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정치] 안철수의 거미줄, 윤여준의 떨림.
-1. 오늘 - 정확히는 어제겠죠- 부터 재보궐 선거 전날인 화요일까지 이번 선거판을 분석하는 내용의 글을 올려보겠습니다. 시간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이제 3편남았군요. ㅎㅎ 많은 의견 부탁 드립니다.
0.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탐정, 셜록 홈즈의 최대 숙적은 모리어티 교수입니다. 이 캐릭터는 한번의 장편과 한번의 단편만에 등장했지만 홈즈와 마찬가지로 불멸의 생명력을 얻었습니다. 홈즈가 등장하는 그 어떤 2차 창작물에서도 모리어티는 항상 최종 보스이자 홈즈의 최대 난관입니다. 그도 그러합니다. 코난 도일은 오로지 홈즈의 죽음을 위해 모리어티를 탄생시켰으니까요. 도일이 묘사한 모리어티의 솜씨는 가공할 만 합니다. 그는 직접 손을 쓰지 않습니다. 의뢰인들에게 돈을 받으면 범죄계획을 짜내어 실행하는 것이 주된 일과입니다. 그리하여 범죄가 발각되더라도 그의 행적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무인도에 절대 같이 가면 안되는 남자. 소년 탐정 김전일의 최대 숙적 타카토 요이치의 선배격. 아니 원형이 되는 인물입니다. 타카토 요이치의 행적을 김전일이 면밀하게 알아차리듯이, 홈즈 역시도 범죄의 흔적을 통해 모리어티의 행적을 간파합니다. 홈즈는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모리어티는 범죄계획이라는 거미줄을 뽑아 주욱 늘어 뜨리곤 자신은 거미처럼 중앙에 앉아 이를 콘트럴 하지, 나는 거미줄의 떨림 만으로도 이것이 모리어티의 움직임임을 느낄 수 있네"
1. 오늘 안철수 원장이 박원순 후보에 대한 지원을 천명했습니다. 기사에 언급된 그의 육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이후 어떻게 도움을 줄지 내일까지 알려주겠다' 안철수 원장의 평소 성향상 이는 지원을 하겠다는 의사표시로 보입니다. 간접적이던 직접적이던 말이죠. 야구로 비유하자면 선동열이 9회초에 올라왔고, 축구로 비유하자면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인자기가 공을 받은 격입니다. 한나라당으로서는 누구 탓도 할 수 없습니다.
2. 궁금증은 여기서 생성됩니다. 전 글에서 저는 그들이 '뒤가 없기 때문에' 안 원장에 대한 엄살을 피울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안 원장이 선거 지원에 나오지 않았을 걸 확신했을 때 나올 전략입니다. 만약 이렇게 띄워줬는데 안 원장이 나와 버리면 더이상 꺼낼 카드가 없습니다. 선거 전략을 운이나 만약에 의존해서 짜는 여당이라니요. 말도 안됩니다. 한나라당은 안 원장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기에 뒤가 없는 전략을 짤 수 있었던 겁니다. 그렇기에 박근혜 전 대표 역시 '전면에 나서지만 보이지 않는' 선거 유세를 할 수 있었던 거죠. 안 원장이 정말로 나온다는 생각을 단 10%라도 했었더라면 이번 선거는 '박 전 대표의 선거'가 되었을 껍니다. 당연합니다. 안 원장은 나오는데 박 전 대표가 안나오는 것으로 비춰지면, 그래서 서울시장 선거가 날라가면 박 전 대표는 심각한 내상을 입습니다. 결국 한나라당과 박근혜 측은 안 원장이 나오지 않을 것임을 믿었고, 나오지 않아주기를 빌면서 이번 선거를 치뤘다는 얘기가 됩니다.
3. 한나라당이 저런 입장을 취하는 것은 박원순 후보가 야권연대의 후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가 '손학규'의 후보일수도 있고, '문재인'의 후보일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손학규'의 입장에서, 또는 '문재인'의 입장에서 박원순의 승리를 안철수가 몽땅 독식하는 것은 막아야 할 일입니다. 이건 손학규나 문재인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둘은 주위에 '대통령'으로 만드려 하는 조직이 포진되어 있습니다. 그 조직이 안철수를 반길리가 없죠. 반기기는 커녕 경원시해야 합니다. 안철수가 등판하는 순간. 승리시 1등 공신은 안철수가 됩니다. 선동열이 등판한 게임에서 선발투수는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과 똑같은 이치죠. 손학규 조직이, 문재인 조직이 그걸 용납하려 들까요? 박원순 선대위에는 이들이 잔뜩 포진해 있습니다. 저는 한나라당의 분석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사석에서 안 원장이 등판하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했던 것도 이런 이유였습니다. 박 후보가 여러차례 언론에서 안 원장 지원 여부를 물어봐도 " 내가 어찌 요청할 수 있나" 라는 식의 대답을 했던 건 물론 본인의 그러한 의도도 있겠지만, 캠프 내부의 분위기도 고려한 결정이었을 꺼라고 봤습니다.
