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희랍어시간 _ 한강
저에게 있어서 한강은 '가장 치열하게 쓰는' 소설가입니다. 한강은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현학적인 취향을 늘어놓지도 않고, 삶에 대한 연설과 고상한 식견을 자랑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많은 소설가들이 인물들에게서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는 관찰자적 입장을 고수할 때, 한강은 인물들의 삶이 처한 상황과 그들의 느낌 그 자체에 뛰어들어 그것을 가장 생생하게 건져올리는데 집중합니다.
'희랍어시간'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기척'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자는 음성을 잃었고 남자는 시각을 잃었습니다. 소설 속에서 두 인물들은 각자의 과거의 기억을 끊임없이 회상하는데, 그 방식은 언어를 통한 설명이 아닌 감각을 통한 묘사입니다. 소설은 내내 이들의 내면과 이들을 둘러싼 이미지를 묘사하며 이어집니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시에 가깝습니다. 내러티브보다는 각 인물들의 내면과 감각에 대한 묘사가 소설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는 분들에게 이 소설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다만 각 인물의 과거의 감각들을 추적하며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작가의 섬세한 묘사와 표현들에 집중하는 것이 이 소설에 대한 적절한 접근일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요즘 일하면서 숫자들과 합리적인 설명들에 치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술술 잘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힘겹게 마지막 페이지까지 마치고 나서 느낀 점은 둔해진 감수성에 대한 자괴감이었습니다. 자책하기에는 이 소설이 너무나 섬세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