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속풀이+스포) 건축학개론 보며 열받은 이야기

영화 보는 내내 느꼈던 아련함과 그리움은 일단 뒷켠으로 잠시 밀어두고, 그 내내 느꼈던 답답함과 울화통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해요.


(바로 본론)
다 필요 없고, 아니 이제훈은 뭡니까?
혼자 순진한 척, 상처 받은 척은 다 하고, 뭐요? (죄송합니다 한 번만 쓸게요) 썅년? 아니 누가 누구더러요? 수지 입장에서는 어이가 하늘을 뚫고 날아갈 얘기 아닌가요?
전 솔직히 수지가 그렇게 순진한 애는 아니라는 사실이, 적당히 속물적이라는 사실이 정말 다행으로 느껴졌어요.
만약 수지도 순진무구 캐릭이었다면 아마 이제훈은 천하의 나쁜놈이 되었을 거에요. 뭐 그랬담 이야기도 그렇게 흐르진 않았겠지만.
솔직히 이제훈이 한 게 뭐 있습니까?
처음 말 건 것도 수지가, 숙제 같이 하자는 것도 수지, 만나면 반갑게 맞는 것도 수지, 빈집에서 추억을 만든 것도 수지, 전람회를 알려준 것도 수지, 방송에 이야기 내보낸 것도 수지, 첫눈 오는 날 만나자는 것도 수지, 마지막 날 내내 연락한 것도 수지, 건물 앞으로 찾아간 것도 수지, 첫눈 오는 날 하루 종일 기다린 것도 수지, 15년 만이라지만 다시 찾아온 것도, 그래도 원망 한 마디 안 하고 그냥 다 들어주는 것도 수지.
납뜩이 캐릭터는 정말 대한민국 평균 남자들 술자리 연애 조언자 친구더군요.
아, 이제훈이 꺼져달라고 했을 때 속에서 터지던 그 울화통이라니.

감정 이입 제대로 했죠, 이렇게나 열불이 터졌던 걸 보면.
첫눈이고, (전람회는 아니지만) 공유하는 음악이고, 그 열불 터지는 상황이고, 결국 내 상처는 상처도 아니게 되는 결말이고, 다 너무나 공감이 돼서 보는 내내 저릿했어요.
오랜만에 생각난 이름 석 자. 연락처를 알았더라면 당장이고 전화해 "야, 나도 할말 많아!!" 라고 소리쳤을 거에요.
정말 다행이죠. 완벽한 남남이라는 게.

그래도 보는 내내 저릿저릿, 울기도 울었고, 웃기도 무지 웃었고, 끝나고 흐르는 기억의 습작을 속으로 따라부르며 끝까지 앉아있었네요.
첫눈 오는 날 같이 걷고 싶은 사람은 시간이 흐르고 또 나타났고, 앞으로도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날 테지만, 그래도 그때랑은 조금 달라졌죠.
지금의 저는 그때만큼 참을성 있지도, 그때만큼 마냥 너그럽지도 않으니까요.
그래도 그때가 좋았죠.
다시 돌아간다면 절대로 그렇게 끝나게는 안 하겠지만요.

    • 공감 가는 심정이네요.

