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야그] 짬뽕 속의 진주

진주 아세요?
이 세상에는 여러가지 보석이 있지만, 그 와중에 생명체가 만들어낸 유일한 보석이지요. 뭐, 호박도 있긴 하지만 그건 수천만년 묵어야 되는 거니 말입니다. 진주는 조개가 만들어내지요.
어쩌다 조개 속으로 이물질이 쏙 들어가면, 이게 뾰족뾰족하고 아프니까 조개는 분비물을 뱉아서 이걸 뚤뚤 감싸 말아요. 그럼 맨들맨들해지죠. 그런데 조개 껍질 안쪽의 광택이 그대로 입혀져서 - 그래요, 이게 바로 진주여요. 보통 하얀색 - 흔히 말하는 바로 그 진주색이 가장 유명하지만 분홍색도 있고 검은색도 있고, 좀 드물게 녹색이나 회색도 있어요. 아무튼 은은하고 예쁜 색깔이니까 아주 이쁘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지요.
그래서 이 진주를 캐내기 위해 - 목숨을 걸고 바다에 뛰어드는 사람도 많았지요, 실론과 쿠웨이트가 대표적인 진주의 산지였습니다.

그러다가 일본에서 양식진주가 시작되고(그 훨씬 전에 중국에서 시도가 있었댑니다만), 그보다 더 싼 인조진주가 만들어지게 되면서 진주는 꽤 흔하게 보이는 보석이 되었습니다만. 그래도 매력은 여전하지요.

 

헌데 조개는 먼 옛날부터 인간의 중요한 단백질 섭취원이었습니다. 일단 잡기 편하고요, 싸고요, 맛있죠. 저기 부산 동삼동에 조개무지가 증명하듯, 신석기인들부터가 조족(...)의 씨를 말리려고 작정이라도 한 듯이 잡아먹었거든요. 현대인도 마찬가지지요. 짬뽕 위에 보란듯이 얹어져 있는 홍합 몇 개를 보면 마음이 푸근해지죠. 비주얼과 달리 별로 먹을 건 없어도...(...)
그러다보니 생각지도 않은 횡재를 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1964년 1월 어느 추운 날, 공군 최성준 병장이 상도동의 단골 중국집에 가서 그간 밀린 외상값을 갚았습니다. 그냥 받기 좀 뭐했는지 중국집 주인은 짬뽕(당시 표기로 초마면) 한 그릇을 대접했는데, 그 사람이 전복의 속살을 냠 하고 씹는 순간 뽀독 하는 게 있었지요. 돌인가? 하고 꺼내봤더니 진주였습니다. 그것도 진주 중에서 상대적으로 약간 비싸다는 흑진주!

이 횡재 소식은 온 나라를 강타, 전국 각지의 중국집 매상이 일거에 올랐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오죽했으면 이걸 기사화한 기자도 "아, 내가 그 짬뽕을 먹었더라면!" 하고 쓸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그런데 사실 이 사건 이전에도 진주 발견은 꽤 많이 벌어졌습니다.
같은 해 고막조개에서 당시 돈으로 10만원짜리 백진주가 발견되기도 했고, 67년에는 청량리 어시장의 피조개 속에서 진주가 나왔습니다. 71년도에 삼천포 형사가 막걸리 마시다가 안주에서 진주를 발견하기도 했고, 남한강에서 잡은 조개에서 연분홍색 진주가 발견되어 미군 부대 종업원이 땡 잡는 일도 있었습니다.

 

묘하게도, 진주는 가난한 사람들이 얻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음식점 종업원이나, 어시장 상인이라던가, 순경 등등이 발견하곤 했죠. 생각해보면 그도 그럴만한 게, 아무래도 조개를 직접 손질하고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리 돈 많이 버는 사람은 아니었을테니까요. 또, 조개는 국물을 우려낼 수 있기 때문에 싼 요리에 많이 쓰였고, 사먹는 사람도 돈 많은 사람은 아니었죠. 그런 사람들에게 진주의 발견은 청난 횡재였습니다. 1964년도 기준으로 10원짜리 국수를 먹다가 2~3만원 짜리 진주를 발견했으니 말 다했지요. 술 마시다가 진주를 발견한 순경은 그 동안 20년 동안 쪼들리게 살아왔다가 이제 어머니와 아내, 아이들에게 새 옷을 사줄 수 있겠다고 기뻐하며 인터뷰를 했더라고요.

싼 음식은 어떻게 보면 가장 일상적이고 친숙한 거죠. 만약 고급 레스토랑의 벨기에 식 홍합찜에서 진주가 나왔더라면 별 신기한 일 다 있네? 하고 넘어갈 겁니다. 하지만 누구나 가서 끼니를 때우는 중국집 짬뽕에서 진주가 나왔다니, 동화 속의 남들 이야기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 나에게 덥석 벌어질지도 모르는 행운으로 다가왔겠죠.
어쩌면 사람들이 진주 횡재 소식에 매혹된 이유는 이게 아닐까 합니다.

