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스텀타운 커피 로스터즈

 

 

이런저런 일들로 바빠 한동안 새로운 카페탐방을 못했습니다. 요즘 좀 공부할 것들이 있는데, 아무래도 처음 가보는 카페에서는 진득허니 앉아있기가 힘들어요. 단골카페들에 앉아 후한 리필인심을 받아가며 공부하는 것도 기분 좋죠. 급한 일들이 끝날 때까지, 지난 여름방학때 잠깐 여행했던 뉴욕에서 다녀온 카페들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뉴욕으로 이동한 첫 날, 비가 엄청나게 왔습니다. 오후 한때는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듯이 비가 엄청 쏟아지더군요. 덕분에 그 복잡하던 맨하탄 시내가 한 순간에 조용해졌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비가 오기 전에 tkts(브로드웨이에서 팔리지 않거나 취소된 표를 공연 당일 싸게 파는 부스)에서 맘마미아 표를 반값에 구매했고, 비가 쏟아지는 동안에는 카페에 피신할 수 있었습니다.

뉴욕 카페 투어의 첫 목적지는 스텀타운입니다. tkts가 있는 타임스퀘어에서 지하철로 두 정거장 정도 내려가면 있는 곳이죠. 첫 번째로 스텀타운을 선택한 이유는, 스텀타운이 미국 커피 문화를 주도하고 있고, 뉴욕 곳곳의 카페들에서 스텀타운의 원두를 받아 쓰고 있으며, 그곳 바리스타들이 옷을 잘 입는다는 소문...... 때문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철저한 경로 계산에 의한 것이었죠.


 

 

 

스텀타운을 가기 위해선 노란색 선(N-Q-R Trains)의 28st.을 이용해야 합니다. 역에서 나와 3분정도를 걸어가다 보면 ACE호텔이 보입니다. 스텀타운은 그 입구 바로 옆에 있습니다.

 

 

 

커피가 그렇게 비싸지 않았어요. 사실, 뉴욕의 커피가격은 대부분 저 정도(4-5달러) 합니다. 다른 물가에 비하면 커피물가(?)는 매우 저렴한 편이라고 할 수 있죠. 그 이유는 (제가 생각하기에) 두 가지 정도 입니다. 바로 미국인의 엄청난 커피(카페인) 소비량과 미국 특유의 카페 분위기 때문입니다. 뉴욕에서 커피는 거의 생필품 수준이었습니다. 덕분에 어느 카페도 줄을 서야 커피를 마실 정도였지요. 줄을 서서 커피를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바로 카페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도 대부분 빨리 커피를 마시고 일어서는 편이었습니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세월이 가는 줄 모르고 눌러 앉아있는(저 말입니다) 한국의 카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죠.


 

 

 

바에는 3-4명의 직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정신없이 커피를 내리고 왔다갔다 하는 바리스타의 모습도 생소해보였어요. 그렇게 바삐 움직이는 와중에도 인사하고 잡담을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윗 사진에서 빛나고 있는 머신은 바로 라마르조코 미스트랄(La Marzocco Mistral)입니다. 라마르조코 라인업중에서도 가장 비싼 녀석이죠. 이 모델은  가격도 가격이지만 네덜란드 디자이너가 핸드메이드로 만들기 때문에 주문을 해도 3개월을 기다려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실제로 봤을 때 멋있었다는 거에요. 아주 잘 만든 수제 자동차를 구경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스팀소리마져도 범상치 않았다고 표현하면, 좀 호들갑인가요?

 

 

 

 

저는 케멕스로 내린 과테말라와 카푸치노를 주문했습니다. 케멕스는 내리는데 시간이 걸리다보니 시키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바쁜 뉴요커들이야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여유가 넘치는 여행객이었으니 눈에 들어오는대로 막 시켰습니다. 바리스타는 바리스타 나름대로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바빴고, 줄은 줄대로 길어졌습니다. 제 탓이죠. 하하.

