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추운 겨울에 읽어서.. 이 소설은 여름에 부채 대신 써도 되겠어요. 배경이 되는 곳이 시베리아쯤 되는 건가요? 얼마 전에 배우자가 출장 갈 뻔 했다가 흐지부지된 '사하공화국'이란 데가 떠올랐어요. 이반 데니소비치의 수용소도 대략 저런 데 있었을까요. 저 넓은 땅에 다이아몬드, 석유, 천연가스, 석탄, 금, 은 등 자원이 풍부한데도 불구하고 인구가 백만이 안 된대요. 아마도 추위 때문에?!
문득 궁금해서 솔제니친 연보를 검색해봤어요.. 1918년 탄생 로스토프 대학에서 물리와 수학 전공 모스크바에 있는 역사,철학, 문학 전문학교의 통신과정 이수 2차대전(1939~1945년) 당시 소련군으로 참전 1945년 ~ 1955년 (27세~37세) 수용소 (편지에 스탈린을 비판하는 글을 적은게 문제가 됨;) 1956년 러시아 랴잔시 중학교 수학교사 1962년 (44세)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 연재 1969년 (51세) 반소작가라는 낙인이 찍혀 작가 동맹에서 추방 1970년 (52세) 노벨문학상 수상 1973년 (55세) 서독으로 추방됨. 미국에서 망명생활 1994년 (76세) 소련 붕괴후 러시아로 돌아옴 2008년 (90세) 지병으로 별세
brunette / 사하 공화국은 처음 들어보네요.. 지도에 빨갛게 표시된 곳 인가요? 전 워낙 추위를 많이타다보니 책에서 묘사하는 추위에 도저히 적응이 안되더라구요. 제가 저기 있었으면 동상으로 진작 낙오되었을것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요즘은 어그에 오리털 잠바로 무장하고 다니지만 그런게 없었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우리나라 겨울 날씨 정도에도 매년 겨울이면 발가락 동상으로 고생했거든요. ㅡ.ㅜ;
사하공화국이 아마 세상에서 제일 추운 도시가 있고, 겨울철 기온이 막 영하 사오십도로 내려가고 하는 그런 델 거에요. 그 나라에 설치된 CCTV 같은 데 비춰지는 영상을 우리나라에서도 어떻게 하면 볼 수가 있다는데요, 거리엔 눈이 엄청 내리고 사람들은 정말 없고 그렇대요. 이 소설에 나온 곳이 이 나라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수용소라는 이미 징벌적인 상황에 혹한이 더해지니까, 게다가 그게 아마도 실제 상황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저도 읽으면서 끔찍했어요.
오늘이 벌써 올해 마지막 독서모임인가요? 마지막 모임은 연말에 오프로 만나서 희곡 한 편 대사 돌려가며 읽었으면 좋겠다 했었는데, 어느새요! 직접 만나는 건 확실히 부담스러우니, 게시판 상에서 목소리만 서로 교환할 수 있는, 그러니까 오프와 온라인의 중간단계 정도의 장치 같은 게 있어도 좋겠다 싶어요.
"아침에 작업장으로 나갈 때처럼 괴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어둡고 춥고, 뱃속은 벌써 비어 있다. 앞으로 보낼 하루를 생각하면 까마득하기만 하다. 입이 무거워져서 말 한마디 건네고 싶지 않다." 이 부분 읽고 이건 좀 과장해서 출근길 내 모습인데 싶어 피식 웃었습니다. 그리고 군생활 하신 분들은 책 읽으면서 그때 생각이 많이 나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저는 민음사판으로 읽었는데 작품해설에 보면 솔제니친이 이 소설로 197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지명되었을 때 소련 내에서는 서구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솔제니친을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주장하며, 노벨상에 대한 반대입장을 보였다란 얘기가 나와요. 저는 이 소설을 처음 읽을 때는 사실 좀전에 언급한 그 소련 사람들과 좀 비슷한 생각이 들었어요(cksnews님 죄송ㅜㅜ). 세밀하게 묘사된 일상이 좀 늘인다는 생각도 들고, 잘 썼으나 노벨상 수상할만큼 잘 썼나 싶기도 하고, 70년대 노벨문학상은 정말 정치적인 결정이었을 거란 생각도(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고요) 들었어요. 하여간 힘겹게 일독하고, 읽는 김에 <수용소 군도>를 좀 읽었는데(아직 읽는 중) 그 책은 첫 장부터 확 끌리고 몰입되더라구요. 처음 몇 장만 읽었는데도 솔제니친에 대해 존경의 마음이 들 정도. 그리고 다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었는데, 이번에는 지루한 감 없이 잘 읽었어요. 이 책으로 솔제니친을 더 읽게 되어서 좋네요.
