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하면 재밌는 경험이 참 많아요.
저희 부서에 관리자 한 분이 새로 오셨습니다.삼십대 초중반 정도 돼보이는 여자분이신데요.이 분,일을 못합니다.정말 너무너무 못합니다.
부임한 지 이제 갓 일주일 된 사람이란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너무 심합니다.안쓰러울 지경이에요.
문제는 저희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전반적으로 기가 대단히 세다는 겁니다.부하직원들이 절절매는 관리자를 가만 놔두질 않아요.하루 이틀이야 다들 그러려니 했습니다만,상사의 능력 부족으로 인한 업무상 애로사항이 일주일 가량 반복되다보니,드디어 오늘 하나 둘 씩 분을 못 참고
(혹은 안 참고)몇몇 분들이 관리자에게 기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복장이 터진다는 둥,그게 아니라는 둥.급기야 이 회사에서 경력이 가장 길고 업무
능력도 인정받고 있으나 말단사원을 자청하고 있는 저에게 ‘네가 부장을 했어야 했다’는 말이 고성으로 오가더군요.이 새로 부임했다는
관리자 면전에서요.이런.이 신입 관리자한테 본의 아닌 모욕을 준 것 같아 유쾌하지 않았습니다.사람들을 향해 그런 말씀 마시라고 손사래를 치긴
했습니다만…
작은 소란 이후 이 관리자란 사람도 입사 일주일만에 본인의 문제가 뭔지 찬찬히 되짚어보더군요.그러더니 본인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현재 본인의 업무를
후방 지원해줄 ‘직속 부하직원’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주목한 모양입니다.해서 저한테 부부장직을 권유하시더군요.진지하게.자존심 엄청 죽인거죠.
네가 부장을 했어야 했다,란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그래,frolic씨가 부부장 해줘.이렇게 된 모양새거든요.그러나 고사했습니다.세 번이나.주경야독
해야 하는 청춘이라 관리자들처럼 자정이 되도록 야근하면 곤란하거든요.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정말 죄송하지만 관리자는 하지 않겠습니다.
알았다시더군요.문제는,알았다고 하시며 돌아서는 눈빛에서 무언가 간절한 본인의 요구에‘거절당한’사람한테서나 보이는 씁쓸함이 보였다는 것.
부하직원들이 거의 단합하다시피 이 신입 관리자를 따돌리는 가운데 그 모양새가 영 좋지않아 최대한 상사 대접 해 준 사람이 저입니다.그렇다보니
어느정도 저한테 의지하게 되신 부분이 있으셨을겁니다.부부장 해달라는 건 일종의 구원 요청이었을 수 있습니다.그런 의미에서 관리직 고사는
거절로 느껴졌을 수도 있었겠죠,이 분한테는.
자,이런 일들을 겪은 후 퇴근하려 했더니 갑자기 사장님이 절 부르십니다. frolic씨 여기 앉아봐.그러더니 이것저것 물어보십니다.솔직히 대답해줘,신입
관리자 어때?부서 분위기는 어때.업무에 이상은 없어?
negative한 대답을 할 수 없는 저는 분위기?괜찮습니다.이상?없습니다.라고만 대답했죠.다만 사장님은 단답형 대답에서 이미 함의를
읽었을겁니다.아니,신입 관리자에게 뭔가 하자가 있음을 이미 알기에 이런 질문도 하는거겠죠.
다사다난한 하루를 마치고,매일 같이 퇴근하는 형과 함께 사무실을 나섰습니다.이 회사에서 남자 직원중에 유일하게 저보다 선배고 부담없이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어도 좋은 형이에요.오늘 하루종일 이러저러한 일들이 있었단 얘길 했습니다.부부장자리를 고사했단 얘기도 했고요.그랬더니 이 형,난데없이 부부장자리가 비었다는 사실에 주목을 합니다.원래 따로 하려던 일이 있고 이 직장은 놀기 뭐해서 다니는 그런 개념으로 취직한
사람인데,원래 하려던 고소득 업종 쪽에서 몇 년째 소식이 없는 상태였습니다.저한테 넌지시 말하더군요.내가 원했던 일은 내가 가지기 힘들 것 같다.
여기에 말뚝 박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해보아야겠다.
퇴근길은 본의아니게 이 형의 진로상담실이 됐습니다.전철을 기다리고 타고 내리는 내내 열띤 토론이 일었고,결국 이 형,내일 면접복장으로
출근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어요.저처럼 말단사원이지만 사무실 내에서의 무게감은 상당한 사람이라 지원은 곧 합격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고작 서른 두 살이란 나이가 가능성의 차단을 겪어야 하는 나이란 점이 무척이나 씁쓸했고 또 새로운 진로를 고민하는 그 형을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다시 집에 돌아와 직장 상사와 있었던 일에 대해 어머님께 말씀을 드렸죠.독실한 기독교 신자시라,무능한 상사와의 직장 생활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소소한 사건들에 대해,일이 있을 때 마다 하나님께 부끄럽지 않은 선택만 하면 된다고 조언하시더군요.최소한 신입 관리자에 대한
따돌림에 숟가락 하나를 더 얹는 일은 절대로 없도록 할거라고 대답했죠.그래,그렇게 하렴.말씀하시더니 제가 듣기 힘든 곳으로 장소를 옮기시면서
이러시더군요.‘잘 한다,우리 아들.’
참 소소한 일들인데 감정의 무게는 적지 않은 사건들입니다 못하겠다 힘들다 하면서도 직장생활의 이면엔 이런 맛이 또
있는 것 같아요
c’est la v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