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독과점과 선거의 횡포


1.

스크린 쏠림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스크린 분포는 관객들의 수요 분포를 상당한 정도로 왜곡해서 대표합니다.

 

내가 100석짜리 영화관의 주인입니다.

두 영화 A, B를 들여 오는 비용은 같다고 가정합시다. (이 가정은 핵심 결론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A를 더 좋아하는 사람의 비율이 51% 인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이 상황이라 하더라도 A를 걸면 70명이 관람을 하고, B를 걸면 60명이 관람을 할 수 있습니다.

1단계 왜곡’- 51:49 7:6 으로 바뀝니다.

이것은 선호의 강도 등이 반영된 결과이므로 반드시 왜곡이라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선택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영화관의 합리적인 선택은 A를 상영하는 것입니다.

2단계 왜곡- 7:6 , 보다 근본적으로는 51:49가 이 100:0 으로 실현됩니다.

많이들 아시겠지만, 이 메커니즘이

실제 수요 분포와 스크린 분포가 그토록 많이 괴리되었다고 많은 분들이 느끼는 가장 핵심적인 원인입니다.

 

과거 미국의 unit banking system 처럼 일정한 구역마다 하나의 영화관, 체인이 아닌 독립 영화관만을 허용한다면?

일반적으로 전국 단위로 집계하면 스크린 쏠림은 더 강화될 것입니다.

가격수용자price taker인 영화관끼리 경쟁할 때, 가격책정pricing을 잘못하면 더 빨리 도태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영화관람료는 고정이기 때문에 영화 선택이 가격책정에 대응됩니다.)

다른 모든 영화관이 A를 상영할 때, B를 상영해서 판매율을 높이겠다는 전략이 가능합니다.

리스크가 따릅니다.

개별 영화관 입장에서 A B를 둘 다 사오는 것은 매우 부담스럽습니다.

수익은 별 차이 없는데 비용이 두 배로 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B만 사오기를 택해야 할 텐데, 그 리스크를 지고 베팅을 하면 A를 상영하는 옆 동네 영화관보다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례가 축적되면 일정한 균형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일정한 비율의 B상영관이 확보되겠죠.

하지만 그 비율이 51:49 7:6 에 근접할 것인가? 저는 그 가능성을 매우 낮게 봅니다.

지금 과점 멀티플렉스들의 스크린 분포보다 더 쏠림이 심할 거에요. (수학적으로 증명이 가능할 거에요.)

규모의 경제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합니다.

CGV는 대규모로 떼돈을 버니까 무비꼴라쥬로 생색이라도 낼 수 있고, 교차상영이라도 할 수 있죠.

영화라는 상품의 생산-공급, 개봉영화라는 상품의 수명(최적 상영 시점 및 기간) 등도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2~3주 단위로 A1, A2, A3, A4 를 돌리는 게 A1, B1, A2, B2 를 돌리는 것보다 이윤이 많이 남죠.

그래서 A계열 영화의 스크린 쏠림을 그토록 많이 관찰하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과점이나 수직계열화가 스크린 쏠림의 원인이라는 생각, 그것을 해체하면 스크린 분포가 다양해질 것이라는 생각은 별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왜 과점이나 수직계열화가 등장했고, 성공해서 살아남았는가를 생각해 봐야 하는데, 이것은 산업과 수요의 특징으로밖에 설명되지 않습니다.

플레이어가 수요에 반하여 스크린을 배치하면 하는 만큼 자신의 이익은 줄어듭니다.

과점이든 완전경쟁이든 이 점은 마찬가지에요.

(과점 플레이어 간의 코디네이션은 스크린 다양성을 수요의 다양성에 근사하는 데 도움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수직계열 플레이어는 조금 다른 인센티브를 가집니다만,

이 경우도 어떤 영화를 제작, 투자, 배급할 것인지 결정 단계에서 수요에 대한 고려, 존중이 이익의 크기를 결정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심각하게 수요를 왜곡할 인센티브가 거의 없습니다.

(광고도 마찬가지입니다. 광고에 반응하는 수요를 존중한 결과에요.)

 

수직계열화가 일반적으로 좋은 전략이 아니에요. 일반적으로 효율성을 보장하지 않거든요.