케멕스 드립은 재미있었어요. 전자저울로 칼같이 원두 무게를 재더니, 초시계를 켜고 드립을 하더군요. 드립이라고 해봤자 물을 잔뜩 부어놓고 기다리는 정도였습니다. 정확히 3분. 정말 미국스럽더군요.

 

 

 

이것저것 신기해서 카메라로 막 찍어대는데, 위 사진에 보이는 바리스타분이 말을 걸었습니다. 어디에서 왔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난 한국에서 왔고, 커피를 엄청 좋아하고, 스텀타운에 와서 기분이 막 좋은데, 원두도 여기서 사고 싶은데, 내가 1주일은 더 있어야 출국인데, 지금 사면 커피가 신선하지 않을것 같다, 출국전에 들르고 싶은데 올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여기저기 뉴욕을 막 둘러보느라 시간이 부족할 것 같다라고 끊임없이 주절거렸습니다. 그러더니 웃으면서 스템프를 팡팡팡! 찍어주셨습니다. '자, 10개 찍었다. 한 잔 공짜로 먹기 위해서라도 다시 와야지 않겠니?'라고 하더군요. 하하하! 그래서 전, 웃으면서 고맙다고 또 보자고 하면서 커피를 받았습니다. (제 영어가 통했습니다!!)

 

 

 

 

스텀타운에는 딱히 의자가 없습니다.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싶은 사람은 카페와 연결 돼 있는 ACE호텔 로비를 이용하면 됩니다. 저는 저기 서서 한 마리(?)의 뉴요커가 되어 비오는 거리를 바라보며 커피 한 잔 했죠. 맛있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약하게 볶는 스텀타운의 특징이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곳 케맥스 드립은 한국의 드립커피처럼 섬세하지 못하다는 겁니다. 그도 그럴게, 이곳에선 정해진 프로파일로 일률적으로 커피를 볶아냅니다. 워낙에 원두 소비량도 많으니, 과학적인 데이타로 프로파일을 잡아 볶는게 훨씬 편하기도 하기 때문이죠. 드립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이나 한국에서처럼 한두 잔을 만드는데 5분씩 걸리는 핸드드립은 커피맛의 세세한 점까지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죠. 이런 부분은 커피를 대하는 미국과 한국의 태도의 차이라고 설명하면 될 것 같습니다.

 

 

 

 

카푸치노는 정말 맛있었습니다. 역시 뉴욕 최고의 카페다웠습니다. 산뜻한 신맛과 함께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단맛 그리고 쌉싸래한 초콜렛 향으로 부드럽게 마무리되는 느낌. 애프터테이스트도 훌륭했습니다. 마치 커피 한 잔이 긴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이었습니다. 너무 감탄을 해서 이 커피를 뽑아준 바리스타에게 제 느낌을 설명해주려 했으나, 못알아 들어서 실패.

 

 

 

이쯤에서 커피의 제3의 물결에 대해 설명을 드려야겠네요(엘빈 토플러와는 상관없는 얘기입니다). 커피는 제 3의 물결을 맞이하면서 고급화를 시도합니다. 커피를 와인과 같은 하나의 '음식'으로 규정하고 철저한 평가와 관리를 하는 거죠. 스페셜티 커피의 탄생이나 SCAA, COE같은 단체가 생긴 것도 제 3의 물결 덕분입니다. 기존 커피 재배가 다국적 기업 혹은 획일적인 국가의 시스템을 통해 플랜테이션 형식으로 관리됐다면, 제 3의 물결 이후엔 커피 판매자와 농장간의 직접 거래(direct trade)가 이뤄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농가는 커피 재배로 인해 소득이 오르고, 판매자는 품질이 보증된, 산지가 확실한 커피를 구매할 수 있게 됩니다. 지속적이고 엄격한 농장관리와 효율적인 경영을 통해 커피의 품질이 더 좋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죠.
스텀타운 커피는 이러한 제 3의 물결을 이끌고 있는 카페입니다. 위 사진은 판매하는 원두 목록인데, (dt)라고 적혀있는 건 모두 산지로부터 직접 거래하는 생두입니다. 지금에서야 SCAA, COE가 보급되고 있는 한국에 비하면 훨씬 앞서가는 부분이죠.

