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망있는나찌
예전에 한나아렌트의 아이히만을 읽었을 때 생각이 나요. 매우 흥미로운 책으로 기억되는 게 읽으면 읽을수록 묘한 기분이 듭니다. 이 책을 쓰고 한나 아렌트는 굉장히 많은 비판과 공격과 비아냥과 오해와 절연 등을 당하고 엄청난 논쟁을 촉발했는데, 몇십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결국 '악의 평범성'에 대한 아렌트의 통찰로 인용되고 있는 것도 흥미로워요. 제가 느낀 건 아렌트가 일부러 비아냥거리는 문체를 썼는데 당시에는 그런게 이해될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도 같고요.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희대의 악마 괴물 등으로 이해되는 것을 막으려고 했어요. 사실 아이히만의 특징으로 반복해서 표현되는 '아무 생각없음'이 얼마나 큰 죄이며 악인지 아렌트는 잘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읽으면서 재미있었던 부분 몇개는 아이히만이 결국 잡혀서 수감되어서 죽기전인가, 감방 간수가 아이히만보고 시간 때우라고 그랬는지 불쌍하다고 그랬는지 당시 핫한 책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나보고프의 롤리타를 줍니다. 그걸 받아서 읽던 아이히만이 진심으로 분노해서는 어떻게 이렇게 불건전한걸 나보고 읽으란 말이냐능 하면서 다시 책을 돌려주죠. 또 하나는 아이히만의 허풍치는 기질에 대한 건데, 대단한 권력욕이라기보다는 조금 더 있어보이고 중요한 사람이고 싶어하는 욕망이외에 자기 가치관 같은게 없는 사람이 얼마나 위험한지 또 보여주죠. 아르헨티나 숨어 살 때 조용히 살았으면 안잡혔을 지도 모르는데 지가 지 아이히만이라고 말하고 다녔으니까. 당시 숨어있던 나찌들이 그렇게 지가 한 죄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기질이 있었던 걸 보면 또 참 기가 차기도 합니다. 아무튼 아이히만의 어린시절 학창시절 일화 같은걸 읽으면 별 대단한 위인도 못되고, 영화 속에 소름끼치는 악당 두목 같지도 않고, 참 찌질하고 별볼일없는 인간인 게 더 소름돋지 말입니다. 하지만 저 아이러니로 가득찬 '평범함banality란 표현조차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앞뒤 가릴 것 없이 분노스러웠던 상황을 미루어 볼 때, 친일파 같은 집단-그것도 너무 명백해서 머쓱할 정도로- 에 대해서 '덕망있는' 같은 표현을 더해주는 건 아무리 우리가 포스트 포스트뭐시기한 사회에 살고 있다고 쳐도 너무 무리한 시도인 것으로 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