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성적해방이 누군가에게는 '자기'파괴가 되는 상황

  비키니의 바다가 되고 있는 이 흐름에 또다시 물한바가지 부어봐요.


 제목이 제가 하려는 말의 거친 요약이 될텐데... 일단, 전에 이 글(http://djuna.cine21.com/xe/?mid=board&search_keyword=%EC%95%99%EA%B2%94&search_target=nick_name&document_srl=3526287 사실 이 글에서 성적 대상과 성적 대상화를 엄밀히 구분하지 않고 쓴 감이 있어, 아차~ 싶었긴 한데 가만히 또 생각해보니 그 둘의 명확한 구분이란게 가능한가? 해서 대충 억지로 안심하고 있어요.)을 쓴 이후 불법미인의 고소하면 죽어 드립, 김어준의 사과?, 가슴이 쪼그라든 엠비씨 언니, 삼국카페의 성명 사건등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와중에 저도 줏어들은거 많고 배운거도 참 많네요. 배운게 감사해서... 는 아니고 그냥 제가 떠들고 싶어 떠드는데...


 이 건에 대한 제 생각을 쓰는글에 제목을 저따구로 붙인 이유는 개인은 개인이면서 사회의 일부라는 것 때문이에요. 거두절미하고 결론에 바로 가보자면... 비키니녀가 가슴을 깐 것은 본인의 의도를 존중하자면, 자신의 성성을 자신의 자유의지로


"무엇에든 쓸 수 있다"


라는 선언이었다고 봐요. 내가 벗고 수영을 하든, 벗고 샤워를 하든, 벗고 시위를 하든 그것은 나의 자유이며, 나의 육체를 보고 음탕한 생각을 하려는 작자들이 있든 말든 나는 내 몸을 내 멋대로 굴리겠다, 라는 선언이라는 점에서요. 여기서 하나 이야기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저는 페미니즘에 문외한이나 다름없고 말 그대로 띄엄띄엄 줏어들은거 밖에 없는 주제이긴 합니다만(사실 그런줄 알면 함부로 떠들면 안되는데 요놈의 주둥아리, 아니 손꾸락이...), 그에 대해 느껴지는 것이 "남성우위 사회에서 절대적 약자로서 위험에 처해있는 여성" 이라는 것을 너무 강하게 전제하고 있다고 봐요. 그리고, 아이러니컬 하게도 그것은 오히려 여성의 성적 가능성을 "여성의 이름으로" 묶게 되는 것이 아니냐, 라는 생각이 들고, 위에 쓴 자기 인용한 글은 그에 대한 불만을 어렴풋이 느끼는 시점에서 쓴 글이었네요.


 조금만 더 풀어서 이야기해보자믄, 여성들이 어떤 시점에서 "애낳는 도구로서, 남성의 성욕분출기로서 비인간적 대우를 받은 시점" 은 있다고 가정할 수 있고, 그런 시점에서 그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진 상태에서 그에 맞서 도전을 시작한 것을 페미니즘의 발상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건 역사적 설명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일종의 입장에 대한 설명이라고 보시면 될거 같아요. 그리고, 그로부터 시작된 투쟁은, 분명히 페미니즘의 온건한 그룹의 입장에서 보기에도 아직 충분치 않은 부분이 많이 있을 것이겠습니다만 그럼에도 분명히 "어떠한 성과" 를 이루어 왔을 것이고, 그것은 또한 "어떠한 공간" 을 창출해 냈다는 것이죠. 그에 대해서는 대충 물뚝심송의 이 글(http://www.ddanzi.com/blog/archives/63408)이 말하려 하는 B 를 그것으로 상정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저는 저 설명이 많이 부족하다고 보지만...


