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차 희망버스와 착한 마음

얼마전 토끼울타리 책을 읽었습니다. 호주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 가운데 백인-원주민 혼혈들을 대상으로 백인들의 방식으로 교육시키기 위해 엄마에게 아이들을 빼앗아 시설에 수용했던 실화를 다룬 책입니다. 그 가운데 세 명의 아이들은 수용소를 탈출 해 2400km의 걸어 호주를 종단하며 자신들의 마을로 돌아가는 여정을 그렸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을 문명화시키려는 백인들의 행동이, 아이들에게 야만임을 깨닫고 자신의 마을에 있던 토끼울타리를 이정표 삼아, 걸어갑니다. 아이들은 추위와 배고픔에 인근 농장에서 먹을 것을 얻기도 했었고, 어느 농장 여주인은 아이들의 몰골을 보고 그들을 찾는 당국에 신고합니다. 신고하면서 여주인은 생각해요.

덤불 속에서 먹고 생활하는 힘든 생활보다 좀 더 쾌척하고 먹여주고 교육시켜주는 수용소가 저 아이들에게 더 나을 거라고요. 그리고 되뇝니다. 나는 착한 일을 했다고.

 

5차 희망버스에서 내려가는 동안 조남호 사장이 국회 중재안을 '김진숙 지도와 정투위가 받겠다면 자신도 받겠다고'는 이제까지와 다른 조금 수용된 입장을 보였다고 합니다. '중재안이란 1년 후 복직'이지요. 저는 그 말을 듣자마자 '안된다고'고 외쳤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복직투쟁도 조남호가 약속을 매년 어기면서 노동자를 계속 해고시켰는데 1년 후 그의 말을 대체 어떻게 믿느냐는 생각 때문이였습니다. 복직이 약속됐던 쌍차의 여전히 실직상태를 보면 자본가들의 약속이란 언제 어느때고 깨질 수 있는 위험 그 자체이니까요. 그래서 전 투쟁에서 타협을 늘 반대해오기도 했습니다. 타협을 하게된 투쟁은 결코 승리하지 못하기때문입니다. 당장 한발자국 양보는 종국에는 패배를 위한 첫걸음이 되니까요.

 

하룻밤을 새면서, 춥고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하룻밤도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만드는데 크레인 위의 김진숙 지도는 어떨까...생각합니다. 언제나 우렁차고 씩씩하고 유머러스하게 우리를 반기고 말씀하시지만, 얼마나 외롭고 고독하고 그리고 몸이 힘들까...저도 모르게 말했어요. 중재안은 결코 믿을 수 없는 것이지만, 위에 있는 김진숙 지도를 생각하면 일단 내려오고 나서 싸움을 지속해도 되지 않을까. 김진숙 지도를 생각하면 일단 중재안을 받는 게 나은 게 아닐까...하는 말이요.

 

그 말을 하는 순간 스쳐지나갑니다. 그런 생각이 바로 착한 마음이였던 건 아닐까. 토끼울타리에서 아이들의 소원과 다른 삶을 강요하며 '나는 착한 일을 했다'고 중얼거리는 농장주와 백인들과 같은 마음인 건 아닐까. 김진숙 지도를 위한다는 마음은 하룻밤 추위를 이기지 못하는 나약한 내 마음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결국 나의 착한 마음은 '내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에서 출발해, '자기만족의 착한 일'이 아닐까. 상대방의 입장과 마음은 전혀 헤아리지 않은 채로요.

 

김진숙 지도가 현재 하고 있는 고생의 크기는 어마어마하지만 그녀가 몸을 혹사하며 고통스러움을 알면서도 올라간 이유는 조합원들과 우리와 같은 노동자들 그리고 김진숙의 삶을 지키고 싶어기때문일 겁니다. 저의 옳지 않은 착한 마음을 만족시켜주기 위해서는 결코 아니였을 겁니다. 저는 김진숙 지도의 주장과 다른 마음으로 그녀를 오만하고 무지하게 지지하고 함께 투쟁하고 있다고 자기위로를 해오지 않았나 반성합니다.

 

정투위가 조남호가 던져버린 공을 어떻게 받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받더라도 저는 조합원의 선택을 지지합니다. 그리고 김진숙 지도를 지지하고요. 그리고 저는 김진숙씨가 웃으며 내려올 때까지 희망버스에 탑승하겠습니다.

 

착한 마음이 결코 착한 결과를 낳지도, 착한 마음이 반드시 옳은 일로 연결되지 않음을 새기면서요.

 

 

 

보태기.

1. 이번에는 저와 절망속아름다운님 두 명이서 내려갔습니다. 매번 함께한 인원이 늘었었는데 이번에는 늘지 않아서 조금 아쉬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아쉬웠던 건, 희망버스 기획단 깔깔깔이 준비한 수많은 공연을 오늘 출근해서 인터넷으로 봤다는 겁니다. ㅠㅠ 무대 뒤쪽에서 씨없는 홍시를 감탄하며 먹고 수다를 떨 동안, 재기발랄하고 즐거운 공연이 많았더군요 ㅠㅠ 반성합니다 ㅠㅠ

 

2. 투쟁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과연 무엇을 내려놓았나'라는 자책을 많이 합니다. 마음 속에서 활동하고 싶은 생각을 하면서도 별거 아닌이 쪼가리 하나 내려놓는 게 너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무언가 취득하고 활동하며 먹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가끔 내려놓을 게 있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고, 지난 수십년동안 무엇하나 만들어놓지 않은 제 무능력함에 화가 나기도 했고요. 이번에 부산에서 만났던 모 님께서 빚만갚고 다시 활동하겠다는 말씀을 들으며, 제가 내려놓을 수 없던 건 이 쪼가리가 아니라 안락하게 살고 싶은 욕심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3. 듀게분이 한 분 연행되셨는데 무사히 훈방되셨길...

 

 

 

    • 조선일보의 시위 관련 기사는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나요?
    • 희망버스 후기 기다리고 있었어요. 연행도 많이 됐다고 하던데 걱정도 했구요. 무사히 잘 다녀오셨군요! :)

      토끼 울타리, 저는 영화로 봤어요. 책도 있었군요.
      우리가 타인의 아픔과 문제를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이겠지요. 자신의 눈이 아니라 당사자의 눈으로 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굳이 '노력'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타인의 아픔과 문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 역시 결국에는 '우리의 일' 이니까요.

      보태기 2번, 공감해요. 저도 그 욕심을 버리기가 차마 두렵고 무서웠고, 사실은 지금도 그래요.
    • 김전일 / 제가 답변을 드려도 될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조선일보는 시위가 일어나게된 문제의 본질에는 관심이 없고 현상에만 집중합니다. 조선일보 인터넷판의 메인페이지에 현재 '과일 안주까지 싸와서 밤새 술판 벌인 시위대'라는 기사가 올라가 있는 걸 보면 그렇습니다. 10월9일자 사설 '한진重 해고자 복직 與野 합의, 노사갈등 개입 전례 될라'를 보면 조선일보는 정부도 국회도 아닌 경총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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