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기획회의가 만난 사람: 철학자 강신주

한국출판의 면주(하시라), 〈기획회의〉313호 (2012년 2월 5일)에 실린 인터뷰 기사입니다.

전문은 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님 블로그를 방문해 주세요.

 

 

 

 나는 강신주가 되고 싶다                                          _인터뷰어  이하영 북칼럼니스트

 


나는 책의 서문을 좋아한다. 저자의 땀이 밴 저술의 맨 앞에 놓이는 독자제현에게 띄우는 편지. 때로는 본문을 다 합친 것보다 서문 두 페이지가 주는 감동이 더 클 때도 있다.  내 다이어리 곳곳에는 저자들의 서문에서 발췌한 문구들이 빼곡히 적혀 있기도 했다. 가슴을 뛰게 하던, 내 피부 밑에서 무언가 살아 꿈틀거리게 만들던 문구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를 황홀하게 했던 문장들은 가끔 마음에 닿는 것들에 밑줄을 긋는 정도에서 그치고, ‘잘 쓴 서문’이라는 기술적 평가에 불과한 감상에 그치고 만다. 많이 무디어졌다. 좋은 글에 기뻐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지만 그 감흥은 현저히 다름이 서글프다. 요즘 책은 내게 혈관 속까지 파고드는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저 잘 쓰인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이 있을 뿐.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걸까요?”라고 나는 물었고, 그는 “또 나이 탓한다” 하고 대꾸했다. 철학자 강신주. 서문부터 밑줄을 긋게 만들고 본문으로 달려들게 만드는 저자다. 나이 탓을 하지 말라는 그도, 요즘 나이듦을 느끼기에 마음이 많이 바쁘다고 했다. “지금의 지적 능력과 집중력을 몇 년이나 더 유지할 수 있겠는가. 나는 조급하다.” 그러면서 또 이렇게 얘기한다. “나는 조급스럽지 않아, 내 얘기를 들은 사람들, 내 책을 읽은 사람들이 나중에 어떻게 성숙해갈 것인가를 생각해서 씨앗을 심어놓는 거야. 책 쓰거나 사람을 만날 때, 난 늘 지뢰를 매설한다는 느낌이야.”

 

조급하지만 조급스럽지 않게, 목적은 분명하지만 계획은 세우지 않은 채로 그는 하루하루 바쁘게 달리고 있다. 생체시계는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하는데 만나야 할 사람과 해야 할 이야기는 아직 너무도 많이 남은 철학자,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하늘을 이고 선 작가, 틈틈이 허리를 구부려 부지런히 지뢰를 매설하고 다니는 강연가 강신주. 그를 만나러 갔다. 그가 저술한 수십 권의 저서를 (다 읽지는 못하고 서문 위주로) 살펴보는 동안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는 양의 탈을 쓴 늑대일 게 분명해보였다. 아름다운 문장 속에 번뜩이는 날카로운 이빨들이라니! 하지만 나는 그저 양의 탈과 인터뷰를 하면 되겠지, 생각하며 애써 두려움을 털어냈다. 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감기에 걸린 늑대의 모습으로 나타나 인터뷰에 응했다. 다음은 아줌마의 탈을 쓰고 쫄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소녀토끼와 감기에 걸려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양띠늑대 철학자와의 대화 내용이다.

 

 

+대략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요?(출처: 게티이미지)


편집자의 제안이 필요한 시간
이하영(이)
: 교보문고 철학 코너의 한 매대는 한 명의 저자가 25%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철학 VS 철학》(그린비, 2007)이 제일 높게 쌓여 있고(이건 책 자체가 두꺼워서), 오른쪽 끝에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동녘, 2011)과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동녘, 2010)이 나란히 누워있고, 왼쪽 모퉁이에 《상처받지 않을 권리》(프로네시스, 2009)와 《철학이 필요한 시간》(사계절, 2011)이 높이 다툼을 하고 있습니다. 매대 한 가운데에는 《철학, 삶을 만나다》(이학사, 2006)가 9쇄의 이력을 자랑하며 당당히 누워 있었습니다. (여기는 신간 매대인데?) 철학사 코너에 가면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와 장자 관련서들이 즐비해 있겠지요. 철학자 강신주의 책들은 신․구간을 가리지 않고 잘 팔리고 있어요.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팔려나간다는 건 독자층이 확고하다는 것이죠?

