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대한 반성, 한 가지 생각, 한 가지 의문

1. 글에 대한 반성

 

일전에 나꼼수 사건을 보고 "성희롱이 일상화된 나라"라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은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http://djuna.cine21.com/xe/3517734

 

그 때 글을 쓰고 며칠간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다가 이제서야 글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글에 적절하지 못한 표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위 글에서 우리나라에서 성희롱이 보편화되어 있으며, 성희롱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일반적인 한국 아저씨" 들이라고 지칭했습니다. 그런데 댓글을 통해 많은 분들이 지적하신 것처럼 많은 죄없는 아저씨들을 마치 잠재적 성희롱 범죄자인양 취급하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신중하지 못한 표현이었고 혹시라도 저 글을 읽고 불쾌하신 분이 계시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앞으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신중하겠습니다.

 

사족으로, 저런 신중하지 못한 표현에 대한 핑계를 대자면, 저 역시 한국 아저씨가 되어가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제가 속한 집단에 대해 자조적인 태도로 잘못된 표현을 함부로 사용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제 어느덧 30대 중반, 주변에서 벌어지는 많은 성희롱 사건들, 그것을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 저도 조직 내에서 크게 문제제기 못하는 현실... 뭐 이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자조적인 감정으로 인해 함부로 글을 썼습니다.

 

 

2. 한 가지 생각

 

오랜만에 듀게에 들어와서 보니 또 "공지영"관련 글이 게시판을 후끈하게 달구고 있네요. 그런데 이 사건의 주인공인 공지영과 무례한 트위터리안에 대한 비판/옹호의 논쟁의 중심에 두 주인공의 잘못에 대한 인식차가 있고, 그게 불필요한 다툼으로 번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번째 주인공인 공지영은 잘못된 통계수치를 인용했습니다. 논쟁에 참여하시는 대부분은 통계수치를 정정할 필요가 있고, 그릇된 자료를 사용한 것은 잘못이다는 인식은 공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잘못의 정도에 대한 판단이 상이하신 것 같네요. 설문조사에 참여해 보면 문항에 대한 답변이 "매우 아니다 - 아니다 - 보통 - 그렇다 - 매우 그렇다"는 식으로 구성된 경우가 많습니다. 공지영의 잘못에 대해서도 어떤 분들은 "잘못했다"고 판단하시고, 다른 분 들은 "매우 잘못했다"고 판단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두번째 주인공을 볼까요. 사정이야 어찌되었건 전 남편 이야기를 상대방에게 막 던지는 것은 상당히 무례한 행동입니다. 그 사람이 감추고 싶을 수 있는 사생활을 자신의 주장의 타당성을 입증하는데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죠. 두번째 주인공에 대한 판단 역시 "잘못했다"와 "매우 잘못했다"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두 가지 행동을 독립적인으로 바라보면 두 행동 다 철없는 짓입니다.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근거없는 수치를 인용하고, 또 남의 사생활을 들추어 내었으니까요. 저는 근거없는 수치로 인해 제3자가 충분히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위에서 반성한 것처럼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불쾌해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표현으로 인해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에 이상한 속성이 부여되는건 정당하지 않으니까요. 사생활을 들추어 타인을 공격하는건 두말할 나위가 없죠.

 

그런데 자신이 비판하는 쪽의 상대방을 옹호(쉴드치기)하려고 무리하다보니 논쟁의 감정이 더 불붙는 것 같아요. 공지영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무례한 트위터리안을 옹호해주기 위해 공지영의 잘못을 과대포장하는 동시에 공지영의 너무 큰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그런 무례한 말을 들을만 했다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반대로 무례한 트위터리안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공지영을 옹호하기 위해 공지영이 통계청 직원도 아닌데 단순한 숫자 실수가 무슨 큰 잘못이냐, 그 통계로 인한 불쾌감은 남성들의 집단주의 산물이다. 뭐 이렇게 말하기 시작하더군요.

 

어차피 우리는 사건 당사자가 아니니까, 두 주인공의 행동에서 어떤 잘못들이 있었는지만 파악하고 반성적으로 우리 삶을 되돌아 보는걸로 충분하지 않나요? 무리한 쉴드치기, 집단주의 드립 이런 것 좀 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한 가지 생각"입니다.

 

 

3. 한 가지 의문

 

다시 나꼼수 사건으로 돌아가서, 나꼼수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을 보면서 "대상화(혹은 도구화, 혹은 타자화)"라는 개념에 대한 의문이  생겼습니다.

