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한줄, 체크카드, 그리고 깨진 유리창

 

사회뉴스에,

 

김밥 한줄을 카드로 결제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게 유리창을 깬 20대 여성이 경찰조사를 받았다.
1일 새벽 0시께 서울 영등포역 뒤편의 작은 김밥가게에서 손모씨(21·여)가 참치김밥 한줄을 포장 주문했다.
가게 주인 박모씨(50)는 "2500원인데 카드로 하실 거에요?"라고 물었다. 손씨는 "현금이 없다"고 답했다.
박씨는 손씨에게서 카드를 건네받아 결제를 하며 "2500원짜리 (카드로) 안 팔고 싶은데"라고 중얼거렸다.
이 말을 들은 손씨는 "팔기 싫으면 팔지 말라"며 카드를 낚아챘다. 그리곤 박씨에게 "싸가지가 없다"며 심한 욕설을 퍼붙고 가게를 나서 문 왼편의 전면유리창을 발로 차고 달아났다.
쿵하는 소리에 놀란 박씨는 유리창에 2m 가량의 금이 생긴 것을 보고 손씨를 뒤쫓았다. 손씨는 뒤따라 온 박씨를 뿌리치고 200여m를 달아나다가 동네 청년들에 의해 붙잡혔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손씨를 재물손괴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꽤 생생하게 서술되어 있지 않나요. 머니투데이의 이 기사는 해피닝을 담는 것을 넘어서서 의외의 직접적인 사회적 비평이 달려있었어요.

 

경찰조사에서 손씨는 "카드를 안 받길래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박씨는 "카드결제를 거부한 것도 아니고 그 정도 얘기는 할 수 있잖느냐"고 토로했다.
이어 "밤새 일해도 몇 푼 남지 않는데 수수료를 너무 많이 물리니 현금결제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오죽했으면 잠실에 그 많은 사람이 모였겠냐"고 말했다.
앞서 식당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가 모인 한국음식업중앙회는 지난10월18일 서울 잠실운동장 주경기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신용카드 수수료율 인하를 촉구했다.
박씨 가게의 유리창을 깬 것은 손씨가 아니라 소규모 자영업자에게 더 높은 카드수수료는 아닐까.
박씨는 "내 아들보다 어린 아가씨다.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면 부모된 입장에서 당연히 합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분명 정상적인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 기사를 읽으면 우와 미친 여자다 단정하기보다 무엇이 가게주인을 박하게 했고 또 어리디어린 여성을 그렇게 분노로 가득차게 만들었는지 잠시 생각하게 만드는 여운이 있어요. 더 큰 사회적 맥락과 직접 연결시키기도 했구요. 각자의 좌절이 방향을 일은 채 서로에게 폭발하는, 그런 순간의 스케치에서 고등학생 시절 가장 좋아하던 시인 김수영님의 시가 떠올라서 또 퍼왔습니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 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번째 네번째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의 포로수용소의 제 14 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 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 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비켜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더 슬픈 건 그다지 지식인이라 하기 어려운 저는 종종 분노의 대상을 잘못 찾고 있다는 것 조차 깨닫지 못합니다. "옹졸한 나의 전통"만이 나날이 유구함을 더해갈 뿐. 그나마 이발쟁이 동회직원도 요새는 어려울 뿐이고 내 잘못만 찾게된다는 것이 다행일까요 아니면 더 구제하기 어려운 일일까요.

    • 이런, 시 띄어쓰기 다 했는데 왜 반영이 안되는 거죠,
    • 잘 읽었습니다. 시 띄어쓰기 제대로 된 것 같은데요?
    • 내가 민음사 괴롭하고 있는 걸까요. 사장은 끄떡없는데 아래 직원만 괴로운거 아닐까요
    • 제가 알기로는, 카드 수수료는 결재 금액에 대한 일정한 비율(%)로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2500원짜리 결재를 4번 하는거나, 10000원짜리 결재를 한번 하는거나 결국 수수료는 같게 되는거죠. 깁밥집 주인 입장에서는 2500원이라는 소액을 카드로 결재한다는게 고액 결재 대비 별로 불리할 것은 없는 것 같은데요.