4. 그런데 등판했죠. 더 중요한건 예사롭지 않은 등판 방식입니다. 안철수 원장은 박원순 후보의 '요청'을 받고 등판하지 않았습니다. 자원 등판입니다. 이래 버리면 마땅히 이 조직들이 막을 수단이 없어져버립니다. 안 원장 스스로의 등판인데 논리가 안 섭니다. 그 이전까지 안 원장이 자원 등판해야 한다는게 박원순 캠프의 입장이었죠. 다시 말하면 '자원 등판은 없을꺼다'라고 생각했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그런 상황에서 자원 등판을 해버리니 막기가 어렵습니다. 거기다가 박빙으로 끝나버린 지난주 여론조사 결과 때문에 '안 원장 없이도 이길수 있다' 라는 논리 역시 힘을 잃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오늘 안 원장 등판을 요청한 건 등판 자체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고 봐야합니다. 그의 등판이 임박했으니. 차라리 명분을 쌓자는 거죠.
등판 이유도 흠 잡을데가 없습니다. 안 원장은 '"선거흐름이 아주 걱정이 돼 지나친 인신공격이 오고가는 것에 대해 위로와 격려를 건넸다" 라고 전해졌습니다. 이건 뭘 의미하는 걸까요. 안 원장이 등판하는 이유가 '네거티브'때문이라는 뜻입니다. 지나친 인신공격으로 인해 '열받아서' 안 원장이 나왔다는 거죠. 박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격이 분쇄되어 버립니다. 더 이상 네거티브 공격을 지속했다간 역풍이 정말 심하게 불게 됩니다. 나 후보 측으로서는 공격 수단 하나 잃는 거죠. 그것도 가장 강력한.
5. 등판 시점도 완벽합니다. 투표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주말이 지난 뒤 투표여부를 결정하고, 월, 화요일에 지지 여부를 결정 짓습니다. 바로 이 시점에 안 원장이 등장합니다. 당장 내일부터 모든 뉴스의 첫 꼭지에 안 원장이 등장할 것이고, 그건 어디다 투표해야 하는가 하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유인으로 작용합니다. 이 브랜드를 쉽게 훼손할 수도 없습니다. 시간도 없고, 이미 네거티브 전략을 상당부분 가동한 터라 어설프게 했다간 역풍이 장난 아니게 불죠. 등판 방식, 이유, 시점 모두 다 완벽합니다. 오랫동안 정치판을 지켜봤지만. 이렇게 멋진 '작품'은 오래간만에 봅니다. 2004년의 박근혜 유세 때 이후 처음입니다.
6. 그 유세를 진두지휘했던 사람이 바로 윤여준 전 의원입니다. 제가 안철수의 완벽한 등장 뒤에 윤여준이 있다고 멋대로 추측하는 이유입니다. - 물론 아닐 수도 있지요. - 우연이라고 하기엔 매끄럽고 완벽합니다. 정치적 근육이 발달하지 못한 안철수 원장이 이렇게 매끄럽게 일을 진행할 능력은 없습니다. 그 주위에 있는 인물들 중 이런 '고수의 품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윤여준 전 의원 단 한명입니다. 그가 안철수 원장 뒤에 있다고 봅니다. 그가 지금 안철수 원장을 움직이고 있고, 우리는 그가 움직이는 떨림을 보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입니다. 그 이상의 설명? 저는 찾지 못하겠습니다. 안 원장이 갑자기 정치적 능력이 상승했을 가능성만이 남아있는데, 안 원장이 한 달만에 속성으로 이를 깨우칠 수 있었을까요. 그랬다면 그걸 가르친 사람도 윤여준 전 의원일 수밖에 없죠. 뭐 진짜 우연일수도 있겠군요. 그러면 안 원장은 정말 대운을 타코난 사람이죠.
7. 물론 저는 윤여준이 선거 판도를 완전히 좌지우지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어떻게 선거판을 움직일 수 있습니까. 이번 선거는 욕망과 욕망이 충돌한 지점에서 무수한 소용돌이가 생겨났고, 그 소용돌이 모두가 선거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안철수의 등장은 그 많은 소용돌이 중 하나입니다. 크고 강하긴 하지만요. 또한 안철수 원장이 윤여준 의원의 꼭두각시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안 원장은 이미 지난번 윤여준 전 의원에 대해 '300명 중 한 분일 뿐' 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정치적으로 굉장히 나이브한 선택이지만, 좋게 말하면 주체적인 결단력을 그가 가지고 있다는 뜻이죠. 저는 그게 아직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잘 모른다고 해서 남의 말에 어수룩하게 따라갈 정도로 안 원장은 나이브한 사람이 아닙니다. 굉장히 책임감이 강하고, 또렷한 목표의식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번 등장은 윤 전 의원이 조언을 해줬고, 이를 안 원장이 받아들여 등장한 것이라고 봅니다.
8. 저는 욕망을 긍정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이를 적당히 포장해 드러내는 기술 또한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은 통할꺼다. 또는 욕망보다는 도덕의 감정을 우선시 하는 태도는 존중은 하지만,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려는 욕심, 그리고 그걸 기술적으로 포장해 드러내는 능력. 이건 아까워야할 재능이고 능력입니다. 이번 선거판, 특히 안 원장의 막판 등판을 보며 저는 윤여준의 섬세한 손길을 느꼈(다고 생각하지만 아닐 수도 있도 있고)습니다. 그리고 이걸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정치란, 사람의 욕망을 멋진 단어로 포장해 관철시키는 기술이니까요.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이 포장이고, 무엇이 욕심인지를 구분해 내는 능력이라고 봐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ps) 원래는 나꼼수가 판을 지배했다는 글을 쓸려고했는데. 상황이 바뀌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