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링크된 PDF를 읽어보시면, 창비는 왜 외래어에 관한 된소리표기를 고집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간단히 말하면, 현재 맞춤법 규정은 외래어 파열음 표기의 경우 된소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그 원칙을 고수하다 보면 다양한 외국어의 실제
발음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경우가 발생하므로 최대한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기 위해 창비는 된소리를 사용한다, 정도입니다.
한글은 사실 거의 모든 외국어를 최대한 원음에 가깝게 표기할 수 있는 표기 체계죠. 일본어와 비교하면 그 스펙트럼의 너비가 몹시 확연히 차이나요.
한글에선 영국인 Paul은 폴, 독일인 Paul은 파울, 프랑스인 Paul은 뽈, 구분이 되지만 일본어라면 포-루(혹은 파-우루?) 뿐이려나요.
사실 맞춤법 원칙이라는 건 언중들이 많이 사용하면 결국 그 쪽으로 바뀌게 되어 있어요.
짜장면 자장면 둘 다 옳다 오호호호호
우린 최근 이 황희정승 돋는 사례를 접하지 않았슴미까.
창비의 된소리 표기에 관한 고집이 이해가 안 가지는 않아요. 결국 이 시점에서는 어느 정도 호불호의 문제가 되는 건데....그래도 전 아직까진 파열음 표기가 익숙하군요,
적어도 쎅쓰! 메씨지! 이런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좀.....................................모던뽀이 신여성시대 경성 배경 소설도 아니고.................싸보여서 확 깬단 말이에요...................................................
"빨히" 정도가 가장 가까운 표기 아닐까 싶긴 하네요. (갑자기 떠올라서 뒷통수를 치는 '어륀지'의 기억) --; 원어에 가깝게 해주는게 원칙이라면 원칙적으로 맞긴 하겠죠. 지금 우리는 다르게 오래 써와서 익숙한게 따로 있지만, 원칙은 살아남아서 다음 세대에는 맞는 방향으로 갈지도요...
그건 그렇고, 성룡을 성룡이라 부르지 못하고 청룽이라고 불러야한다는 등... 기존에 익숙했던 언어습관을 바꾸라는건 사실 힘겹긴 합니다.
한글이 거의 모든 언어를 표기하지 못한다는 건 둘째 치고 그런 문자는 존재할 수도 없을 뿐더러 존재하려면 언중이 거의 모든 언어를 알아야 가능합니다 언어학에서 쓰는 표기인 국제음성기호(IPA)가 그나마 여기에 가깝다고 할 수는 있겠는데 이건 언어를 적는 문자가 아니라 기호이므로 경우가 다르죠 외래어 표기의 관점에서는 한글이 가나보다 좀 더 낫긴 하겠지만 우리말에 유성음이 없고 홀소리 길이가 구별 안 되니 딱히 우월하지도 않습니다
로망스어와 슬라브어 한글 표기에서 된소리를 쓰는 근거로 태국어에서 파열음의 3항 대립을 보기로 든 것은 큰 오류입니다 웬만한 언어에서 파열음, 파찰음이 2항 대립이니 한글 표기에서는 예사소리/거센소리를 할당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죠 스까이, 해삐라고 표기하지 않듯이 이건 영어 중심적 시각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생각들은 다르겠지만 한겨레에서 순우리말을 많이 쓰거나 영어 비엠더블유 대신 원어인 독어를 기준으로 베엠베를 쓰는 건 좋은 시도로 봅니다
Rcmdr/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하여 적는다. ‘Catholic’은 ‘가톨릭’으로 굳어졌으므로 ‘가톨릭’을 표준어로 삼는다." 라고 사전에 나와 있어요. 가톨릭은 라틴을 읽은 게 아니라 영어 Catholic을 읽은 거죠. 혹시 라틴에 Catholic이란 단어가 있나요?
