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도메이트의 은근한 무시에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르겠어요.

13명이 하나의 거실과 2개의 주방을 공유하는 기숙사에 살고 있어요. 밥을 해 먹다보면 자연스레 이웃과 가까워질 수 있는 고마운 주거형태이지만 싫은 이웃과도 매일매일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괴로운 주거형태이기도 합니다. 반년 간 그럭저럭 만족하면서 잘 살아왔는데 오늘 새삼 너무 화가 나서 잠을 자지 못하고 있습니다. 


1. 오늘 제 옆방 사는 오스트리아 청년의 생일이어서 코리도가 시끌시끌할 거라고 예상은 했습니다. 저도 생일 축하한다고 한 마디 해 주고 술 한 잔 얻어 먹었고요. 근데 지금 여기 시간이 새벽 4시거든요. 클럽 뮤직을 아주 귓구녁에다 스피커를 대놓은 것마냥 크게 틀어놓아서 잠을 잘 수가 없길래 방금 문을 두드렸습니다. 음악 소리는 바로 줄어 들었고, 오스트리아 청년의 미안해하는 듯한 얼굴도 봤지만 너무 짜증이 나서 잠이 싹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여기까지 썼는데 다시 음악 소리가 커졌군요. 무려 이중문인데요! 저는 쟤네가 문을 열어 놓고 파티를 하는 줄 알고 문이라도 내가 닫아줄까 싶어서 갔다가 문이 닫혀 있어서 한 번 당황하고, 문을 온 어깨의 힘을 다 해 두드렸는데도 반응이 없어서 한 번 더 당황하고, 문을 제 손으로 열고 안에 있는 문을 한 번 더 열었는데도 아무도 절 쳐다보지 않아서 또 당황했었어요. 지금 다시 문을 두드려봤자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문을 열고, 피곤한 얼굴을 기웃거렸을 때 한 둘은 음악이 너무 커서 그러냐면서 호스트를 불러주었고, 호스트는 잠을 못잤냐면서 미안하다고도 했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굉장히 innocent한 표정을 짓고 있었어요. 적절한 어휘를 찾지 못하겠네요. ? 가 머리 위에 하나 씩 떠 있는 표정이던데, 그 물음표를 '뭘 이런 걸 갖고 찾아오기까지' '같이 즐기면 되는 걸 왜 짜증을' 이라고 해석한다면 이거 너무 예민한 걸까요? 제 짜증에 대한 그들의 무지함에 너무너무 화가 납니다. 미안하다는 말도 곱게 미안하다는 의미로 들리지 않았거요. 당연히 그래야 하는 상황이라서 척추에 기록된 말이 튀어나온 것만 같습니다. 제가 잠을 자기 위해 짜증을 낸 게 제가 잠을 자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고, 앞으로 코리도 생활을 행복하게 하는 것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신경질적인 한국인 여자애가 되는 데에만 일조를 한 것 같아서 더 짜증나요. 이렇게 소용이 없을 줄 알았다면, 소용 없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신경쓰이는 일만 만들 줄 알았다면 소리 줄여달라고 부탁도 하지 않고 참았을텐데 이렇게까지 소용이 없을 줄은 몰랐어요. 



2. 짜증이 나기 시작하니까 겉잡을 수 없이 그간 있었던 일들에 대해 묻어두었던 감정들이 딸려올라옵니다. 1에 쓴 이야기는 코리도 파티에 대한 불만이었지만 사실 걔네가 즐거운 파티 애니멀이어서 불편할 때가 종종 있어서 그렇지 걔네 전부가 나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계속 문제가 되는 애들은 러시아 여자랑 걔랑 거의 신혼 살림을 차린 네덜란드 남자 커플이에요. 


굉장히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비아냥을 당해왔는데, 그게 콕 찝어서 뭐라고 말하기도 애매할 정도로 소소하고 눈에 뜨이지 않는데다가 그걸 갖고 시비거는 것도 참 우습다고 생각해서 참아왔어요. 눈치 채기도 힘들게 절 비웃거든요. 


