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주, 달려라 정봉주, 개념판사와 막장판사

1.

 

오늘 정봉주 의원이 수감되겠군요. 솔직히 전 나꼼수 전까지 이 사람이 누군지도 몰랐습니다. 꼼수를 듣고 있는 지금은 재미있는 사람, 의욕있는 사람이라고는 평가하지만, 정치적으로 본인의 깔때기마냥 ‘위대한 정치인’ 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의 팬도 안티도 아니니 그 개인이 수감되거나 무죄가 되거나는 저에겐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전에도 밝혔듯이 이로 인해 공적인 사안에 대한 공개적인 의혹제기가 매우 심하게 위축될 것이라는 것이 아쉽습니다. 정의원 본인도 사람이니만큼 후회할지도 모르죠. 이럴거였으면 면책특권 범위 내에서만 발언할걸 그랬다고 말이죠.

 

2.

 

그 정봉주 의원이 쓴 <달려라 정봉주>를 다 읽었는데... 정말 달리면서 썼나봐요. 미안하지만 별 내용은 없습니다. 의정활동 당시의 에피소드나 BBK 사건 등에 대해 풀어놓고 있긴 한데, 정치인의 깔때기 책이라기엔 본인에 대한 소개가 부족하고, 내용을 보기엔 깊지 않고요. 덕분에 쉽게 읽히긴 합니다.

 

경력이나 깊이나, 책을 읽어보고나니 정봉주는 정말 열린우리당이었기 때문에 출마할 수 있었고, 탄핵 덕분에 당선될 수 있었던 이른바 ‘탄돌이’가 맞는 것 같습니다. 그 자체로는 사실 좀 부정적인 말입니다만, 이후의 실적에 따라 충분히 덮을 수 있는 이미지이기도 하죠. 누구 못지않게 존재감을 어필했으니 개인적으로 힘들긴 하겠지만 이번 수감이 정치적으로는 자산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탄돌이를 넘어서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죠. 그렇다고 수감된 게 잘됐다는 건 물론 아닙니다만.

 

3.

 

우리가 ‘사법부’라고 눙쳐 부르는 존재는 사실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모두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검찰과는 달리, 판사 개개인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사법부는 하나의 판결을 두고 ‘사법부는 살아있다’ ‘사법부가 죽었다’라고 표현할 수 없는 존재죠.

 

심지어 한 사람의 판사만 놓고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이번에 잘근잘근 씹히고 있는 이상훈 대법관만 해도 서울고법 부장 시절엔 PD 수첩 제작진의 농림부 공무원 명예훼손 행위에 대해 무죄판결한 사람입니다. 도가니 사건에서 항소를 기각해 가벼운 형을 확정시켜줬다고 엄청 씹혔던 이혜광 판사(현재 변호사) 역시 삼성에버랜드 편법증여 의혹에 대해 집행유예를 달긴 했지만 에버랜드 사장과 전무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고, 쓰레기만두 사건을 무죄판결하기도 했으며, 촛불집회 주최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적도 있습니다.

 

개념판사라는 사람들도 그렇죠. 최근 화제가 된 창원지법 이정렬 판사는 사실 예전부터 워낙 유명한 양반이죠. 지금 이 사람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은, 이 사람의 다른 판결을 들이대면 얼굴이 일그러질 수도 있어요. 내기골프에 대해 ‘골프는 운에 의해 결정되는 도박이 아니므로 내기골프는 무죄’라고 판결하기도 했고, 고법 배석 시절에는 그 유명한 성균관대 김명호 교수의 ‘석궁 테러’의 원인이 된 판결에도 참여해 김명호 교수의 패소를 판결했습니다. 석궁에 맞은건 이정렬이 아닌 당시 부장이었던 박홍우였지만요.

 

판결에 대해 비판하는 건 얼마든지, 심지어 꼭 법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특정인을 ‘개념판사’ 혹은 ‘정치판사’ ‘막장판사’라고 이름붙이는건, 훨씬 더 신중히 생각해봐야할 일이겠죠. 당장 보수신문들은 과거 PD수첩 판결 때 진보진영에서 이상훈 당시 부장을 칭찬했던 것을 들이대며 놀려먹고 있으니까요. 특정 판사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훨씬 지난 이후에나 종합적으로 가능할겁니다.

    • 3. 당연히 검사 동일체가 아직도 유효한 검사들과 달리 개별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판사들을 뭉뚱그려서 사법부가 어떻다고 말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특정 사안에 대해 판사 개인을 욕하는데 있어서, 그 사람의 모든 히스토리를 꿰고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욕할 필요가 있나요? 그냥 지금 이 순간 마음에 안들면 나오는게 욕인데. 이런 저런 딱지를 붙이는 게 불합리해 보일 수도 있고, 해당 판사는 억울할 수도 있지만, 그냥 그 딱지는 욕의 하나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저런 욕도 못하면 어디다 푸나요.
    • Gillez Warhall /

      판사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구체적인 증거없이 그 사람의 의도를 함부로 재단해서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판사든 대통령이든 연예인이든 욕들을 하긴 하지요. 그렇다고 그게 합리적이거나 마땅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3번에 동의합니다.
      이상훈 부장판사 입장이 아주 재밌게 됐어요. PD수첩 땐 한나라당 지지자들에게 몰매를 맞고 이번엔 저쪽에서 몰매를 맞고..
    • 막장이든 개념이든 모든게 판사의 고심어린 판단의 결과라고 믿고싶습니다만 신속했던 과정, 판결시점이 아무리봐도 정치적 입김이 들어갔다는걸 부인하기 힘들어서 그렇죠.

      그나저나 지저분한 판례하나 생겨서 후학이 아리송할껄 생각하니 답답하군요 특정한명만 유죄라...
    • ㄴ 저도 동감입니다. 판사가 법리로 판단하는 게 일반인의 상식적인 판단과 다를 수 있겠지만 이 건은 솔직히 그런 재고의 여지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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