 

 

 

 

스텀타운만의 로고가 나중까지도 기억에 남더군요. 그걸로 엽서도 만들고, 머그잔도 만들고, 스템프 카트도 만듭니다. 맛있는 커피에, 이 커피는 '스텀타운의 커피'라는 도장을 찍어주는 거죠.

 

 

 

 

저는 이 곳에서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케냐 원두를 구입했습니다. 결국 출국 전 날, 이 곳을 다시 찾았거든요. 직원들은 원두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각각의 원두 포장에도 원산지에 대한 설명과  그 커피에서 느낄 수 있는 향과 맛을 적어주네요.
한국에 돌아와서 친구들과 나눠 마셨습니다. 모두들 감탄하더군요. 매력만점이었습니다.
 

뱀발. 사실 제가 들른 뉴욕점은 본점이 아닙니다. 본점은 포틀랜드에 있죠. 스텀타운은 1999년에 오픈한 이후로 미국 인디커피문화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커피 원산지의 맛과 개성을 고려한 미디엄 로스팅을 처음 도입했으며(출처 : http://coffeejumbbang.co.kr/90127356124), 지금은 포틀랜드에 4개 지점, 시애틀에 2개 지점 그리고 제가 들른 뉴욕 지점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뉴욕에서 제가 들른 다른 카페들 중에서 자가 로스팅을 하지 않는 곳은 모두 (미국의 또다른 커피 명소인) 인텔리젠시아의 원두와 이 곳 스텀타운의 원두를 받아쓰고 있었습니다.

 

    • 오 뉴욕에서도 카페탐방을 하셨군요! +_+ 저는 시애틀에서 유학했었고 시애틀 내에서도 가히 커피의 수도라 일컬을 수 있을 캐피톨 힐에 있었는데 (말씀하신 시애틀의 2개 지점도 이 동네에 있죠) 저 같은 경우는 스텀타운보단 카페 비타를, 카페 비타보다는 바하우스를 좋아했습니다. 카페 분위기도 바하우스가 가장 좋았고요. 시애틀에 가보신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지만 혹여나 가게 되신다면 Bauhaus 정말 강력추천입니다. 거기서 상주하던 시절이 그립네요... 지금은 미국 다른 시골 동네에 와 있는데 이 동네 사람들은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건지 카페는 뭐 없다시피하고 심지어야 똑같아야 할 스타벅스 커피마저도 시애틀에서 마시던 것보다 맛이 없네요;;
    • 오왕 'o' 언제나 재밌는 커피 관련 글 감사해요, 설렁설렁하는 걸로 느껴지는 드립커피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저는 일본식 디테일한 드립에 가끔은 불만을 느끼거든요ㅋ_ㅋ꼭 가보고 싶은 곳이네요
      라시도/저도 지금 미국 시골 동네에 와있어서 괜찮은 로컬 카페는 커녕 스벅도 없습니다. 맥카페가 유일한 위안이어요 그래서 드립 해마시는데, 이것도 물이 좋지 않아서 영 여의치 않아요ㅠ
    • 포틀랜드 근처 도시에 살았었는데 포틀랜드 갈 때면 항상 갔던 스텀타운이 뉴욕에도 있네요. 포틀랜드는 정말 먹고 마시기 좋은 도시죠ㅠㅠ 시애틀로 올라가면 시애틀즈 베스트 커피나 라시도님이 말씀하신 카페비타를 애용했던 것 같아요. 시애틀에선 사실 급할때 아무 커피샵이나 들러도 중간은 했었고 베이커리에서 내리는 드립커피도 맛있더라구요. 제가 운이 좋은 걸수도 있고 제 입이 고급이 아니라서 그럴수도 있지만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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