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영화의 문법이 현재 잘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일단 이 글을 쓰는 동기가 된 것이 순례님의 몇개 게시글이지만 순례님이 없는 자리에서 뒷담화를 하려는 의도는 아니란 점을 밝혀드립니다.

순례님이 듀게에 올린 몇개의 게시물을 보면 대부분의 현대영화 거장들의 작품이 영화형식적인 면에서 빈약하거나 엉터리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http://djuna.cine21.com/xe/?mid=board&search_keyword=%EC%88%9C%EB%A1%80&search_target=nick_name&document_srl=4062532 <-- 일단 듀게의 이 게시물을 보면 일단 데이빗 린치의 작품 멀홀랜드 드라이브 일부 장면을 분석하면서 이 작품이 얼마나 허술하게 구성되었는지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거의 유령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모 영화 카페를 어제 들어갔다가 우연히 순례님의 글을 발견했어요. 여러가지 정황과 글 쓰는 스타일로 봐서 거의 순례님의 글이라 판단되는데 거기선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가 처절하게 비판받고 있더군요. 영화형식에 대해서 전혀 공부한 바가 없기 때문에 일단 순례님의 분석이 다 맞다고 전제했을때 한가지 의문이 들더군요.

왜 최근의 영화 거장들은 고전영화 문법을 적용해서 영화를 만들고 있지 않을까? 순례님의 말대로 그게 영화를 구성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면 왜 그걸 적용하지 않는것일까 하는 의문이었어요. 그래서 몇가지 가능성을 도출해 봤죠.

 

1. 현대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 대체로 안이하고 게을러서

 

2. 현대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의 기량들이 수십년 전보다 현격하게 떨어져서

 

3. 고전영화 문법을 현대 관객들이 수용하기 어려워서

 

 

먼저 첫번째 가능성입니다. 이건 위에 링크된 순례님의 글에서도 약간 언급이 되긴 했지만 요즘 영화감독들이 안이하고 게을러서 대충 대충 컷을 구성해서 만든다는 가정입니다. 하지만 이거 납득이 잘 안가요. 일부 젊은 감독들이 그렇다는건 이해가 가지만 통상 우리가 거장이라고 부르는 감독들조차 대충 대충 영화를 만들어 내논다는건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요. 과거보다 좀 못할 수는  있겠지만 현재도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작품을 만드는 감독들은 있거든요.

 

두번째 가능성인데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최근 영화감독들이 바보라는 얘깁니다. 하지만 이 부분도 쉽게 이해가 안 가는건 마찬가집니다. 최근에 영화에 입문하는 젊은 영화작가라면 몰라도 적어도 중견 감독들이라면 누구나 순례님이 언급한 고전영화들을 어린 시절 보면서 영화의 꿈을 키워 왔어요. 그걸 모를리가 없지 않을까요? 고전영화가 만들어지던 시절과 비교했을 때 물리적으로 훨씬 많은 영화작가들이 활동을 하는데 그 중에 역량있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는건 믿기가 어려워요.

 

세번째 가능성입니다. 이것도 순례님 글에 약간 비쳐졌는데 그 당시 문법에 충실하게 영화를 만든다고 해서 관객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가정입니다. 그러니까 감독들은 그렇게 만들 능력이 되지만 대중들 눈높이에 맞춰 대강 영화가 만들어진다는거죠. 잉마르 베르히만 같은 작가들의 영화라면 그럴수도 있겠지만 존 포드 같은 경우는 상당히 통속적인 작품들을 많이 내놨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흥행도 잘 되었고요. 대중들이 이해하기 쉬운 내러티브 구조만 갖춰진다면 적용 못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의심이 듭니다. 혹시 고전영화 시대에 효과적이라고 여겨졌던 연출기법이 현대에 와선 반드시 그렇게 효과적이지만은 않다고 판단하는 무엇인가 있지 않겠냐하는 의심이죠. 물론 미학적으로 아직 체계화되진 않았지만 말이죠. 존 포드가 영화를 연출할 당시에도 견고한 미학체계를 염두에 두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존 포드 자신은 천부적 감각으로 자연스럽게 만들었던 것을 후세의 학자들이 해석을 하고 미학 개념을 구축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혼란스럽고, 잘 모르겠어요.  