+ 철학 vs 철학 이벤트로 그린비에서 마련한 철학 성향 테스트를 겁니다. 주소는 "여기"

 

강신주(강) : 아, 정말요? 교보문고를 위해 열심히 써야겠군요. 제가 생각했던 숙제들은 올해 나올 책들로 거의 마무리가 될 것 같아요. 3월에 김수영론이 나오고 6월에 정치철학을 다룬 책이 나오거든요. 이제 편집자들의 제안이 필요한 시기가 왔어요.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거의 다 푼 셈이니까요. 이제 누군가 제가 해야 할 일들을 짚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 여러 출판사와 함께 작업을 하셨으니 기존 편집자들이 꽉 붙들고 안 놓아줄 것 같은데요?

 

강 : 나는 한 출판사에서 세 권 이상 안 내요. 표현이 사라져요. 첫 책을 내서 출판사가 마음에 들면 한두 권 더 쓰고 마음에 안 들면 그만 쓰고.

 

이 : 출판사와 편집자가 마음에 든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거죠?

 

강 : 우선 사장이 자본가적 근성이 약해야 돼요. 편집자는 첫 독자로서의 임무를 완수해야 하고요. 편집자의 지적이 내 글을 더 좋게 만들어주면 좋죠. K사에 책 낼 수 있었던 건 편집자 O씨가 괜찮아서예요. 출판사 사장은 어차피 다 자본가니까. 그 자본적 속성을 잘 제어해줄 만한 편집자인가를 탐색하죠.

 

이 : 스물세 권의 책을 내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편집자는 누구였나요?

 

강 : 첫 편집자죠. 태학사였는데 그분은 직접 원고를 안 봐도 되는 편집이사셨는데 내 원고를 직접 읽고 빨간색으로 칠해서 주셨어요. 저자로서 어렸을 때여서 가능성을 읽어준 그 할아버지 편집자 분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그때 많이 배웠어요. 특히 국어요. 학자들이 국어가 약하잖아요. 국어가 안 되면 치명적인데.

 


철학, 삶과의 소통
이 : 선생님 책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몇 권 읽어본 느낌으로는 2006년에 이학사에서 출판한 《철학, 삶을 말하다》가 중심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책들도 다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고요.

 

강 : 네, 맞습니다. 나중에 누군가 강신주론을 쓴다면 이 책을 가지고 해도 될 겁니다. 이 책이 전체 3부로 나뉘어 있는데 그걸 각각의 단행본으로 다시 푸는 작업을 했죠. 1부 ‘철학적 사유의 비밀’에 해당하는 내용을 《철학 VS 철학》에 풀었고, 2부 ‘친숙한 것들을 낯설게 만들기’가 올해 초에 사랑과 가족에 대한 책으로 나올 예정이고, 6월에는 정치에 대한 책이 또 한 권 나옵니다. 제 숙제였어요. 우리 이웃들한테 해줘야 될 세 가지 이야기, 가족과 사랑, 자본주의 그리고 정치철학. 일단 가족주의를 해체해야 되거든요.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상처받지 않을 권리》에 썼고, 올해는 정치적 이유가 있으니까 강력한 정치철학 책도 내고요. 제가 철학자로서 이웃들한테 해줄 수 있는 세 가지를 거의 마무리한 거죠.

 

이 : 언젠가 독자들과의 만남 행사에서 가정에서 독립하지 못한 청년들에게 호되게 쓴소리 하시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부모와 단절해야 된다고 하셨는데 기성세대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건가요?