      저는 꺼져줄래 하는 이제훈에서 파수꾼의 이제훈이 떠올랐어요.
    • 우리 모두 누군가의 납뜩이었다
    • 아, 이제야 좀 시원하네요. 영화 보고 나오는데 같이 화내줄 친구가 옆에 없어서 친구랑 같이 볼걸 하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요. 나오는 길로 이렇게 떠들고 나니 좀 낫네요.
      맞아요, 파수꾼의 이제훈. 그 표정이더군요. 이제훈은 조금 찌질대는 캐릭터가 어울려요.
      사람 마음을 멋대로 짐작해서 혼자 소설 쓰는 거 정말 위험하죠. 저도 그럴 때가 많지만요.
    • 슈퍼픽스/ 정말 납뜩이 캐릭터는 주위에 한명은 반드시 있을 법한 캐릭터더군요. 여자 입장에서는 남친 친구 경계 1호랄까요. 나랑 싸우면 '야, 세상에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야, 먹고 잊어잊어' 하며 싱숭이 생숭이 불러내는.
    • 맞습니다 맞고요.
      수지가 트위터에 *년 이라고 팬이 보낸 화환 리본 인증하면서 문구 격하지만 영화 보면 이해간다는 식으로 쓴 거 보고 어이가;;;
    • ㅋㅋ 음 남자입장에서 변호 아닌 변호를 해보면 영화가 3인칭에서 돌아서 그렇지 이제훈도 가진 정보량이 적어요. 이제훈이 보기엔 결과적으로 수지는 적당히 떡밥을 던져줘서 좋아하다가 나중에 보니 선배하고 짝짝꿍하면서 놀더라 이 **. 이런식이 된거죠.

      그런걸 쿨하게 넘기거나 어떻게 물어본다던지 하기엔 너무 어린 시절이고. 그리고 원래 남자가 첫사랑에 홀랑 빠지면 뭐 아무말도 어버버하기 때문에 어디 가자 말도 잘 못해요. 전 이제훈을 어린 시절의 첫 실수투성이= 찌질해도 용서가 되는 캐릭터 로 보았습니다. 남자라서 그런가 ㅎㅎ
    • 저도 영화보고 나오면서 친구한테 열폭해서, 저게 X신이지 여자가 X년이냐?하구 터졌어요. 아니 지가 좋아하는 여자가 몸을 못가누는 정돈데 그게 개념 밥말아먹은거죠. 앗. 티비에 수지나온다.
    • 갑자기 궁금해진 건데, 남자들은 그런 첫 실수투성이의 기억을 잘 못 잊나요?
      하긴, 저도 언제나 젠틀하고 매너있던 사람보다 그렇게 실수투성이에 조금 찌질해도 그게 또 귀여웠던 사람이 더 안 잊히네요.
      그래서 가끔 궁금해질 때가 있죠. 이 남자는 누구한테 그렇게 실수투성이의 귀여운 구석들을 잔뜩 보여주다 이렇게 젠틀하고 매너있는 사람이 되었을까 하는. 이렇게 언제나 단정하고 예의 바른 모습 말고, 가끔은 술도 잔뜩 먹고, 취해서 전화도 하고, 보고 싶다고 주사도 부리고, 그래줬으면 좋겠는데 하는 마음. 너무 찌질한 건 싫겠지만, 그렇게 찌질한 모습들이 더 진심으로 와닿을 때가 있으니까요.

      그냥 좀 안타까운 것 같아요. 서로가 서로를 오해하고, 그 오해들이 잔뜩 쌓인 채 돌아선다는 게.

