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게시물 보고; 안 읽은 책 읽었다고 착각하는 이야기
아래 토지 다 읽은 분을 찾는 게시물을 보고 전 당당히 음, 난 토지를 다 읽었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생각해보니
도무지 그 긴긴 대하소설을 다 읽은 시기가 좁혀지지 않더군요. 1,2,3권을 읽은 기억은 있는데 그 이후는...
그래서 인터넷으로 토지의 상세 줄거리들을 찾아보니, 웬걸, 전 토지를 다 읽은 적이 없던 겁니다.
그럼 제 머리 속에 있던 그 이야기의 정체는 뭘까요.
대체 왜 다 읽었다고 생각했을까요.
1. 늘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렸을때는 (사실 지금도) 캐넌에 대한 부담감같은 게 있었어요. 이런 건 꼭 다 읽어줘야지, 뭐 그런 채무의식이었습니다. 토지는 당당히 그런 채무의식의 대상 중 하나였구요. 그 방대한 독서예정목록들은 거진 대부분 부채로 남아있었는데 마음속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켜줬나봐요;ㅗ;
2. 너무 눈에 자주 밟혔다
아니 뭐 도서관만 가면 허구언날 눈에 보이는곳에 있잖아요. 제가 가던 도서관은 토지의 몇가지 판본을 갖춰서 다 한곳에 진열시켰는데 한 책꽂이를 거의 차지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걸 전체와 같이 두는 게 아니라 더 앞쪽에 놨었어요, 장길산, 이문열의 삼국지 등과 함께. 그렇게 사람들이 좀 자주 찾던 책 중 제가 정말로 달달 제대로 읽은건 고우영 화백의 십팔사략밖에는 없군요. 눈만 들면 보이는 현상과 아 저걸 읽어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결합하여 아직도 표지들의 무늬가 마음속에 생생합니다. 그러니까 읽었다고 착각.
3. 비슷한 시대배경의 작품들/ 읽기는 한 초기 몇권/ 티비판들의 퓨전
...제 머리속을 잘 살펴보니, 저는 대표적으로는 박완서의 미망과 아래에서도 많이 언급된 조정래의 태백산맥같은 작품들, 1,2,3권을 통해 어느정도 익숙해진 문체, 그리고 두편의 티비 드라마를 머리 속에서 엮어 실제 토지와 꽤 다른 토지를 머리속에서 키우고 있었습니다... 얼기설기 상상으로 메꿔나간 부분들이 잔뜩 보입니다.
이렇게 모르는 것 안한 것을 안다 했다고 착각하고 살고 있었다니요.
왠지 신념체계와 믿음 체계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과 함계 경각심을 더 키워야겠어요, 뭘 날 믿을 수가 없으니..
또 이와 전혀 반대로 저는
예전의 노트와 이메일들을 정리하다가 제가 친구들에게 어떤 책을 읽고 장문의 감상 및 비평을 쓴 편지들을 보았습니다.
불과 3년전 정도의 것들이구요. 대여섯권 정도인것 같습니다. 평들은 상세하고 구체적인 언급도 하는 걸로 봐서
분명히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아서 공유하려고 한 것 같아요.
그런데 대체 이 편지를 쓴 사람이, 이 책을 읽은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문체는 난데, 생각하는 스타일도 난데, 난 도무지 이 책들을 읽은 기억이 없다구요.
이상, 믿을만하지 못한 데레포레입니다.
종일 오븐을 돌렸더니 초코칩쿠키 냄새가 역해지려고 해요. 공기에서 설탕버터맛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