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시골 도서관 어린이 자료실에는

 

이용자가 거의 없네요.

대출대에 혼자 조용하게 앉아 있습니다.

평소에는 사무실에서 근무하는데

근로자의 날이라 자료실 선생님들이 출근 안하셔서

땜빵으로 오늘은 어린이 자료실에서 자체 '근로(태만)자의 날' 하고 있어요.

5분 전에 뽀로로 책은 어디있냐던 새우눈 아가씨가 나가고 나니 

자료실에 타닥타닥 빗소리만 울리네요.

너무 고요해서 아무것도 기억할 것 없는, 그래서 새겨놓고 싶은 시간들이 천천히 지나갑니다.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었던 이유는 많았지만

그 중 하나는 제가 아는 곳 중 유일하게 고요함이 당위일 수 있는 공간이여서였어요.

뭐 딱히 세상의 소란스러움에 질려있거나 그런건 아니었는데도

책장을 걷거나 연필이 사각거리는 소리들을 듣고있으면

그 작은 소리들 사이에 숨어있고 싶어졌거든요.  

 

정작 들어와서는 도서관을 소란스럽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울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어두컴컴한 서가에 등을 대고 가만히 숨을 고를 수 있는 건,

좋네요.

 

근로자의 날에 열람실 지키느라 혼자 10시까지 꾸역꾸역 근로해야한다고 투덜대면서 나왔지만

전 여기가 좋습니다.

이 일이 좋아요.

 

 

 

그냥, 그렇다구요.

새벽도 아닌데 왠 청승인지 모르겠네요.

 

 

  

 

    • 저도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은 로망이 있어요. 사서도 좋고 그냥 직장이 도서관인 행정업무도 좋고.

      외국에서 한 연구결과에 스트레스가 심한 직업 top10에 사서가 있었던 걸로 봐서는 제가 모르는 많은 고충이있는 것 같지만요. ㅎㅎ
    • 도서관에서 근무하면서 조용히 책 읽고 퇴근 후에 자기 글을 쓰는 작가의 클리셰가 떠올랐는데 생각보다 일이 많으려나요? 제가 다니는 대학교에선 귀찮은 일 모두 근로학생들한테 몰아주고 여유롭게 티타임을 갖는 도서관 담당선생님들이 떠올라서ㅜㅠ
    • 책이 좋아 출판계에 몸담고 있지만 언젠가 이 정글 같은 서울을 떠나 지방 소도시의 도서관에서 일하거나 작은 도서관을 세우는 게 꿈인데 마냥 부럽습니다 ㅠ.ㅠ
    • 제가 예전에 설명하기 복잡한 일(?) 때문에 도서관에 대해 장기간 취재를 해본 경험이 있었는데, 도서관마다 다르긴 하지만 사서가 의외로 해야 할 일이 정말 많더군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여유있어 보이지만요. 그 점에 대해서 억울해(?)하는 분들도 계셨구요. 생각보다 체력을 요하는 일도 많고 해서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이 글 보니까 그 때 생각이 새록새록 나네요.
    • 글 좋네요. 저도 도서관 로망이 있었는데, 실제로는 힘든일도 많겠죠?

      언젠가 도서관 이야기 해주시면 반갑게 들을게요 :)
    • 훗.도서관 자료실 근무자는 그냥 육체노동자입니다. 그게 다입니다. 100% 리얼 육체노동임ㅠㅠ
    • 반갑습니다. 저는 대학도서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듀게에 사서 분이 여럿 계시네요~
    • 도서관에서 일해봤는데 비염이 심해져요. 틈틈이 일련번호 맞춰 리딩작업 해야하고 신간 체크하고 새책오면 맞춰서 책장 재배열하는게 보통 일이 아니던데요. 평온하고 정갈하게 돌아가는 도서관은 사서님들의 피땀이 들어가있어영ㅠ 그런데도 집안일처럼 티는 별로 안나죠ㅠㅠㅠ
    • 정독도서관/ 제가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때가 정독도서관에서 공부할 때였어요. 괜시리 막 반갑네요!
      sunshine/ 배수아처럼 공무원하면서 글쓰는 분들 대단하다고 느껴요. 일도 많겠지만 각종 기안의 딱딱하고 상투적인 문장에 짓눌리지 않기란.
      우즈마키/ 작은 도서관 만드는 건 저도 로망이에요. 좀 머나먼 후의 일 같지만요.
      SSAL/ 맨날 사무실에 처박혀 있다가 간만에 한가한 자료실에 앉아있는게 좋아서 글 올렸는데 올리고보니 사서들 한가하게 일하는구나로 오독될까봐 걱정했는데 이런 오해사기 딱 좋은 글에서 고충을 떠올려주시니 고맙고 민망하네요.
      생강쿠키/ 감사합니다. 가끔 생각나면 꺼내놓을께요 :)
      토토랑/ 토토랑님 도서관 글 되게 재미있게 잘 봤었어요. DVD 대여 패턴 같은건 많이 공감됐구요. 이렇게 댓글로라도 인사하니 좋네요.
      쑤우/ 사서 고생한다는 속담이 원래 그 뜻은 아닐텐데 ^^;; 저희들끼리 쓰게 웃으면서 많이 자조하는 말이긴 해요.
      꿈의노래/ 앗. 반갑습니다. 듀게에 사서 분들이 많나요? 전 이제 꼬꼬마라서 사서라는 호칭도 솔직히 많이 부끄럽네요.
      catcher/ 때아닌 저녁의 청승,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책상위의천사/ 박봉은 맞지만 사람들 인식은 변화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준비하는 과정 내내 회의했었는데, 위에서 낯간지럽게 고백한 것처럼 되고보니까 전 이 일이 참 좋네요.
      침흘리는글루건/ 티 안나는 살림 맞아요. 청소 안한다고 맨날 구박받는 제가 청구기호 순서 꼼꼼하게 정리하고 있는거 저희 엄마가 보시면 얼마나 기가 차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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