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뿌리깊은 나무

* 인터뷰에서 그랬던가요. 연산군 같은 세종을 연기하겠다고.

 

 

* 광평대군이었군요. 전 이때까지 안평대군이라고 생각했죠. 나중에 세조가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죽는다는 그 인물 말이죠.

그래서 드라보는 내내, 아, 이 청년이 그 청년이 되는구나..라고 생각했죠. 근데 안평하고는 글자하나 차이인 광평대군이군요. 찾아보니 이 양반은 20살에 요절했다고 하네요.

 

 

* 올해 연기대상은 석규짱. 공동수상 여지 따위는 없음.

 

내일 예고를 보니 담이를 고문하고 강채윤을 내치는 것 같던데................ 일종에 페이크 아닐까요.

해례의 핵심이 신세경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 정기준이 혈안이 되어 찾는게 해례잖아요.

그러니 신세경을 감추기 위해서가 첫번째 이유겠고, 그리고 정기준의 의도를 파악하고 맛이 간것처럼 행동하기 위한 페이크 말입니다.

 

 

 

 

 

 

 

    • 올해 연기대상은 석규짱. 공동수상 여지 따위는 없음 2
    • 올해 연기대상은 석규짱. 공동수상 여지 따위는 없음 3
    • 올해 연기대상은 석규짱. 공동수상 여지 따위는 없음 4
      정말 수애랑은 차원이 다르네요.
    • 광평은 실제론 아사했죠. 젊은 나이에..
    • 슈퍼픽스/ 실록 상 공식 기록은 스무살에 창진으로 사망한거구요, 생선가시가 걸려 아사했다는 건 야사...라고 하기도 애매한 설이에요. 전주이씨 왕들을 대대로 고생시켰던 피부병(종기/등창류)으로 사망했지요.
    • 날짜가 12월 7일이라는 깨알같은 재미가 있군요. 실록은 음력이었겠지만 ..

      세종 106권, 26년(1444 갑자 / 명 정통(正統) 9년) 12월 7일(임자) 1번째기사
      광평 대군 여의 졸기
      광평 대군 이여(李璵)가 졸(卒)하였다. 여의 자는 환지(煥之)이고 호는 명성당(明誠堂)이니, 임금의 다섯째 아들이다. 홍희(洪熙) 원년 을사(乙巳) 5월 임신일(壬申日)에 나서, 선덕(宣德) 7년 임자(壬子) 정월에 광평 대군에 봉하였다. 나이 어릴 때부터 학문에 힘써서 《효경(孝經)》과 《소학(小學)》과 사서 삼경(四書三經)을 다 통하고, 《문선(文選)》과 이태백(李太白)·두자미(杜子美)·구양수(歐陽修)·소동파(蘇東坡)의 문집들을 두루 열람하였고, 더욱 《국어(國語)》와 《좌전(左傳)》에 공부가 깊었으며, 음률(音律)과 산수(算數)에 이르기까지도 그 오묘(奧妙)한 이치를 다 알았다. 글을 잘 짓고 글씨의 필법도 절묘하였으며, 강한 활을 당겨서 멀리 쏘고, 또 격구(擊毬)에도 능하였다. 임금이 간의대(簡儀臺)와 종부(宗簿)의 일을 총관(總管)하기를 명하였더니, 종합하고 정리함에 체제를 세웠었다. 임금이 무안군(撫安君)의 후사(後嗣)가 없음을 추념(追念)하여 입후(立後)를 시켜서 그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여(璵)가 창진(瘡疹)을 앓고 있었는데, 임금이 심히 근심하여 여러 방법으로 치료를 했으나 끝내 효과를 얻지 못하고 죽으니, 임금과 중궁이 몹시 슬퍼하여 3일 동안 조회를 거두었다. 여는 성품과 도량이 너그럽고 넓으며, 용모와 자태가 탐스럽고 아름다우며, 총명하고 효제(孝悌)하여 비록 노복이나 사환이라도 일찍이 꾸짖지 아니하매, 사람들이 모두 사랑하였다. 시호(諡號)를 장의(章懿)라고 하였으니, 공경하고 삼가고 높고 밝음이 장(章)이고, 온화하고 부드럽고 현명하고 착함이 의(懿)이다. 아들이 하나이니 이름은 이부(李溥)이다. 처음 여의 병이 위독할 때 임금이 밤을 새워 자지 않았고, 끝내 죽으매 종일토록 수라를 들지 아니하니, 도승지 이승손 등이 아뢰기를,
      “성상께서 오랜 병환이 있으신데 애통하심이 예절에 지나치십니다. 청하옵건대, 수라를 드시옵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 마땅히 그리 하겠노라.”
      하였으나, 날이 저물어서야 죽만 조금 마실 뿐이었다. 백파령(白波令)에게 명하여 상례를 주관해 보게 하고, 첨지중추원사 정척(鄭陟)과 변효문(卞孝文)·예빈 소윤(禮賓少尹) 민완(閔瑗)으로 호상(護喪)하는 일을 시키고, 또 동부승지(同副承旨) 이사초(李思招)를 명하여 또한 가서 보살피게 하고, 초상 중에 목욕과 염습(斂襲)과 빈소(殯所)에 관한 제구(諸具)를 다 관(官)에서 마련하였다. 정부와 육조에서 조위(弔慰)하는 전문(箋文)을 올리니, 이르기를,
      “온화하고 순량한 숙덕(夙德)이 일찍이 종실(宗室)의 꽃부리었더니, 준수하고 풍우한 자태가 문득 황천의 막힘이 되었나이다. 슬픔이 깊이 대궐에 감싸이매, 아픔이 널리 민심(民心)에 맺히나이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성상의 비통하심을 너그러이 하시어 신하들의 소망에 답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하였다.
    • 에르르/
      오호, 흥미롭군요. 의도한걸까요.
    • 제가 팔로우하는 트윗계정에서 본 것들 추가요.



      광평대군은 1444년 20살의 나이로 요절합니다. 1443년 훈민정음 창제와 1446년 훈민정음 반포 사이인데요, 드라마에서는 훈민정음 반포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것으로 묘사를 하는군요. 연대는 맞지만 사인은 다릅니다.



      아울러 석보상절은 세종대왕의 중궁인 소헌왕후가 1446년 죽자 명복을 빌기 위해 수양대군에게 석가보를 편찬하게 하고, 이를 다시 한글로 번역하여 1447년 편찬한 책입니다. 드라마상 등장연대와는 사실이 다릅니다.



      광평대군의 죽음에 관해선 야사를 통해 여러 이야기가 전해 옵니다. 목에 가시가 걸려 음식물을 넘기지 못해 굶어죽었다거나, 태종에 의해 죽임을 당한 왕자 방번(태종의 배다른 동생)의 양자로 입적시켰는데, 그 방번의 원혼이 데려갔다는 설 등이 있습니다.



      야사에 많이 거론됐다는 것은 그만큼 백성들의 관심을 받았다는 반증이죠. ㅋ 참고로 광평대군 묘는 일원역과 수서역 사이에 위치해 있고, 그 후손들의 종가집이 한정식으로 유명한 '필경재'입니다.
    • 광평대군을 연기한 서준영은 대왕세종에서는 수양으로 출연했었는데, 세종 아들역과 인연이 많네요.
      그나저나 한석규는 정말정말 잘해요.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11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46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55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9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4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6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34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50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7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31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5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9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9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6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8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