예를 들면 이런 거에요. (*러시아=러시아애/더치=네덜란드애/이집트=이집트애)

제 취미가 요리거든요. 주방이 공동이다보니까 코리도메이트들에게 항상 요리하는 모습을 목격당하게 되는데, 하루는 제가 오후 일곱시에 잠에서 깨는 바람에 새벽 두시에 점심을 먹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그 때 클럽에서 놀다가 온 러시아랑 더치랑 이집트에게 요리하는 모습을 들키고 맙니다. 이집트가 크게 야 쟤 봐, 지금 금요일 밤 이 시간에 요리를 하고 있어! 라고 외치고, 러시아는 더치에게 자기 배고파? 내가 요리해줘? 라고 큰 소리로 물어보고, 더치가 지금 이 시간에 밥은 무슨 씨발 잠이나 자자라고 크게 대답을 하고 자러 들어갑니다. 물론 저한테 직접 말을 걸지는 않아요. 


바로 몇 시간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어요. 저는 오스트리아가 오늘 생일인 줄도 몰랐어요. 일본애랑 차를 한 잔 하기로 해서 차를 들고 걔 방으로 가고 있었는데 라트비아가 오늘 오스트리아 생일이라고 술 한 잔 하자 그러더라고요. 생일이라는데 카드라도 써야지 싶어서 급한 대로 포스트잇에 생일축하한다고 나중에 밥해주겠다고 썼어요. 오스트리아가 이번 달에 우리 코리도로 이사온 거라서 걔를 잘 모르기도 하고 좀 친해지고 싶기도 했거든요. 오스트리아가 포스트잇이나마 생일축하 카드라서 기뻤는지 엄청 좋아하면서 고맙다고 절 안는데, 그 때 더치가 한 마디 하더라고요. "아 그거 코리도 미팅 또 미루자고 하는 메시지야?" 쟤네가 맘대로 코리도 미팅 날짜를 잡아뒀길래 제가 참석하지 못할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포스트잇에 써서 미팅 날짜를 적어 놓은 페이지에 붙여놨었거든요. 그게 또 웃기다고 러시아가 자지러지게 웃는데 저는 처음에는 무슨 말 하는지 몰랐다가 뒤늦게 이해하고 얘네가 나 또 비웃었다는 걸 알았네요. 이번에도 직접 저에게 말을 걸지는 않습니다. 


한 번은 제가 여행에서 돌아왔는데 제가 제 개인용 서랍에 넣어 둔 칼이 없어졌습니다. 제 취미가 요리라는 걸 다시 말씀드리면서.. 코리도 물건들이 대부분 공용이지만 그 칼은 제가 한국에서 자취할 때도 사용했던 제 개인 칼이거든요. 일단 제 서랍을 열었다는 데에서 화가 났지만 코리도에서 물건 없어지는 건 일도 아니어서 일단 침착하게 코리도 문에 혹시 내 칼 빌려간 사람 있느냐고, 내가 이 칼 없이는 요리에 집중을 할 수 없으니 갖다놨으면 좋겠다고 애교있게 눈물짓는 곰돌이 그림도 하나 그려서 쪽지를 붙였어요. 물론 그 칼이 어떤 칼인지 알 수 있도록 칼집도 쪽지 옆에 붙여놓았습니다. 일주일 뒤, 그 칼집에 칼이 꽂혀있더라고요. 굉장히 offensive 했지만 아무튼 칼을 찾았으니 와 나 칼 찾았다 신나!! 라고 외치면서 주방으로 들어가는데 러시아가 더치랑 같이 요리를 하다 말고 쿡쿡쿡 웃더라고요. 아 심증이 뽝 옵니다. 역시 제게 말을 걸지는 않습니다.