      맞아요. 세상에, 지가 좋아하는 여자가 몸도 못 가누는데 말이죠. 선배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집에 와버리고.
      꺼져줄래가 울화통 게이지 1위, 그 장면이 울화통 게이지 2위.
    • 모모씨/ 글쎄요. 이제훈이 나쁜 놈이라는 간단한 얘기로 마무리 될 성질은 아니라고 봅니다. 극 중에서 이제훈은 강남 선배한테 상당히 열등감을 가지고 있죠. 아마 마음속으로 그 선배와 자신이 여자 한 명을 사귀는 문제로 경쟁한다면 자기가 분명히 질 거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수지는 진실인지 '낚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강남 선배를 좋아한다고 이제훈에게 얘기했어요. 이제훈이 수지에게 쉽게 고백을 못 한 건 연애에 서툰 탓도 있지만, 강남 선배 탓도 있다고 봅니다. 만약에 고백했다가 자길 좋아하는 게 아니라 강남 선배를 더 좋아하는 거였고, 강남 선배와 수지가 사귀게 된다면 고백 얘기가 그 선배 귀에 들어갈 수도 있으니까요. 만약에 그렇게 되면 과 내에서 조롱거리가 될 가능성도 다분합니다. 실제로 그런 경우도 현실에서 좀 봤고요. 그리고 건축과 같은 전문직 관련 과 경우엔 졸업 후에 학교 인맥이 사회까지 쭉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자신의 고백이 헛짓거리가 된다면 그게 평생 수치가 될지도 모른다는 거죠.
      이제훈에게 그런 불안이 있었다고 가정하고 영화를 보면 더 잘 이해가 되실 거 같네요. 그리고 수지는 단순히 강남 선배를 좋아한다고 이제훈에게 얘기한 것뿐만이 아니라, 짝퉁 게스 사건 때 강남 선배와 같이 이제훈을 비웃기까지 했죠. 물론 그 행동에 악의는 없었고, 맞장구를 친 것에 불과합니다만, 이제훈은 극 중에서 굉장히 상처를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 사건 때문에 어머니와 다투기까지 하죠. 그 일 뒤에 수지는 '강남'으로 이사갑니다. 이제훈 입장에선 서운하죠. 만약 자기를 좋아한다면 자기 집 근처에서 살아야지, 왜 그 선배 집 근처인 강남으로 이사가냐고 생각했을 겁니다. 물론 이제훈과 수지가 그동안 정을 많이 쌓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수지가 강남선배가 아닌 이제훈을 좋아한다고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극 중 털털한 수지의 성격을 볼 때 자신을 편한 친구로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관객들은 수지의 모든 행동(집에 초대하는데도 만날 날짜를 안 정하고 말을 얼버무리는 행동 같은 것들)을 보니까 이제훈이 어리석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이제훈은 수지에게 쉽게 대시할 상황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르자고 결심하고 찾아갔는데, 둘이 같이 수지의 방으로 들어갑니다. 보통 남자들 같으면 강남 선배가 수지를 부축하고 방으로 들어갈 때, 어떤 상황인지 알아채고 수지를 같이 부축함으로써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걸 막았겠죠.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자가 강간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도요. 이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죠. 그런데 말이 됩니다. 이제훈이 강남 선배에게 갖고 있는 열등감을 감안하면요. 그는 자기 따위는 애초에 강남 선배의 상대가 안 되었다는 걸 깨달은 거죠. 