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국내 추리/스릴러 영화의 범인 폭로 방식
의뢰인, 세븐데이즈, 지푸라기 여자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조용히 해달라는 저의 부탁에도 아랑곳 않고 집에서 영화 보듯 상영시간 내내 종알종알 떠들던 연인 옆에서 의뢰인을 보고 왔습니다.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던대로 영화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국내 추리/스릴러물은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이 쪽 장르에 한해서 여태까지 만족할 만한 국산 영화를 본 적이 없네요(추격자는 재밌게 봤지만 엄밀하게 추리/스릴러물이라고 할 순 없죠). 여기엔 추리문학의 토양이 부족한 탓이 있겠고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들이 장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도 있겠죠. 이런 장르에는 치밀하게 짜여진 각본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데 구멍들이 많아요. 단서를 발견하는 과정이나 관객들에게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도 좀 어설퍼 보입니다.
어제 올라온 글 중에 영화 의뢰인의 헛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글이 있었는데 그런 지적에 저도 동의하고요, 그것 뿐 아니라 마지막에 범인을 입증하는 방법이 맘에 안들었습니다. 사후에 범인이 주저리 떠들게 만든 후 그것을 몰래 녹취하는 방식을 썼는데 너무 손쉽고 게으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극적인 느낌도 떨어지고요. 당시 시체를 유기한 현장에 차가 있었다는 목격자의 증언과 시체만으로도 충분히 증거를 확보할 수 있을텐데요. 게다가 몰래 녹음한 증거가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이전에도 이런 식으로 해결했던 영화나 드라마가 있었죠.
세븐 데이즈에서는 중요한 순간에 법정 증거물로 용의자의 대화를 몰래 녹음한 녹음기를 제출했었죠. 까뜨리느 아를레이의 지푸라기 여자를 각색한 티비 드라마에서는 더 어이가 없었습니다. 원작에서는 주인공이 범인의 음모로 인해 살인 용의자로 몰려 결국 감옥에서 자살하는데, 각색된 드라마에서는 감옥에 면회온 범인이 자신의 음모를 신나게 떠드는 걸 주인공이 묵묵히 듣고 있다가 몰래 녹음한 녹음기를 꺼내 보이고 진짜 범인이 잡히는 것으로 결말을 짓죠. 같은 소설을 헐리웃에서 영화화 한 것 처럼 해피엔딩으로 바꾼 것까지는 그러려니 하는데 녹음기 하나로 상황을 뒤집는 건 참 맥을 풀리게 하죠. 국내 정서상 악인이 승리하는걸 두고볼 수 없었는지 몰라도 상당히 재미없는 해결책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국내 추리/스릴러 물에 대한 저의 불신 덕분에 안본 영화가 많아서 이것들 말고도 녹음기 하나로 상황을 반전시키는 영화가 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지금까지 본 걸로 충분하니 앞으로는 이런 손쉬운 해결방식은 안봤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