 페미니즘에 대해 저 글에서는 고리짝 논리가 아직도 통용되고 있다, 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는데, 이 말을 역사적으로 해석해보자면... 페미니즘이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서 기원했다고 보는 것은 가장 적절한 것이 될 거에요. 이 시대의 성적 엄숙주의, 그러나 그 이면에서의 위선적인 성적 탐닉, 그 과정에서 여성이 현모양처로서 가정의 기둥으로 땅에 못박고 꼼짝못할게 강요되는 한편, 남성들의 육욕의 하수구가 될 것을 요구받았던 것은 분명한 역사의 한 모습이었을 거에요. 페미니즘의 기본전제가 그것이 출발한 시대의 관념에서 영향을 받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봐요. 마치, 마르크시즘또한 19세기의 사회상에 대한 인식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듯이 말이죠. 지금 시대에 윗 단락에서 말 했듯이, 페미니즘 150여년간의 투쟁으로인해 어떤 공간이 열린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여성들이 놓인 상황이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과 이어져 있는 면이 강하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어요.


 사실, 그렇기에 이번 논쟁에서 저는 불법미인의 입장과 그에 대해 비판한 급진페미니스트들의 입장이 어느 쪽도 "정당성을 독점할 수 없다" 라고 생각해요. 지금의 이 시대가 빅토리아 시대로부터 멀~~리 온 연장선상에 불법미인이 있고, 지금의 이 시대가 빅토리아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바탕에 급진 페미니스트들이 있는 것이니까요. 그럼 생각이 다른거니 공존하면 되는거 아냐? 그렇다면 논란이 되지 않고, 그 논란이 되는 지점이 제가 제목에서 말한 저것이 되는게 아닌가 시프요. 여성으로서 여성의 몸을 남성들이 성적으로"만" 대하는 것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여성들이 자신의 육체를 성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제한되어 버려요. 제가 위에 인용한 전에 썼던 글에서 못다했던 이야기가 결국 여성의 육체의 "성적 사용" 은 결국 남성들이 하는거거든요.(동성애 문제가 소규모지만 중대한 예외로 남고, 레스비어니즘이 그런 틈에서 존재하는 것일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런 상황에서, 여성들이 자신을 성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아직도 여성을 자신의 육욕의 배출구로서 밖에 보지 못하는 남성들"


속에서 위험을 초래하는 행동이 될 우려가 높다는 것이죠. 페미니즘이 사실은 남성까지도 해방시켜야 하는 것은, 여성이 자신의 육체에 대해 진정한 의미에서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그 육체를 통해 성적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남성들또한 각성 되어야 하기 때문" 이랄 수 있을 것인데, 그럴 가능성이 요원해 보이는 상황에서, 여성의 육체의 성적표현은 위험해지는 영역이 생긴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의, 화려한 조연인 나꼼수들은, 바로 그런 점에서 "각성되지 못한 남성성이 여성의 육체를 언제든 물화시킬 수 있음" 이, 더더구나, 김어준이라는, 이 시대의 트렌드의 선두에 서있는 사람중 하나에게서 조차 드러났다는 점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드러났을 뿐이에요. 전에도 말했고, 지금 많이 말해지고 있듯이, 불법미인은, 나의 육체의 "과시" 가 그들과의 동지애를 해치지 않고, 그들이 코피조심이라고 하건 말건 나는 그들을 동지로서 신뢰한다, 라고 말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거든요. 어찌보면 이 쪽이 더 대범한걸수도 있어요. 불법미인의 의도를 억측해보자면 '쟈들이 못나고 부족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고 멋도 있으니 내가 품어줄 것이여~' 랄 수도 있는거니까요. 그러나, 그런 자신감을 갖게 되기까지, 지금까지 말한 저 "두려움에 바탕한 조심스러움" 이 있었다는 점에서, 지금의 이 사건은 결코


"이렇게까지 커질일이 아니었던 것"


은 아니라고 봐요. 한국이란, 특정시대 특정지역 특정문화의 사회에서 여성을 둘러싼 투쟁이 어디까지 와있는지가 간접적(이지만 무척이나 시끄럽게)으로 증명된 하나의 사건이라고 본다면 말이죠.