      1만원 이하 소액결재는 안받고 싶다는건 카드회사쪽의 의견이죠. 카드사의 수수료는 결재 금액 대비 일정 비율로 받는데 비해서 실제로 카드 결재 과정에 사용되는 원가 자체는 1천원 결재나 수십만원이나 건당 거의 비슷할테니까요. 그 한건당 받을수있는 수수료가 건당 드는 원가 대비 손익 분기가 1만원이어서 1만원 이하 소액결재를 안받는 방안을 추진중인 것으로 압니다.

      김밥집 주인에게 심정적인 불만은 있겠죠. 김밥 한줄 팔아서 남는게 얼만데 거기서 카드 수수료 또 떼일 것을 생각하니까... 운운... 하지만 말입니다. 어차피 카드 수수료를 내는 마당에는 만원짜리 금가루 뿌린 김밥을 팔아서 카드결재하나 천원짜리 김밥천국 기본김밥을 여러차례 파는거나 같은겁니다. 어차피 김밥집을 하실거고, 카드결재를 받기로 하셨으면 소액이고 고액이고 그저 많이 파시면 됩니다... --;
    • 아까 낮에 김밥 한줄 먹고 한줄 포장하고 카드결제한 여자입니다.

      한줄 먹은 거 낼 현금은 있는데 포장을 하나 더 하는 바람에 현금이 부족해졌더라고요.

      다행히 주인아저씨가 친절하게 받아주셔서 유리창은 멀쩡했습니다.



      저도 항상 litlwing님이 말씀하시는 부분이 의문입니다. 얼마를 긁든 비율로 나가는 수수료인데 왜 소액이라고 싫어하는 걸까.

      가게에서 카드결제를 싫어하는 건 수수료보다 소득세 때문이 더 크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 걍태공/ 덧글쓰고 다시 수정했지효ㅎㅎ
      김전일/ 어떻게 하는 게 괴롭히는 건가요. 결과적으로 보수 늘려줘야 하는 거면 사장도 조금은 괴롭겠지요.
      litlwing/ 사실 이 사건은 두 예의없음의 충돌이기도 하죠. 대놓고 싫어하는 김밥집주인 vs 성질났다고 욕하고 부수는 소녀. 그런데 이미 말씀하신 것같이 김밥같은 경우 재료를 잘 갖춰서 만들면 남는 금액이 워낙 적어서 그 마진에서 또 수수료를 떼이는 건 심정적 타격이 클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같은 퍼센테지 감한다고 해도 물건마다 마진의 폭이 다른데 수량에 따라 결과적으로 같다고 말할 순 없는 것 같아요.
    • litlwing/ 주인의 구시렁은 '2천5백원카드결제vs1만원카드결제'가 아니라 '2천5백원카드결제vs2천5백원현금결제'를 생각하고 뱉은 거 아닌가요. 요즘 1만원 이상은 현금 내는 사람 거의 없으니 어쩔 수 없다치더라도 소액은 웬만하면 수수료 안떼는 현금 받았으면 좋겠다 이 생각이죠. 주안님 말씀대로 나중에 세금 문제도 크고요. 전에 뭘 사는데 깎아주는 대신 조금이라도 현금 냈으면 하길래 '어차피 반은 카드를 긁는데 반 현금 낸다고 깎아주는 금액이 전체 카드 결제할 때의 수수료보다 더 나간다. 그럼 손해지 않느냐'고 했더니 '좌표가 찍혀서요'라고 하더군요.

      화가 나는 상황에서 얼마나 더 과격하게 나가느냐가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성분의 욕설과 기물파손이 불쾌합니다. 저도 김밥집 주인이 그런 말을 했으면 그냥 안사겠다고 물리고 말았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것도 어떻게 보면 '포장마차에서 오뎅 먹은 다음에 '맛 없으니 돈 안내겠다'고 하는 땡깡'과 비슷해서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만, 대신 그걸로 화풀이를 한거죠. 여성분도 거기까지만 했으면 좋았을텐데요. 물론 그냥 처음부터 김밥집 주인이 그런 말 안했으면 좋았겠지만요.
    • 수수료라는게 그렇군요. 김밥집 여자는 자기 손해 때문이라기보다, 2500원 현금이 없는 사람을 가벼히 보고 잠시 화풀이 한 것 같아요. 안 산다고 돌아서는 것 까지는 이해가 되는 상황이네요.
      유리를 발로 차는 성질머리를 만난게 불운이라면 불운이지만 그런 말은 장사하는 사람 입에서 나오는 거 아님.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9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41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53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7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2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4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32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9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5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31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4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9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8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4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6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