저도 느꼈던 문제인데 의미있는 시도라고는 생각해요. 된소리를 지나치게 억제하는 건 저도 불만이었거든요. 짜장면 케이스도 그렇고.. 된소리도 엄연히 쓰라고 있는 글자인데 잘 활용하면 주간님 말씀대로 외래어를 원음에 가깝게 표기할 수도 있고 언어생활에 여러 가지로 득이 될 듯 합니다. 문제는 외래어 표기라는 건 하나의 약속인데 독자로서 낯설다는 점. 아 이게 본토발음인갑다 하다가도 '토오꾜오의 유우이찌로오는' 이런 문장은 이질감과 더불어 가독성도 떨어지는 것 같아요.
쿠융훽님 멋있어요.. 전부 다 동감입니다. 원음이랑 비슷한 것도 중요하지만 쎅쓰 쎄르빤떼쓰 이런 것도 표기상 제한하는 것도 맞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이렇게 쓰이다가 바뀐거니까요. 한겨레-베엠베가 이상한가요? 저는 ㄱ씨 이렇게 쓰는 것도 너무 좋아요..대부분 별로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파ㅠ
"현행 외래어 표기법을 무시하고 원음주의를 고집하는 대표적 매체는 계간지 「창작과 비평」일 것이다. 이 잡지에서 프랑스의 수도는 「빠리」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저자는 「프루스뜨」다. 프랑스어의 무성 파열음은 영어에서와 달리 무기음(無氣音)이므로 「파리」가 아니고 「빠리」이며, 그 무성 파열음이 R 소리 앞에서는 유기성(有氣性)을 회복하므로 「쁘루스뜨」가 아니라 「프루스뜨」라는 것이다. 그것이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 원음주의자들은 프랑스어 첫걸음을 한국인들에게 걸리느라 바빠서, 프랑스어에서 Paris의 p와 Proust의 p가 동일한 음소라는 것을 무시하고 있다. 「빠리」의 첫 소리와 「프루스뜨」의 첫 소리를 구별하는 원칙을 일관되게 밀고 나가자면, spy는 「스파이」가 아니라 「스빠이」가 되고, style은 「스타일」이 아니라 「스따일」이 돼야 할 것이다. 영어에서 s 소리 다음에 오는 p, t, k 소리는 그 뒤에 r 소리가 오지 않는 한 유기성을 많이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비」는 아직까지 거기에는 동의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속생각이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아무튼 「창비」에서는 여전히 「스파이」고 「스타일」이다. 정말 모를 일이다.
근본주의적 원음주의자들은 우리가 「리얼리티」로 표기하는 것을 「리앨러티」로 바꾸고 싶어하고, 「잉글랜드」로 표기하는 것을 「잉글런드」로 바꾸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reality를 「리얼리티」라고 표기하는 것은 그 단어의 발음이 「리앨러티」에 가깝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진짜 이유는 「리얼리티」라는 단어가 한국어에서 「리얼」(영어 real에서 차용한)이라는 단어와 굳게 맺어져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England를 「잉글랜드」라고 표기하는 것도 「잉글런드」라는 올바른 발음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단어의 뒷부분과 「랜드」(영어 land에서 온)라는 말의 관련을 표상하기 위해서다.
그런 관련을 파괴하고 원음주의를 고수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 가령 그것이 바람직한 일이라고 하자.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그 원음주의를 고수하기 위해서는 모든 외국어의 음성학과 음운론에 통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한 개인에게만이 아니라 어떤 위대한 학술 단체에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 근본주의적 원음주의를 만족시킬 외래어 표기법의 세목은 수백권의 책에도 다 담아낼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창비」의 표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창비」가 원음주의를 적용하는 언어는 고작 영어와 프랑스어를 포함해서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몇몇 유럽어들과 일본어 정도다. 그 원음주의는 다른 언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왜?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령 프랑스어 이름만 해도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외래어 표기법대로라면 「알튀세르」라고 표기할 Althusser를 「창비」는 여전히 「알뛰쎄」라고 표기한다. 「튀」를 「뛰」로 표기한 것이나 「세」를 「쎄」로 표기한 것은 예의 「원음주의」 때문이고, 「르」를 잘라먹은 것은 이 유명한 철학자의 이름을 부를 때 프랑스인들은 마지막 r를 발음한다는 사실이 「창비」의 편집자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영어 이름이라고 해서 만만한 것은 아니다. Marjoribanks라는 영국인 이름을―외래어 표기법을 따른다고 하더라도―「마시뱅크스」로 읽고, Featherst-onehaugh라는 또 다른 영국인의 이름을 「팬쇼」라고 읽는다는 걸 그 집안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누가 알겠는가?