 

강 : 단절을 해야지요. 단절을 안 하면 어떡해요. 세대 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부모와 단절을 못하면 누구와 결혼하고 어떻게 살아가요? 단절을 해야 하거든요. 성숙하다는 건 홀로 서야 되는 건데 많은 젊은이들이 홀로 서지 못하잖아요. 스펙에 기대고 학점 잘 따고 이런 것도 결국 다 기성세대에 기대는 거잖아요. 부모와 완벽하게 단절해야 해요. 부모와 단절할 수 있는 사람이 어떻게 독재자와 단절을 안 하겠으며 신과 단절 못할 수 있겠습니까. 다 똑같은 겁니다. 이성복 시인은 자신의 시에서 얘기한 아버지가 가부장적 아버지뿐만 아니라 독재자, 신에게 다 해당된다고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그렇질 않죠. 아버지는 공격해도 국가는 살려두고, 국가는 공격해도 종교는 살려둡니다. 그걸 내버려두는 건 비겁한 거죠.

 

이 :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양의 의무를 지고 이런 게 우리 사회가 전통적으로 요구하는 덕목이다 보니까 선생님의 그런 논리가 이해는 되면서도 실천이 안 되는 부분도 있죠.

 

강 : 오해하지 마세요. 단절은 회피와는 다릅니다. 극복해서 뚫고 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사랑은 강한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문제의 핵심을 보고 고통에 직면해야 합니다.

 

이 : 요즘 젊은 세대의 가장 큰 문제점도 고통에 직면하지 않고 기대려 한다는 것인가요?

 

강 :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규칙을 받아들이는 것이 제일 문제죠.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걸 받아들이면 안 되는데 다 받아들이고 있잖아요. 사람이 어른이 된다는 건 기존의 어른들을 죽이는 건데 요즘 젊은이들은 어른을 거의 안 죽입니다. 삼사십이 되도록. 그러니 아직 어린애들이죠. 부모도 못 죽이는 애들이 어떻게 어른이 되겠습니까. 오늘도 KBS 공개강연 녹화를 하러 갔는데 작가가 그래요. 대학생들이 스펙 쌓는 데만 치중하는 세태를 따끔하게 비판하셔도 좋을 거 같다고. 제가 그러면 MB정권에다 자본주의 공격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그건 안 된대요. 같은 얘긴데 이거는 되고 저거는 안 되냐고 짜증을 좀 냈어요. 학생들이 스펙을 쌓는 게 정권과 자본주의에 스스로를 상품화하는 거잖아요. 스펙과 자본주의는 불가분의 관계인데 분리해서 생각하는 게 일반사람들이죠. 결론적으로 강연에서는 현 정권, 자본주의 비판 이런 거 안 하고 스펙만 공격했어요. 알아들을 정도로만. 스펙 공격한 논리만 잘 받아들여도 시간이 지나면 그게 자본주의를 공격하는 꽃으로 피어날 거라는 걸 아니까. 이 정도 얘기에도 나중에는 어찌어찌 성숙할 거라는 걸 생각하면서 씨앗을 심는 거죠. 책 쓰든 강연을 하든 사람을 만나든 나는 늘 지뢰를 매설한다는 느낌입니다.

 

이 : 독자들로부터 가장 반응이 좋았던 책은 어떤 책이었나요?

 

강 :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은 《철학 VS 철학》, 그리고 3월에 나올 김수영론이고요. 나머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거 같아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쓴 거예요. 《철학 VS 철학》이나 김수영론은 나를 위해 쓴 것이고요.

 

이 :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 같다’는 판단은 어떻게 얻으신 건가요.

 

강 : 내가 사람들을 만나고 느껴서 쓰게 된 것이죠. 지방 강연을 가면 하루에 두세 개 스케줄을 소화하는데 경주 들렀다 울산, 창원, 진주, 광주  …  얼마나 강연을 많이 했겠어요. 고등학생부터 6, 70대까지 다 커버하죠. 강의 들어가면 5분 안에 청중을 파악해요. 강연은 무조건 성공하고 봐야 해요. 다시 못 만날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책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니까 필요한 내용을 균형 있게 담아도 읽는 사람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저 끝에 한두 꼭지가 와 닿을 거고 어떤 사람은 앞부분이 와 닿고 차이가 있겠죠.


