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볼과 야구 이야기(스포포함)

0. 이 영화는 야구 영화죠.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프로야구'에 관한 영화입니다.


야구라는 스포츠의 특성과 돈을 투자하여 승리라는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프로스포츠 산업의 특성이 이 영화의 주된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H2같은 고교야구나 우리나라 야구 올림픽 대표팀이 금메달을 따는 과정을 영화화 했다면 이런 식의 영화가 될 수 없었겠죠.



1. 물론 야구, 혹은 프로야구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이 영화를 즐기는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프로야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면 더 재미있게 즐길만한 포인트가 몇가지 있죠.


제가 가장 흥미로웠던건 단장과 감독간의 갈등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김성근 감독 사태 등을 통해 감독과 프런트의 관계가 화재거리가 되었죠.

이상적인 구단과 현장, 혹은 단장과 감독의 관계는 이런겁니다. 단장은 여건이 허락하는 한 최상의 선수단을 구성해주고, 감독은 그 선수들을 가지고 경기를 승리로 이끌도록 최선을 다하는 거에요.

그 상황 속에서 불문율과 같은 원칙이 하나가 있는데, 단장 혹은 프런트는 감독의 선수 기용에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반대로 선수단 구성에 있어서 감독은 단장의 비전을 존중해야 하겠고요.

물론 감독을 선임하는건 구단의 결정이죠. 하지만 최소한 선임한 그 감독의 선수 기용과 경기 운영에 대해서는 구단의 입김이 작용해서는 안된다는 거에요.

만약 그 감독의 선수 기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감독을 바꾸면 됩니다. 이게 가장 기본적인 프로 야구단 운용의 원칙이죠. 자신의 맡은 역할에서 최선을 다하고, 다른 분야의 영역은 침범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영화에서는 그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아요.

제가 아는 야구판의 윤리(?)에 따르면, 감독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선수 기용을 했다면, 빌리빈은 감독을 짜르면 되는거 였습니다. 근데 반대로 감독의 선수를 트레이드하는 방식을 택했죠.

이건 제 기준에서는 최악의 결정이거든요. 거의 용서할 수 없는 수준이에요. 제가 히어로즈 팬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영화는 정치적으로 공정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단장은 승리를 위한 최선의 방식을 도입하려고 하는데, 타성에 젖은 감독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으로 관객들이 판단하도록 만들었어요.

그 상황과 관련하여 영화는 단장의 입장만을 집중적으로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해티버그가 수비 상황에서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관객들은 감독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에 좀 더 공감할 수 있었겠죠.


물론 영화에서, 그리고 아마 현실에서도 이 경우엔 단장의 판단이 맞았을 겁니다. 스포츠에서 중요한건 결과고, 결과적으로 단장의 방식이 더 많은 승리를 이끌어 냈으니까요.

하지만 윤리적인 측면에서는 아직도 감독의 입장에 더 공감이 가요.





2. 그리고 머니볼은 스포츠라는 소재를 다루고는 있지만, 결국 영화의 장르는 드라마고,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도전하는 인간에 관한 드라마죠. 성공 신화에 관한 내용이면서 결국에는 패배할 수 밖에 없는, 또 다시 도전하기 위해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저는 무사태평한 사람이라 이런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해요. 그러니까 일종의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 말이에요. 자신을 더 큰 부담 속으로 몰아가는 사람.

영화속 빌리빈은 패배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기는 것의 환희보다 지는 것에 대한 절망이 더 커서 항상 지지 않기 위해 더 노력하고 탐구하는 사람인거죠.

그런데 여기에는 한가지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빌리빈이 그렇게 패배의 아픔에 집착하는 사람이었다면, 무엇보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이기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는 사람이었다면, 레드삭스로 가는게 답이었어요.

하지만 그러지 않았죠. 왜냐하면 빌리빈은 패배에 대한 강박관념보다 도전에 대한 강박이 더 큰 사람이었으니까. 돈 많은 팀은 이기고 돈없는 팀은 질 수 밖에 없는게 프로야구, 아니 프로스포츠판의 생리였어요.

그런데 빌리빈은 그 전체적이며 견고한 질서에 대해 도전을 했던거죠.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가장 안전한 방식이 아니라, 자신이 도전했던 방식으로 패배를 극복하려 했습니다.

이 판이 돌아가는 방식을 바꾸고 싶다. 프로야구가 아니라 뭐든 마찬가지 잖아요. 진정한 도전이란 결과적인 승자가 되는 것, 최고 자리에 오르는 것보다는, 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바꿔보려는 시도겠죠.

실제 빌리빈이 그런 선택을 했기 때문에 팀을 바꾸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가 읽은 영화에서는 그렇게 말하려는거 같더라고요. 패배에 대한 강박과 그것보다 중요한 도전에 대한 열망.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에 흐르는, 아빠는 루저라는, 반복되는 노래 말은 긴 여운을 남깁니다.

패배할 수 밖에 없죠. 패배자일 수 밖에 없고요. 기존에 확립된 질서가 거저 있는건 아닐거 아니에요. 수 많은 시간과 수 많은 사람들의 시행착오 끝에 정착된 것이 기존에 수립된 질서일 것입니다.

따라서 그 질서를 바꾸려는 사람들은 아마 십중팔구 실패할 수 밖에 없어요. 당연히 그렇게 될거에요. 그런데 영화속 딸의 노래를 듣고 미소짓는 아빠의 표정은 그런건 알고 있었다는 듯한 느낌입니다.


나도 알아. 내가 질거라는거.


도전하는 사람만이 패배할 수 있겠죠. 패배하고 패배하고 또 패배했다는 것은, 도전하고 도전하고 또 도전했다는 뜻일 겁니다.