키브린님 말씀처럼 계속 군대 생각하면서 읽었어요. 물론 강도로 따지자면 비교하는 게 가당치 않지만, 어떤 느낌인지 짐작할 단초는 많았거든요. 기상 소리 초조하게 일어나면 저만치 눅눅하게 추위가 묻어나고. 밖에 나가 기온이 몇 도인가 확인하고 걱정하며 오와 열을 맞추고. 항상 감시받고. 육체 노동에서 희열을 느끼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약한 동료에 대한 연민과 적개심을 동시에 느끼고. 소소한 데서 만족감을 느끼고. 제대는 끝이 안 보이고. 정말 비슷한 구석이 많아요.
키브린 / 출근길 신도림역의 좀비 행렬(최근엔 신도림역에서 갈아타지 않지만 불과 얼마전 과거의 제 모습)을 보면 남의 이야기가 아니지요;;; 시베리아 수용소만 하겠습니까만은.. ㅡ.ㅜ;
저도 거식증 치료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봤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요즘 소화불량으로 그다지 식욕이 당기지 않아서 그 부분은 잘 넘어갔지만.... 추위를 정말 많이 타고 최근 몇일 날씨도 춥다보니 추위 묘사는 정말 덜덜 떨면서 읽었습니다. 바람이 술술 들어오는 창문 이야기에는 차라리 거기에 물을 뿌려서 얼음으로 창문을 막아버리면 안될까;; 물이 없다면 침으로라도;;;;; 라고 별별 생각을 다했어요.
사당역의 좀비 행렬도 만만치 않습니다 ㅋㅋ 전 거식증 치료..보단 오히려 식욕이 떨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슈호프가 여기서 나가면 염색장이 일을 해야 하나 고민하고 두려워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군대에 있을 때도 비슷한 고민 많이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주 예전에 읽었던지라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스프와 빵이었던가요, 식사 시간에 나름의 차례를 거쳐 스프의 건더기와 국물, 그리고 빵까지를 먹고 남은 빵은 나중을 위해 챙겨놓기까지 하는 그 과정에의 묘사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고작 스프와 빵인데, 너무나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한끼 식사를 그렇게나. 제가 아는 가장 '경건하고 엄숙한' 식사 장면이에요.
brunette / 정치적인 결정으로 노벨상을 수상한건 아닐까.. 뭐 이런 생각은 저도 잠깐 했어요. 솔제니친이 일종의 서방의 기준에서 훌륭한 작가가 아닐까.. 저시대 러시아의 기준에서 거장으로 추앙되는 작가는 그렇다면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구요. 나중에 다시 러시아로 돌아오고나서 러시아에서 이런 저런 상도받고 한걸보면 꼭 그렇게 서방의 기준에서만 훌륭한 작가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긴했지만.. 제가 명확하게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니 여전히 궁금하긴하더군요. 한편으로는 지난번에 읽은 조지 오웰도 반 공산주의 작가로 읽혀서 동물농장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번역되어 들어왔다는 이야기도 있고.. 우리 모임은 반 공산주의 작가를 주로 읽는 애국 보수 모임!! 이라는 생각도 농담처럼 해봤습니다. ^^;
책 자체는 노벨상을 받을만한 문학성이 있는가는 제쳐두고 여하튼 흡인력있고 흥미진진하게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아트 슈피겔만의 '쥐'도 그렇고 수용소에서 재치있게 상황을 극복해 나아가는 이야기들에는 어딘가 사람을 사로잡는 구석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희망을 보고싶은 걸까요..
키브린/ 어떻게 그리 잘 아세요 ㅎㅎ 그런 고민 많이 하죠. 지금 생각하면 어이 없는 게, 생각보다 많은 부대원들이 말뚝을 박거나 부사관으로 몇 년 더 군생활을 하는 걸 고민했어요. 그렇게 제대만 바라보면서도요. 제대하고 한 번 옛 동료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거기서 그 얘기를 하니까, 다들 '정신이 나갔었나봐' 하고 웃었어요. 적응이라는 게 사람을 죽지 않고 살아가게 하는 대신에 생각을 아주 좁게 만들어요. 나가면 뒤처질까 두려운데 생각하는 게 완전히 군대에 맞춰져 있어서 황당한 것만 준비하는 사람도 많고. 그나마 복학하는 길이 정해진 대학생들은 낫지만요.
레옴/ 서구로 추방(망명인가요)당한 후 보수우익단체에 나가 반소련, 반스탈린 강연도 하고 그랬다면서요. 이 책 읽으면서 북한의 수용소에서 탈출한 뒤 우리나라 우익단체에서 그런 강연하는 탈북자들도 떠올랐어요. 스탈린(주의)에 반대하는 것이 우익들에게 이용되었던 당대 현실(그리고 요즘도)이 마음 아플 뿐입니다.