    • 스타워즈를 울면서 본 이후로 별로 복잡하게 생각안하려고요/ 7인의 사무라이가 비판받아야 할 영화인가? 잘 모르겠군요. 그 영화는 발표되면서 '새로운 영화의 형식'이 되어버리지 않았나요
    • 김전일/ 숏과 컷 분석을 해보면 엉터리 연출이라고 하던데요.
    • 셰프 입장에서 보면 엉터리인 우리 어머니 음식이 내게는 천상의 음식이인 것과 같은 이치일지도요. 잘 모르겠고.. 존 포드에 대한 일화를 들어보니 어떤 경우 촬영장에서 상황에 따라 즉석으로 연출한 경우가 꽤 있다고 해요. 구로자와는 끊임없이 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던 감독이었고요. 이건 일종의 신포도가 아닙니까
    • 김전일/ 잘은 모르겠지만 포드가 어떤 탄탄한 이론적 체계를 갖고 연출을 하진 않았을거란 생각이 들어요. 천부적 감각이 있었던거죠.
    • 컷과 숏으로 상징되는 순례님의 고전영화 기법은 그분이 말했듯이 촬영장비,여건의 한계 (카메라 1대, 짧은 필름, 카메라 이동의 불편, 조명의 한계 등등)에 따라 개발된 것이고 고정적 요소가 많아 역시나 한정된 화면 안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려다보니 회화적이 될 수 밖에 없었지 않나 싶어요. 기술이 발전하니 여건이 달라지고 영화 문법도 달라진 거겠죠. 물론 딱 하나 집어서 이거때문이다라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여튼 순례님이 찬양하는 고전감독들 현대로 데려와 찍으라고 하면 지금 거장들과 딱히 다를 거 없다는 데에 십원 걸어봅니다.
    • 그런데, 영화구조에 대해 공부를 하면, 영화전체를 굳이 다 볼필요 없이 예고편이나 한 씬만 봐도, 대충 그영화의 완성도나 감독의 기량이 어떤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건 우리가 외국인을 만나서, 그 외국인의 한국어 능력을 판단 할때, 1-2시간 토론할 필요없이, 단 몇분간 대화로 확인할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게 제가 최신영화를 덜 선호하는 이유입니다.

      아 그리고, 예술에서 의미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제가 이후 새로운 게시물을 올릴 것입니다만, 영화에서 의미라는 것이 뭔지 잘 개념이 정립이 안된 분들이 있는 듯 하네요.
      -------------
      귀찮아서 잘 안읽다가 지금 읽었는데 어마어마한 오만이라고 생각합니다.
      uip직배가 시작되었을 때 할리우드 영화를 무조건 비난했던 영화 평론가들 생각이 나는 걸요.
      뭐 아무래도 나는 정영일 산생님 쪽인가 봅니다
    • 저도 순례님의 글을 보면서 좀 생각을 해왔던 것인데, 저는 스필버그 이후의 영화 (혹은 MTV 등장 이후의 영화) 에서, 한 영화에 cut 의 수가 급격히 많아진 것이 한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고전영화의 미학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shot 의 사이즈와 cut 의 지속시간. 그리고 카메라의 진행방향과 인물의 시선 및 진행방향일텐데요. cut 의 수가 어느 이상 많아지면 shot 사이즈 의 의미가 점점 사라집니다. 사이즈나 시선, 카메라의 진행을 의식할 시간을 주지 않고 다음 cut 으로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점점 심해져서,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일정 시간 이상의 cut 을 견디지 못하고 지루하다고 여기게 되면서, 영화에 '속도감' 만이 중요해집니다. cut 의 수가 중요해지다 보니까, 현장에서도 미학을 고려하지 않고 커버리지를 남발한 후에 편집에서 OK cut 이 결정되는 경우가 늘어나 버리고요. 한컷 한컷의 미학적인 중요도보다는 나중에 붙였을 때에 튀지 않도록 무난한 사이즈의 shot 들이 선택되는 경우가 많아질 수도 있을 듯 하구요. 게다가 하루에 찍어야 할 cut 의 수 자체가 늘어나버리면, 매 컷당의 퀄리티도 떨어질 가능성이 있고, 현장에서도 "빨리 찍는" 것이 가장 큰 미덕이 되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쓰고보니 일종의 악순환이네요. - 물론, 저는 이렇게 컷이 많은 영화에도 고유의 미학이 등장할 수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이즈가 다른 많은 컷들을 의미없이 막 섞어 쓴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크리스토퍼 놀란이나 메이렐레스의 영화에서 훌륭한 몇몇 씬들을 보면, 그것들을 흉내낸 대충 흔들어 찍는 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영화적 쾌감이 있으니까요.
    • 고전음악,클래식의 문법을 현대의음악,이를테면 재즈가 따르지 않는 거랑 마찬가지죠.
    • 어셈블리어로 코딩할 때는 어셈블리어에 최적화된 방법이 필요하고 c언어로 코딩할 때는 거기에 최적화된 방법이 필요하죠. 자바로 코딩할 때는 또 거기에 최적화된 방법이 필요하고. 영화 문법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 hj/ 아! 좀 납득이 갑니다. 설득력이 있는 견해네요.