 이 글은 철저히 진단이상은 되지 못해요. 그냥 내가 보기에 지금 이런거 같애, 라고 말할 뿐, 지금의 상황이 무엇이다 라고 단언하고 있는것도 아니고 무엇이 맞다는 것도 아니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되 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에요. 다만, 그저 이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은 당연히 없고 간접적인 관련도 별로 없지만, 최소한의 관심을 갖고 있을 뿐인 동시대인중 하나로서 지켜본 바로서는 이런 의미와 맥락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찌보면 제가 이 사건의 주체들중 그 누구에게도 큰 접점이 없고 사건 자체에도 관심이 크지는 않았다, 라고 한다면 그러한 입장에서의 접근도 쓸모가 있을지 모르겠다 싶어서 써봤어요. 관심없다며 뭘 그리 신경쓰시나? 하면 김어준이 싫어서 딱 그만큼 관심을 가졌다는 점은 솔직히 말해둘께요.

    • 여자들끼리 편갈라 싸우라고 부추기는 글 아니에요. 진짜 무한히 악의적으로 해석하면 그럴수도 있겠다, 싶어서 노파심에서 써봐요. 그리고, 저는 여전히 성적 대상화 지지해요. 남성도 대상화된다면.
    • 저는 한국의 페미니즘의 수준이 아주 후지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건 매우 자연스러운 거에요. 딱 한국의 여성 현실만큼 후지거든요. 우리가 중동 몇몇 나라의 페미니스트들에게 뭘 얼마나 기대할까요? 그런데 한국이라는 나라의 현실이 그런 나라와 그렇게 동떨어져 있던가요?
    • dos/ 음... 말씀을 잘 이해못하겠어요... 뭐라 답했다 헛짚을거 같아 그러는데, 조금만 설명을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만 이해한 만큼만 답하자면 제가 보기에도 한국의 "현실페미니즘" 은 좀 답답하긴 해요...-- 다만, 제가 "조야한 계급론" 이라고 불리는 형태로 사회주의가 유통되고 있는 것과 별 차이는 없다고 보긴 해요. 한국에서 이론들이 형해화되어 유통되는건 페미니즘만의 문제는 아닐거 같긴 해요. 물론, 이걸로 페미니즘을 실드친대봐야 피장파장의 오류일 뿐이고, 실드칠 생각도 없긴 합니다만서두...--
    • 아, 그냥 '현실'을 도외시할 순 없다는 고리타분한 현실 상기 주장 정도였습니다.

      이를테면 총수의 "여성들이 그런 약자의 의식으로 비키니를 성적 담론으로만 머물게 하는건 60년대 사고에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라는 말, 말만 놓고 보면 정말 그럴 듯해요.

      근데 거기에 한 마디 던지고 싶어요. "한국이 60년대보다 여성의 현실이 얼마나 더 나아갔다고 보세요?"라고. 그리고, 거기에 또 덧붙여야겠죠. "당신들의 여성에 대한 인식은 60년대보다 얼마나 더 나아간 거죠?"라고.
    • dos/ 사실 바로 말씀하신 그 부분때문에, 제 글이 "비겁" 해 진것이긴 해요. 부언하는게 되겠지만, 나아진 부분과 머무르는 부분이 있는데... 그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 이해가 가능하긴 한가? 같은 질문이 진짜 핵심일 수 있다고 보거든요. 정비석의 자유부인 같은거 요즘 같으면 우습지도 않겠지만 1950년대에는 장안의 선풍이었으니... 문제는 그거죠 분명히 나아졌지만

      "아직도 비참하다"

