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채용 확대에 대하여..

전부터 은행권 중심으로 말이 있었고, 대통령이 신년 연설에서 또 이야기한 모양이네요. 공공기관 취업 일자리 중에 특정 쿼터를 고졸에게 주겠다고. 학력, 학벌로 인생 승부가 끝나는 상황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건 뭐 당연한 이야기입니다만,  이게 맞는 방향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너무 섣불리 예측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아마도 공공기관들이 고졸 티오를 따로 책정한다면, 별도의 직급을 설정할겁니다. 이미 많은 공공기관들은 채용할 때 대학 졸업장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대졸자라고 해도 출신 학교와 학점을 나타내지 못하는 곳도 있지요. 서류에는 학력 이야기를 못쓰게 하고, 학력에 관련된 각종 증명서를 최종 합격자만을 대상으로 받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진행해보면 고졸자가 '실제로' 뽑히는 경우가 드물고, 그래서 결국 쿼터를 배정하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온 겁니다. 그런데 기존의 공채 틀 안에서 고졸에게 특정 쿼터를 배정해 합격시키고 대졸자와 똑같이 대우하면 오히려 대졸이 역차별당하는 현상이 생기니(고졸이라는 건 불이익은 안받아야 할 지언정, 국가유공자처럼 우대받아야 하는 신분은 아니니까요), 이걸 해소하려면 고졸을 위한 '낮은' 직급을 하나 만들어서 그리로 공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뭐 일단 고등학교만 나와서 이름 대면 알만한 공공기관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할지 모르지만... 이거 몇 년 지나면 과연 어떨까요. 조직 내에서 이런 '태생이 다른' 직원들의 갈등은 아주 관리하기 골치아픈 문제입니다. 군대에서 사병과 부사관, 장교 간의 미묘한 갈등 생각해보시면...

 

지금의 이른바 '열린 채용' 시스템이 고졸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보통 필기시험에서 승부가 갈리는데, 그 과목들이 경제학, 경영학, 법학 뭐 이런거니까요. 고졸들은 이런 과목들을 깊게 접할 기회 자체가 없었습니다. 아예 대학 포기하고 이 공부를 했다면 모를까, 대충이라도 관련 전공을 한 대졸 전공자들에게도 밀릴 수밖에 없죠(물론 대충 전공한 대졸들은 작정하고 공부한 대졸들에게 밀리겠지만). 그래서 고등학교만 나와서 공공기관이라는 좋은 직장을 갈 수 있는 길을 '정말' 열어주고 싶다면, 차라리 필기시험 과목을 고등학교만 성실하게 나와도 잘볼 수 있는 과목으로 하거나, 시험지를 A형(대졸에게 유리한 과목들)과 B형(고졸에게 유리한 과목들)으로 나눠놓고(난이도 조절이 어렵겠지만) 자신있는 쪽으로 치게 하는게 낫지 않나요? 대졸자에게 유리한 과목만 펼쳐놓고 "고졸도 쳐도 됨"이라고 하는 것도 말장난이고, 그렇다고 고졸용 B급 직급으로 뽑는 것도 그냥 생색내기일 뿐, 오히려 조직에 해가 될 것 같아서 말이죠.

    • 음...전 잘 모르긴 하지만 마지막 문단에서 말씀하신 내용이 요새 뉴스로 뜨고 있는 9급시험에 고교과정 과목 넣겠다는 내용과 같은 것 아닌가요?
    • 학력과잉 문제는 공감을 하는데 저도 채용에 한 발 걸치고 있는 입장에서 지금과 같은 상위하달 푸시식 채용은 뭔가 문제가 될 거라고 봅니다. 이대로라면 조직에 해가 되긴 됩니다...
      - 안 그래도 이 때문에 지금 머리를 짜고 있는데 역시나 문제는 예산인 것 같습니다. 이것만 해결되면 사규고 뭐고 몽땅 위원회 소집해서(1년차가 간뎅이가 부었군..) 어떻게 확 해버리겠구만..
      이 쪽 회사는 주무직을 장기무기계약직으로, 그 후 정규직으로, 그리고 고졸을 주무원으로 하는 에스컬레이션 체계를 정비해 가고 있습니다만 모든 기관이 이런 식으로 정비를 일괄적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일부 기관에서 정규직 할 일을 일용직 시키는 편법을 쓰고 있는데 현재의 고졸채용은 이 문제'만'을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이란 생각이 들고....