사람은 자기 사는 곳을 벗어나 객관적으로 사고할 수가 없는 존재라서요, 슈호프보다 책을 읽는 우리가 수용소 안의 생활이 얼마나 비상식적이고 끔찍한 것인지 더 잘 알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만일 그렇다면 지금 우리도 적응을 해서 모르는 거지, 타자의 눈에는 우리가 수용소에서 사소한 것에 분노하고 만족하며 사는 죄수들로 보일 수도 있겠죠.
호레이쇼 / 그 적응이라는거.. 꼭 수용소가 아니라도 어디에서도 마찬가지 인것 같아요... 결혼 생활도 그렇고 직장 생활도 그렇고... 저도 어떤 '상황'에 빠져들면 그게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닌걸 알면서도 잘 빠져나오지 못하는 면이 있어서 그런 상황이 공감이 가기도하고 답답하기도하고 그렇더라구요. 제가 주로 잘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을때 주로 저를 가로 막는 논리는 제가 어떤 인간적인 배신을 하고 싶지 않다는것이긴한데 남들은 그게 무슨 배신이냐라고 바라볼만한 그런 상황인 경우가 조금 있었거든요. 시야가 좁아진다는게 그래서 참 무서운거겠죠.. 사이비 종교 같은것도 그렇고...
인간은 사회를 벗어나서 사고할 수 없다는 말 정말 동감해요. 문득 오늘 낮에 일본 어떤 가수가 혼전 임신을 했다고 나온 기사를 읽은게 떠오르네요. 그게 뭐 대수라고.. 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저도 불과 10년 정도 전만해도 대수라고 생각했던것 같은게 아이러니지요. 요즘은 주변에서 결혼할때도 반쯤은 혼전 임신상태로 결혼하는 느낌이고 그렇게 결혼해서 너무나 행복하게 잘사는 사람들도 많고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젊은 나이에 일찍 아이들 다 키워놓아서 부럽다는 생각도 들어서 도저히 그게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는데 말이죠.. 비슷한 예로 1998년 경에 주변에 어떤 분이 여자가 2살 연상이라는 이유로 집안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결혼직전에 결국 파혼한걸 보았는데 그 후 10년도 안되어서 연상이 그다지 별게 아닌게 된 분위기도 느꼈구요. 상황논리는 참 무섭기도하고.. 그 상황 논리에서 잘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기도하고... 그래도 자신만의 어떤 절대적인 기준 같은건 있는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하다못해 그 어떤 절대자라도 살인만은 안된다 라는 기준 같은게 있었다면 일본 옴진리교 사린 사건 같은건 안일어나지 않았을까 뭐 그런 생각이요.
군대, 감옥 아니고 집에서 일하는 주부도 마찬가지더라구요. 한 십 여년 집에 틀어박혀 살다보면, 제가 덜떨어져서 그런 것도 있겠습니다만, 어느새 사회로부터 고립되는데 하루의 낙이 삼시 세끼와 간식인 날들도 허다해요. 이 책 읽으면서 수용소 얘기이지만 역시 명작답게 요즘 우리 사는 얘기의 은유로 읽어도 아무 무리가 없구나 했어요.
최근 소개받은 책중에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이 있는데 저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갔는가에 대해서 정신과 의사이자 아우슈비츠 수용자였던 저자가 쓴 책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정말 지옥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곳이지만 그런 곳에서도 사람들은 소소한것을 보며 즐거워하고 그런것들에 위안을 받으며 삶을 유지해나갔다고... 이반 데니소비치의 사소한 기쁨을 보며 누군가 이 책 소개해준게 떠올랐어요.