      라는 것. 그리고, 그 부조리가 그 자체로서 유발하는 도덕적 정당성이 저런, 제가 '완고함' 이라고 표현하고 싶은(김어준은 60년대식이라고 말한) 관념을 정당화시킨다는 것일텐데, 그것이 주는 어떠한 개운치 않음은 분명히 있다고 보거든요. 그 개운치 않음에 버럭! 하면 김어준이 되는거고... 그러나, 저는 그 개운치 않음을 덮어두고 분노만 하는게 1. 설득력있는가, 2. 타당한가 를 같이 생각해봐야한다고 말하고 싶은거죠. 다만 이미 말했듯이, 그게 "가능한가" 는 저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 글 자체가 말 끝을 흐린거지만...
    • 이건 사실 반드시 여성주의의 문제에만 국한되는건 아니겠긴 하지만요. 그러고 보면 답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라는 생각도 들고 그러네요. 그러는 바람에 내용없는 글이 된 것일지도...--
    • 사실 저는 비키니 사진을 올린 여성들의 시위방식에 대해서는 별로 불만이 없습니다. 그녀들의 그녀들 나름의 성적 자기 결정권이 있고 그건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시위방식에 따른 효과에 대한 논의들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로점거나 무력사용 등의 시위방식들에 대해 논의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그렇지만 그런 논의들이 시위의 목적자체를 잠식하는 것으로 귀결되면 안되겠죠.



      종종 슬럿워크가 비교대상이 되고는 하는데, 사실 이 슬럿워크가 여성에 대한 일방적인 성적 대상화에 대한 항의로 이루어진 거라는게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잘 아시겠지만 이 시위가 일어난 배경에는 여자가 옷을 슬럿처럼 입고 다니면 당연히 성폭력/성희롱의 대상으로 삼아도 되는 거 아니냐는 공권력(경찰)의 시선에 항의하기 위해 시작된 거였거든요. 그 시위의 핵심은 내가 손바닥만한 치마에 탱크탑을 입고 다니더라도 그건 다른 사람들(그러니까 직접적으로는 남자들)보라고 입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입고 싶어서, 그런 옷을 입은 나를 내가 보는게 좋아서 입는거라는 걸 주장하고 있었던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맥락에서 이 사건과 슬럿워크의 공통점은 여성들이 옷을 벗는다가 아니라 여성들이 옷을 어떻게 입든 그네들의 의사 그대로를 존중해달라는데에 있다고 생각해요. 이 사건에서는 그녀들의 몸매가 아니라 그녀들의 정치적 의사에 집중해주길 바라는 사람들이 문제제기를 한 거였다고 보구요.
    • 링크한 글까지 읽을 여력이 못돼 짧게만 쓰겠습니다.

      앙겔님의 논지를 지탱하는 핵심 근거는 페미니즘이 여전히 '빅토리아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주장인데, 이는 현대의 페미니즘 정치의 이론과 실천의 발전을 완전 도외시하는 주장입니다. 대표적으로 최근의 페미니즘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사용하는 '젠더'(간단히 말하면 '사회적 성'이라고 풀이할 수 있겠죠)라는 것 또한 최근의 발전과 변화를 대표하는 용어입니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자유'와 '평등'의 이상을 지향할 때 현실에서의 부자유함과 불평등함의 복잡함을 고려치 않으면 결국 현실을 유지하는 이데올로기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대표적인게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 문제입니다. '대상화'라는 굳이 어려운 뜻의 단어를 쓰는 것은 그것이 남성에 의한 여성의 일방적인 도구화만이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대 사회는 여전히 여성의 성에 대한 보수적 관념과 도구적 관념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여성의 처녀성은 보호받아야 할 것으로 취급됨과 동시에 '창녀' 혹은 '문란한 여성'의 '성'은 규탄받고 제한되어야 할 것으로 취급됩니다. 이른바 성녀와 창녀의 이분법이죠(마돈나는 이 한계를 극복했고요). 현실에서는 이러한 '성'이 여성의 권력 기반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여성 아이돌 그룹에 대한 열광, 환호의 배경이기도 하죠. 그런데 여기에는 어떠한 '사회적 기준'이 들어서기 시작합니다. 김어준의 표현대로 하자면 '생물학적 완성도'겠네요. 미스코리아나 무수한 미인대회와 TV프로그램, 잡지 등 미디어가 이러한 기준을 만들고, 확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즉, 여성의 성이 그 자체로 존중받지 못하고 어떠한 외부적 기준에 의해 통제되고 제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꼭 여성 개인이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 행동한다는 것을 뜻하진 않습니다. 과정은 보다 복잡하고, 은밀하기도 하죠. 이것을 '대상화'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잡다기한 문제에서 '슬럿 워크' 같은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에 대한 개방적 태도를 찬양하면서도, 성폭력의 피해자, 성매매의 피해자들에겐 그들이 무언가 문란한 태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문제를 자초했다는 식으로 판단하기 일쑤입니다. 슬럿워크는 이러한 태도에 직접적으로 문제제기 하는 것입니다.