이 외에도 제 수납장에서 사라진 라면이 코리도 테이블 위에 태연하게 놓여있길래 그 당시 쇼파에 앉아 밥을 먹던 러시아에게 이거 누가 갖다놨는지 봤냐고 물어보고 니꺼면 그냥 다시 가져가면 되잖아? 라는 대답을 들었던 기억, 새로 사다 놓은 요거트가 통째로 없어졌길래 더치랑 러시아 있는 앞에서 도둑의 손목을 잘라버리겠다고 일본애한테 말을 하자 더치가 호탕하게 웃으면서 그거 내가 그런 것 같다고 새로 사다놓겠다고 말 하고 일 주일 뒤에 사다놓았던 기억, 더치가 파티를 벌인 후에 싱크대에 설거지거리가 이주일 넘게 쌓여있었는데 결국 못참고 치워놔더니 러시아가 그거 아마 코리안이 한 짓이라고 말했다고 일본애한테 건네들은 기억, 등등 아주 더러운 기억이 많이 있지만 정말 잘도 참아 왔네요.


근데 이런 사소한 무시, 내지는 비아냥, 내지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비웃음에는 도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걸까요?




길이 엄청 길어졌네요. 어느새 다섯시 십분입니다. 코리도가 완전 조용해졌네요. 한바탕 글로 쏟아내고 나니까 화도 풀리고, 잠도 오고 좋네요.

이걸 다 읽으셨다면 감사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한 마디씩 해 주시면 더 감사합니다. 

    • 아마 그 로씨야 여자랑 더치 남자는 님이 어리둥절하고 망설망설하는 걸 더 즐길 것 같습니다. 별거 아니겠거니
      하는게 더 커지고 그때 항변하면 이상한 사람되기 쉽죠. 혹 친한 메이트 있으면 지나가는 식으로 쟤는 내가 하는
      일마다 웃긴건지 왜 저래?..하는 식으로 한번 포지션 잡아보세요.
    • 비슷한 환경에서 몇년 지냈었는데 역시 제일 좋은 해결방안은 귀국(..). 그리고 지내는 동안은 되도록 신경쓰지 않는게 좋은거 같아요.
      어차피 '무시'라는 것도 상대방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을때나 기분 나쁜거지, 저런 것들한테 잘보여서 뭐해라고 마음 먹으면
      아무것도 아닌거구요. 맘에 맞는 친구들이랑 잘 지내면 되는거고 굳이 그렇게 모든 사람이랑 다 의좋게 지내려고 너무 애쓰지 마세요.
    • 그 러시안 찌질이, 혹시 인종차별주의자 아닌가요?
      제 경험으론 어떤 백인놈들은 대놓고 인종차별은 못하면서(왜냐면 다른 백인애들한텐 괜찮은 애로 잘보이려고 하기때문에) 은근히 저런 식으로 무시하고 괴롭히는 놈들이 있더라고요.
    • 아 정말 찌질이새*들... 작성자님 심정 너무 이해되요 저도 그런 적 있거든요
      좋은 조언 해드리고 싶은데 제가 더 모자란 사람이라ㅠㅠ
      정말 그런데서 음악소리줄여라 이런거 잘 안통해요 그냥 아예 같이 술마시거나 하세요 하지만 그 억울한 마음 너무 잘 압니다ㅠㅠ

      음악 소리 줄이라고 한 거 아 왜 그랬지 뭐 이러면서 자기가 한 일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저도 그러는데
      정말 손해에요 저 새$들은 눈치안보고 지들 편한대로 하는데 왜 내가 상식적으로 한 일까지 검열해요

      그리고 그렇게 설거지 쌓아놓는 거 정말 공인된 민폐인데 제대로 된 구성원들이라면 그렇게 한 놈들 다같이 막 쪽지로 경고하고 쪽줄텐데..이상하네요
    • 타보/ 항상 제가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dal/ 제가 이번 학기가 막학기라서 코리도메이트들이랑 잘 지내보기로 마음을 먹어서 더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 것 같아요. 쟤네들 있으면 다른 코리도메이트들이랑도 보기가 숨막히더라고요. 신경 안쓰도록 노력해봐야죠ㅠㅠ
      물빛/ 리투아니아 친구한테 더치가 나한테 이러이러해서 기분나쁜데 넌 내가 과민반응하는 것 같아? 이렇게 물어봤더니 자기도 더치가 자기를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그러더라고요. 애가 영 썩었나봐요.
      dlraud/ T.T 욕들으니까 속이 너무 시원하네요. 고맙습니다.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5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40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49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6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1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2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28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9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5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31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4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8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7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3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6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