 

이런 진주 횡재는 1960년대 즈음에서부터 70년대까지 산발적으로 보입니다만, 몇 년 뒤에는 시들해집니다. 아마 어부/유통업자/요리사들이 철저하게 조개를 손질하고 진주수색을 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지만. 그럼에도 가뭄에 콩나듯이 횡재는 여전히 계속됩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진주가 발견되는 조개들은 전복, 피조개, 고막조개 등등입니다.  이쯤에서 오늘 저녁 메뉴를 결정하는 분들이 늘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 좋은 밤 되시길 바랍니다.

 

p.s : 여기서 잠깐 뒷 이야기. 처음 이야기한 1964년 짬뽕 속에서 발견된 진주 말입니다. 공군 병사는 "불로소득으로 귀한 물건을 가지기가 쫌..." 그러면서 곱게 포장해서 육영수 여사께 드리고 싶어요! 하면서 띡 하니 청와대에 보내버립니다.
그런데 청와대는 선물이 들어오면 다 그에 걸맞는 보답을 드리는데, 육영수 여사는 "이렇게 귀한 걸 내가 어떻게 가져 'ㅅ'" 하며 거절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끝나면 미담이 되었을 법도 한데, 담당자들의 금은방 순례 뺑뺑이 퀘스트가 벌어지게 됩니다. 진주 가격이 얼마인지 알 수 없었거든요. 아니, 알 수 없는 거완 별개로 엄청 들쭉 날쭉했습니다. 여기선 2만원, 저기는 5천원, 심지어 2천원이란 데도 있었어요.
거절할 건데 왜 가격이 문제냐고요?

그러니까 신문보도에서는 육영수 여사, 무려 싯가 2만원 어치의 진주를 거절! 이라고 카피 문구를 멋지게 띄우려 했는데 이게 2천원이다 얼마다 하면서 널을 뛰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 지가 문제였던 겁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더 재미있는 것은 처음 발견된 기사에서는 흑진주라고 했는데, 나중 육영수에게 바쳐진 진주는 하얀진주였다고 합니다. 그 사이 진주가 탈바꿈이라도 한 건지, 아니면 색이 변한건지 알 수 없습니다. 이로서 짬뽕 진주(멋대로 명명)의 수수께끼는 나날이 깊어져 갑니다.

 

http://www.facebook.com/historyminstrel

    • 진주 든줄 모르고 그냥 삼킨 사람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저도 그중 하나
    • 며칠전부터 홍대 초마 짬뽕 먹고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본격 뽐뿌질을 하시는군요 ㅠㅠ
    • 흑진주여서 망정이지 백진주를 짬뽕 국물에 끓였으면 아무래도 약간... 색깔이 배지 않았을까요. 잇자국도; 왜 이런 게 마음에 걸리는지 -_-
    • 1)
      말씀하신대로... 음식점의 요리에 든 어패류에서 진주가 발견되는 일은, 흔하진 않지만 제법 벌어졌던 모양입니다.
      심심해서 대충 검색해보니 결과가 제법 나오네요. 70년대쯤 보이는 한 기사의 타이틀은 [진주가 또 나왔다](...)

      2)
      문제의 짬뽕 진주는 아마... 짬뽕이라는 요리의 원재료를 생각해보면 애초에 흑진주가 아니었는데 오해하여 잘못 적었을 가능성이 크지 싶네요.

      그리고 가격의 문제. 보통 진주란 보석은 사람이 하고 다니기만 해도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ㅡ보석류는 잘 모르는 터라 확실하진 않습니다만ㅡ 아마 저 경우엔 여러 사람 손에 돌며 관리를 못 받아 품질이 급속도로 짜게 식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3)
      사족으로 붙이는 이야기.
      제 생각엔 진주 관련 인생 역전 중 최고의 케이스는 쿠웨이트입니다. 이 나라는 진주 채굴 및 가공이 주요 산업이었다가, 20세기 초 양식 진주가 발명(?)되자 곧 그 산업 자체가 무너졌죠. 폐기된 어선이 막 널려있고 그랬다고 하네요.

      때문에 한동안 짜게 식어있다가, 또 뭐가 없나ㅡ하며 찾던 와중인 30년대 후반에 석유가 터졌습니다.
      지금은 뭐 다들 아시다시피... 국내인구 백만에 외국인 노동자 3백만인 기름쟁이 산유국이죠(...)
      진주로 인생역전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진주 이야기가 나오니 생각나서 써봤습니다ㅎㅎ

      4)
      하여간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다음 글을 기대하지요'ㅁ')~
    • 저런 일도 있었군요. 저에겐 동화 속 이야기처럼 들리는걸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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