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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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추운 날이었네요. 길 위에도 갑자기 은행나무 잎들이 많이 보이더라구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맥주 한잔 하고 시덥지않은 여러 이야기를 나눈 뒤에 헤어졌어요. 그리고는 이제 만나기 시작한 지 한달이 갓 넘어가는 여자친구에게 갔어요. 배고프다는 여자친구와 간단히 분식을 먹고나서 좀 걷기로 했죠. 바람이 많이 불었지만, 그 바람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어요. 여자친구 점퍼에 같이 손을 넣고 다니는 것도 그렇게 눈꼴 시린 행동이 아닌 날이니까요. 한없이 착하기만 한 제 여자친구는 짖궃은 장난에 웃기만 하고, 그렇게 서로 웃으면서 길을 걷고 있었어요. 자주 가던 길이 아니었죠. 여자친구는 매일매일 가는 길이지만, 저는 이제 두번째 가는 그런 길. ‘모태길치’인 제가 한번 와봤다고 까불면서 ‘여기로 가는거지?’하고 앞장 서면, 여자친구는 그냥 말 없이 손을 잡아 끌고. 그러다 문득 연애라는 걸 이렇게도 정의해볼 수 있겠다 싶었어요. ‘길을 확장하는 과정’으로. 옆에 있는 사람과 새로운 길을 걸으면서 그곳의 건물, 풍경, 가게들을 마음 속에 기억해 나가는 과정 말이에요. 오늘 같이 걸은 그 길도 앞으로 여러번 같이 가게 되겠죠. 어쩌면 이 친구를 만나지 않았으면 평생 가지 않았을 지도 모를 그 길을, 이 친구 덕분에 그 곳에 어떤 가게가 있고 어떤 건물이 있고 어떤 풍경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몇 번의 연애가 끝나면, 전에 만났던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가 참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지명’이었어요.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면, 유독 자주가게 되는 그런 장소가 누구나 있기 마련이잖아요. 자연히 그 곳의 지리, 맛집, 교통편을 잘 알게 되는.. 물론, ‘사람을 만나는게 단순히 장소, 길을 확장하는 과정이다’라는 건방진 얘기가 아니에요. 나에게는 생경한 길을 여자친구와 그렇게 걷는데 문득 든 생각을 그냥 여러분과 나누고 싶었어요. 여러분에게는 어떤 길이 있는지, 어떤 장소가 있는지 말이에요. 더 중요한 건 ‘어떤 사람과’ 이겠지만요. 내일은 더 춥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