      당장의 눈앞에 보이는 결과보다는 10년 정도 장기 프로젝트로 어떻게든 시스템을 바꿔야 할 것입니다. 재료를 바꿔 봐야 오븐 자체가 개판이면 음식도 어차피 개판이니깐...
    • 제가 알기로 원래 9급은 고졸, 7급은 대졸들이 지원을 하던 직급 아니었나요. 그렇다면 현재 9급 대졸자는 자기 학력보다 낮은 대우를 감수한 것인데요. 거기서 또 따로 고졸자용 직급을 따로 만들 이유가 있나요?
    • 가라 / 공무원 기준으로는 법적인 건 아니지만 통상적으로는 말씀하신대로 7급은 대졸, 9급은 고졸이 쳤었죠. 대졸 중에 자신 있으면 5급 행시 치는 거고. 근데 대졸자가 많아지고 취업이 힘들어지면서 요즘은 대졸자가 9급으로 치는 사례도 많고, 그래서 고졸자가 9급에 합격하기도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 식으로 고졸 티오라고 여겨지던 것들이 대졸에게 잠식당하자, 이번에 정부에서는 아예 대졸은 배제하고 고졸만을 위한 티오를 확보해주는 식으로 "대학 꼭 갈 필요 없고 고졸로도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하려는 거고요. 즉 낮은 대우를 감수한 대졸을 배려하는 게 아니라 그 대졸들한테 밀려난 고졸들을 살려주려는 거지요.
    • DH / 그러니까요. 낮은 대우를 감수한 대졸자의 역차별을 방지하기 위해 고졸자를 위한 직급을 추가로 만들어야 한다는 본문글을 보고 의아해서요.
    • 아 제가 본문에서 얘기한 케이스는 기존의 공채를 실시하면서(대졸이나 고졸이나 붙으면 같은 직급 같은 대우), 특정 쿼터는 무조건 고졸로 합격시키는 식으로 티오 배정을 했을 때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고졸보다 더 나은 성적을 얻은 대졸이 떨어질 수 있으니 역차별 논란이 생기죠. 그걸 막으면서 고졸을 어느 정도 뽑으라는 정부 방침을 따르려면 고졸만 칠 수 있는 별도의 직급을 만드는 게 일단은 편할테니까요.
    • DH / 일부 실시되고 있는 여성채용쿼터제도 있고 초등학교 남자교사가 모자란다며 남자교사 채용 쿼터제 얘기도 나오는걸요. 성별 쿼터제가 가능하다면 학력쿼터제가 안될 이유는 없다고 봐요. 실제로 사기업에서 생산현장직은 4년제 대졸자는 아에 응시가 불가능한곳이 대부분이구요. 이것도 역차별이라고 할수 있겠지만 현실인걸요.
    • 가라 / 이야기가 다소 엇갈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일단 회사에서 고졸 오라고, 대졸보다 낮은 대우를 예정해놓은 특정 직급에 대졸자는 아예 못오게 하는 것은 제가 말하는 '역차별'의 범위에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다만 동일 직급에서 채용하면서 예로 드신 여성채용목표제처럼 고졸채용목표제를 도입해서 성적이 딸리더라도 고졸을 뽑아주고 대졸과 같은 대우를 하는 제도를 도입하면 역차별이 생길 것을 걱정하는 거고요. 여성의 경우야 헌법에서 특별히 보호의 대상으로 하고 있고, 본인이 여성인 것에 본인의 귀책사유가 1%도 없는데다, 역사적으로도 수많은 차별을 받은 대상이니 보호가 필요하다는 논리가 먹혔는데, 고졸이 그와 같은 수준으로 보호해야 할 사회적 계층인지는 좀 의문이죠.
    • DH / 논리야 개발하기 나름이죠. 현재 학력인플레로 인한 취업난 및 사회적 손실-당장 학업에 뜻이 없는 젊은이들을 2~4년씩 학교에 돈써가면서 적을 두게 하는 것부터 해서..-을 없애기 위한 한시적인 쿼터제라고 할수도 있구요. 물론, 대졸 9급 응시지원자들은 들고 일어나겠지만, 군가산점제 폐지이후 몇년을 아무 보상도 없이 시간만 끌고 있는 정부를 보면 그정도야 가뿐히 무시해 주시겠죠.
    • 고졸채용 정책에 따라 지금 제 옆자리에서 정해진 미션을 척척 해내며(들어온지 3일째밖에 안됐어요. 일 자체가 단순잡무도 아니고요.) 일해나가는 이제 갓 스무살 된 직원을 보고 있자니, 이 게시물이 참 위화감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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