      결국 김어준과 같은이가 한국의 페미니즘이 '60년대 수준'이라고 폄훼하지만, 오히려 그들이 60년대 이후 페미니즘의 발전과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진중권은 트윗에 이렇게 썼더군요.

      "아무리 자유연애와 프리섹스를 주장하는 철저한 리버럴이라 해도, 여성들의 신체를 대상화해 놓고 공개적으로 킬킬거리는 짓은 안 해요. sex의 문제에선 자유로울지 몰라도, gender의 문제에선 지킬 건 지키려 하죠. 한 마디로 김어준의 오류는 gender의 차별을 sex의 해방이라 강변하는 것."

      진중권의 표현 대로 '철저한 리버럴'이 지킬 건 지키는지 모르겠지만, 김어준과 그의 옹호자들이 젠더와 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dos// '한국의 현실페미니즘'이 '후지'다고 생각하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전략, 이론의 어떤 부분이 '후진' 건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혹시나 여성가족부의 뻘짓을 두고 그렇게 말하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진지한 답변 기대하겠습니다.
    • 앙겔/ 걱정하신 것만큼 여-여 갈등을 부르는 글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아요ㅎㅎ 제가 낮에 올렸던 글도 어쩌면 비슷한 맥락을 짚은 것 같은데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온도차'라고 할까요? 자신이 발담근 환경에 따라 나올 수 있는 반응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아참참, 그리고 저는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게 성적대상화 되는 세상은 지양하고 싶어요. 누구에게든 원치 않는 성적대상화는 폭력일테니까요. 이건 전에도 말씀드린 것 같지만. :)
    • 24601/ 우와. '빅토리아 시대' 얘기는 전 스킵했는데, 정리를 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dos님 표현은 반어법이었다고 생각했는데요;; 김어준이 60년대 수준이라고 하니까 '그래 우리 60년대 수준이다. 왜냐면 한국사회도 네가 보여준 인식도 역시 60년대 수준이니까.' 이런 식의 의미였다고 읽었어요.
    • 레사/ 앞서의 글에서 여성해방 성해방을 대비시킨것도 그 둘이 반드시 같은 맥락인 것은 아니다, 라는 의미에서긴 하거든요. 성성이란건 핵심적 정체성이지만, 개인의 정체성이 그것으로 환원되는건 또 아니라고 보기에...

      24601/ 그런 의도로 쓴건 아닌데요... 다만,

      1. 여성성의 발현이 "악용될 것을 우려" 하는 가장 강경한 입장의 주장이 있다

      2. 그런데, 그런 주장은 가장 원형적인 것으로서의 강력한 호소력과 도덕성이 있다

      3. 그런 고로 논란이 복잡해지는 부분이 있다

      라는 취지로 쓴 것입니다. 일단 이렇게 간단히 답하고 추가 답변을 할께요.

      13인의아해/ 아, 앞의 글들을 보진 못했네요. 찬찬히 보겠습니다.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와, 그것의 표현으로서의 이데올로기나 담론내의 또한 다양한 입장들의 교직은 무수하겠죠.
    • 앙겔로스/

      정비석의 자유부인이 우습지도 않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여전히 '처녀막 재생 수술'이라는 게 있는 나라입니다. 인기 TV 드라마의 서사를 보세요. 사실은 말씀하신 그 '간극'만 벌어질 대로 벌어진 것 같습니다. 즉 놀랍도록 고리타분한 것과 그와 별세계인 듯 나아진 것 같은 상황이 공존하게 된 거죠.