수직계열화가 성공적인 산업들은 일정한 특징들을 갖고 있고, (제작-투자)-배급-상영으로 이어지는 영화 산업은 여러 면에서 그 특징들을 갖고 있습니다.

 

 

2.

스크린 분포가 수요 분포를 매우 왜곡하는메커니즘은 그것이 집단 단위의 소비이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의사결정 단위를 쪼개지 않고 좌석수 단위로 묶어서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영화관 상영이라는 상품의 DVD(대여 포함), TV드라마라는 상품과도 전혀 다른 특징입니다.

소비만 그런 것이 아니죠. 생산-공급사이드도 그렇습니다.

영화만큼이나, 문화로서의 중요한 가치를 갖는 출판 산업과 비교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출판 산업은 생산이든 소비든 대개 개인 단위로 이뤄지죠. 고정비용도 훨씬 작고.

책을 좌석수 단위로 팔지도 않거니와 책은 오며 가며 혼자 사지만 영화는 혼자 보지 않는 사람이 많죠.

상품 주기도 길고요, 상영관에서는 스테디셀러가 불가능하죠. 하여간 여러 면에서..

그러니 과점이나 수직계열화가 영화에 비해 훨씬 약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스트셀러 쏠림이 두드러지는 게 한국 사회 수요의 특성이에요;;

 

스크린 분포만큼이나 왜곡적인 메커니즘이 바로 선거입니다.

민주주의, 정당 중심 선거 결과가

오세훈, 한명숙, 노회찬에 대한 수요, 혹은 다른 어떤 것에 대한 수요의 분포를 과연 얼마나 잘 대표했을까요?

오세훈이 말아처먹은 유권자들의 돈을 고려하면, 트랜스포머3의 도배보다 훨씬 더 끔찍하게 왜곡적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집단, 공동체 단위의 의사결정이라서 이런 일이 가능하죠.

임기는 다른 상품의 주기보다 길고요

 

당선 후에만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CGV랑 롯데시네마가 그놈이 그놈이듯 정당도 그렇게 되죠.

이른바 중위 투표자 정리입니다.

http://en.wikipedia.org/wiki/Median_voter_theorem

(관심 있는 분은 References 1번의 Slate 기사, 특히 해당 기사의 Update를 참조하세요.

Edge의 칼럼도 링크되어 있습니다.)

다른 정당 간의 단일화도 중위 투표자 정리가 현실에서 작동하는 한 양상일 테고요.

 

시장에서 나타나는 과점과

정치에서 나타나는 과점의 닮은 점, 다른 점, 그에 대한 대응 등을 생각해 보면

몇 가지 재미있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대의 민주주의, 선거, 정당 중심의 정치는 모두 많은 한계를 안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쓸만한 제도들입니다.

이것보다 더 좋은 제도를, 외적인 규제를 통해 도입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매우 큰 비용, 편익을 상회하는 비용을 초래할 것이니까요.

시장 경제도 일반적으로 마찬가지입니다.

 

선거는 이명박을 낳았지만 선거 실패에 대한 처방은 선거의 제한, 정당 독과점의 인위적 해체가 아닙니다.

반대 세력, 대안 세력의 종합적인 경쟁력 강화이죠.

 

(삼천포: 이상적인 교사에 못 미치는 현실 교사들에 대한 비난에도 비슷한 적용이 가능합니다. 최근 10여년 간 임용된 교사들의 평균적 자질은 대한민국 어떤 직종의 평균적 자질보다 우수하면 우수하지 절대로 크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더 우수한 교사들을 원하면 더 우수한 한국인들부터 많이 확보할 일입니다. 아니면 처우나 시스템을 현격히 개선해서 고정된 한국인 풀에서 좀 더 우수한 인력들을 유치하든지요.)

 

 

3.

영화 산업과 선거에는 한 가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스크린 쏠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영화관 대신 DVD TV드라마, 야구장 등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 얘기한 바 있듯 exit 이 가능합니다. 인위적인 규제를 도입할 수도 있고요.

그러면 수요를 반영하지 못하는 영화 공급업자들의 이익을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영화관-스크린이 감소하여 산업 자체가 (상대적으로) 축소될 가능성도 있고요.

 

하지만, 선거, 정치, 민주주의에서는 exit이 불가능합니다.

이주가 아닌 한.

voice 만 가능하죠.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한 기권도 voice의 일종입니다.