(중략)
설령 우리가 모든 외국어에 통달해서 외래어 표기법이 근본주의적 원음주의를 만족시킬 만큼 정비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대중의 습관, 관행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 그 관행이 예의 과도한 원음주의에 배치될 때는 물론이고, 현행 외래어 표기법과 어긋날 때도 마찬가지다. 「베르그송」이 아니라 「베르크손」이 원음을 외래어 표기법에 맞게 표기한 것이라고 해서, 한국인에게 베르그송을 버리고 베르크손을 택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잘 알려지지 않은 외국 이름을 처음 표기할 때 원음에 가깝게 표기할 수는 있겠지만, 베르그송처럼 이미 만인의 것이 돼버린 이름, 한국어가 돼버린 이름을 어느날 갑자기 베르크손으로 고칠 수는 없는 일이다.
유럽어를 음사(音寫)할 때 외래어 표기법을 무시해가며 모음 앞의 s를 ㅅ이 아니라 ㅆ으로 표기하는 「창비」의 원음주의 원칙도 마찬가지다. Stevensons의 s와 Sanders의 s는 동일한 음소인데 그걸 구별해서 표기하자는 것은 아무래도 지나치다. 「창비」는 정작 ㅆ이 필요할 때를 위해 그 ㅆ을 아껴두었으면 좋겠다. 가령 창비식의 표기대로라면--그것은 외래어 표기법의 규정을 따라도 마찬가지인데--영어의 bus에서 차용한 한국어 표기는 「버스」다. 나는 오히려 이런 것이야 말로 고쳐야 할 표기라고 생각한다. 영어의 bus를 영국 사람이나 미국 사람이 어떻게 발음하든, 그 대중 교통기관을 우리는 「뻐쓰」라고 부른다. 그것이 영어 단어가 아니라 영어에서 한국어로 차용된 외래어, 즉 한국어 단어인 이상 우리는 그것을 「버스」가 아니라 「뻐쓰」로 표기해야 한다. 그리고 이럴 때야말로 ㅆ이 필요하고 ㅃ이 필요한 것이다. 「빠리」나 「에피쏘드」에 필요한 것이 아니다.
넓은 의미의 원음주의든 좁은 의미의 원음주의든 이 원칙이 우스꽝스러운 억압으로 변하는 것을 막는 것은 관습 존중의 태도다. 실상 우리는 대부분 무의식적으로라도 그런 관습 존중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우리는 「도이칠란트」보다는 「독일」을 선호함으로써 넓은 의미의 원음주의를 조롱하고, 「스빠이」나 「스따일」이나 「어메리커」에 대해서가 아니라 「스파이」와 「스타일」과 「아메리카」에 대해서 이야기함으로써 좁은 의미의 원음주의를 비웃는다. 그것이 말들의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그런 관습 존중의 태도가 깊이 뿌리를 내린다면, 가장 완고한 원음주의자조차도 감히 헝가리를 「마자르오르삭」이라고 부르자거나, 오클라호마는 틀린 발음이므로 「오우클러호우머」라고 표기하자고 제안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려, 99년에 쓴 글이군요. 그런데 창비가 내놓는 해명은 고작 저 따위 수준이라니 혀를 끌끌 차게 되지 않을 수 없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