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야그] 17년전 독재자의 마지막, 그 후
원래는 청소년 인권 및 차별대우에 대해 적을까 했습니다만
여러분들이 다 아실 바로 그 뉴스 때문에.
김정일 사망으로 나라가 발칵 뒤집혔네요. 그럴만한 일이지요, 저도 깜짝 놀랐으니까요. 사람들이 놀라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이야기하고 그리고 언론이 들끓고 있지요. 사실 앞으로 북한이 어찌 될 지, 또 우리나라가 어떻게 굴러갈 지 며느리가 알겠습니까 시어머니가 알겠습니까. 닥쳐봐야 알죠. 다만 작은 참고나마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한 20년 가까이 전에 벌어졌던 사건을 이야기해보죠.
김일성이 사망한 것은 1994년 7월 8일, 제대로 신문보도에 나온 것은 10일이었습니다.
"혁명의 위대한 수령이시며 창조와 건설의 영재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심장은 비록 고동을 멈추었으나 어버이 수령님의 거룩한 존엄과 인자하신 영상은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
뭐 이런 식으로 닭의 살이 쫙쫙 돋는 북한 방송의 보도였습니다만. 하도 어이가 없는 미사여구가 이어져서 보다보면 나름 중독됩니다. 저렇게까지 맥락없는 말들을 끌어모아 칭송의 목적 하나로 늘어놓는다는 데서 한국어 활용의 새로운 경지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지요. 어쨌든 남북의 창을 통해 북한의 상황이 영상으로 보여지기도 했지요. 북한의 주민들이 대성통곡을 하며 울부짖고 꽃을 일제히 바치면서 애도하는 모습은 자신들 딴에는 진지했을지도 모르나, 보기에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기괴했습니다. 결국 조총련을 통해 유리관을 구입해다가 방부처리 - 라기보단 미라를 만드는 데까지 가지만요. 무려 49년동안 북한을 장악해온 사람이었고, 사인은 심근경색이었다고 알려졌지요.
이 김일성 사망 뉴스가 전해지기 직전, 문민정부는 북핵, 경수로 관련하여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전날까지 북한하고 미국이 3자회담을 한다느니, 경수로 때문에 정상회담을 하고 김일성이 서울로 온다느니 온갖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지요. 여기서 다를 바 없이, 당시 대통령 및 청와대는 김일성의 사망을 34시간동안 통- 몰랐습니다. 김일성의 사망이 8일 새벽 2시였는데 그 날 오전 10시만 해도 총리 및 청와대 경호실장등등은 판문점에서 북쪽 대표들과 만나 정상회담 논의를 하며 잘 추진된다며 희망찬 발표를 하기도 했거든요. 바로 그 다음날에는 정상회담 때 북한에 찾아갈 사람 명단을 넘겨주고 신변 보장을 해주겠다는 각서까지 받았다는 군요.
그리고 그 다음 날인 10일날 각계 장관들이 모여 정상회담 대책회의를 하는데 김일성 사망뉴스가 빠앙 하고 터진 거지요. 다들 벙쪘다는 후일담이 있습니다. 당연히 김영삼 대통령도 전혀 예상치 못하고 평소의 일정을 수행하며 손님들과 오찬에 앞서 환담을 하고 있다가 소식을 들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 날이 토-일요일이었는데, 그 직전까지 주식시장은 "북한에서 발표가 있다."라는 보도까지만 듣고 남북협력에 대한 좋은 뉴스이겠거니, 하며 주가가 쑥쑥 올랐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바로 그 소식이고, 하여... 월요일날 증시가 대폭락하는 일도 벌어졌지요. 한 7% 정도?
하여 나중 여야가 힘을 합쳐 북한 정보에 어쩜 이렇게 둔하냐고 정부를 가차없이 까댑니다. 나름 변명할 거리도 있는게 판문점에 파견된 북한 관료들도 몰랐댑니다. 또 한편으론 34시간동안 사망 정보가 알려지지 않은 이유를 분석했지요. 당시 미국의 정찰기가 북한을 도청하고 있었는데, 무선은 가능해도 유선은 도청이 안 되서 정보 파악이 늦은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고, 한편 중국의 회사들은 이 정보를 미리부터 알고 있었다는 소문이 돌았지요.
암튼 진실은 저 너머에.
