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어제 저녁. 지하철 2호선.
1.
일이 끝나고, 현장 사람들과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맥주 한 잔 더 하라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지하철을 탔습니다.
집으로 가느냐, 마님께서 계시는 대학로로 가서 차를 얻어타고 가느냐 갈등했지만,
간만에 깜짝쇼를 하자..는 생각을 하며 2호선에 올랐습니다.
2.
음악폴더에
신해철-서태지-이승환 노래만 넣어놓았습니다.
90년대 노래가 대다수였죠.
신도림에서 내리는 사람들이 많아 운좋게 앉아서,
기분좋게 옛노래를 듣고 있었습니다.
3.
콧구멍 속이 간질간질 하네요.
갑자기 왠 콧물? 하는 생각에
손등으로 스윽 닦았습니다.
어라?
코피네요.
백팩에 항상 티슈나 물티슈를 갖고 다니는 편이라
당황하지 않고 가방을 열었습니다.
어라???
오늘은 없네요.
당황스럽습니다.
오른 손등으로 한 번 닦고, 왼쪽 손등으로 닦고
오른 손바닥으로 한 번 닦고 고개를 젖혀 봅니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야 하나? 내리면 앉아서 가기 힘들텐데...'
4.
고개를 쳐들고 있는데,
앞자리에 앉아계시던 아가씨가 티슈를 건내줍니다.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있고, 양 손은 다 피투성이고, 벌겋게 술이 오른 얼굴을 하고 있는 저는
그저 어버버버 하면서 황급히 티슈를 받았습니다.
사실 전철안에는 적잖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누구도 관심가져주지 않거든요. 저 역시도 같은 상황에서 가만히 있었을 것 같아요.
5.
한참 코를 막고 있다보니, 정신이 돌아옵니다.
경황이 없어서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한 것 같네요.
앞자리에 마주보고 앉아있는데, 핸드폰을 만지직거리고 계시네요.
눈이 마주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하는 걱정에 딴곳만 보게 되네요.
내릴 정거장이 다섯정거장쯤 남았습니다.
한 10분 이 어색함을 버티다가,
내리면서 정중하게 감사의 인사를 건내고 내려야지... 하는 생각을 하는데,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일어나시네요.
앗 어쩌지? 허둥대는 동안 벌써 문 앞에 서 계시네요.
가방을 들고 엉거주춤 일어나서 감사의 말을 건냈습니다.
말을 건내곤, 도망치듯 옆칸으로 이동했어요. 아.
6.
집에 오는 길에, 마님ㅖ 얘길했습니다.
절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 분, 정말 큰 모험하신 것 같네... 신랑, 좀 위험해 보여...'
ㅠㅜ
그래.. 내가 살을 빼고 만다...
7.
20대때는 건강검진을 해도,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만,
서른을 넘고, 이젠 어딜봐도 30대 중반...
건강검진을 받고, 결과가 나올때까지 사실 좀 두렵습니다.
고등학교때, 서너시간자면서 공부할때도(라고 쓰고 술마실때도 라고 읽는다)
겜방에서 날밤새던 대학생때도,
군대에서 하루걸러 하루씩 날밤새던 때에도(교육계라고 아시나요?ㅋ)
코피같은건 안흘렸는데...
운동해야지요. 건강해야지요.
결혼과 출산은, 정말 사람 생각을 많이 바꿔주는 것 같네요.
8.
점심시간이네요.
여기서 오분 더 지체하면
1층가는 엘리베이터를 15분 더 기다려야 합니다.
다들 즐거운 점심식사 하세요.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