호레이쇼 / 아 그런 결론일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읽은게 아니고 누가 그런 소재를 다뤘다고 이야기해준걸 들은거라서요. ^^; 결론이 어떤식인지는 모르고 비슷한 상황 묘사가 있는 책인듯해서 떠오른건데 그런 방향이라면 저희가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결론적으로는 비슷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시간나면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하긴 씁쓸하긴 하지만 그런 식으로라도 자신이 처한 상황의 한계 속에서 만족을 찾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을 것 같네요. brunette님 말씀대로 저도 이 책이 한 시대의 특수한 상황을 뛰어넘어 보편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 문학적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한데 군대나 가정에서의 불안감은 오히려 그 상황에 처한 본인이 실제보다 더 크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군대 다녀온 친구들한테 들은 이야기중 하나로 훈련소에서 처음 몇일간 TV도 신문도 없이 보내는데 조교들이 농담으로 요즘 서울에서는 새로 이층버스가 다닌다 (이층버스 없던 시절;) 라고 하니 다들 정말로 믿었다는 이야기도 있었거든요. 세상은 그리 바뀌지 않았는데 자신이 단절되어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바깥 세상에 대해 과도하고 불안감 같은걸 느끼고 조금 터무니 없는 이야기도 믿게 된달까요.. 뭐 이것도 어떤 면에서는 좁은 세상을 살았기 때문에 사고가 좁아진 거라고 볼수도있겠네요.. 어떤 본질적인 부분, 갇혀지낸 시간에 대비해서 본질적으로 달라지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 존재하는데 시야가 좁아졌기 떄문에 다른 사람들이 하는 조금 터무니 없는 말도 믿게되는거라고보면... 흐음 그렇다면 역시나 어떤 면에서는 본질적인 어떤것에 대한 믿음 같은것도 중요할지도 모르겠군요.. (말을 하다보니 이랬다 저랬다;; 처음엔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말을 하다보니 같은 이야기인가;;)
레옴/ 저도 예전에 라디오에서 그 비슷한 책소개를 들은 기억이 나요. 이제껏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의 증언이나 회고록은 죽음과 비참, 고통과 절망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그 소설은 수용소 안에서도 행복, 웃음, 햇살, 희망이 존재했다고, 그런 것 없이 인간은 생존할 수 없는데 아우슈비츠라고 예외는 아니었다는 식의 내용으로 기억하는데 당췌 제목을 모르겠어요.(긴급듀나인!) 저도 이건가 싶어 <죽음의 수용소에서> 책설명을 보긴 했는데, 잘 모르겠어요. 그런 극한 상황에서 자살하지 않고 계속 살아가려면 어떤 의미라도 찾아야해서 거기 수용되어 있던 한 정신과 의사가 '로고테라피'란 걸 창안했다는 얘기라고 하던데, 제가 찾는 책은 아닌 것 같아요. 제가 한창 우울해할 때 친구가 권했던 책이긴 한데, 옮긴이 이시형박사에서 걸려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읽고나서 다른 수용소 얘기들도 궁금해져서 찾아봤는데 저는 프리모 레비의 <지금이 아니면 언제>와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읽어보려구요.
뒷부분에 가면 가끔 달 얘기 나오잖아요(민음사판 134쪽, 178쪽). 백남준씨가 그러셨던가요, 고대인들한텐 달이 비디오였다고. 그 삭막한 와중에 하루 노동을 끝내고 숨 고르며 달과 별을 쳐다보는 장면들이 있어서 좋았어요. '냉랭'하다고 묘사된 태양에 비해 훨씬 따뜻한 인상을 주는 달이었어요. 그리고 온갖 강제와 길들이기용 수법들엔 짜증이 났지만, 그것들을 제한 노동 자체는 이 소설에서 가장 활기차게 묘사된 점도 좋았구요. 벽돌쌓기 일을 앞에 두고 다른 번다한 모든 것을 잊은 채 오직 벽쌓기에만 몰두하는 슈호프의 모습에서 독자로서 조금 숨을 돌렸던 것 같아요. 소설이 담담한 척 하면서 실은 되게 센 얘기들로 밀어붙이는 느낌이었는데, 그 노동 장면에서는 그래도 좀 살 것 같았어요. 그리고 팔 년간의 수용소 생활도 그를 타락시키진 않았다는 얘기, 그리고 식당에서 옆에 앉았던 그 꼿꼿한 노인(우리나라 비전향장기수가 연상되지 않던가요) 얘기도 몇 줄 안 되지만 인상적이었구요.
슈호프가 열정적으로 벽돌쌓기 하는 부분이 우습다거나 결국은 이용당하는 것이니 어리석다거나 하는 식으로 볼 수 도 있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인간의 이런 모습이 본질적으로 긍정적인 모습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제가 이런식으로 생각하는 면이 있어서 스스로 참 보수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달보고 나가서 달보고 들어오는 일은 고등학교때가 떠올라서 -_-; 반복되고 단조로우면서 바쁜 일상 속에서 시간 변화를 느끼게 해준 다는 점에서 달이 반가운 느낌도 있긴하지만... 그것 역시 제한된 상황속에서의 즐거움과 여유이라...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어흑 문득 고등학교 생활도 비슷한 면이 있다 싶네요. 군대를 안가봐서 그런가; 회사 생활은 좀 편하게 했나봅니다; 자유가 없는 단절된 감옥 생활의 느낌이나 힘들고 어렵다는 생각은 아이 막 낳아 키울때도 많이 하긴했었는데 달보고 나가서 달보고 들어오는 그 느낌은 또 신기하게 그때랑은 다른점이 있네요.. 오히려 육아할때는 그런 저런 생각할 틈도 없었던것 같기도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