이 장면에서 중요한 건 이제훈이 방문에 귀를 대고 무슨 소리가 나는지 들어본다는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는 믿기 싫었던 겁니다. 그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걸. 자기는 강남 선배한테 안 된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는 거죠. 만약 수지가 저항하거나 싸웠다면 그는 방문을 두드렸겠죠. 하지만 그는 안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돌아섭니다. 그리고 나와서 모형 집을 부숴버리죠. 이것도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는 사실 자기 집을 좀 부끄러워하죠. 계속 이사가자고 하고, 자기 어머니가 하는 일도 남들에게 숨기고 싶어 합니다. 한가인의 집을 만들어 줄 때도 증축이 아니라 아예 새 집을 짓고 싶어하죠. 그러니까 그는 수지와 함께 '개천용'이 되길 꿈꾸었던 거죠. 그런데 그날 그는 어쩌면 그게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계급적 열패감'을 맛보게 되죠. 단순히 겉 이야기만 보면 이제훈이 왜 그렇게 수지를 증오했는지 그 이유는 명확하지 않아요. 하지만 제가 짐작해 본 이제훈의 마음은 그렇습니다.
      제가 봤을 때, 그 안에서 실제로 거사가 벌어지진 않았더라도 무슨 일이 있었고, 수지는 이제훈을 다음날 찾아갔을 때 그냥 쳐다보고만 있을 게 아니라 해명을 해야 했어요(물론 아직 어렸기 때문에 힘든 일이었겠습니다만). 어쨌든 이제훈 입장에선 수지가 찾아온 행동 자체도 이제 강남 선배와 사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는 것과 앞으로 친구로서 잘 지내자는 의미 두 가지로밖에 해석이 안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이제훈도 늦게 가긴 했지만 그 빈 집 찾아갔고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건, 더 상처받기 싫어서였겠죠.
      • 질문요!! 거사가 벌어지지 않았더라도 해명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승민이가 자취방으로 찾아온걸 서연이는 몰랐는데 어떻게& 무엇을 해명할 수 있었을까요? 게다가 종강일에 안와서 삐삐를 남긴것도 서연인데요. 정말 많이 좋아하면서도 그 장면을 보고 마음돌린게 저는 안타깝고 이해가 안됐어요.
    • 모모씨/ 결과적으로 이제훈에게 수지는 '계급적 절망감'을 안겨준 사람이었던 겁니다. 상황을 보면 이제훈이 상당히 미숙했던 부분도 있었지만, 그건 수지도 마찬가지였어요.
    • 전 그래서 영화가 별로 재미 없었습니다. 이제훈 캐릭터 진짜 피곤해요 ;;;
    • 지푸라기/ 써주신 글 잘 읽었어요 :-) 맞아요. 수지가 강남 선배에게 호감 있는 듯 보이긴 했죠. 그러니 이재훈이 오해한대도 어쩔 수 없는 거고요. 게스 티도 그렇고, 주변 인식이나 사회적인 인식으로도 그렇고, 이제훈이 열등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는 충분한 공감도 가요. 하지만 제가 정말 안타까웠던 건,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렇게도 자신이 없나 하는 부분이었어요.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를 믿어주지 못한 것도요. 오해할 부분은 분명히 있었지만, 그 부분에 관해서는 물어주었다면 좋았겠죠. 물론 둘 다 어리고, 또 둘 다 미숙했기 때문에 거기까지는 기대하기 힘들겠지만요. 더 상처받기 싫다는 핑계로 멋대로 오해하고 멋대로 끝내버렸다는 게 너무나 안타까웠어요. 둘 중 한쪽이라도 차라리 화를 내고 따졌다면, 하는 생각도 자꾸 들고요. 사기를 친 게 아닌 이상은 어떤 관계든 일방의 잘못으로 끝나는 관계는 없으니까요. 정도의 차이죠.

