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바낭] "차라리 때려주세요"/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의 기억

어제 무슨 글인가 댓글달다가 생각했는데 고등학교때 국어선생님 얘기에요. 제가 다닌 학교는 비리의 온상 사학재단까진 아니었지만 일종의 가족 경영으로 몇 개의 학교를 가지고 있는 재단이 운영하는 그런 학교였습니다. 학교다닐 때도 물론 알았지만, 학교 졸업하고 나서도 젊은 선생님들과 재단 운영진 및 그쪽에 호응하는 나이 많은 선생님들의 대립구도가 더 심해져서 몇 분은 공립 학교로 옮겨갔다는 얘길 들었고 이 선생님도 그렇게 학교를 옮기셨대요.


이 선생님은 마침 배용준씨가 처음 데뷔할 때 배용준씨랑 느낌이 좀 비슷해서 인기도 많았지만 (왜 여학교에선 남자선생님은 "그냥" 인기가 있다고 하잖아요, 근데 제가 나온 학교엔 지금 생각해봐도 그럴 만한 멋진 선생님이 많이 계셨습니다 으쓱 -- 사진 전공을 꿈꾸던 다른반 친구가 이 선생님 담배피우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는데 이게 무슨 연예인 브로마이드처럼 학교에서 유행했어요) 선생님으로서도 참 좋으신 분이셨어요. 수업은 조금 지루했지만 (흑) 고등학교때 문학소녀 놀이를 하면서 황지우 시집 같은 걸 교무실로 가져가서, 무슨 뜻이냐고 막 물어보고 그러면 또 친절하게 답해주셨던 기억이 나요. 생각해보니까 저도 그런 귀여운 시절이 있었군요. 


여학교라 전반적으로 체벌이 적었지만 없지는 않았어요. 이 선생님이 또 유명했던 게 뭐냐 하면, 설교. 옆반 담임을 하셨는데 담배 피운 학생한테 왜 담배가 나쁜지 한시간 넘게 설교를 하셔서 그 학생이 "아 그냥 때려주세요" 했단 얘긴 꽤 유명했죠. 그 얘기를 듣고 저는, 아 나는 그 선생님 좋으니까 한 시간 설교쯤이야, 하고 생각했어요.


하여간 미국생활 중에 너무 연락하고 싶어서 동창들한테 수소문해도 이메일 주소는 못찾고 하다가 전교조 지역지부 웹사이트에서 이메일을 주소를 겨우 발견해서 메일 드렸습니다. 너 결혼해서 아기 키울줄 알았는데 아직도 공부질이냐..란 식의 답장이 와서 왜그런지 콧날이 시큰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잘 참고 하라는 대로 잘 하는 학생이었고 지금도 뭐 그런 사람이에요. 가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긴 하는데 그건 아주 가끔. 그러고 보니까 역시 고등학교때 지금도 발간되는지 모르겠는데 월간 말지에 투고를 한 적이 있어요. 고등학교 교육이 얼마나 권위적인지 하는 걸 독서실에서 열심히 써서 보냈는데 글쎄 그걸 독자의 편지란 같은 곳에 실어줬어요. 위에 언급한 선생님말고 다른 선생님이 자습시간에 너 그런데 글이 어디 실렸더라, 하고 눈짓을 해주셨습니다. 혼나지 않나 생각했다가 (이건 부모님한테도 말한 적이 없네요 그러고보니) 좀 으쓱 했던 기억이 납니다.

    • 전 고등학교 때 지리 선생님 한 분과 정말 좋게 지냈어요. 정말 아이들 한테 잘 해주시고, 학교 사물놀이 패도 만드시고, 지금 이거 쓰면서 선생님 얼굴이 떠오르네요. 고 3때 힘들면, 저녁 사주세요 해서 저녁도 얻어 먹고, 대학 다니면서도 술도 얻어 마시고, 제 친구가 스웨덴에서 왔다고 같이 멍멍이도 먹으로 가고 (이것도 선생님이 사주신거)... 제가 대학 다닐 때 벌써 선생직은 그만 두셨어요. 너무 놀래서 왜요? 했더니 이제 애들이랑 노는게 재미없어 하시던 게, 너희들이랑 놀때는 재미있었는데 하시던게 기억나요. 저보러 스웨덴에도 오셨었는데(아니 정확히 말하면 스웨덴에 오셨을 때 저있는데 일부러 왔다 가셨죠). 그런데 몇년 전부터 연락이 안돼요. 이제 선생님께 술도 사드릴 수 있고, 저녁도 사드릴 수 있는 데 연락이 안돼요. 선생님이 끊으셨어요. 이유는 전혀 모르겠어요. 몇년 전 한국에 갔을 때 전화하고, 연락하고 그랬는데 답변을 안주시더라고요. 안좋은 일이 있나, 항상 그리워요.

      제 국민학교 선생님하고는 지금도 연락하고 지냅니다. 선생님, 하면서 메일 보낼 때 여전히 어린 아이인 기분일 때가 있어요.
    • Kaffesaurus님은 살면서 좋은 선생님을 많이 만나셨나봐요. 지리선생님과도 연락이 다시 닿으면 좋을텐데. 그러고보니깐 제 모교에도 사물놀이패를 만드신 지리선생님이 계신데 우리 설마 동창은 아니겠죠? *_*
    • 살짝 설마 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저는 공립이었어요.ㅎㅎㅎ아닌게 분명해요.
    • 저는 고등학교 때 일본어 선생님. 젊은 여자분이셨는데 키가 훌쩍 크시고 아이라인 눈꼬리를 살짝 위로 빼는 화장법(지금은 대세이지만)이 당시에는 꽤 독특해 보였었어요. 괜찮은 영화를 보시면 수업 제치고 장장 30~40분을 연기하시고 그 구연 실력이 대단해서 이미 본 영화라도 숨죽여 집중하게 만드는 분이셨어요. 가장 인상에 남는건 '프라하의 봄'...ㅋㅋ...야한 부분도 살짝살짝 맛보기처럼 묘사해주셨어요. 고 1,2 학생들이 항상 어릴 때 옛날 얘기 조르듯 영화 얘기 해달라고 졸라대곤 했어요. 사회나 환경 문제도 관심이 많으셨는데 워낙 뛰어난 구연 실력 덕분에 영화 얘기만 줄창 졸랐네요.
    • Kaffesaurus/ 앗 살짝 아쉽...
      라면포퐈/ 이런 에피소드 귀엽고 좋아요. 저는 비슷한 (?) 케이스로 막 출산휴가 마치고 오신 가정선생님에게 출산상황 이야기를 졸랐던 거, 그리고 또 이승철씨랑 똑같은 성함의 국어선생님이 "희야"를 불러주셨던 거 이런게 막 기억나네요.
    • 멋진 선생님을 두셨군요. 게다가 배용준을 닮으셨다니..
    • 이래서 제가 대학때도 안하던 화장을 지금 하고 다니는 거죠. ^^;;
    • amenic/ 목소리 톤도 꽤 많이 비슷하셨답니다.
      V=B/ 학생들한테 예쁜 모습 많이 보여주세욧.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9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40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51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7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2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4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31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9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5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31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4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9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8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4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6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