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머리가 흐트러질 때

오늘 본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Anna Bolena는 참 좋았습니다. 수없이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진 "천일의 앤," Anne Boleyn 이야기입니다. 댓글로 예습하고 가면 좋을 거라는 말씀들을 들었는데 눈이 푸석푸석해질 때까지 늦잠을 자서 예습을 별로 못하고 갔는데도, 나중엔 몰입해서 주인공이 사형 집행 전에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장면에서 조금 울었습니다.


그런데 인상깊었던 장면 중 하나가 이 마지막 부분에서, 그 전까지 왕비용 올림머리였던 앤의 머리가 흐트러지는 장면이었어요. 감정에 휩쓸려서 노래하는 Anna Netrebko씨 (네, 극중 주인공하고 이름이 같아요)가 눈물을 글썽이는 장면에선 저도 이런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흐트러진 머리가 격한 감정을 나타낸다는 건 대단하게 정교한 장치도 아닌데, 그게 새삼스러웠어요.


그러고 보니까 도카이도 요츠야 괴담에서, 남편의 음모로 얼굴이 일그러진 오이와가 처음 거울을 본 다음, 슬프게 머리를 빗는 장면은 가부키에서 굉장히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아직 못 봤습니다. 그녀가 깜짝 놀라는 부분에서 가부키 관객들이 졸도하는 사태도 벌어졌다는 설명을 읽은 적도 있어요.


긴 머리의 감정 표현은 늘 최대로 길어봤자 어깨에 안닿는 단발을 고집하는 저에겐 약간의 동경을 불러일으키네요.   

    • 뜬금없지만 토끼님 오랜만이에욧+_+
    • 저도 이런 연출이 구태의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언제나 그 부분에 동요되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지젤이 미치는 장면이라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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