      인기 TV 드라마의 주요 플롯이 '(이혼하거나 애 딸리거나 등등)흠 있는 여자'가 '(다 떠나서 경제적으로)잘난 남자'와 맺어지는 게 주요 내용입니다. 그 벌어질 대로 벌어진 간극을 메우려는 여성 시청자들의 판타지입니다. 그리고 그게 여성의 시궁창 현실을 역으로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하고요.

      저는 여성들이 그 밥에 그 나물인 레파토리를 외치는 걸 정당화하려는 게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도 지긋지긋 징글징글하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게 나아지지 않는 시궁창 현실 때문이라는 걸 지적 아니할 수 없는 거고요.

      저 역시 여성들이 '여성'으로 묶일 게 아니라 서로 간의 '차이'를 확인하는 게 굉장히 필요한 시기라고 봅니다. 이번 비키니 건만 해도 그렇지 않던가요. 되게 유치한 상황이 발단이 되기는 했지만요. 여자는 자고로 참고 사는 게 장땡인 엄앵란부터 여성토론 위드 같은 프로 나와서 못나가는 여성에게 훈수 두는 위너도 있겠고 김진숙 같은 분도 있고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아, 김어준에 대해 굳이 덧붙이자면, 김어준이 실은 굉장히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은 여성 의식을 가졌는지는 검증할 방법이 없지만 적어도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훈수를 두는 자세를 취하는 건 논리적 옳고 그름을 떠나 몹시도 센스 떨어지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60년대 식 감각이라는 점을 알았으면 하네요. 포스트페미니스트들이 활개치는 1세계에서 유사 류 구설수가 터질 때 논리적 옳고 그름을 떠나 남성들이 어떤 센스로 대응하는가에 대해서 좀 배웠으면 해요.
    • 24601/ 추가답변입니다.

      사실 성녀와 창녀라는 관념이 이론화된건 페미니즘이 보다 발전한 이후의 일이긴 합니다만, 그러한 관념의 원형은 이미 본문에서도 언급한 바 빅토리아시대에도 그 원형은 찾을 수 있어요. 다시 말하지만, 저는 이론이 발전 안했다는게 아니라, 그러한

      "가장 원초적이고 가장 오소독스한 관점"

      이 제가 보기에는 "과도한 지배력" 을 행사하고 있다, 라는 불만을 말한 것이며, 김어준의 발언은 또한 그것을 김어준식으로 표현했다고 볼 측면이 있다고 봐요. 물뚝심송이 말했듯이, 김어준이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를 "정말로 결여한 것은 아니" 라면 말이죠.(저는 김어준을 싫어하지만, 그가 정말로 페미니즘의 그런 부분을 이해 못하고 있다고는 안봐요. 아니, 저같은 것보다 훨씬 잘 알지 않을까? 싶네요)


      어찌보면 제가 우회했지만 님께서 지적하신

      "과정은 보다 복잡하고 은밀하기도 하죠"

      라는 것이 진짜 논점일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그것을 일종의 내면화나 헤게모니의 작동이라는 점에서만 접근한다면, 그것은 "자유의지" 라는 부분에 대한 위협이 되는 부분이 있어요. 사실, 저는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의 "자유로움을 과대평가" 하는 데에 더 위험함이 있다고 보는 편(그래서 김어준을 까는 편)이긴 합니다만, 개인을 구조의 산물로서"만" 보는 것또한 위험하다고 보는지라서요.(님을 구조환원론자로 모는게 될거 같아 죄송하긴 합니다만) 결국 어정쩡한 타협 - 구조는 개인을 규정하지만, 그 규정속에서의 개인의 운신의 여지가 변혁의 가능성을 담보한다 - 라는 선이 제가 말할 수 있는 최대치일지 모르겠네요.