 

제가 인상깊게 본 글은 24601님이 "비키니사진 헤어날 수 없는 수렁"이라는 제목으로 쓰신 글과, callas님이 "남자 뿐만 아니라 여자도 마찬가지"라는 제목으로 쓰신 글, 그리고 두 글에 달린 댓글입니다.

 

24601님 글:  http://djuna.cine21.com/xe/3523507

callas님의 글: http://djuna.cine21.com/xe/3523507

 

두 글 모두 이번 사건 자체보다는 그 이면에 있는 그릇된 인식에 대하여 문제제기 하셨습니다. 24601님은 여성을 수동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는 남성의 시각에 대하여 문제제기 하셨고, callas님은 여성 스스로도 여성을 도구화하는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해 주셨네요. 두 분의 문제제기는 모두 충분히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현실에 나타난 문제점만 지적한 것이 아니라 그 저변에 깔린 인식의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바로잡는 것을 촉구하는 글이니까요.

 

두 분 모두 문제를 바라보기 위한 기본 개념으로 "대상화(혹은 도구화, 혹은 타자화)"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두 분 모두 여성을 도구화하는 시각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을 하고 있죠. 저 역시 인격적 존재인 인간을 그 자체로 대하지 못하고 도구화시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도구화"라는 개념의 적용범위가 너무 모호한 것 같습니다. 무엇이 도구화이고 무엇이 도구화가 아닌걸까요?

 

남성의 식스팩 사진이 화제가 되고, 그에 대하여 멋지다는 시선이 있습니다. 이건 남성을 도구화하는 시선인가요? 특정한 연예인의 독특한 성격, 예를 들어 귀여움, 섹시함, 어리버리함, 쾌활함, 긍정적인 사고, 까칠함 등에 매력을 느껴 그 연예인을 좋아하게 된다면 그건 그 연예인을 도구화하는 시선인가요? 일상으로 눈을 돌려 보면, 주변의 어떤 여성이나 남성의 몸매가 너무 좋아서 그와 사랑에 빠진다면, 이건 또 도구화의 사례인가요?

 

도구화라는 개념을 꼭 성적인 매력에 사용할 필요도 없습니다. 회사에서 어떤 직원에게 업무능력이 좋다고 칭찬하는 것, 그리고 불특정 직원을 상대로 업무능력을 향상시키라고 독려하는 것, 그 독려를 듣고 업무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것.. 이런 것도 도구화인가요?

 

저는 처음에는 도구화, 대상화라는 개념에 기초한 두 분의 분석이 매우 설득력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개념이 이렇게 무한정 확장된다면 그건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대학교때 한 NL선배가 이쑤시개가 부러져도 미국탓이라고 강변하는 장면이 떠오르네요.

 

도구화의 개념과 적용범위가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는다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으로서 별 쓸모가 없는게 아닐까하는 "한 가지 의문"이었습니다.

    • 글 잘 읽었어요. 2번 글을 읽고 생각을 하게 되네요. 3번의 경우 전 구체적인 설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학교나 직장 등 공적인 자리에서 상대가 가진 선천적 조건만을 부각하는 건 위험하다고요. 그 사람이 맡은 일은 A인데 그 사람을 A가 아닌 인종, 나이, 성별, 국적, 부모의 조건 등을 더 부각하여 보는 건 경우에 없는 짓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 liece/ 선천적 조건, 그러니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를 더 부각하는게 잘못된 행동이라고 하셨잖아요. 그것도 충분히 일리가 있네요. 근데 최근 생물학 관련 책들을 보면 인간의 지능, 끈기, 사회성 이런 것도 일정부분 DNA에 새겨진 정보에 영향을 받는 걸로 나오잖아요. 그럼 선천적 조건이라는 말은 매우 제한적으로 써야할 것 같아요. 나열하신 인종, 나이, 성별, 국적, 부모의 조건 등은 선천적 조건이지만, 얼굴과 몸매와 같은 외모, 지능, 끈기 이런건 후천적으로 변경가능하다는 점에서 선천적 조건에서 제외되네요.

      그렇다면 특정인의 외모나 지능을 부각하여 보는 건 잘못된 행동이 아닐까요? 정말 몰라서요. 너무 모호한 것 같아요.
    • 데레데레/그 경우엔 케바케일 듯 해요. 모델업계에선 예쁜 사람을 뽑아야겠고 머리가 필요한 일에는 가능한 지능이 높은 사람을 뽑아야겠죠. 또 이 경우엔 상황이 워낙 다양할 수 있어 그릇되었다는 기준을 한 마디로 정리하는 건 저로선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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