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야그] 비키니 논쟁
비키니는 현대 문명이 낳은 대표적인 수영복입니다만... 그 전부터 옷감을 대단히 절약한 의복은 로마시대 때 모자이크 벽화에서도 발견됩니다. 하지만 차츰 여성의 몸 노출은 금기시 되었고 수영을 해도 옷 다 입고 몸 적시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1878년의 수영복에는 벨트가 달려있었지요. 스타킹도 신었습니다. 하지만 나일론의 개발, 그리고 무엇보다 수영에 편리하기 위해서라는 몇 가지 요소가 결합되어 몸에 딱 달라붙는 원피스 수영복이 나타나게 됩니다. 여기에 루이 레아가 처음 핵실험이 시행된 비키니 환초의 이름을 따와 1946년 처음 선보였습니다. 당시 아무 모델들도 이걸 입으려 들지 않아 파리의 카지노에서 일하던 누드 댄서에게 입혀서 선보였다지요.
이 옷이 처음으로 선보이자 - 뭐 당연히, 세상은 시끌시끌해졌습니다. 당시 표현을 빌자면 "몸의 일부를 살짝 감쌌을 뿐 벗은 거나 매 한 가지" 였지요.
이 파격적인 수영복에게의 반발은 대단했습니다. 한 동안 여러 나라에서는 금지되었거든요. 미국에서는 어떤 주부가 비키니 차림으로 정원을 다듬다가 고소당한 일도 있었고, 여대생들이 비키니 입고 학교 분수대에서 놀다가 옷이 흘러내리는 사고(...)가 벌어져서 금지 되기도 했습니다. 호주에서는 비키니 끈이 6.5cm 이하면 수영장에 드나드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포르투칼도 풍기문란을 이유로 금지했고 1970년 필리핀에서는 비키니 수영복을 금지하자 무려 500명이 비키니 차림으로 가두 시위를 벌이기도 했지요.
그리고 이런 반발 만큼이나 사람들 반응은 열광적이었습니다. 그만큼 사건 사고도 많았지요. 돈 내기 걸었다고 비키니 차림으로 비행기를 타기도 하고, 비키니 차림 사진을 졸업논문 앞에 실렸다가 빠꾸 먹기도 하고, 제일 어이없는 사건은 76년도 호주에 있었지요. 당시 호주 수상이던 프레이저와 20여명의 국회의원들이 국회 의사당에서 축하파티를 벌이게 되었습니다만. 원래 계획은 커다란 케이크를 갖다놓고 축하하면 그 안에서 비키니 차림의 아가씨가 나와 깜짝! 을 하기로 했었다죠. 뭐 이것만으로도 그렇습니다만. 문제는 이 아가씨가 케이크 속에서 튀어나온 것 까진 좋았는데- 그 자리에서 '합의되지 않은' 스트립쇼를 했다는 데 있지요.
지금이라면 이런 쇼를 한다는 것 자체가 도덕적인 비난을 받을 법도 하건만, 그 땐 그랬답니다. 웬지 얼마 전에 있었던 사건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우리나라도 이런 유행의 물결을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 63년에는 "비키니라는 망측한 꼴이 외국에서는 유행이지만 전통있는 우리나라는 아직 그런 물결이 휩쓸지는 않았다!" 라는 기사가 있었지만,
그 즈음, 어느 신문기자 분이 회고한 것에 따르면 어느 날엔가 하와이 이민 2세대의 특파원이 비키니를 떠억 입고 회사에 나왔댑니다. 그걸 본 회사 사람들은 발칵 뒤집어졌다기 보다는... 뭐 딱히 우와 멋있어 내지 섹시해가 아니라... 그 기자의 표현에 따르면 '숙연'해졌댑니다. 물론 입은 당사자는 태연했다고.
그렇게 국산 상어표 비키니를 생산하기도 했고, 1966년 즈음에는 해운대 광안리 앞에서 비키니 수영복 차림의 여성이 버젓하게 등장합니다.
헌데 1970년 즈음에 경범죄 처벌법이 등장했지요. 여성의 배꼽과 젖꼭지, 둔부를 드러내는 것을 금지하여 경찰들이 미니스커트의 길이를 재는 자를 들고 다니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비키니 수영복은 어쩌게? 그것도 배꼽이 나오는데? 하지만 이건 수영복은 수영복, 수영장에 있는 건 괜찮아도 바깥으로 나오면 처벌이었습니다. 경범죄 처벌법은 "건전한 상식"으로 분별할 수 있는 걸로 해석되었으니까요. 여기서 말하는 건전이란 게 참 엿장수 맘대로이긴 했습니다만.
그러다 75년, 한 여성이 비키니 차림으로 소양댐에 놀러왔다가 경찰에게 붙잡혔습니다. 죄목은 과대노출. 하지만 이 여성은 당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요즘 유행이 어떤 건지나 알아!"