      이번의 논란이 이러한 논변을 적용하기 딱 좋은 경우인게, 어쨌든 불법미인은 그러한 "구조로서의 여성과 개인으로서의 여성" 의 틈에 끼어있다고 보기 딱 좋은 사회적 개체라고 보기 때문이에요.
    • 원글님/ 저도 원글님의 글을 그렇게 이해하고 있고, 어느정도 동감하는 차원에서 글을 풀어놓은 거기도 합니다. 사실 이전까지의 나꼼수 사건과 관련된 글에서는 이런 부분까지 논점을 확대하기가 어려운 면이 있었구요.

      그리고 13인의아해님의 말씀처럼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 dos/ 흠... 근데 그런 부분이 언급이 된다면 아무래도 "역사성" 이란 부분이 이야기되지 않을 수 없고, 그걸 한국사회를 대상으로 이야기하다보면 "압축성장" 과 그로 인한 "세대공존, 문화지체" 를 말하지 않을수 없을거 같긴 한데요... 결국 사회현상을 경향성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면, 말씀하신 낡은 경향은 압도적으로

      "고연령층"

      에서 높으니까요. 말씀대로 낡은 것이 매우 강하게 존재하고 규정력을 행사하고 있는건 사실인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형성 존재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느냐" 의 문제로 들어간다면, 단순한 혼재로서만 말할 수 있는건 아니지 않을까요? 세대와 압축성장이라는 변수를 넣는다면 오히려 제가 말한 "개선된 점" 이 더 부각될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이 문제를 논하는데 있어서는 말씀하신대로 "차이" 라는 관점에서 말하는게 맞다고 보는데, 그 차이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이 님과 저 사이에서는 꽤 '차이' 가 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렇군요...--
    • 레사/ 제가 오지랖이 좀 쩝니다. 히힛~
    • dos// 제가 도스님의 의도를 오해한 듯 하군요.

      앙겔// 여전히 제 리플에 대한 답은 못되는 것 같습니다. 시대마다 운동의 과제가 다르고, 그에 따라 변화해온 전략과 이론을 동의하진 못하더라도 그 내용을 이해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김어준이 마치 최신의 태도인 것처럼 내세우는 성적 자유로움, 이거 90년대 초중반에 이미 운동권 사회를 휩쓸었었죠. 그런데 문제는, 당시 남성들이 이러한 성적 자유, 성해방을 핑계로 여성을 희롱하고 강간한 사례가 꽤나 많았다는 겁니다. 나중에는 운동권 사회 밖으로도 확산됐죠. 꼭 이 때문만은 아니지만 페미니즘 운동이 한국적 맥락에서 '자기 결정권'이라는 것에 더 큰 강조점을 두게 된 계기들이죠. 그런데 김어준은 이미 20년 전의 태도를 고수하면서 페미니즘과 좌파들이 뒤떨어졌다고 비난하는 겁니다.

      즉, 님이 계속 강조하는 '빅토리아시대 원형'이라는 것은 없다는 겁니다. 오히려 김어준이 여전히 90년대적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거죠.
    • 24601/ 그래서 본문에

      "페미니즘이 사실은 남성까지도 해방시켜야 하는 것은, 여성이 자신의 육체에 대해 진정한 의미에서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그 육체를 통해 성적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남성들또한 각성 되어야 하기 때문" 이랄 수 있을 것"