      상대가 누구든 자기 자신에 대해서 좀 더 자신감을 가졌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너무 커서 화가 났던 것 같아요.
      영화를 보면서 자꾸만 겹치는 누군가가 있었기에 감정 이입해서 더욱 답답했던 것도 있고요.
      다시 보니 제가 이제훈을 너무 매도했나 싶네요. 애정해서 그랬어요, 아련하고 풋풋한 게, 너무나 좋고 또 안타까워서요.
    • 수지가 트위터에 *년이라는 문구를 영화 보면 이해 갈 것이다라고 했던 부분은 극 중 서연이가 *년이라는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 이 영화에서 썅년은 애증의 의미 아닌가요
    • 율피/ 다음 날 아침에 수지가 쓰레기 버리러 문 밖으로 나오죠. 그때 쓰레기봉지 옆에 뒹굴고 있는 모형 집과 자신이 그린 집 그림을 봅니다. 그래서 수지가 이제훈을 찾아간 거죠. 그가 자신을 오해하고 있다는 확신을 품고 간 겁니다.

      모모씨/ 전 극 중에서 이제훈이 수지가 자신을 좋아했다는 걸 알고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에 나온 시디피랑 기억의 습작 시디를 빈집에서 본 이후로는 어느 정도 그 짐작에 확신이 생겼겠죠. 제 생각에 그는 수지가 자신을 좋아하면서도 물질적 배경 때문에 강남 선배를 택했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왜냐하면 2층집 얘기 할 때도 그렇고 강남 동경하는 것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수지에겐 속물성이나 허세기가 있었거든요) 만약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 시디피와 시디를 본 순간 수지에게 찾아가서 그녀의 마음을 확인했겠죠. 그리고 만약 제 짐작이 맞다면, 그의 분노와 증오는 더 커졌을 겁니다. 십오 년 동안 잊지 못할 정도로.
      그리고 둘 사이가 안타까운 건 안타까운 거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세상엔 둘이 서로 정말 사랑하더라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운명 같은 건 믿지 않지만, 노력으로 불가능한 관계라는 것도 존재하는 거죠. 서로 사랑하기에 작은 오해나 실수로도 쉽게 틀어질 수 있습니다. 둘의 감정이 얕은 것이었다면 이제훈은 강남 선배와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수지를 몇 번 더 떠봤겠죠. 하지만 그가 받은 상처가 너무 컸기에 그렇게 하지 못 했다고 생각합니다. 때로 사랑이란 건 정말 이상한 거죠. 서로 감정이 깊을수록 상대와 더 멀어지게 하니까요.
      • 정말 알고 있었을까요? 자기의 감정이 서연의 감정보다 훨씬 (어떤 의미에서) 우위에 있다 생각한 건 아니구요? 정말 그녀의 마음을 이해했던 걸까요?

