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예술의 끝판왕?

그런 게 어디있겠습니까마는 얼마전 다우트에 대한 글이 올라와서 여러 생각에 잠겼었습니다.

다우트는 최근 몇 년동안 봤던 영화중 가장 배우들의 연기가 불꽃 튀던 작품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필립 시모어 호프만의 파도 파도 계속 뭔가가 나올 것 같은 연기 역량에 눈이 휘둥그레졌죠.

그리고 환갑이 넘은 나이임에도 여전히 원숙함보다는 도전과 날이 느껴지는 메릴 스트립에 대한 존경심도 들었구요.

 

그러다가 생각했죠. 최근 과연 내가 연기만으로 가장 큰 감흥을 느꼈을 때는?

 

잠깐 딴길로 세자면,  우리나라 연극의 거목이셨던 고 이해랑 선생님은 당신의 연극론을 이렇게 말씀하셨죠.

'우주처럼 광대하게 생각하고 별처럼 작게 표현하자.'

물론 이런 가치관의 예술도 좋습니다만 저는 역시 우주처럼 광대하게 생각하고 우주처럼 광대하게 표현하는 배우를  더 좋아하긴 합니다.

듀나님이 표현하시는 어제 먹은 음식까지 다 토해내는 연기와 일맥상통한다고나 할까요?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로렌스 올리비에와 알 파치노입니다. 너무 뻔하죠? 로렌스 올리비에가 아주 요란하게 연기했던 오델로나, 슬루스같은 영화들을 가장 좋아하구요, 알 파치노는 매순간 사랑합니다. 허접한 영화를 찍어도요.

 

또 요즘 날라 다니는 좋은 연기자들 너무 많잖아요. 앞서 말했던 필립 시모어 호프만을 비롯해서 하비에르 바르뎀, 대니얼 데이 루이스 등등은 그중 가장 선두에 서 있고

역시 엄청난 감흥을 주었구요.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한테 연기예술만으로 최고의 감흥을 준 사람은 저 사람들이 아니더라구요.

 

그 분이 누구냐?

 

 

그 분은 바로 '피터 오툴'입니다.

꽤 근래의 작이죠. 비너스를 봤었을 때 였습니다. 어떠한 거창함도 어떠한 극한적인 몰입도도 롤러 코스터같은 감정의 파고도 없는 영화였어요.

근데 저는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흘러넘치는 위엄과 품위(피터 오툴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읽을 때 어찌나 황홀하던지요. 그래서 저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여유가 넘치지만 오툴의 간결한 손짓과 시선에는 긴장이 넘쳤습니다. 그리고 그 모호하면서도 다층적인 뉘앙스는 숨을 멈추게 했죠.

 

그 때 느꼈던 건 '아, 혹시 연기의 최고 경지에 다다르면 저런 형태가 아닐까?'

연기는 왕도가 없고 100점도 없죠. 100점을 향해 다가가는 순간만 있을 뿐인데 왠지 저는 그 끝을 몰래 훔쳐본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같은 배역을 이언 맥컬린에게 맡겨도 좋았을 테지만 이언 맥컬린도 이 정도로 사람을 숨막히게 하지는 못할거야란 생각도 했죠.

 

비슷한 느낌을 예전 제레미 아이언스에게 느꼈던 적이 있긴 했습니다.

'데드 링거'와 '행운의 반전'을 봤을 때 아 이 사람은 이 때가 전성기며 신이 그를 돌보고 있고 한마디로 작두를 타고 있구나.

기술적으로 너무 완벽한 연기에 그 풍부한 뉘앙스와 차갑게 정제된 연기가 하나의 강렬한 스타일로 가득 채워진 그를 봤을 때도 너무 감탄스러웠지만

역시 오툴 할배를 넘어서진 못한다는 느낌이랄까?

 

한 때 인생극장 보면서 알고보니 저건 극본이 주어진 상황이고 저 사람들이 배우라면? 이런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죠.

물론 진정성과 사실적인 디테일에 있어 따라올리가 없겠지만 테크닉과 정서를 동원해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그 미적 감각이

부재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미적 감각은 앞서 언급했던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죠. 단순히 사실적인 리얼리티만으로는

획득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예술적 경지요. 

 

오툴 영감님은 요즘 뭐하실까요?  

 

 

 

    • 위에서 말씀하신 영화 찾아봐야겠네요. 아직 연기의 수준을 세심히 구분하는 심미안은 없어서요. 피터 오툴의 작품은 제대로 본건 없지만 라따뚜이에서의 목소리를 들었을때의 느낌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11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46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55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9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4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6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34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51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7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31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5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9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70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6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8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