하면서 호통을 치다가 끌려갔고, 훈계 좀 들은 다음에 풀려났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옛날 생각과 새로운 생각들이 충돌하는 지라, 70년대 즈음 해수욕장 근처에 사는 농촌 사람들은 제발 해수욕장 손님들더러 '옷 좀 입고 다니게 해라'고 진정서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당시 바다와 가깝다는 이유로 수영복 차림으로 버스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꽤 되었다네요. 그렇지만 "뉘집 자식인데 저래도 되나." 하고 비키니 차림의 사람에게 훈계 했다가 싸움이 벌어지는 일도 꽤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발표된 직후 세계를 뒤흔들었던 비키니 수영복은 나름 익숙한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고, 그래서 별 게 아닌 것 처럼 흔해진 것도 같습니다만. 여전히 비키니 수영복은 섹시함의 대명사이지요. 옛날 학교 앞에서 몇 백원 주고 팔던 칼라 사진에도 비키니 여성의 사진은 꼭꼭 있었으니 말입니다.
이번 어느 여성분이 수감된 정봉주 전 의원의 응원 문구를 비키니 차림의 가슴에 쓰고, 그 전에 남자분들이 수영복 차림의 여성 사진을 부탁했고, 그리하여 여성분들이 "우린 진보의 치어리더가 아니다."라고 반발해서 일련의 소동이 벌어졌네요.
처음 비키니 수영복이 등장했을 때, 찬성하는 사람도 있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비키니의 찬반이 남녀별로 갈린 게 아니라... 뒤엉켜 있었다는 거지요. 해괴망칙하다고 싫어한 남자들이 있나 하면, 이 옷이야 말로 여성의 노출을 금기시하는 엄숙한 세상에게의 저항이라며 즐겨 입은 여성도 있습니다. 성별 뒤집어진 경우도 꽤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도 보수적인 기독교도 여성들은 비키니를 금지하는 시위도 벌였으니까요.
처음 비키니 수영복이 선을 보인 것은 프랑스에서였습니다만. 당시 프랑스를 방문했던 미스 아메리카 베베는 비키니를 보고 "프랑스 여자들이 입겠다면 안 말리겠지만, 우리 미국 여자들은 안 입을 거여요 'ㅆ' " 라는 깜찍한 말을 했드랩니다. 한편 이 비키니를 발명한 디자이너는 남성들에게 "고맙다"라는 감사 편지를 수도 없이 받았지요.
새삼스럽지만, 비키니 수영복을 보는 입장은 남/녀로 구분되는 게 아니라 참으로 다양하게 갈립니다. 비키니 차림으로 거리에 나서서 시위하는 사람 중에는, "이러면 사람 눈길을 끌어서 내 주장이 더 널리 퍼질 수 있으니까" 하는 효율성을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벗은 여성들을 보고 남자들이 히히덕 거리는 꼴을 보는 게 영 불쾌한 사람도 있거든요. 그런데 그냥, 벗는 게 좋아서 + 남자들이 열광하는 게 좋아서 입은 노출을 즐기는 여성도 당연히 있었습니다. 그걸 두고 뭐라고 하는 것은 그 여성의 자유를 침해할 수도 있어요.
...더 쓰고 싶지만 일이 생겨서 급히 결론으로 넘어가자면.
사실, 이 상황의 원인은 무지라고 봅니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자신이 내뱉은 말이 여성들에게 불쾌감을 준다는 것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다 싶습니다. 아마 처음으로 바다 끝에서 육지가 있다는 걸 처음으로 발견한 느낌일 거여요.
왜냐하면 남자들끼리만의 사회에서는 아주 당연한 것처럼 오가던 이야기였기에 처음으로 여성이란 존재가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되어 옆에 앉아있게 되니까, 그 여자들이 자신들의 음담패설을 불쾌하게 느낄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가 인스톨 되어 있지 않거든요.
앞서 이야기했던 호주의 수상에게 "신성한 국회의사당에서 여성의 성을 도구화한 축하연을 가진 것은 어째서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아마 눈을 동그랗게 뜰 겁니다. 우린 그냥 축하를 하려고 한 것 뿐이지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고 하겠죠.
마치 미국 드라마 웨스트 윙에서 섹시한 옷을 입고 나왔던 에인슬리 헤이스를 보고 샘 시본이 멋지다- 라는 표현을 독특하게 했다가 그게 성희롱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지적을 듣고서 당황하고 거듭 변명을 늘어놓은 것처럼요. 어쩜 그리 무신경하냐 싶지만 무지한 것은 죄가 아닙니다. 말했듯이 개념 자체가 없으니까요.
그러니 이번 논란이 시끌시끌하지만 꽤 의미있다고 봅니다.
목소리를 내서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는한, 그게 있었는지도 몰랐던 사람들이 꽤 되었을 겁니다. 페미니즘이다 쌈마이다 그런 발언들도 일리가 있긴 하지만 그 모든 사회 정의 및 기타등등에 앞서 화성에서 사는 사람과 금성에 사는 사람이 만나 "아, 그랬구나~" 를 거듭하며 대화를 나누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급한 일로 여기서 끊습니다. ㅠㅠ 존 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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