        그랬다면 더더욱 이제훈이 이해가 안 가는 걸요.
      • 그리고, 노력으로 불가능한 관계가 존재한다는 말씀에는 공감하지만, 그건 서로 '정말이지 최선으로' 노력해본 후에야 가능한 말이라고 생각해요. 거의 대부분은, 최선을 다하기가 두려워 도망치고야 말죠.
    • 영화가 좋았으면서도 스무살의 이승민을 보면서, 못난 놈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편으로 서연의 시각으로 영화가 진행되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 서연의 시각으로 영화를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 으으 공감갑니다 수지입장에선 자기가 술이 떡이되서 응큼 선배한테 질질매달려가는데 좋아하는 남자애가 그걸 다 지켜보고 문에 와서 귀까지 대봤다는걸 알면 아주 억장이 무너지겠지요. 그리고 나중에 삐삐메세지와 빈집에 남아있던 씨디등등을 종합하면 사실은 수지가 자기에게 마음이 있다는걸 충분히 알수도 있는상황인데 오해를 풀려고 시도도 안했지요. 계급적 열등감에 짓눌려서인지.. 여기까지는 아주아주 너그럽게봐주면 어려서 그랬다 생각해도 다큰어른이 여친한테 첫사랑 얘기하면서 썅년이라고 표현하는건 누가뭐래도 찌질찌질 ㅠㅠ... 여친한테 첫사랑 얘길좋게하는건 싸움의 계기가될수있지만 썅년이랄거까진 없잖아요?
      • 전 솔직히, 지난 사람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포장해서 하는 것도 물론 싫지만 그렇다고 자기만 상처 받은 척하는 사람도 꺼려져요.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의 반성은 전혀 없다는 거니까요.
    • 모모씨/ 제 말은 이제훈이 수지는 뼛속까지 속물이라서 자길 좋아하면서도 돈을 보고 부잣집 아들을 택했다, 라는 관점을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뜻입니다(물론 자기가 더 좋아했던 거라고 생각했겠지만요) 제 생각에 그 날 밤 분명 선배와 수지 사이에 스킨쉽이 있었을 듯 합니다. 이제훈은 그 소리를 대놓고 들은 거고요. 그래서 그의 관점이나 윤리관에선 수지는 이미 강남 선배를 택한 게 되는 거고, 그건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고 봐야 합니다. 그 뒤 행동을 봤을 때는 말입니다.
      (그의 관점에선) 그런데도 수지가 자신에게 미련을 보이는 게, 제훈의 입장에선 가증스럽게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강남 선배랑 만리장성 쌓아 놓고 날 놓치긴 싫은 거구나, 생각했을 수 있죠. 한 발 더 나가면 사실 강남 선배는 상당한 바람둥이이고 여자한테 별로 집착하지 않는 성격으로 나오는데, 수지가 자신과 친하게 지냄으로써 강남 선배의 질투심과 정복욕을 불러일으키게 했다고 오해했을 수도 있어요. 뭐 좀 지나친 상상이긴 하지만 그다지 드문 일도 아닙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게. 제훈이 가질 수 있었을 법한 모든 관점을 고려해 보면, 그의 입장에서 수지는 분노의 대상일 수밖에 없죠. 열등감이 이성을 가린 경우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제가 봤을 때 수지가 처음부터 이제훈을 좋아했다고는 볼 수 없고요. 처음엔 강남 선배 좋아하다가 이제훈 쪽으로 기운 거 같습니다. 아울러 수지가 그때 제훈의 말에 반박을 못 한 건, 그날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고 차마 거짓말을 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아무 말 못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 건 알았지만, 어떻게든 덮고 가고 싶었던 거죠. 만약 그날 아무 일이 없었다면 그렇게 좋아하던 남잔데 변명 한 마디 못 했을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15년 동안이나 못 잊을 정도로 좋아했던 사람인데, 편지라도 썼겠죠. 주소야 과 사무실 가면 알 수 있는 거고요.
      • 저는 그게 다 오해라고 생각했어요. 정말 아무 일도 없었지만 수지도 나름대로 (믿었던 선배에게서 본 다른 모습이든 뭐든) 강남 선배에게 상처 받았던 거라고. 그 날 이제훈이 문에 들이밀고 어떤 소리라도 들었다면 납뜩이에게 '그치만 그래도 정말 아무 일도 없었을 수도 있는 거고' 라는 말은 하지 않았겠죠. 저는 그래서 오히려, 납뜩이의 말과 여러 정황으로 수지를 마음껏 오해한 이제훈이 너무나 답답했어요. 수지에게 변명의 기회조차 주질 않고 멋대로 결론 내렸잖아요. 납뜩이는 서연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도 납뜩이의 충고나 철썩같이 믿고.
      • 변명 한 마디 못 했던 건 자기의 허영심을 자기도 알고 있었고 또 그걸 부끄러워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정말 어쩌면 제멋대로 자기를 오해한 이제훈에게 상처 받았을 수도 있죠. 자기를 잡아주었으면 하고 바랐던 유일한 사람마저 자기에게 등을 돌렸단 아픔일지도 모르고요.
    • 모모씨/ 노력으로 불가능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뭐랄까, 제가 얘기한 건 그냥 현실이 그렇다는 거죠. 정말 최선을 다해 사랑을 지키는 건 동화책에나 나오는 거고, 그런 노력마저도 나중엔 권태나 환멸로 바뀌기 쉽죠. 어쨌든 아무리 타인을 사랑해도, 결국엔 자기 자신이 제일 중요한 거 아닙니까? 누구에게나. 상처받고 마음이 폐허되는 것보다는 덜 사랑하는 사람 만나는 게 더 이성적인 선택이라는 거죠. 결국 사람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니까요.
      • 점점 영화 속 서연을 '변명'하는 것 같아지네요. 결국엔 자기 자신이 제일 중요한 것 아니냐는 말씀에는 공감해요. 하지만 이성적인 선택을 하면서도 전혀 이성적일 수가 없는 마음에 오랜 세월을 마음 아팠을 수도 있고, 결국은 그 사람도 나를 떠나는 모습에 정말 다 포기하고 싶어졌을 수도 있고, 상처를 받아도 상처 받았다 여기저기 떠들어댈 수 없는 이야기를 혼자 삭히려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이 아팠을 수도 있지요.

        그런데 이건 전부 다 객관이 아닌 주관이라 쓰지 않을까 싶다가 그냥 내지르는 말들이긴 합니다.
    • 모모씨/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자기 자신부터 보호할 수밖에 없는 건 인간의 본능이니까요. 승민이나, 서연이나 그저 각자 실수를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이었던 건 상대를 사랑한다는 건 알았지만, 실제로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몰랐다는 거고요.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헤어진 다음 시간이 충분히 흘러야 분명해지는 거죠. 그들에게는 첫 사랑이기도 했으니까요. 자신들이 갖고 있던 사랑의 크기를 알았다면, 좀 더 비참해지더라도, 좀 더 고통 받더라도 둘 중 하나는 더 노력했을 겁니다. 둘 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서야 안 거죠. 그 사랑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했던 것이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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