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영화 바다가 들린다

이제껏 일본 만화영화를 많이 본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본 일본 만화영화 중 이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고

매료됐습니다. 바다가 들린다는 일본에서 청춘소설계의 1인자로 불리는 히무로 사에코의 동명 연재소설을 원작으로

월간 아니메쥬에 23회에 걸쳐 연재된 만화가 있고 영화는 그 만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소설은 국내에서도 출간됐는데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원래는 방송 특집용으로 만들어진 만화영화입니다. 1993년 5월 tv에서 낮시간대인 4시에 방영을 하였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고

이후 이 만화영화는 인기에 힘입어 적은규모로 극장개봉도 했습니다. 후에 원작의 속편 바다가 들린다, 사랑이 있으니까는 다케다 신지를

주연으로 t.v드라마화 되는 등 지속적인 인기를 얻었죠.

 

1993년 이전까지의 지브리 스타일과는 확연히 달랐던 이 만화영화는 제작 당시 지브리에서 젊은 인재를 키우기 위해 기존의 나이들고 오래된

인력을 제작에서 배재하고 스튜디오 지브리 젊은 제작단이라고 불리는 모치즈키 감독 주도 아래 능률적이고도 철저한 제작방식으로

만들어진 장편 만화영화입니다. 극도로 사실적인 묘사와 일상의 스케치는 이후 1995년 공개된 귀를 기울이면에 크게 영향을 주었죠.

미야자키 하야오는 처음에 이 작품의 완성본을 보고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만화적인 판타지가 결여된 것에 대해 화를 냈다고 합니다.

일례로 비행기 장면에서 남자주인공이 바로 옆에 자기가 좋아하는 여주인공이 앉아 있는데도 어떻게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신문을 읽을 수 있느냐고

스튜디오 지브리와는 너무 거리가 먼 스타일이라며 불만을 표출했다죠.

그러나 이 작품을 기반으로 스튜디오 지브리가 좀 더 앞서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작 역시 그런 걸 의식하고 지브리 최초로 t.v용 만화영화에 도전한것이겠죠. 위험부담을 줄이고 모험을 펼칠 생각이었던건 처음부터 작정한건데

그 결과물이 본연의 성격조차 유지하지 않고 너무 나가다 보니 하야오가 당황한것 같아요.

 

이야기는 일본에서 지방 도시에 속하는 코우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제작 전 철저한 사전답사로 실제 모습 그대로 코우치의 풍경을 담아낸

화면들이 인상적입니다.

2003년도에 이 작품 10주년을 맞이하여 dvd가 제작됐는데 그때 이 작품 제작진이 당시를 회상하며 코우치를 방문하는데 1993년도의 코우치 풍경과

2003년도가 거의 달라진게 없습니다. 2003년도 10주년 dvd는 국내에 2008년 발매됐죠. 제가 이 영화를 본 경유도 dvd를 통해서 입니다.

 

만화는 극중 여주인공인 리카코가 지적하듯 코우치 사투리가 종종 나오는데 일본어로 들을 때 일본어를 잘 모르는 저로썬 파악하기 힘들었습니다.

한국어 더빙 버전으로도 봤는데 미세하게나마 억양을 달리한 성우의 더빙이 소소한 재미를 주었습니다.

만화는 전체적으로 서정적이고 평범한 일상의 모습을 뭔가 특별난것처럼 꾸밀 줄 아는데 일가견이 있는,일본 작품다운 장점과 감성이

사방에 소박하게 묻어있습니다.

런닝타임이 72분 밖에 안 되는 간략한 장편만화영화인데 시간도 잘 가고 재미있습니다. 다만 각색이 울퉁불퉁해요.

등장인물들의 심리변화와 동기부여가 자연스럽지가 못해서 왜 저런 행동을 하나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이 있죠.

특히 여주인공은 너무 이상해요. 완전 민폐. 그녀가 막 이혼한 부모 밑에서 혼란스러운 사춘기를 겪고 있다는건 이해합니다만

그 때문에 학교에선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그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없고 주변 사람들한테 피해 줘가면서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건

꼴불견입니다. 남자주인공이 자기를 위해 도쿄까지 동행해주고 호텔 방에서도 배려해주느라고

욕조에서 자는데도 아침에 일어나서 한다는 소리가 너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 이용을 못했다고 투덜거리기나 하니.

 

음악과 1993년 스타일의 패션도 이랜드나 카운트다운 의류광고 보는것같이 약간 촌스러운듯 하면서도 예쁘네요.

재미있게 봐서 주말 내리 더빙버전 2번, 일본어 버전 1번을 봤는데 일본어 버전의 성우더빙도 재미있었습니다.

 

요새 계속 극도로 사실적인 지브리 만화영화를 연달아 봤어요. 귀를 기울이면,바다가 들린다, 코쿠리코 언덕에서.

이 중 귀를 기울이면은 후반부에 판타지 장면이 있고 코쿠리코 언덕에서도 시대극이니 만화로 만들법한 이유가 있지만

바다가 들린다는 굳이 이걸 실사로 찍지 않고 만화로 만들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공개 당시에도 제작진은 이런 소리를 들었다는데 감독이 항변하더군요.

일상과 사실적인 묘사에 충실한것처럼 보이겠지만 그게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를 담아내기 위해 만든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특정 부분을 만화영화에 어울리게 제거하면서 더 나은 작품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 만화영화로 제작할 필요가 있었다고요.

    • 일본의 청춘물은 재밌어요. 잘 생각해보면 제 고등학교 때의 일상은 전혀 그런 식이 아니었는데도 이상하게 그런 추억이라도 있는 듯 아련하단 말이죠.
      판타지 연출이 나오지 않으면 실사로 찍으라는 말은 안 들었으면 좋겠어요. 단 1분 평범하게 길을 걷는 장면만이라도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는 다른 매력이 있는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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