      晃堂戰士욜라세다/ 공학적인 접근방법이군요.
    • 개인적으로는 사실성과 어떤 관계가 있지 않나 싶은데 잘 모르겠네요. 기술이 발전하면서 연극적이라기보단 사실적으로 무언가를 표현할수 있게 되었고 그것에 연관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
    • 순례님의 글 관련한 논쟁을 촘촘히 따라가지 않아서 말을 보태기는 그렇습니다만(일단 그 분 글은 오명훈 교수 발언 글 이후 읽지 않게 돼서)...

      고전 영화 이후 모던 시네마라는 거대한 흐름이 있는데 그에 대한 얘기가 있었나 싶네요. 고다르나 안토니오니, 브레송의 이제 '고전'이 돼버린 영화들의 등장이 언제적 일인가요. 아니, 그 이전에도 오즈도 있고요. 수많은 도전, 실험들이 있었고 또 그것들 중 상당한 부분이 현대 영화의 문법으로 흡수된 마당에 '고전 영화의 문법'에 국한해 얘기하는 것부터가 뜨악하더군요. 이건 베케트를 말하면서 발자크나 톨스토이를 불러오는 격이니.
    • 샤유, dos/

      그럴 것 같기는 한데 전문적으로 공부를 해 본적이 없어서 뭐라 딱 집어내지도 못하겠고 갑갑하네요.
    • 모던 시네마의 주요한 특징점 중 하나를 꼽자면 소위 '브레히트적'이라고 말하는 거리두기죠. '몰입'에 저항하는 것.

      안토니오니는 일부러 180도 법칙을 어기고 리액션의 매치를 어긋나게 하는 등의 온갖 방법을 씁니다. 심지어 일부러 실내 장면에서 연결되는 다음 컷을 찍을 때 가구 배치를 바꾸거나 해서 그 어긋남을 강화하기까지 합니다. 고다르의 데뷔작부터 나왔던 관객을 향해 주인공이 말하기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근래로 홍상수가 똑같은 이야기를 두번 하면서 차이에 주목하게 하는 건 어떤가요. 아주 예전으로 거슬러올라가자면 시선 매치라고는 조금도 맞지 않는 오즈 영화는 어떻고요.

      그리고 그런 장치들의 상당수는 이제 심지어 TV드라마나 블록버스터 영화에도 흡수되어 올 정도입니다. 그 기폭제의 하나로 MTV를 들 수 있겠죠. 태생도 유통도 상업적이기 짝이 없는데도 당연히 탈내러티브 영화의 형태를 띄다보니 탈고전적인 문법을 잡탕으로 끌어모아 썼으니까요. 그래서 관객들도 그런 것에 상당히 익숙해졌고요.
    • 오늘날 라파엘로나 베르메르에 필적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없다고 한탄한다면 바로 그게 코미디인 겁니다. 뒤샹의 변기 앞에서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 앞에서 화소나 확대한 리히터의 회화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오늘날 라파엘로나 베르메르를 닮고자 몸부림을 친다면? 네, 소위 말하는 '이발소 그림'이 답입니다. 그리고 그건 수많은 그림 그리기 동호회 아마추어들이 실천하고 있지요.
    • 그리고 오늘날에도 그냥 고전적인 문법에 가깝게 영화를 만들면서도 판테온에 올라 있는 감독을 꼽으라면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꼽겠습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메릴 스트립이 빗속에 서 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발견하고 내릴까 말까 했다가 그냥 내리지 않는 상황을 담은 시퀀스가 떠오르네요. 저는 거의 천의무봉에 가까운 연출력이라고 보았습니다. 충분히 고전적인 문법의 현대적 계승이라고 꼽을 만해요.
    • dos/ 좀 이해가 갑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소설 자체는 굉장히 평범했는데 영화는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 저는 순례님의 영화 보는 방법이 이해가지 않아요. 영화 한편 보는데 2주나 걸리신다는데. 감독이 의도한 바는 그것이 아닐텐데 말이에요. 멀홀랜드 드라이브와 끔찍한 진실만 해도 무슨 쾌감 쾌감 그러시는데 그 장면이 몇 초나 걸리며 누가 그 영상 정보를 다 받아들이겠어요? 순간 보기에는 끔찍한 진실의 씬을 보면 산만해보이기까지 하는데 말이에요.
    • 물론 저는 일반 관객의 입장이니까 하는 말이구요. 순례님 같은 경우는 다를 수 있겠죠.
    • 문법이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영화가 법칙으로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법대로 찍으면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오히려 제한되니까요.
    • 왜 요즘 현대음악은 클래식 음악의 규칙을 지키지 않느냐고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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