이 : 저도 그랬어요. 저는 주로 앞부분에 밑줄 치고 뒷부분에서는 멍 때리고. 게다가 《대한민국 청소년에게》(바이북스, 2008)에 쓰신 글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쓴 글이니 쉽게 읽혀야 하는데 제겐 어려웠거든요.

 

강 : 정치철학의 감각이 없어서 그런 거예요. 평상시 생각도 안 한 것은 어려운 법이니까. 사람이 이해한다는 건 모르는 걸 아는 걸로 바꾸는 건데 정치철학이라는 건 틀이 크죠. 《철학이 필요한 시간》의 뒤쪽도 정치적인 이야기인데 그래서 사람들이 3부까지 잘 안 갑니다. 잘 안 읽어요.

 


존댓말 쓰기의 매력
이 : 활발한 대중 강연과 방송 출연, 부드럽게 읽히는 경어체의 책. 그래서인지 대중적인 철학자로 인식돼 있는데요, 출판마케팅의 일환으로 시작된 건가요?

 

강 : 나는 인문학자니까 사람을 직접 만나야 되기 때문에 강연을 많이 다니고 대중매체도 가리지 않아요. 특히 대중매체는 더 많은 사람을 만나게 하고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제 입장에선 꽤 경제적인 도구입니다. 내 얘기가 사람들이 인문학적으로 성숙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가릴 게 뭐 있겠어요. 동영상 강의 녹화도 하는데 그것도 나는 텍스트로 봐요. 어디에서 이야기하든지 내용은 똑같으니까요. 나는 변화구를 싫어해요. 직구로 승부하죠. 정공법으로. 인문학적 담론들 대부분은 이렇게 얘기하죠. 주인 되지 말고 화목하게 지내라, 자신의 욕심을 버려라, 이렇게 가르치죠. 하지만 그건 다 헛소리예요. 힘없는 자가 어떻게 욕심을 버려, 힘 있는 자가 욕심을 버려야지. 용서하는 건 힘 있는 자가 하는 거지, 가난한 자가 힘 있는 자를 어떻게 용서를 해, 그건 포기하는 거지. 자격이 없는데.

 

이 : 그런 살벌한 이야기를 책에서는 매우 부드럽게 하시는데 인문서 집필에 존댓말 글쓰기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강 : 사람들은 자기가 감당하기가 힘든 것은 생각을 안 해요. 비겁한 거죠. 인문학은 그런 비겁함을 없애서 문제를 스스로 파야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부드럽게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존댓말로 부드럽게. 강하게 채근하면 저항하게 돼 있으니까, 존댓말을 쓰는 건 강한 주제에 대한 독자의 거부감을 줄이려고 택한 방식이에요. 주제가 강하고 어려울 때 존댓말을 쓰는 거죠. 자본주의나 정치철학 얘기할 때 경어체를 씁니다. 존댓말의 매력이 있어요. 당신이 선택하세요, 이런 느낌이 있거든요. 당신은 쓰레기야, 왜 이렇게 안 가냐, 이런 게 반말이고. 나는 반말이 좋지만 우리말에 존댓말이 있으니까 우리말이 가진 가능성을 십분 활용하는 거죠. 존댓말로 쓸 때와 반말로 쓸 때가 완전히 달라요. 존댓말로 쓴 것을 반말로 바꾸려면 많은 부분을 없애야 해요. 거꾸로 반말로 썼던 걸 존댓말로 쓰면 이 경우에도 많이 변해요. 문체적으로. 어떤 사람은 어미에 ‘까, 요’만 쓰면 존댓말인 줄 아는데 많이 달라요. 두 가지 문체를 다 쓴다는 게 매력적이죠.

 


나는 강신주가 되고 싶다
이 : 대학에 입학할 때는 공대로 입학하셨는데 철학으로 방향을 틀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강 : 그런 건 없어요. 앞에 놓인 걸 하나씩 하나씩 선택해가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일 뿐. 뭔가 미리 정하고 계획한 것은 없어요. 사람들이 좌우명이나 가훈을 정하고 이야기하는 것도 웃긴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에 가서야 인생이 이러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이 : 철학자 강신주의 최종 목표 이런 것도 없나요?

