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나 볼 때마다 느끼는 점

뿌나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연상되지 않나요?

 

정보를 가둬둠으로써 권력을 유지하려는 특권층과

그 정보를 풂으로써 지식의 자유를 누리게 하려는 깨어있는 지식인의 대결,

갇혀진 공간에서 의문의 연쇄살인이 일어난다는 점도 비슷한 구도구요.

 

장미의 이름에서 호르헤 수도사 역할을 하는 인물이 밀본의 정기준 쯤 되겠지요.

 

희극을 용납할 수 없었던 호르헤 신부,

희극론을 금서로 정해놓고 그 금서에 가까워지는 자들을 연쇄적으로 살해한 호르헤 신부,

그리고 그러한 행동이야말로 진리라고 믿었던 호르헤 신부의 이미지가

지금 밀본의 리더 정기준이 한글 창제를 돕는 집현전 학자들을 상대로, 세종 이도를 상대로 하는 행동과 비슷하지 않나 싶어요.

 

엄숙함을 강조한 나머지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을 금서로 지정한 수도원의 꽉 막힌 분위기와

성리학을 강조하다보니 한글의 창제를 반대하게 되는 밀본의 교조적인 분위기 역시 비슷하구요.

 

윌리엄 수도사의 똑똑함과 세종 이도의 영특함 역시 비슷하다면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죠.

 

 

 

    • 장미의 이름이 팩션 장르에 끼친 영향은 절대적이죠.
    • 얘기를 듣고 보니 정말 그러네요.

      그런데, 성리학의 순혈주의에 집착하는건 정기준 일파의 독단일 뿐이고 정작 밀본의 창시자인 정도전은 아마도 세종의 한글창제를 매우 흥미로와 했을겁니다. 정도전은 의외로 성리학의 도학적 면에는 꽤나 무신경했거든요. 아니 성리학을 이용한 관료제 시스템 건설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이고 성리학이 주장하는 정통성, 대의명분 뭐 그런것들은 전혀 거들떠 보지도 않았거든요. 그의 만년에 펼친 여러 정책들을 보면 - 요동 정벌 계획을 비롯해서 여러가지 과학기술과 경제정책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거기에 대한 저서들도 꽤 많죠. -

      그가 이성계에게 '요동을 지배한 여러 북방 민족들 중에 중원을 지배하지 않은 족속이 없었다'라는 얘기까지 해가며 요동정벌을 주장하는 거 보면 성리학자들의 가장 큰 병폐인 '중국중심사고' 조차도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얘기가 명나라 첩자들 귀에 들어갔는지 명의 홍무제 주원장은 정도전을 죽이기 위해 조선과 외교분쟁을 일으켰죠. 지난 90년대 초 중국에서 열린 어느 동아시아 역사학 대회에서 어떤 연로한 북한 사학자는 정도전의 이 얘기를 인용해서 중국의 동북공정을 비웃기도 했고...^^;;)

      사실 정도전의 낮은 출생 - 외할머니는 사원 노비, 어머니와 아내는 연안 차씨 집안의 서녀 - 을 생각해보면 성리학이 지배하는 사대부의 세상에는 정작 정도전 자신이 설 수 있는 자리가 없습니다. 오죽하면 정도전의 별명이 '삼대 노비가'였을까...-_-;;

      그래서 차라리 저 밀본의 교주가 정도전 말고 그의 정적인 정몽주였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그는 고려의 충신이니 정도전 보다는 더 맞을것 같은데...조선 500년 동안 성리학자들의 깊은 신뢰와 추앙을 받은 사람은 정몽주 아닌가요. 오죽하면 그가 조선 건국의 주역들을 모두 죽일뻔했었다는 사실조차도 성리학자들 스스로가 감추고 싶어했을 정도니 말이죠.



      아무튼 요즘 저는 '뿌리깊은 나무' 보는 재미로 삽니다.
    • 모티브로 삼은 건 아닐까요 솔직히 원작 줄거리만 읽고도 장미의 이름을 생각했었는데요 장미의 이름의 한국식 버전??
    • Bigcat/ 결국 정기준이 정도전의 참뜻을 이해하고 한글창제를 받아들인다는 식으로 정리되지 않을까요.
      세종이 가리온과 무슨 바위 위에서 정도전이라면 자신을 이해할 것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죠.
    • 성리학을 바탕으로 조선을 세운 정도전이 비극은 물론이고 희극까지 포용한 아리스토텔레스라면
      밀본의 정기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 중에서 희극은 싹 빼고 비극론만으로 권력을 움켜쥐려는 호르헤 신부 쯤 되겠지요.
    • 제가 대학 발표수업중 장미의 이름에서 희극론을 엎어서 베껴 발표했었죠.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출처를 모르는 것 같아서 좀 실망
      꼼수에서 잠깐 언급되신 한 분이 당시 담당교수님이었죠.

      장미의 이름이 팩션 장르에 끼친 영향은 절대적이죠222 이미 이인화가 영원한 제국에서 빼먹을 건 다 빼먹었구요.
    • 영원한 제국은 통채로 베껴먹다시피 했고 ㅋㅋ 차승원 주연의 '혈의누'도 초반에 등장하는 연쇄살인장면, 인물의 구도 등에서 장미의 이름을 연상하게 되더라구요.
    • 블루재즈 / 아주 갖다 썼죠. 당시 화제작 운운할때 객석에서 순진교수 코스프레를 하는데 어찌나 역겹던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평론가는 본명, 소설은 필명 이렇게 사용하면서 자기소설을 남인양 평론가로서 그렇게 칭찬했다지요. '인간의 길'인가 박정희 소설을 써놓고 뭐 거창하게 베스트셀러가 될꺼라더니 도서관에서 보니 그냥 구색만 맞춰놨나봐요. 거의 새책으로 놓여있더라구요. 새록새록 별로인 기억이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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