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를 판단하는 이중잣대에 대한 생각

이중잣대라는 것만큼 사람을 비판하기 좋은 수단도 없는 것 같습니다. 비슷해 보이는 사안에 대해 이리 저리 말이 바뀌는 모습은 공격하기 정말 좋은 먹이감이죠. 김희철, 이정희 경선 사건이 계기가 되어 쓰는 글이지만 이 글에서는 둘 중에 누구를 편들거나 이정희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낼 생각은 없습니다.

 

출근길에 통진당 서기호 판사의 트윗을 보면서 "좀 시끄럽겠구나" 했는데 역시나 듀게에 올라와 있네요. 근데 사실 지금으로서는 서기호 판사가 딱 할만한 말입니다. 서기호에 대해 어떤 기대를 가졌는지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판사 출신으로 통진당 비례대표에 올라있는 사람으로서는 최선의 멘트라고 생각해요. 가장 엄격한 판단을 요하는 형사재판에서도,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판단이 그때 그때 다릅니다. 유무죄를 엎어놓기는 어렵지만(이정희측이 잘못이 있다는 것 자체는 부정할 수 없지만), 징역 10년을 때리기도 하지만 집행유예나 선고유예를 내리기도 하죠(이정희 사퇴를 주장할 수도 있지만 사과과 재경선 정도로 만족할 수도 있죠). 그런 체계에서 10년을 일한 사람이 그 기준으로 이 사태를 보면서 그런 멘트를 날리는 건 사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으로 생각해야 할 문제는 서기호의 저런 사고방식이 과연 비판받아야 할 이중잣대냐, 합리적인 판단이냐 이거겠죠. 사실 동일한 사안이라도 그 일을 한 사람의 그 동안의 삶의 행적을 고려하여 결론을 내야 한다는 것 자체는 틀리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법원에서도 수십년간 적용한 양형기준이지만 그 자체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비판은 별로 없었고요. 구체적인 적용에서 "재벌 회장으로서 경제에 기여한 점을 감안하여 집행유예" 이렇게 써먹을 때는 비판이 있었지만, 적어도 판결에서 그 사람의 과거 성장 배경, 동종 전과 여부, 범행 동기, 범행 후 행동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비판은 별로 못들어봤습니다. 그런데 왜 정치인이나 연예인에 대한 비판과 옹호에서는 그놈의 "이중잣대"라는 비판이 그렇게 쉽게 등장하는지 좀 신기하기도 합니다. 비판은 도저히 합리적인 감안 요소가 아닌 것이 등장하거나(잘생겼으니까 등), 감안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서 결론을 낼 때 나와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그렇게 기타 요소를 감안하는 기준과 수준마저도 사람마다 다를테니, 이런 문제에서 의견 통일이 있을 리는 없지요. 이번 이정희 건만 해도 "선을 넘었다" 와 "안넘었다"가 첨예하게 대립하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이중잣대라는 비판은 비슷해 보이는 사안 두 개에 한 사람이 반응을 보인 글 두 개를 캡쳐해놓고 "님 이중잣대 쩌내요 ㅋㅋ" 하고 비아냥거리는 수준보다는 훨씬 어렵게 등장해야 하는 무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p.s. 솔직히 개인적 커밍아웃을 하자면 그런 이유로, 비슷한 스캔들이 터져도 새누리당 인물들보다는 기타 진영 인물들에게 좀 더 관대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곽노현 교육감때도 그렇고, 이번 이정희 대표 건에도 그렇고, "도덕성 따윈 개나 줘버려라" 라거나, "깨끗한 진보 주장하는 니네들끼리 평생 진보 해봐라. 난 진보 안할란다." 라는 식의 반응은 좀 무섭네요. 근본적으로 원하는 것이 "새누리보다만 나으면 된다"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저건 좀...

 

p.s. 민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 굳이 덧붙이자면, 이정희의 즉각 사퇴를 주장하는 분들이 고려 요소를 제대로 안챙겼다는 비판은 아닙니다. 지켜보니 그 분들도 과거 민노당 때부터 이정희과 그쪽 주류 세력들에 대해 충분히 과거 이력을 고려하고 판단하고 계시는 것 같으니까요. 반대쪽은 그것보다는 그래도 18대 국회에서 보인 실적을 더 높게 치고 있는 것 같고.