 

강 : 강신주가 되는 것이죠. 강신주적인 삶을 사는 것, 강신주적인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나가는 것. 시는 자기니까 쓸 수 있는 것이고, 철학은 고유명사의 학문입니다. 인문학은 자기니까 겪을 수 있는 고통을 피하지 않는 것이고요. 김수영은 시를 쓰려면 고통이 필요한데 언어의 고통 이전의 고통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온전히 자신이 되어서 자기의 꽃을 피워야죠.

 

이 : 저는 아직 제가 무슨 꽃인지 모르겠어요.

 

강 : 이미 알고 있어요. 직면하지 않아서 그런 거지. 갑옷을 몇 겹이나 입고서. 잡다한 것 좀 치우고 집중을 하라니까. 정직하고 진지하게 당당하게, 거리 두지 말고.

 

 

언젠가 뉴스에서 들은 이야긴데 초등학생들의 꿈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1970, 80년대만 해도 대통령과 장군이 높은 순위를 차지했는데 지금은 교사, 공무원이 1, 2위를 다툰다는 것이다. 출세보다는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한다는 것인데, 다른 나라 어린이들의 꿈도 나란히 비교됐다. 인상적인 것은 프랑스 어린이들의 장래희망. 프랑스의 어린이들은 커서 ‘자기 자신이 되고 싶다’고 했단다. 이제와 문득 부끄럽다. 순간의 모면을 위해 얼마나 많이 나 자신을 속이고 숨겨왔던가.

 

철학자 강신주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모르겠다 모르겠다 하면서 흘러온 세월을 꼽아봤다. 닥치는 대로 허덕이며 살아왔지 앞에 놓인 것을 하나하나 선택해가는 진지함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는 대안을 찾는 사람은 현실에서 못 벗어난다고 말했다. 변화구가 아닌 직구의 나아감을 더는 피해선 안 된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융통성이라는 그럴듯한 변명과 할 수 없음이라는 나약함으로 대안 없음을 뇌까리며 무책임하게 자신을 방치하고 있었다. 불편하지만 향기로운 그의 독설을 잔뜩 듣고 돌아온 밤. 책상에 앉아 아이폰에 저장해둔 녹음파일을 확인하는데, 중간에 걸려온 전화를 받는 통에 녹음 기록만 남고 데이터는 제로가 되어 있었다. 보충 인터뷰를 요청하거나 서면으로 도움을 받아볼까 하다가 그만뒀다. 원고 마감의 고통에 직면해서 오로지 내 기억에 저장된 강신주의 음성만을 더듬어 직구로 승부하기로 했다. 원고의 분량이 모자란 것은 내 기억력의 한계와(혹은 이해력의 한계) 더불어 두 시간 여의 인터뷰 대부분을 개인적인 궁금증과 인생상담으로 때우고 만 인터뷰어의 허술함 탓이니, 독자 여러분께 고개 숙여 용서를 구한다. 참고로 철학자 강신주는 내 개인적인 궁금증을 해소해주지도 않았고, 인생상담에 친절히 응하지도 않았다. 기억나는 것은 “고통에 직면하라니까!”와 “꺾이면 안 돼.”

                                                               

 

    • 이구절이 애잔하군요

      이 : 저는 아직 제가 무슨 꽃인지 모르겠어요.
      강 : 이미 알고 있어요
    • 철학은 고유명사의 학문이니까요. :-)
    • 포스트 감사합니다. 제가 열렬히 좋아하는 강신주씨!! 이런 인터뷰가 있을줄 몰랐어요 :)
    • 강성주님 팬인데.. ㅎㅎ 잘 읽을께요..^^
    • 고맙습니다. 잘 읽었어요 :)
    • 애플탱고님/큰바다거북이님/검은콩두유님
      감사합니다. :-)
      앞으로 종종 월급도적질…이 아니라 출판계 쪽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 감사히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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