여기서 어린 시절에 이 사건을 겪었던 분은 조금씩 기억이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천지가 뒤집어질만한 사건이 터지니까 사람들은 크게 놀랐고, 평양냉면 집과 임진각은 사람으로 미어터졌습니다. 신문사와 방송사는 여기저기 어중이 떠중이 북한전문가를 마구 끌어다가 앞으로의 전망은 어떻게 짠짠~ 하며 긴급 기사 및 방송을 해댔습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여기저기 실수 만발. 사망을 별세라고 말하거나, 생일을 생신이라고 말하는 바람에 항의가 들어오기도 했죠. 가장 큰 사단은 KBS가 냈습니다. 폴란드에서 제작한 김일성 다큐멘터리를 입수해다가 "인류 최후의 황제 김일성"이라는 제목으로 냈는데... '나름' 김일성을 비판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칭찬하는 내용이 보이자 벌떼같은 항의가 쏟아져서 방송 25분만에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 때도 어김없이 전 장병들의 외출과 외박, 휴가는 중지되고 비상경계령이 내려졌으며, 빌 클린턴은 김일성 사망에 조의를 표했다가 대거 까이기도 했습니다.
가장 흥미진진한 것은 역시 "앞으로의 북한은 어찌될 것이냐."라는 전망이었죠. 내외신들은 다투어 김일성 사망 이후의 판세를 점쳤습니다. 이는 곧 김정일 체제가 얼마나 가겠느냐라는 진단이었습니다.
과연 김일성의 카리스마마저 빛이 바래고 있는데, 김정일 구도가 오래 못 갈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심지어 김일성의 사망이 자연사가 아닌 암살, 쿠데타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도 있었지요. (암살설은 아직까지 제기되고 있기도 합니다. 정상회담을 반대한 김정일이 주체라고.) 카터 전 대통령을 비롯한 국제 조문을 받지 않았기에 이 소문은 더 강하게 퍼집니다.
그 외에도 북한의 군벌들이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다느니, 김정일의 이복동생 김평일을 옹립할 것이라느니, 김정일이 말뚝을 박고 체제를 안정되게 이어받을 거라느니, 그런데 김정일은 개방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느니 온갖 추측들이 난무했지요.
그러면서 74년 지도자로 임명된 이래 김정일의 이력을 쭉 훑으면서 그는 격정적이고 충동적인 영화광에, 오만불손하고 칼 기 테러를 계획, 주도한 악당에, 사람에게 총구를 겨누는 버릇이 있는 제정신 아닌 놈에다가 어릴 때 친어머니를 잃어 이복동생들과 아쥬~ 사이가 나쁘다는 온갖 사생활들이 난무했습니다. 여기에 북한의 실세들 이름을 주르륵 나열하며 파벌도 설명하고, 앞으로의 권력진행도 예상했지요. 재미있는 것은 이제는 고인이 된 황장엽 씨가 김정일의 정보통으로 주요인물이 될 사람으로 지목되었다는 것.
뭐 그 분들이 예언가도 아니고 세상 일이라는 게 알 수 없으니 어떻게 맞고 아니고를 보고 실력을 가늠할 수 없는 일입니다만. 사실 현재 이 예측들을 보다보면 이랬으면 참 좋겠다라는 희망사항을 피력하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곤 해도 당시 남북회담(예정)을 앞두고 있었던 탓인지, 김일성 사망을 놓고 언론 및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차분하고 덜 자극적이었습니다. 남한의 적화에 온 힘을 기울였고, 핵무기로 도박을 한데다가 피의 숙청에 뛰어난 재주를 보인 독재자에다 기타등등으로 말하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온건한 기사들이었고, 당시 주사파 혐의를 받고 있는 대학생들은 언급을 자제하는 한편 당시 노조들은 파업을 연기하기도 했다네요.
그와 반대로 차분한 반응도 있었으니, 일요일 해운대에는 피서 인파 50만명이 몰리고 종로에는 영화보러 온 사람들로 북새통이었죠. 당시 라이온킹이 한창 개봉중이었거든요. 나의 문화유적답사기도 1, 2권이 발간중이었고.
저야 어릴 때라서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만. 당시 어르신들이 이야기하는 건 들었지요. 지금 때가 좋은 거라고, 예전이라면 김일성 죽었다고 축제를 벌였을 것이라 하더군요. 그 때는 당장이라도 통일이 될 줄 알았습니다. 어린애였으니까요.
그건 그렇고 요즘 시세 돌아가는 게 참 어디서 많이 본 듯 한데요...
p.s : 솔직히 박정희 서거 직후의 신문보도도 북한 방송 것 못지 않게 재미있습니다만. 이건 어떻게 이야기하는 게 좋을지 고민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