      이 부분을 말씀드린거죠. 남성들의 고리타분함을 '어쩔수 없는것' 정도로 취급했다고 보신다면 그렇지는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 위의 댓글에서도 썼지만, 저의 본문은 어떤 의미에서 김어준의 입장에 대한 글은 아닌 면이 있어요. 김어준은 좀 문제 있다, 라는건 이미 전제하고 쓰는거거든요. 다만, 여성해방이라는 것에 대한 "그 내부에서의 논쟁" 이라는 의미에서 이번 사건을 해석하고 싶었던거죠. 성녀와 창녀의 문제는 마돈나에게서는 모르겠지만, 그 외의 여성에게서, 그리고 이 시대의 한국에서 해소되었다, 라고 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 문제에 대한 논의의 출발점으로서 여성의 육체에 대한 어떠한 방어적 관점으로서의 "빅토리아적 원형" 은 사라지기 힘들다는게 제 입장입니다.
    • 끔끔/ 저도 잘 몰라요. 그냥 일반론차원에서 하는 이야기 일뿐임요... 부끄부끄...
    • 완벽한 자유의지와 자기결정권의 개념은 판타지죠.
    • debknub/ 제가 다분히 회색분자 스러운 인간이 되어 회색스러운 글을 쓰는 것도, 그것의 한계 때문이긴 해요. 마르크스가 대충 이런 말을 했다죠?

      "인간은 자신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지만, 자신의 현재를 선택할 순 없다"

      라고. 어찌보면 구조와 개인 사이의 관계에 대한, 가장 적절한 통찰이 담긴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 질문을 드리자면...본문에 쓰인 빅토리아적 원형이라는 걸 저는 맥락을 잘 이해를 못하겠네요. 흔히 쓰이는 말로서 빅토리아적 원형이라고 할 때는 이상화된 가부장제 가족 모델이라고(물론 여성.성적 소수자의 억압을 전제한 이성애 핵가족이죠. 남성 가장과 여성 현모양처) 쓰이는 건데 이 뜻으로 말씀하신 건가요?
    • youwillsee/ 두가지 의미에요. 여성에 대해 "성녀와 창녀" 라는 이중적 관념이 존재하는데 이것이 빅토리아적 원형이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그리고, 그러한 남성들의 이중성에 맞서 여성들이 자신들의 성성에 대해 "방어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을 의미하기도 해요. 제가 강조하고 싶은건 후자의 의미인데, 그 의미가 좀 불분명하게 쓰인거 같긴 하네요.
    • 굳이 첨언하자면 "그 어떤 비판도, 그 비판이 디디고 서 있는 시대가 있다" 라는 의미에서 이런 표현을 썼다는 측면이 있어요. 물론, 그 비판이 적확하다면 시대를 넘어 유의미할 것이고, 제가 '문제시' 하고 있는 관점또한 빅토리아 시대이후 지금까지도 분명 유효하죠.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그러한 문제제기를 통해 열린 공간이 분명 존재하는데도, 그 원형의 정당성이 과하게 강조된다면, 그것은 "현상황에서의 논의를 왜곡" 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에요. 물론 이에 대해 "현상유지의 언술일 뿐" 이라고 우려하는 것 또한 타당한 면이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이미 말씀드렸듯이 저는 회색분자라, 타당성의 중첩을 인정하는게 좋지 않겠는가? 라는 정도로 밖에는 말씀 못드리겠네요...--
    • 24601/
      설거지하고 빨래 돌리느라 댓글 못 단 사이 많은 덧글들이 달렸네요.

      일단, 제가 한국 페미니즘이 후지다고 한 건 반쯤만 반어법입니다. 그냥 표현으로만 그렇게 도발하는 게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후지다고 보거든요.

      그러나, 반쯤은 반어법이기도 한 게, '후지다'는 게 '옳지 않다'나 '적절하지 않다'와 등가는 아니라는 걸 전제에 두고 한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후진국이 선진국보다 뒤떨어진 나라인 것이지 후진국이 선진국보다 나쁜 나라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 dos// 제가 여유가 없이 읽다보니, 미쳐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말씀하신 의미에서 어쩌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답변해주셔서 감사해요...제가 말주변이 없어 계속 댓글을 쓰다 지우다...여튼 감사합니다.
    • 일단 리플 안 보고 쓰는데 좀 늦게 봐서 그렇지 글 자체에 대단히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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