    • '첨예하게 대립'은 아닌 것 같군요. 듀게만 그래 보이지도 않고요.
    • 상황을 정당하게 고려해서 결론을 낸 게 아니라 우리는 대의를 위해 싸우니까 뭔 짓을 해도 정당하다라는 사고회로에서 나온 결론이니까 문제죠. 리트윗한 내용들 좀 보세요.
    • 트위터 분위기만 보면 통진당 코어 지지자들 정도를 빼면 다들 한큐에 이정희/NL/경기동부 안티로 돌아섰더군요.
    • 뭐 이 사안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지금은 선거판이기 때문에 이정희대표가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아무리 누가 맞네 틀리네 잘했네 어쨋네 논의해 봤자 아무 상관이 없지요. 결과적으로 이 모든 것들의 목표는 선거의 승리(목표 의석수의 달성 혹은 정권교체)일텐데, 지금의 상황은 그러한 선거승리와는 정 반대의 길로 나가고 있으니까요.
    • 으하하하 / 본인이 쓴 글은 딱 판사출신답다 싶었는데, 리트윗한 글은 많이 무리수이긴 하더군요.

      욜라세다 / 이정희 개인보다는 통진당 비례 표를 많이 잃겠다 싶어요. 이정희 개인은 사실 호감도가 높은 축에 속해서 이번에 데미지를 먹어도 살아남을 수도 있는데 당 이미지 훅 가는거 순식간이라...
    • "이정희 대표가 7.8% 앞섰다. 후보사퇴나, 경선무효 주장이 정당화되려면,
      문자메시지 사건이 그 차이를 뒤집을 정도여야 한다."

      글쎄요. 이런 게 법정논리인가요? 판사들이 범죄를 판단하는 기준이 정말 이렇습니까?
      정말 그렇다면 한국 사법부는 해체하고 다시 만들어야합니다.

      서기호 판사 뿐 아니라 위와 같은 논리가 트위터나 진보지지자들이 있는 게시판에 넘쳐나는 데(멀리갈 것 없이 이정희 의원 본인도 저런 논리를 폈죠) 당황스러울 뿐입니다. 차라리 곽노현 교육감 때처럼 관련자들의 선의나 진정성 같은 정서적인 면에 호소하는 게 낫습니다. 저런 논리로 주장을 해버리면 새누리당의 비슷한 사안에 대해 도무지 비판의 날을 세울 수 없게 되는 것인데 대체 어쩔 셈인가요.
      • 법률적 논리입니다.; 공직선거법에 아예 이렇게 쓰여있어요. (₩@&&₩@8~시에는 재투표를 한다. 단 그 @"₩&@~로 인해 선거결과에 영향이 없다고 인정될 때에는 재투표를 하지 않을 수 있다)

        서기호 판사는 물론이고 이정희도 아직까지 법률적 사고를 하더라구요.(나꼼수 듣다가 굉장히 변호사의 레토릭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코어는 법률가구나 했지요)
    • haia / 이번에 문제가 된 이정희 의원이 한나라당의 국회 날치기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을 때, 헌재의 답변이 이랬었죠. 지금의 방어논리는 이때 배운 걸까요? ㅡㅡ;;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법률안들에 대해 청구인의 반대토론 신청이 적법하게 이루어졌음에도 이를 허가하지 않은 채 표결을 강행하여 가결을 선포한 행위는 국회법 제93조에 위반된다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심의․표결 절차에 있어 그 밖에 국회법상 다른 위반사항이 없고, 이 사건 법률안들은 재적의원 과반수 이상의 출석과 출석의원 중 압도적 다수의 찬성으로 가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회의공개의 원칙 또한 준수되어, 헌법에 규정된 다수결의 원칙(제49조)이나 회의공개의 원칙(제50조) 등 국회의 의사원칙을 위반하였다고 볼 수 없다.

      결국 피청구인의 이 사건 법률안들에 대한 가결 선포행위는 비록 국회법 제93조를 위반하여 청구인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이지만, 그것이 입법절차에 관한 헌법규정을 위반하였다는 등 가결 선포행위를 취소 또는 무효로 할 정도의 하자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 DH / 뭐 ... 다른 사례도 있겠지만, 국회의 날치기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지극히 보수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국회의 입법행위에 대해 삼 부의 다른 한 축인 사법부가 위법이라고 판시하기에는 삼권분리 원칙의 무게가 상당하죠. 그 보다 이 건에 대해서는, '김희철 의원 캠프에서 여론조작을 시도했고, 경선에서 승리했을 때' 통진당과 지지자들이 '재경선'을 주장하거나 받아들이는 선에서 멈출것인지를 상정해 볼 때 더 답이 분명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이 경우에 통진당의 뻔하게 예상되는 태도보다 흥미로운 건 민주당의 대응이겠죠. 김희철 의원이 그런 부정행위를 했다는 게 드러난다면 (대표가 관악구 유세 한 번 안오고, 면담도 응해주지 않는 이제까지의 태도로 봤을 때) 오히려 민주당 쪽에서 지금 보이는 미적미적한 태도보다 더 강경한 조치를 김희철 의원에게 내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출당조치 내지 정계은퇴로 이어지는 ... 김희철 의원은 당 내외의 압박에 아마 하루도 버티기 어려울 것이고, 무소속 출마의 가능성도 거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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