벽이 있으면 그 안에 깨끗한 신전이 있다는 사실이 보증된다고 믿는 걸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용기를 내서 꼼꼼이 조사하고 폭로하는 사람, 껍데기 금박을 벗겨내고 그 안의 싸구려 금속을 밝혀내는 사람, 지하 묘지 안을 뚫고 들어가 납골당의 유골들을 폭로하는 사람은 증오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이런 사람을 아무리 증오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에게 빚을 지는 것이다." ---------------------------
위선적인 사람들에 대한, 그리고 인습과 가식으로 점철된 세상에 대한 이 여성작가의 혐오와 분노가 느껴지시죠? 저는 첫 문장만 읽어도 가슴이 뛰더라구요. 샬럿 브론테는 1816년에 태어나 제인 에어의 로우드 스쿨 같은 곳을 직접 다녔고 거기서 사랑하는 자매 둘을 결핵으로 잃었대요. 길지않은 기간이지만 학교교사 및 가정교사로서의 경험도 있었구요. 그러다 고향으로 돌아와 글을 쓰고 살다가 서른 여덟에 아버지(목사였습니다)의 보좌신부와 결혼했는데, 임신초기 중독증상으로 서른 아홉에 죽은 여자에요. ..다시 한번 읽고 싶어지시면 좋겠다 싶어 적어봤는데 적다보니 그녀의 인생이 상상이 되어 괜히 울적해지기도.
엘리자베스 이야기 해볼까요.. 책 읽으면서 소설이 아니라 실화 아니야? 하는 느낌이 많았어요. 아무래도 서간문이라 그랬던것 같아요. 그런데 엘리자베스라는 사람을 보면 소설이길 참 다행이에요. 한편으로는 아이갸 있는데도 불구하고 - 아빠도 없는데 - 어쩜 사람이 이렇게 무턱대고 행동하냐 답답해하기도 했어요.
엘리자베스가 죽는 장면에 대해 저도 생각해봤어요. 몇 주만 더 있으면 독일군이 항복한다는 걸 알면서도 죽음을 자초하는 짓을 굳이 한 데는 물론 그녀의 급한 성격이 한 몫 했겠죠. 그런데 생리용품이 없어 생리혈을 그대로 흘린다는 이유로 죽도록 구타당하는 여자애 입장에서 엘리자베스의 행동은 구원 그 자체잖아요. 그 순간엔 조금만 더 기다려보지, 라던가 신중하게 행동했더라면, 이란 게 무의미하겠죠. 엘리자베스의 딸은 다혈질 엄마를 둔 탓에 고아로 크겠지만, 같은 이유로 가족 같은 이웃들도 물려받는 거겠죠.
레옴님_ 데.. 데이트.. 자신의 취향이 맞지 않아 읽을 수 없다면, 안타까움은 존재하겠지만 그 호불호 자체가 레옴님을 이루는 특성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 제가 다른 이들이 향유하는 어떤 것을 못할 때 별로 아쉽지 않습니다. 무언가가 있는 것이 그 사람을 이루는 요소라고 하면, 그 곳이 비어있는 것도 확실한 요소라고 생각하거든요. (가까운 곳의 마트가 특별할인을 해서 사러 갔다 오느라 몇 단계 늦어졌네요)
이 댓글란은 스포일러와는 관계없는 완독자를 위한 곳인가 보군요.. 위에서 적당히 얼버무렸는데.. 뭐, 이미 쓰였으니 맘 놓고 말하겠습니다. 엘리자베스에 대해서 누가 그랬는진 모르지만, '그랬으면 좀 더 행복했겠지만, 우리가 좀 더 불행해졌겠지요' 비슷한 말로 대답하는 장이 있을겁니다. 소설이 잘 짜인 퍼즐이라면, 그런 성격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결말과 같달까요. 그런 무책임한 성격이 아니었다면, 이미 애저녁에 다들 최후의 만찬을 즐기고 여기저기로 잡혀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아니면, 그 만찬조차 없었을지도 모르지요. 엘리자베스가 중심이었다고 하니까..)
잔인한오후/ 아.. 거울은 알고 있었는데..맞아요, Mirror가 거울이죠. 부끄러워라. 스포일러에 대해서는 그동안 별로 개의치않고 써댔는데, -독서모임에서는 책의 구절이나 스토리 얘기 대놓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구요-, 앞으로 조심하자 하시면 조심할께요.
레옴/ 제가 실화같다는 인상을 받은 부분들은 엘리자베스 쪽이 아니라(그녀의 성장배경이나 이웃과의 관계 등은 오히려 동화적이라고 생각해요), 부모와 떨어져 잉글랜드로 피난 간 수천 명의 아기와 어린이들, 독일 군인들과 어울리던 제리 백이라 불린 여자들, 그리고 독일 군인들의 매음굴로 강제로 끌려온 여자들, 혹은 바다에 오물 방출하는 날 그 찌꺼기를 먹으려고 몰려들는 물고기를 잡으려고 가슴께까지 차오른 오물과 배설물 속에 서 있는 강제노역자들에 관한 얘기를 읽을 때였어요. 자료 조사할 때 이런 얘기들을 보면서 어떻게든 이것들을 소설 속에 집어넣겠노라고 다짐하는 작가가 상상되기도 했고요, 또 책 뒤에 적힌 작가들과 책들 보면서는 이 작가가 독서모임할 때 읽었던 책들도 이 중에 있겠거니 했어요.
brunette님_ 에고, 제가 사이트 이름으로만 외우고 있어서 새로운 명칭을 만들어버렸네요. '거울'이라고 다들 하는군요. mirror라니.. 저만 이렇게 부르고 있었나 보네요. (스포일러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안 읽었을 경우 아예 댓글을 안 봤기 때문에...)
[히틀러의 아이들]이란 책에서 "의도적인 무지"란 구절을 보고 잊혀지질 않았는데, 이 책에서도 같은 표현이 나오네요. 이런 식으로 넘겨버리는 일이 얼마나 많겠나 싶어요. "채널제도가 점령당했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뒤따랐는지는 전혀, 단 한 번도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어요. 의도적인 무지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네요.(87쪽)"
brunette님_ 아마 오스카 와일드의 풀네임을 알고 난 후에 넣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 책 중에 가장 픽션으로 보이는 부분이죠. 왜 이걸 넣었을까요?
의도적인 무지에 대해서라면, 머리 위에 어디까지 정보를 올려놓고 다녀야 하는가를 생각해봐야 겠죠?.. 사람이 모든 것을 기억할 때 그리 행복하게 살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가끔 큰 지진이 난 많은 국가들의 후기(칠레, 아이티, 그리고 일본 등등등.... 일본도 방사능 관련 후기를 확실하게 정리해서 올려주는 곳은 엔하위키 밖에 없습니다!)들이 궁금하지만, 신문의 세계 면은 그런 것을 보여주진 않아요. 따로 그런 것만 모아 놓은 웹페이지도 딱히 찾지 못했구요...
독서모임에서의 스포일러는 읽은 이후에 모임을 한다는걸 전제로 하고있으니 그냥 속시원히 다 이야기 해도 되지 않을까요. ^^; 결과에 대해서 할말이 많은데 말하지 못한다면 답답할것 같아요. 스포일러가 있는 책의 경우에는 처음 본문에서 스포일러 주의 표시를 하는것도 좋을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