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릭 입센의 작품 중에선 정말 생소한 작품이지만, 플롯을 읽고 강하게 흥미를 느꼈고요, 배우 이혜영 씨가 출연하신다는 것이 배로 기대하게 만들었죠.
두 시간 사십 분이라는 긴 시간이지만 집중을 놓지 않게 하는 힘이 있더군요. 하지만 역시 어려웠어요. 연극을 보면서 생기는 의문에 잠시 생각을 하다 보면 또 중요한 부분을 놓친 듯, 의문이 쌓여가는 게 오늘의 관람 형태였습니다. ;;
쉬는 시간 때와 공연이 끝나고 나서 프로그램을 열심히 읽었지만 머리 속이 쉽게 정리되지 않더라고요.
이 연극의 첫 미국 프로덕션에서 헤다 역을 맡았다던 배우는, 헤다는 다른 사람의 삶에서 빌리거나 훔쳐서라도 자신의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인물이라고 얘기했다는데요. 썩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닌가 생각했죠.
이 작품을 매우 짧게 요약했던 줄거리에서 제가 매력을 느꼈던 부분은 헤다가 전 애인의 원고를 불태운다는 부분이었는데요. 공엿을 볼 때는 제가 상상했던 것처럼 감정적 동요를 불러일으키지는 않더군요. 헤다가 원고를 불태우는 심정과 이유가 굉장히 복합적으로 보여서, 가슴이 아닌 머리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고요.
조금도 감상적이지 않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듯 보이며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한 채 자살하는 헤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공연 프로그램을 보면 한 인터뷰에서, 굉장히 다양한 욕망을 얘기하는 작품이며 사실주의, 극사실주의적으로 풀 수도 있고 무용극으로 풀어보고 싶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체홉의 작품과 비교하면 매우 일상적인 대사로 섬세한 인물들을 함축적으로 표현해서 놀라운 작품이라고 얘기를 하는데.. 작품을 안 본 사람들도 할 수 있을 법한 원론적인 얘기에 그닥 공감은 가지 않았어요.
헤다 가블러를 보셨거나 읽으신 분들의 말을 듣고 싶네요.
헤다가 한 선택과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재밌는 작품이었어요.
전 헤다의 선택을, 뇌르보그르가 해내지 못한 완벽한 끝(자살)을 대신 한 거라고 봤어요. 뇌르보르그가 죽은 모습 - 포도넝쿨도 쓰고 있지 않고, 술집에서, 별로 품위 있지 않은 곳에 총을 맞아 죽은 그의 모습 - 에 헤다가 너무나 실망하잖아요. 헤다가 그런 데 절망할 거라는 걸 브라크 판사는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원고를 불태우는 건 어찌 보면 그 '아름답고 완벽한' 끝을 위한 불씨였던 것 같네요. 처음부터 헤다는 자신이 살아갈 삶에 대해 죽도록 지루해하고 있었고요. 뇌르보르그를 하필 택한 건, 둘 사이의 어떤 동질감? 같은 것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에게 영감을 줬던 자신의 영향력에서, 헤다 자신도 위로 혹은 영감을 받고 있었다고 봤어요.