도전했기에 패배할 수 있었던, 패배했기 때문에 도전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 이 영화가 보여주려 한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 리뷰 좋네요.

      1. 영화와는 달리 실제 오클랜드는 강호팀이었습니다. 영화상에서 오클랜드 전력은 좀 심하다싶을 정도로 왜곡되죠. 영건 3인방(팀허드슨, 마크멀더, 배리지토)의 고의적인 각본상 배제때문에 그렇다쳐도 96년부터 오클랜드를 강팀으로 이끌어온데다(슬램덩크 풍전급 강팀) 1년계약인 감독을 짜를 수는 없죠. 애초부터 약체였던 히어로즈와는 다른 점입니다. 이글을 읽고나니 빌리장석 전기영화도 기대되네요 그양반 이론이나 있는지.. (...)
    • 우리나라 야구에서 단장이 감독의 경기운영에 대해 심하게 간섭하면 안되는건
      무엇보다 단장이라는 사람들이 야구를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라 봅니다.
      오늘(아니, 어제) 인터뷰 기사가 나온 LG트윈스의 백순길 단장도 전형적인 야구를 쥐뿔만큼도 모르는 단장의 전형적인 예죠.
      빌리빈은 그래도 직접 선수시절을 겪어봤고 누구보다도 그바닥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었죠. 그래서 그 도를 넘은 오지랖이 그래도 효과가 있었던거고
    • management// 그 영화는 드라마는 아니고 스릴러나 서스펜스가 되겠네요.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고 말이죠. 야구에 대한 이론은 모르겠는데 장사에 대한 이론은 분명한 사람같습니다.
      슈크림//근데 제 관점에서는, 감독이 자기가 쓰라고 한 선수 안썼다고 그 선수를 트레이드 시키는건 충분히 도를 넘은 오지랖이거든요. 이건 오지랖이 아니라 권한남용이죠. 물론 프로 스포츠 구단을 지휘하는 입장에서 이기는게 최선의 미덕이긴 하지만 이건 좀 그래요. 그리고 감독의 경기 운영을 보장해주는건 미국 쪽이 더 철저하지 않나요? 우리나라에서는 구단 고위층이 선수 기용지시했다는 기사를 종종 보는데 메이져리그도 그런가요?
    • 저는 영화가 정치적으로 공정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단장이 선수 기용에 개입하면 안된다는 것을 전제로 깔아놓고 빌리빈의 폭군같은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선수를 방출하고는 바로 웃으면서 새 선수를 맞이하기도 하지 않습니까ㅎㅎ 단장 빌리빈을 도덕적(?)으로 옹호하는 관점은 아니죠. 스티브 잡스의 몇몇 일화를 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이런 캐릭터는 가까이하긴 싫지만 흥미롭긴 합니다.


    • 으잌ㅋㅋ
    • 멋진 리뷰에요, 사실 빌리빈이 너무 많이 알다보니 오지랖이 넓은 것도 맞아요, 아트 감독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불편한 영화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아무래도 빌리 빈에 관한 영화다 보니 아트 하우 감독이나 스카우팅 디렉터였던 그레디 퓨슨 등의 역할이 좀 이상하다면 이상하게 그려지긴 했죠. 그리고 우리나라와 달리 메이저리그는 단장의 야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단장의 역할과 권한이 크죠. 그리고 우리보다 트레이드 자체가 워낙 활발한 동네고 좋은 단장/안 좋은 단장을 가르는 핵심 포인트가 트레이드니 그런 부분들이 그려질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mlb에 세이버 메트릭스를 정착시킨 콩단장에 관한 영화니. :) 성격이 좋지는 않았던 콩단장(-_-)이 라인업까지 간섭하는 건 당연 좋지 않은 것이었지만.

      하지만 퓨슨이 더 억울할꺼예요. -_-;;
      스카우팅을 당연 그레디 퓨슨 혼자서 한 것은 아니지만 오클 3인방이었던 지토. 멀더. 헛슨. 그리고 에릭 차베스. 에릭 번스. 리치 하든. 바비 크로스비. 제레미 본더맨 등이 모두 이 양반이 스카우팅 디렉터로 있을 때 터뜨린 대박 드래프트들 이었고 그 선수들 없이 당시 오클의 놀라운 성적은 있을 수 없었는데 영화에선 참 억울하게 그려지요.
      콩 단장과 아트 하우 감독은 실제 오클 시절 막판(하우 감독이 메츠로 옮기기 전)엔 말 한마디 주고 받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안 좋았고 콩단장이 라인업 간섭했던 것도 맞으니 배만 나오고(실제 날씬하심) 무능한 감독으로 그린 것을 제외하면 사실과 그닥 차이가 없게 그려졌다고 생각해요.

      페냐와 해티 부분은 오히려 영화라서 너무 축소된 부분이 많다고 볼 수 있고 트레이드는 당시에도 저는 끄덕끄덕 하는 편이었어요. 실제 페냐는 장타력은 있었지만 볼넷과 삼진 비율이 넘 좋지 않은 선수였고 덕분에 타율도 참. -_-;; 게다가 오클 시절에 파워 포텐이 터진 것도 아니었고 해티버그는 영화에 나오는 것보다는 더 좋은 선수였습니다. 페냐를 대체하기엔 충분한 선수였다는 거죠. 몸값도 더 쌌고. -_-;; 으. 실제 당시 상황에서는 페냐를 중심으로 일어난 삼각 트레이드로 릴리와 허먼을 얻었는데 디트에게 본더맨을 내준 나름 뼈아픈 사건이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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