하지만 해당 voice는 과점 플레이어들의 이익을 감소시키지 못합니다.

그들의 이익 구조를 공고하게 할 가능성이 더 크죠.

 

게임에서 취할 수 있는 포지션이 보다 제한적입니다.

 

 

4.

exit, voice, and loyalty Albert O. Hirschman 의 책입니다.

에릭 매스킨은 프린스턴의 고등연구소 Institute for Advanced Study Albert O. Hirschman 교수입니다.

http://en.wikipedia.org/wiki/Eric_Maskin

 

2007년에 메커니즘 디자인 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매스킨의 서지를 보면 오래된 연구인데 그가 특히 요즘 활발하게 논의하는 주제가

전략적 투표와 선거 제도입니다.

 

최근 연구 결과가

기존의 공공선택이론, 즉 집단 단위 의사결정이론의 주요 결론에서 약간 진전된 내용인 것 같습니다.

(이준구 [재정학] 교과서에도 기존 주요 결론은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저는 강연 동영상밖에 안 봐서 자세한 내용은 모르고, 앞으로 좀 더 살펴볼 예정입니다.

하여간 결론은

“We show that there is a sense in which the Condorcet method (simple majority rue) is less vulnerable to strategic voting than any other reasonable voting rule satisfying independence of irrelevant alternatives (IIA). If we drop the requirement of IIA, then Condorcet and the Borda method (rank-order voting) are jointly the least vulnerable to strategizing.”

입니다.

제가 번역용어를 잘 모르는데, Condorcet 선거제가 좋고, 제약 조건을 완화하면 Borda 선거제도 좋다는 얘기입니다. 지금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선거제는 후진 선거제입니다.

 

최근에 듀게를 통해 읽은 정봉주 인터뷰 기사입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38052

 

기존 기득권 세력들로 진입장벽이 높았던 민주당이 열린우리당으로 분당되던 때였다. '이제 돈 안 쓰는 정치를 할 수 있겠구나. 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열린우리당에 들어가게 됐다.

국회의원 후보를 선출하던 날, 그가 유세로 사람들을 뒤흔들어 놨다. 당시 열린우리당이 도입한, 유권자가 자신이 선호하는 순으로 후보들에 등수를 매기는 선호투표제를 적극 활용했다. 2등은 자신을 뽑아달라고 설명했다. 결국 떨어진 후보들의 표에서 상당수가 2등으로 그를 뽑아서 1차에서 3등을 했던 후보가 국회의원 후보가 되는 전무후무한 일이 일어났다.”

 

제가 당시 상황을 몰라서 확신은 없는데 문맥상 바로 이 선호투표제가 Borda 선거제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열린우리당은 사라지고 없지만 나름 분명한 기여가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 서울시장 단일화 경선도 사실 이 때 사람들의 시도가 있었기에 이런 식으로 현실화될 수 있었을 테고요.

(MB의 공도 크긴 합니다만;;)

 

2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1) 영화 산업과 선거의 또 한 가지 차이. 선거는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현재 구조의 실패를 개선할 수 있는 분명한, 실현 가능한 대안들이 있습니다. 이 제도들을 한국에 도입하는 기대 편익과 비용에 관한 연구가 많이 필요합니다. 추천 참고문헌 소개 부탁드립니다.

2) 진보정당들은 단일화 협상에 임하면서, 소선거구 한 두 개 양보받는 것에 더해 선거법, 선거제도 개정 당론 합의를 요구하는 카드를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협상력을 키워야 할 것입니다. 이에 동의하는 리버럴도 진보정당에 힘을 실어주어야 합니다. 선거제도 개정 논의를 통해 정국을 효과적으로 주도-선도하거나 전선을 재구조화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현실에서도 관련 논의가 꽤 있을 텐데 역시 소개 부탁드립니다.

 

내년 총선 때쯤에나 관련 내용을 정리해서 한 번 써볼 생각이었는데, 급하게 엉성한 글을 쓰게 되네요. 늘 그렇지만;;

이론적 접근은 아니지만, 박동천의 책세상 문고, [선거제도와 정치적 상상력]도 가볍게 참고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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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 O. Hirschman 의 또 다른 업적에 대한 폴 크루그먼의 경제학사적 리뷰는

http://web.mit.edu/krugman/www/dishpan.html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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